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대지진에 신음할 때마다...왜 신은?

[이근윤의 사우디, 중동이야기] 유럽·아프리카·아시아 만나는 지정학 땅밑엔 거대 지각판이 충돌하는 곳 매번 대규모 희생자들...슬픔과 연민이

알라신이 답한 것일까. 13일(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가 지진 발생 177시간 만에 구조되자 기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알라신이 답한 것일까. 13일(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가 지진 발생 177시간 만에 구조되자 기뻐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6일,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접경지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해 이 일대가 아비규환에 빠졌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진은 인구 100만 명의 튀르키예 남동부 최대 도시 가지안테프에서 북서쪽으로 불과 34km 떨어진 곳의 지하 17.9㎞지점에서 발생했다. 이후 약 9시간 후 남서쪽으로 약 59마일(95㎞) 떨어진 곳에서 규모 7.5의 여진이 이어졌고, 2월9일까지 최소 1206회의 여진이 보고되었다.

2월14일 현재까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보고된 사망자가 3만6000명을 넘어서면서, 지난 2003년 12월 26일 이란 북부를 강타하여 최소 3만1000명이 사망했던 규모 9.3의 지진은 물론, 1939년 튀르키예에서 발생했던 강도 7.8에 사망자 3만2962명을남긴 지진을 금세기 최악의 지진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힌 희생자들이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누적 피해는 점점 더 커져 갈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만 20만명 이상 나올 수도

최초 지진이 발생한 시리아 접경지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는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많은 시리아 난민과 인도주의 구호 단체가 거주하고 있다. 전 세계 각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지원 요청에 신속하게 대응하여 구조대를 파견하고 원조를 제공했다.

현재 시리아 내전상황은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 중 하나였다. 여기에 지진은 가뜩이나 복잡하고 취약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전망이다. 시리아의 피해 상황과 구조 작업 현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 한 가지 장애물은 시리아 정부가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반군지역 북서부를 모두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리아 북서부에서는 이미 410만 명의 주민이 인도주의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들 대다수는 여성과 어린이다. 여러 국가가 튀르키예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하고 있지만, 고통받고 있는 시리아인에 대한 지원은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장비와 연료 부족 등 시리아 북서부 지역의 제한된 역량으로 인해 수색 및 구조, 복구 노력이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월 9일자 긴급 업데이트에서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은 시리아 북서부에 필요한 주요 지원 사항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1) 잔해 제거를 위한 중장비, 2) 현금, 3) 텐트, 격리 시트 등 비식량 품목, 4) 난방 연료, 5) 비상 식량 및 빵 지원, 6) 급수차 및 쓰레기 제거 시설, 7) 구급차 및 의약품, 8) 병원 및 보건소용 연료, 9) 사람들을 수송할 트럭 및 승합차 임대, 10) 이재민 수용 시설, 11)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 등이다.

튀르키예 국경과 가까운 시리아 이들리브주의 소도시 살렘에서 현지 민방위 대원과 주민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 속 생존자를 찾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튀르키예 국경과 가까운 시리아 이들리브주의 소도시 살렘에서 현지 민방위 대원과 주민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 속 생존자를 찾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신은 지진을, 인간은 취약성을 키운다

지진은 가장 파괴적인 자연 재해다. 튀르키예에는 두 개의 주요 단층대(아프리카 대륙을 구성하는 거대한 누비아 판과, 아라비아 반도를 포함하는 아라비아판, 인도양부터 인도까지 이어지는 인도판, 그리고 유라시아판이 힘겨루기를 펼치는 각 지점)가 있어 세계에서 가장 지진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다. 자연재해는 인간 사회나 공동체와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재난이 되는데, 이를 재난학에서는 ‘취약성’이라고 한다.

