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무함마드씨: 이슬람은 어떻게 다를까
[이근윤의 사우디, 중동이야기] 월드컵에서 보여준 이슬람의 저력 여성차별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테러리스트일 수 없는 ‘친철한 이슬람’
2022년 어느 때보다 많은 화제를 남기며 역대급으로 재미있는 극장골이 수시로 터지는 경기를 보여 주었던 카타르 월드컵이 있었다. 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개최된 대회라 중동 및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개최국이지만 무기력한 3연패로 세계 축구의 높은 벽에 고개를 숙였던 카타르로부터 시작해,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음으로써 고국의 시위대를 향한 연대의 마음을 표현한 이란, 우승국 아르헨티나를 격파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다음날 왕세자가 특별 휴일로 지정하고 선수 전원에게 롤스로이스를 선물한다는 소문으로 떠들썩 했던 사우디, 이베리아 반도의 패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던 이웃나라 스페인, 포르투갈을 차례로 집으로 돌려 보내고, 4강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 주며 유럽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모로코까지 이슬람 국가들의 활약이 깨알같이 펼쳐진 대회였다.
덩달아 처음으로 한국, 일본, 호주 아시아 3국이 16강에 동반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내며 더 이상 축구 변방이 존재하지 않음을 제대로 보여준 대회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슬람이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온 이 때, 그들이 이방인이던 필자와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 주었던 환대와 친절의 기억을 담은 에피소드 몇 장면을 나눔으로써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진, 왜곡된 그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기를 희망한다. 또한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 (이 글은 필자 이근윤씨와 그의 아내 엄경희씨가 따로 따로 정리한 것이다.)
에피소드1: 남편이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으면?
우리가 사는 주베일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진 곳에 사우디에서 3번째 큰 도시 코바가 있다. 주베일은 한국으로 치면 서울 근교의 신도시 같은 곳이다. 사우디 사람들에겐 휴양지로 알려질 정도로 도시계획이 잘 되어 있다. 그래도 제대로 뭔가를 하려면 서울에 볼일 보러 가듯, 코바까지 가야할 일이 많다. 이 곳 해안가에 가면 낙타 마차 타는 모습, 사막에서 자동차 타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외국인인 우리에겐 모래로 된 언덕으로 자동차들이 올라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언덕은 나무로 덮였으면 웬만한 야산 정도는 될 제법 높은 둔덕이었다. 사막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저 높은 곳 너머로 어떤 광경이 펼쳐질 지 궁금해 도전해보기로 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사막 운전이었지만 남편은 초반 평지길을 덜덜거리며 달렸다. 모래밭 오르막길에 들어서자 차가 앞으로도 뒤로도 꿈쩍하지 않았다. 바퀴가 모래에 박혔다. 온 가족이 차에서 내려 어찌해야 하나 난감해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우디 사람이 차를 돌리더니 우리에게로 왔다. 그리고는 바퀴에 20초 정도 바람을 빼주라고 설명하더니 몸소 쭈그려 앉아 차바퀴 바람을 빼줬다. 그리고는 직접 자동차를 몰고 산을 내려갔다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와보더니 이제 됐다고 한다. 우린 사방이 모래인 곳에서 달리 답례할 방법도 없고 연신 ‘슈크란(고맙다)’ 소리만 합창을 했다.
다시 산꼭대기를 향해 출발했지만, 2차 시도도 실패다. 차가 또 서버렸다. 남편은 배운대로 차바퀴에서 바람을 다시 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언덕 위의 또 다른 사우디 사람이 모래밭을 달려내려왔다. 이번엔 바퀴의 문제가 아니었다. 핸들을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사막 운전의 관건이라고 했다. 핸들을 움직여서 모래를 파헤치며 한숨에 속도를 내어 올라가는 것이 포인트였다. 우여곡절 끝에 사우디 친구의 도움으로 모래 꼭대기에 올라가긴 했다.
꼭대기에 가면 다른 세상이 있나 기대했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모래, 모래, 모래 뿐이었다. 여기 사람들은 모래밭에서 놀고 모래경치를 구경하는 식이었다. 우리를 도와주었던 사우디 친구의 부인 이름은 나왈, 한국사람을 만난 게 평생 처음이라고 유창하게 영어로 인사했다. 코바에 살고 있는데도 나에게 아랍어를 가르쳐 주고 싶다더니 대뜸 자기 집에 당장 가자고 했다. 계획에도 없던 사우디 가정으로의 방문이었다.
