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의선, ‘엔비디아 조연’ 거부하라

[조선규의 Special Report]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 연합뉴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 연합뉴스
  • 엔비디아의 초대와 데이터 주권 위기 엔비디아의 HBM 독점 공급으로 인한 단기적 실적 개선은 안도감을 주지만, 피지컬 AI 시대에 엔비디아 플랫폼에만 의존할 경우 우리 기업의 핵심 제조 데이터와 기밀이 글로벌 기업의 서버로 흡수되어 기술 유출과 공장 복제의 위험을 초래한다.
  • 대한민국 빅테크의 독자 생태계 잠재력 대한민국은 네이버의 소버린 AI 인프라, 현대차의 보스턴 다이나믹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제조 역량 등 반도체부터 로봇, 자국어 중심 플랫폼까지 모두 보유한 세계 유일의 균형 잡힌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어 독자 생태계 구축의 최적의 발판을 가지고 있다.
  • 새로운 거인으로의 도약 대한민국 빅테크 기업들은 엔비디아의 파트너십 제안을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의 독자적 생태계를 출범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활용하여 스스로 새로운 거인이 되어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위대한 상상력과 도약을 단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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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우산을 걷어라

최근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의 행보는 우리에게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안겨줍니다. 하나는 그들의 압도적인 인공지능(AI) 생태계에 편입되어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독점 공급하는 대한민국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주는 안도감이며, 다른 하나는 이 거대한 글로벌 밸류체인의 핵심 열쇠를 결국 미국 빅테크 기업이 쥐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입니다.

그가 대만과 한국을 잇달아 방문한 것은 엔비디아가 그리는 미래 권력의 지도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대만을 수직적 제조 기지로 묶어둔(Lock-in) 그가 한국을 향해 ‘수평적 미래 파트너’의 손짓을 보낸 이유는 명확합니다.

가상 세계의 거대언어모델(LLM)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가치 창출의 주체인 AI 에이전트와 이를 물리적 신체로 구현할 ‘피지컬 AI 즉 로봇’ 공학의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대한민국 대기업들은 엔비디아가 깔아놓은 안드로이드형 플랫폼 위에서 훌륭한 하드웨어 껍데기를 만드는 조연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생태계를 지배하는 애플과 같은 독자적 플랫폼의 주인이 될 것인가. 대한민국의 미래 국부를 결정할 상상력의 전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현재 대한민국 증시를 견인하고 기업의 영업이익을 방어하는 가장 강력한 축은 엔비디아의 주도하에 있는 HBM 밸류체인입니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특정 초거대 기업이 발주처로서 한 국가의 거시 경제 성장률과 기업 실적을 좌지우지하는 구조는 생태계 내부적으로 대단히 취약한 비대칭적 의존성을 낳습니다.

엔비디아는 공장이 없는 팹리스 기업입니다. 대만의 TSMC와 150여 개 협력사를 수직 계열화하여 렉 하나에 130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정밀한 제조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미·중 패권 전쟁의 격화와 대만 내부의 지정학적 불안감, 그리고 핵심 반도체 인력의 중국 본토 유출이라는 균열이 발생하자 엔비디아는 영리하게도 다음 카드로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국에 원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이미 과열된 대만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 제조 역량과 인프라를 갖춘 한국의 대기업들을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운영체제(OS)와 쿠다(CUDA) 플랫폼 아래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당장 우리 기업들에 막대한 발주 물량과 단기적 풍요를 가져다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핵심 플랫폼 권력을 양도한 채 단순 제조 하청업체로 고착화되는 ‘달콤한 덫’이 될 수 있습니다.

피지컬 AI 시대, ‘데이터 주권’이 곧 국부다

인공지능이 실제 물리적 공간으로 튀어나오는 피지컬 AI와 로봇의 시대에는 과거와 전혀 다른 차원의 리스크가 발생합니다. 로봇이 인간 대신 생산 현장에 투입되어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핵심 제조 공정 데이터와 기밀 노하우가 로봇의 두뇌에 주입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 기업들이 엔비디아가 제공하는 클라우드와 플랫폼, 인공지능 비서 모델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로봇을 구동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공장에서 축적된 정밀한 제조 데이터와 핵심 기밀들이 고스란히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서버로 흡수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근로자의 수년 치 업무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상 아바타를 만들어 인력을 완전히 대체하는 ‘페르소나 복제 알고리즘’이 구현되어 법적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데이터가 곧 자산이자 국부인 시대에 플랫폼을 소유하지 못한 제조 기업은 공장 라인 전체를 통째로 복제당할 위험에 노출됩니다.