이번 재난에서 취약성은 현대 내진 설계 기준에 맞지 않는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 비공식 정착촌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시리아 난민 또는 시리아 북서부의 난민, 수년간의 전쟁과 공중 폭격으로 인한 시리아 내 인프라 파괴, 분쟁으로 인해 시리아에서 진행 중인 복잡한 인도주의적 비상사태, 콜레라 발생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이유로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초토화시킨 지진은 “자연재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진설계를 통해 안전한 건물 건설을 법제화하고, 비상시 대피 훈련 및 소통을 강화하고, 재난 구호 및 복구활동을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대비와 회복력을 강화함으로써 재난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튀르키예 정부가 건설업자들의 로비를 받아 엄격하게 적용했어야할 내진설계 규제를 완화해 주고, 1999년 이후 적립한 내진설계 지원 비용 기금 6조원을 내진설계에 사용하기보다 건설업자들의 지원경비로 사용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어, 인재가 아니냐는 튀르키예 국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진이 발생했던 가지안테프 현지에 수년간 거주 중인 한국인 교민에 따르면, 그들은 최초 지진 피해지역에서 약 2시간 떨어진 도시에 있었는데 지진 당일 새벽 장시간 진동이 느껴져 바로 집을 벗어나 지진 영향이 없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고, 여진이 멈춘 후에는 다시 해당 지역으로 돌아가서 이웃들이 있는 안전한 건물에 임시로 같이 머물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살던 동네에만 약 10여 채의 건물이 무너졌다고 한다.

지금은 그들도 구호팀을 꾸려서 피해지역에 구조작업 및 구호활동 중이다. 피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은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으나 난방이 되지 않아 추위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한국 교민들의 피해는 없었으나, 함께 교류하고 같이 살던 이웃들이 모두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해당지역에 머물며 구호활동에 힘쓰고 있다. 음식을 나누는 구호활동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어 매일 음식을 나누는 구호활동이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재해가 중동의 역사를 바꿔왔다

금세기 최악의 지진이 앞으로 중동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큰 자연재해는 종종 역사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중동지역의 흐름을 바꾼 다섯 개의 큰 지진들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138년 시리아 알레포

1138년 10월 11일 시리아의 알레포를 강타한 지진은 역사상 최악의 지진 중 하나였다. 15세기의 이집트-이슬람 역사가 이븐 타그리비디(Ibn Taghribirdi)에 따르면 이 재난으로 약 23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튀르키예 시리아 지진과 거의 같은 지역에서 발생했다.

알레포의 성채는 완전히 무너졌고, 일부 무슬림 요새도 무너져 도시 경비병 600명이 사망했다. 당시 알레포는 이슬람 세력과 십자군의 전투로 격변의 무대였다. 오늘날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시리아의 이들리브 지방 인근 하렘에 있던 십자군 성채가 무너지기도 했다. 이 거대한 지진은 1138년에서 1139년 사이에 시리아 북부와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을 황폐화시킨 지진이었다.

856년 이란 담한(Damghan) 지진

856년 이란 북부 담한에서 발생한 지진 역시 세계 역사상 최악의 자연 재해 중 하나다. 856년 12월 22일, 진도 7.9의 대지진이 이란의 알보르즈 산 지역을 강타했다.

사망자 수치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약 2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지질 조사국은 이것을 역사상 여섯 번째로 치명적인 지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담한시는 그 주변의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크게 파괴되었다. 담한은 중세 페르시아의 쿠미스(Qumis) 지방의 수도였다. 이란은 아라비아판과 유라시아판 사이에 있어 잦은 충돌로 파괴적인 지진이 일어난다.

526년 튀르키예 안티오크(Antioch) 지진

526년 치명적인 지진이 지금의 튀르키예, 당시 비잔틴 도시 안티오크를 강타했다. 지진은 아프리카, 아라비아, 아나톨리아의 3개 지각판이 만나는 바로 위에 있는 안티오크의 위치 때문에 발생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이 재난으로 25만명이 사망했다. 이러한 사망자 중 다수는 초기 지진 때문이 아니라 지진 이후 발생한 일련의 화재로 인한 것이다.