나왈의 집은 한국식 빌라같은, 그다지 크지 않은 집이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사우디 여성들의 삶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였다. 남편은 집안일을 하나도 안 하고 밥, 청소, 애 키우기 등 모든 일을 여자들이 다 하는데 남자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당연히 여긴다며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여기는 아내를 4명까지 둘 수 있어요. 제 남편의 아버지는 아내가 3명이었고 자식은 16명이나 됐죠. 하지만 우리집은 엄마 혼자였어요.”
“한 집에 여러 아내가 같이 살면 집안 분위기가 어떤가요? 가사일도 서로 분담하겠네요”
내가 묻자 나왈이 호탕하게 웃으며 하는 말,
“매일 아침 싸우는 게 일이죠”
그 한 마디로 아내가 여럿인 집의 그림이 확 몰려왔다.
“배다른 형제들끼리 관계는 어떤가요?”
“당연히 안 좋죠. 물론 아빠가 질서를 잘 잡으면 좀 낫지만 좋기가 어려워요”
“요즘은 어떤가요? 젊은 사람들도 아내를 여럿 두려고 하나요? 당신 남편도 아내를 더 두고 싶어하나요?”
조금 더 용기를 내서 개인적 질문을 했더니 나왈의 대답에 우리 모두 넘어갔다.
“If my husband gets another wife, I will kill him(만약 남편이 딴 아내 얻으면 그날로 죽음이야).”
집에 와 애들 재우고 침대에 누워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 “아무리 집이 넒다한들 저 건너방에 당신의 또 다른 마누라가 자고 있다고 상상해봐” 나도, 남편도 ‘으흐읔’ 몸서리를 쳤다. 한 집에 여러 아내가 같이 살면 집안꼴이 어떨까? 조금만 상상력을 가동해도 그것이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하고 끔찍한 삶일지 가늠이 안 된다. 반면 여러 아내와 많은 자식을 거느리며 으쓱대는 남편의 모습도 오버랩되면서 끓어 오르는 분노 비슷한 분개에 어찌할 바 모르는 밤이었다.
사우디의 이 강력한 남성중심 무슬림 세계의 참된 변화는 여성이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발견하고 발현하는데서 시작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무엇보다 여성이 많이 배우고 능력을 키워야할 텐데. 여성의 힘에 대해 누구보다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한 여성으로서 이 사회가 참 답답하고 아득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에피소드2: 사우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우리집 옆에 있는 이브라힘 집 저녁 초대에 다녀왔다. 이브라힘은 같은 동네의 사우디 이웃이다. 겨울 날씨가 선선해지자 첫째 아들이 근처 공원으로 조깅을 다니기 시작하다 이브라힘이라는 이웃을 알게 됐다. 집안 끼리 인사로 파이와 아랍식 만두를 서로 건네주다가 급기야 우리집 아이들 다섯이 그의 집에 우르르 몰려가 떡볶이, 만두, 김밥 등 외국인들이 궁금해할만한 한국 음식을 이브라힘네 가져다 주기도 했다.그렇게 음식이 몇 번 오가고 어느 날 이브라힘네가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아버지 이브라힘은 사우디 사람인데 아내는 멕시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가족을 이해하는 마음의 너비가 남달랐고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 통하는 게 많았다. 무엇보다 참 편안했다. 이브라힘은 할아버지다. 결혼한 큰 딸과 손주 사라가 같이 집에 왔고 우리는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치 딴 세상처럼 잘 가꿔진 정원에서 흡사 중동 호텔 버금가는 맛난 음식을 함께 나눴는데 그 평안하고 따뜻하며 여유있는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브라힘은 특별히 나의 엄마를 엄청 챙겨준다. 그는 식성이 다소 까다로운 엄마를 위해 따로 테이블을 마련하고 음식을 특별히 준비해 놓았다. 대단한 배려가 아닐 수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젊은 엄마, 중년 엄마, 아빠, 청소년 아이들부터, 돌 지난 사라까지 모든 연령의 서로 다른 인종, 종교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렇게까지 깊고 평안한 하모니를 이루며 교제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소통하면서, 종교도 다른 외국인과 이렇게까지 깊은 정을 나눌 수 있구나 놀라며 맞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섯 아이를 홈스쿨링하는 사우디에서의 삶에 다른 이웃을 들일 여유가 없었다. 가까이 사는 한국인 이웃도 거의 없어 우리 가족은 국제적 고립에 꽤 오래 빠져있었는데, 조금 여유가 나자 사우디 이웃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자 신기하게 진짜로 사우디 이웃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깊은 교제를 나누는 가까운 이웃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다. 사우디 생활의 가장 좋은 면이라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평강, 고요, 쉼, 안식, 따뜻함, 여유를 누리는 것이다. 사우디 이웃으로부터 받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에피소드3: 테러? 나그네에 대한 환대 문화
