말귀 못 알아듣는 외교관들에게

이재명 대통령과 위성락 청와대 안보실장.
이재명 대통령과 위성락 청와대 안보실장.
  • 국무회의의 충돌 이스라엘(네타냐후 정권)이 공해상에서 우리 국민을 나포·감금한 사건에 대해, 외교부 차관과 위성락 안보실장은 “이스라엘 입장”과 “정부 권고 무시”를 대변하다가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여하튼 우리 국민을 잡아간 게 본질”이라는 강한 질타를 받았다.
  • 20년 전의 데자뷔 과거 딴지일보 탐사보도로 ‘이경운 씨 사망 사건’과 ‘한지수 씨 누명 사건’을 해결했던 필자는, 당시 자국민 보호에 무성의하고 강대국 눈치만 보던 외교 공관들의 한심한 태도가 20년이 지난 지금 청와대 최고위층(안보실)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음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 주권 국가의 원칙 정부 방침을 어겼는지는 내부에서 따질 문제일 뿐, 국제법상 해적 행위일 수 있는 ‘공해상 나포’에 대해 외교 당국이 “그쪽 설명”을 늘어놓는 것은 주권 국가의 철학 부재를 증명하며, 외교 관계보다 자국민의 생명과 권리 보호가 최우선임을 대통령만 외치는 현실이 씁쓸하다.
  • 영국 켄터베리 이경운 군 유학생 사망 사건
  • 2000년 9월, 영국 켄트 대학에 유학생 이경운 군(당시 17세)이 도로에서 통학버스에 치여 즉사한 사건. 영국 경찰은 ‘무단횡단에 의한 단순 교통사고’라며 서둘러 사건을 종결지었으나 유가족은 수많은 의혹을 발견하고 주영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대사관 측은 영국 당국의 입장만 두둔하며 “변호사를 알아서 선임하라”는 등 철저히 방관했다.
  • 유가족은 억울함을 풀기 전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며 시신을 냉동 상태로 무려 6년 넘게 영안실에 보관했다. 원종우 기자가 딴지일보를 통해 이 비극과 외교부의 무책임함을 전면 공론화해 국정감사 쟁점으로 비화되었다. 결국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해외 현지로 가 민간인 시신을 부검하는 전례를 남겼다. 영국 경찰은 초등수사 잘못을 인정했다. -편집자주
  • 온두라스 한지수 씨 살인 누명 수감 사건
  • 2008년 8월, 스킨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중남미 온두라스에 머물던 한지수 씨(당시 20대, 여)가 현지에서 발생한 네덜란드 여성 변사 사건의 살인범으로 몰렸다.
  • 진짜 유력 용의자였던 영국인 남성을 자국 대사관의 비호로 놓쳐버린 네덜란드 외교 당국이 압박을 가하자 온두라스 검찰은 만만한 한국인 한지수 씨를 인터폴에 수배했다. 2009년 여행 중이던 이집트 공항에서 체포된 한씨는 온두라스의 악명 높은 라세이바 감옥 독방에 수감됐다. 현지 공관은 “온두라스 법과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 원종우 기자가 딴지일보와 트위터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중남미 감옥에 방치되어 죽어가고 있다”며 구명 운동과 탐사보도를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여론이 폭발하고 청와대까지 보고가 들어가자 외교부는 그제야 부랴부랴 과장급 실무자와 국과수 법의학 박사, 중남미법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특별 전문가팀’을 현지로 급파했다. 정부의 사후 지원 사격과 법적 조력 덕분에 한 씨는 수감 500여 일 만인 2010년 10월, 1심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편집자주

대통령과 안보실장간 엇나가는 대화

어젯밤 일찍 잠들었다가 한밤 중에 깨서 별 생각 없이 뉴스 영상을 봤다. 그런데 국무회의 한 장면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참석자 일부의 대화 내용이었다.

이재명 대통령 : 그럼 교전하면 교전국끼리 어떻게 하는 거야 우리가 관여할 바 아닌데, 제3국에서 지원이나 자원봉사하러 가는 제3국 선박을 나포하고 체포해서 지금 감금을 했다는데, 이게 타당한 일입니까?

위성락 안보실장 : 출입 통제 차원이라고 이스라엘은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난 번에도 우리가 가자 지역은 입국 금지 지역이니 입국하지 말라고 했는데 입국을 한 바가 있고... (중략)

대통령 : 아니 우리 국민을 잡아 갔으니까 하는 얘기 아닙니까?

안보실장 : 근데 또 그분들에 대해서 좀 더 복잡한게 저희가 가지 말라고...

대통령 : 아니 복잡하고 우리가 가지 말라고 한 거, 권고도 하고 했는데 뭐 정부의 방침이나 권고를 안 따른 거는 우리 내부 문제고, 여하튼 우리 국민들을 국제법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사유로 잡아간 것은 맞잖아요?

안보실장 : 그것도 좀 검토를 해 봐야 되겠습니다.

2000년, 2008년 안타까운 외교참사

안보실장 이전에 외교부 제 2차관과의 대화도 있었는데 분위기는 비슷했다. 딴지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기 나는 탐사보도로 외교부와 두 번의 마찰을 겪은 바 있다.

첫 번째는 영국 유학 중 맞닥뜨린 2000년 켄터베리의 이경운씨 사망 사건, 그리고 두 번째는2008년 온두라스의 한지수씨 살인누명 수감 사건.