따라서 국가나 기업 단위에서 독자적인 데이터 보안과 플랫폼을 운영하는 소버린 AI의 구축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독자적 검색 엔진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보유한 네이버가 있고, 이미 로봇 친화적 스마트 빌딩인 ‘1784’(네이버 제2사옥)를 통해 피지컬 AI의 완성형 샘플을 세계 최초로 구현해 낸 경험이 있습니다.

인프라와 제조 역량, 플랫폼의 기초 체력을 모두 갖춘 국가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상력의 영토를 넓혀라

글로벌 비즈니스의 역사에서 위대한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최고경영자(CEO)의 상상력의 크기’ 였습니다. 기업은 결코 수장의 상상력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으며, 그 상상력의 크기가 곧 그 기업이 도달할 수 있는 맥시멈 입니다.

최근 젠슨 황 CEO의 방한 당시,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대기업 수장들이 다른 일정을 이유로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장면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력을 보유한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글로벌 영업이익 1위를 다투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레인보우 로보틱스’를 비롯한 독자적인 로봇·AI 에이전트 생태계를 꿈틀거리며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엔비디아의 독점적 초대에 무조건 동조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 지배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늑대와 같은 ‘야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20세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 자본과 인력이 부족했던 시절의 대한민국 기업들은 미국 빅테크가 만들어 놓은 안드로이드 생태계에 적응한 다음, 하드웨어 모델을 발 빠르게 만들어 내는 ‘패스트 팔로워’ 역할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 기업들은 반세기 만에 글로벌 자동차 반열에 오르고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체급으로 성장했습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하드웨어에 엔비디아의 두뇌를 얹어 엔비디아의 로봇을 만들어 주는 주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드웨어와 플랫폼, 그리고 운영체제까지 통합하여 전 세계 제조 공장과 빌딩에 표준으로 수출하는 애플 방식의 생태계 독점을 꿈꾸어야 합니다.

현대차의 무인 공장 시스템이나 삼성의 자율 제조 라인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글로벌 AI 플랫폼 표준이 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수장들의 상상력이 엔비디아라는 거인의 품 안에서 결코 ‘짜치지’ 않고, 더 거대하고 주도적인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빅테크의 위대한 도약을 기대한다

시장의 리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구조는 단기적으로 안전할지언정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엔비디아가 전 세계 시가총액 최상위권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뛰어난 칩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전 세계 인공지능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생태계를 벗어날 수 없도록 ‘플랫폼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기업들에게 지금 찾아온 엔비디아의 파트너십 제안은 분명 거대한 기회입니다. 그러나 이 기회는 우리가 그의 생태계에 안주하기 위한 종착지가 아니라, 그들의 시스템을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우리의 독자적 생태계를 출범시키기 위한 ‘최적의 발판으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대만은 이미 엔비디아라는 단 하나의 주머니에 국가의 운명을 올인(All-in)하여 성장의 한계점에 다다랐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은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로봇, 그리고 자국어 중심의 플랫폼을 모두 보유한 세계 유일의 균형 잡힌 산업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대기업 수장들은 스스로가 글로벌 시장의 거대한 앵커임을 자각하고, 독자적인 생태계 구축을 위한 대담한 연대와 투자를 단행해야 합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거인이 되어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대한민국 빅테크의 위대한 상상력과 도약을 기대해 봅니다.

거인의 우산은 지금 당장 비를 피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스스로 우산을 만드는 자만이 맑은 날의 풍경을 자신의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대기업 수장들의 상상력이 안에 갇히지 않고, 그 주체로 도약하기를 기대합니다. 그 도약의 임계점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2:01 AI시대, 한국이 엔비디아의 부품 공장에서 벗어나려면?
글쓴이

조선규 칼럼니스트

조선규는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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