9년전 가족들이 들어오기 전 사우디에 혼자 있는 동안 큰 교통사고를 겪었다. 3차선에서 갑자기 유턴을 하려다 1차선으로 들어오던 탱크로리를 피하지 못해 추돌한 후 차가 데굴데굴 굴렀다. 당시 시속은 160km 정도로 기억한다. 부딪히는 순간 ‘아, 죽는구나’ 싶었고, 짧은 순간 앞창이 깨어지고 흙이 쏟아져 들어오고 차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이 날아 다녔는데, 정말 공포스러웠다. 다행히 2차 추돌이 없어 가까스로 살았다.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경황이 없어 한동안 차에 계속 앉아 있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문을 열고 필자를 내려주고, 물도 마시게 하며 위험한 차에서 구출해 주었다. 망가진 차에서 멀쩡히 내리는 필자를 보며, 다들 ‘함두릴라’(무슬림들이 신을 향해 감사 인사하는 말)를 10번도 넘게 했는데, 내 호된 사우디 신고식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순간이었다.
최근 사우디 북서부 여행에서도 퍼져버린 차의 후드를 열고 망연자실, 안절부절 못하던 나에게 대부분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사우디 이웃들이 먼저 다가와 차 상태를 함께 봐 주고 아랍어로 뭐라뭐라 조언들을 해주었다.
9년전에 비해서는 더 많은 아랍어를 알아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소통은 어려워서 아랍어가 가능한 직원과 연락해서 도움을 받아가며 의사소통을 겨우 했다. 결론적으로 차가 고장난 곳은 정비소가 있는 대도시로부터 최소 3시간이 넘는 거리이고, 견인차도 도시에서 와야 해서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데다가, 견인비용만 수십만원이나 된단다.
다행히 자기가 그 지역의 ‘프린스’라고 소개한 사파리 여행사 오너가 벤츠 S클라스를 타고 와서는, 직접 차 밑에 들어 가서 차량을 점검해 보더니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그는 다른 업체가 요구하는 비용의 1/3 가격에 견인차를 불러 주었고, 기다리는 동안 자기 집에 와 있으라며 데려가서 딸기밭 구경도 시켜주고 따뜻한 차도 대접해 주었다.
결국 3시간만에 도착한 견인차에 실린 우리 차에 5시간 동안 숨은 채 자동차 정비소가 모여 있는 스산한 도시 외곽까지 겨우 갔다. 새벽 2시에 도착해서 모든 정비소가 문을 닫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는 수밖에 없었다. 호텔까지는 다시 20km 정도 더 이동해야 하는데, 우버는 연결도 안됐다.
또 다시 마음씨 착해 보이는 사우디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가다 우리 일행을 보고 어디로 가냐고 묻더니 차까지 태워줘서 호텔로 갈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우버 비용만큼의 사례를 하긴 했지만 어려움 당한 이웃의 처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녹아드는 따스한 순간이었다.

이처럼 사막의 사람들에게 나그네에 대한 환대 문화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바로 눈 앞의 이웃이 해코지를 당해도 혹시나 나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외면하는 현대 도시의 문화를 생각하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수시로 낯선 사막을 여행하며 목숨의 위협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들은 낯선 나그네일지라도 자기 집에 찾아 온 이들을 정성껏 대접한다. 단순한 친절을 넘어 서로를 지켜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는 목숨과도 같은 사회 안전망이다.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는 동안 치욕스런 시기를 보낸 무슬림들이 그들을 짓밟은 서구를 향해 테러라는 폭력으로 저항한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된 방법이다.
그러나 절대 다수가 따뜻한 이웃인 그들의 모습이 극소수 테러리스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전체가 악마화되는 것도 분명히 경계해야할 서구 언론의 왜곡된 시선이다. 중동에서 개최된 최초의 월드컵이 이런 왜곡과 갈등 반목의 역사를 딛고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충돌이 아닌 번영과 공존을 모색하는 소중한 계기로 남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껏 나와 우리 가정에게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던 무슬림 이웃들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슈크란! 자질란!(무척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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