현대 추정치로 그때 지진의 규모는 7.0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형 팔각형 교회인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는 화재로 인해 파괴된 주요 건물 중 하나였다. 일부 연구자들은 안티오크가 매년 기독교 축제인 승천일을 주최하여 비잔틴 제국 전역에서 여행자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진 1년 후 비잔틴 제국의 왕좌에 오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도시를 재건하는 데 많은 돈을 썼다. 그러나 불과 10년 후 페르시아에 의해 도시가 약탈당했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1033년 팔레스타인 요르단 계곡 지진

팔레스타인의 요르단 계곡에서 발생한 1033년 지진은 레반트 지역을 황폐화시켰다. 대부분의 학자들에 따르면 지진은 진도 6.7에서 7.1 사이였으며 최소 7만명이 사망했다. 이 재난은 지난 2천년 동안 많은 지진을 일으킨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지각판 사이의 일련의 단층선인 ‘사해 균열’과 관련이 있다. 나블루스, 여리고, 헤브론, 티베리아스, 아스클론, 아카 등 성서의 지명으로 익숙한 많은 도시들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가자 지구에서는 모스크가 파괴되었고 예루살렘 구시가에서는 성벽과 교회가 손상되었다. 여리고에 있는 주요 초기 이슬람 유적지인 히샴 궁전 역시 파괴되었다. 시리아와 이집트 일부 지역에서도 피해가 보고될 정도로 광범위한 지진이었다.

1754년 이집트 카이로 지진

1754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수 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진도 6.6으로 추정되는 지진으로 당시 오스만 제국 치하의 도시 카이로에서만 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건물이 무너져 많은 주민들이 사망했다. 카이로의 이슬람 시대 공동묘지와 묘지 지역의 일부가 파괴되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시나이 반도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도 이 때 파손된 후 후대에 복구되었다.

예수 탄생 이전의 중동 지진들

이외에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성서 등 고대 문서에 남아 있는 지진 기록들을 살펴보면, 기원전 31년에 발생한 요르단 계곡의 유대 지진은 규모 7 이상으로, 이전 2000 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 추정된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는 당시 3만명이 사망했다고 기록한다. 이 때 엠마오와 후대에 헤롯 대왕에 의해 가이사랴로 개명된 스트라톤의 탑 역시 손상되었다.

기원전 8세기 아모스서에 묘사된 대지진은 고대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의 흥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1365년 청동기 시대에 우가릿을 강타한 것으로 추정되는 격렬한 지진은 왕궁의 절반이 화재로 파괴되었다는 아마르나 서신 151의 잘못된 해석에 근거하고 있는데, 실제 고고학 발굴에 의해 우가릿의 파괴 층은 현재 기원전 1250년경으로 날짜가 재조정되었다.

이외에 기원전 1500년에서 1400년 사이 대규모 지진으로 파괴되고 버려진 도시 여리고와 기원전 1700년 가나안의 텔 카브리 궁전이 대규모 지진으로 파괴된 기록들이 남아 있어 성서 고고학자들의 흥미로운 탐구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가 만나는 격동지

이처럼 역사적으로 큰 지진은 당대 사람들에게 신의 진노나 심판으로 여겨질 만큼 큰 충격을 주었고, 여파가 클 경우 왕조가 무너지거나 한 도시가 몰락하는 정치적인 격변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자연재해의 경우에는 그것을 잘 대처한 통치자들이 영웅으로 칭송을 받게 되거나, 건축법과 기술, 사회제도의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 오히려 장기적으로 역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기도 했다.

지진 강도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표.
지진 강도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표.

특히 이번 지진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목은 21세기 들어 가장 가슴아픈 대혼돈의 역사를 기록중인 레반트 지역(튀르키예, 시리아, 이라크를 아우르는 중동 북부지역)의 한가운데를 강타했고, 그로인해 안 그래도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시리아 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으로 시리아 정부와 미국 등 서방세계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곳이라 인도적인 지원조차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라 한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가 만나는 특유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중동이 땅 아래에서도 아프리카판과 아라비아판, 인도판, 그리고 유라시아판이 힘겨루기를 펼치는 곳이라 숱한 거대 지진의 희생물이었다고 하니, 이 지역에 대한 깊은 연민의 감정이 몰려 온다.

충격적인 재난의 현장 앞에 지금까지 수많은 난민들의 고통에 눈감아 온 인류가 함께 힘을 모아 세기의 재앙을 너끈히 이겨내고 지금도 추위와 배고픔, 상실의 아픔에 휩싸여 있는 피해자들을 넉넉히 안아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글쓴이

이근윤 사우디 사업가 겸 칼럼니스트

필자인 이근윤은 서울대에서 환경과학을 전공했다. 한국렌탈 중동총괄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켄렌탈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이메일 주소는 musc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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