그 길고도 복잡한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말하자면, 이경운씨 사건의 경우 일이 쟁점화 되자 사망한지 6년이나 지나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민간인 해외 부검에 나서게 되었다. 주영대사관의 비상식적이고 무성의한 태도에 크게 상처를 받았던 경운씨 아버지의 한을 일부나마 풀어줄 수 있었다.

한지수 씨는 20대 여성의 몸으로 충분한 증거나 수사도 없이 중남미의 무시무시한 감옥에 다짜고짜 수감됐지만, 딴지일보 기사화 이후 외교부 과장이 현지에 달려가는 등 조치가 이뤄져 500여 일에 걸친 수감 생활 끝에 자유를 얻게 되었다.

외교관은 어떤 원칙을 가져야 하나

그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유럽이나 미국 등 소위 선진국의 외교 당국과 공관이 자국민 개개인의 이익과 안전을 어느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게 됐다.

스페인 영주권자지만 20년이 넘도록 한국 국적을 놓지 않았던 이경운씨 가족은, 스페인 대사관으로부터 ‘당신들이 스페인 국적이기만 했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을 것이다’ 라는 안타까운 말을 여러차례 들었다. 그런 상황이 우리 공관과 비교되어 가족의 후회와 한을 더욱 키웠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온두라스의 한지수 씨가 살인 누명을 쓴 것도, 사망자의 남자친구로 훨씬 중요한 용의자로 보였지만 이미 출국해 자국의 보호하에 있던 영국인 남성 대신, 희생자 국적이던 네덜란드 대사관이 나서서 이미 해외에 나가 있던 한지수씨를 체포해 온두라스로 압송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다양한 사례를 별도로 찾아봤는데,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유럽이나 미국 등의 외교 당국이 무조건적으로 우선시 하는 것은 자국민이 해외에서 편견과 차별, 무성의에 피해입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조치하는 것이었다.

이들 나라 외교당국자는 사고 희생자나 그 가족, 혹은 위기에 빠진 국민에게 ‘해당국의 입장에서 이해해야’라든가 ‘알아서 잘 했을 것’ 따위의 말을 늘어 놓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된다.

외교 당국이나 현지 공관이 범죄 혐의자를 무조건 옹호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무성의한 처우에서부터 누명에 이르기까지 부당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큰 재외국민을 우리 정부가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그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떠올렸던 외교공무원들의 태도

‘주권국가로서 상식’이라고 할 이런 부분에서 당시 외교부와 재외공관원들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바로 어제 외교부 차관과 안보실장 등이 보인 태도에서 그 일들에 관여했던 몇년 간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계속 나오는 말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그쪽 설명으로는’ 등등. 자신들이 수십 년간 몸 담아온 일이 정말로 뭘 하는 일인지, 무엇이 중한지를 전혀 모른 채 외국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게 좋은거다’라는, 약소국의 타성에 젖은 모습. 아, 여전하구나.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말은 달랐다. ‘우리 국민을 잡아 갔다니 하는 이야기 아니냐’, ‘정부의 방침이나 권고를 안 따른 것은 우리 내부 문제고, 여하튼 우리 국민들을 국제법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사유로 잡아간 것은 맞지 않나,’

바로 저 것이다. 우리 외교 당국이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입장에서의 주장, 즉 교전 중이라느니, 뭘 선포하고 선언했다느니 하는 게 아니라, 우리 국민이 (정부의 권고를 무시했든 아니든 그건 나중에 우리끼리 해결할 문제고) 공해상에서 나포되어 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공해상 나포’는 많은 나라의 정부와 관련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국제법상 ‘해적 행위’에 해당할 수 있기에 이스라엘 측 입장이나 주장을 이해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취지의 대통령의 말을 계속 들으면서도 외교부 차관도 안보실장도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권리 보호’가 대통령만의 일인가

외교관, 고위 공무원으로서 철학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있는지가 확연하게 들여다 보이는 광경이다. 이경운 사건은 20년이 넘었고, 한지수 사건도 이제 20년이 가까워진다. 다 내가 30대 때 관여한 일들이다.

이제 나는 50대 중반이 넘어가는데, 말단도 아닌 최고위층의 인식이 여전히 저렇다. 미처 생각을 못했던 걸 넘어서 대통령이 지적하는데도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 저 답답함을 20년만에 국무회의를 통해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대통령이 외교에 무지하고 관련 업무의 구체적인 어려움을 몰라서 강한 어조로 반복해 말한 게 아니다. 가장 큰 원칙에 대한 그들의 부족한 인식과 미적지근한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국제 관례니, 외교 관계니, 특정한 나라의 입장이니 선언 등보다 훨씬 무겁고 중요한 원칙, 바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권리의 보호. 이것이 오로지 대통령만의 임무인가.

글쓴이

원종우

글쓴이 파토 원종우. 1990년대 말부터 2015년까지 딴지일보 기자 및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다. 4년간 영국에서 생활하며 현지에서 교착 상태이던 이경운 사건의 해결에 일조했고, 한지수씨 가족이 이경운 사건 관련 기사를 읽고 연락해 온 것을 계기로 온두라스 한지수 사건을 파헤치고 공론화했다. 현재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일하며 13년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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