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소리’ 러시아 미술에 대하여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 예술 이야기] 포연에 가리워진 러시아 미술의 진면목 1천년 역사에 빛나는 ‘러시아 예술의 혁명’ 레핀에서 칸딘스키와 사걀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보편의 잣대로 잴 수 없다
러시아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니
오직 가슴으로만 믿을 뿐이다.
-표도르 튜체프(러시아 서정시인, 1803~1873)
러시아 시인 튜체프의 말처럼 러시아는 단숨에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다. 그 곳에서 필자는 30살부터 20년을 넘게 살았고 지금도 러시아와 일을 한다. 인생의 동맥은 대한민국과 러시아이고, 굵은 핏줄을 둘러싼 정맥은 러시아 예술이다. 한국에서 성장하여 생명을 얻었다면, 러시아에서 그림을 만나 예술과 소통하며 사람 언어를 습득했다할 수 있다. 그 러시아가 지금 전범국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민간 희생자를 내고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역사라지만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현실 앞에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러시아 그림 이야기를 하려한다.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라도 언젠가 되돌아올 평화와 울림을 기대하며 얼어붙은 나라, 러시아의 속살을 보여주려 한다.
반만년 한국에 비하면 짧은 역사지만
러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전세계 1/8 정도 크기의 광활한 땅을 가진 거대한 대륙 국가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이 함께 공존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에는 유럽과 러시아, 두 개가 함께 있다”라고 언급했듯이 러시아 전통을 지키려는 슬라브주의와 신문물을 수용하는 서구주의가 엎치락 뒤치락하며 러시아 정신 세계를 이어왔다. 그래서 우리가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광활한 영토와 달리 러시아 역사는 1천년에 지나지 않는다.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에 비하면 유년기를 막 지난 핏덩이에 불과한 나이다. 그 천년 동안에도 수없이 약탈당하고 초토화되고 지배를 받았다. ‘태평성대’라 불릴 만한 시절이 러시아 역사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15세기 약 240년 몽골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전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19세기초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국토가 유린당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제정 러시아의 붕괴와 볼셰비키 혁명, 두차례의 세계 대전을 견뎌냈으며, 영원할 거 같던 사회주의를 무너뜨린 급격한 개혁개방이 다시한번 러시아를 휘청이게 했다. 이처럼 러시아인들은 그 격변의 시간을 은근과 끈기로 버티고 살아온 민족이다.
러시아의 놀라운 ‘예술적 혁명성’
그럼에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가졌고 차이코프스키와 라흐마니노프가 노래하는 나라다. 세계 현대 추상의 밑바탕이 된 샤갈, 말레비치, 칸딘스키의 회화가 숨쉬고 세계 최고의 공연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 곳곳에서 클래식 연주회, 발레,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곳이다. 짧은 역사의 러시아가 19, 20세기를 거쳐 만들어낸 놀라운 예술적 성과를 세계는 ‘제2의 르네상스’라 칭송했으며 그들의 예술적 혁명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러시아 국토 전체가 역사를 담고 있는 하나의 거대 박물관으로, 어디를 가든 보존 되고 기록되어 있다. 국민들은 산소를 마시듯 거대 문화 유산을 통해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호흡하며 미래를 꿈꾼다.
그 예술의 중심에 러시아 미술이 있다. 그림이 1천년 러시아 역사의 눈과 귀가 되어 삶을 이야기하고 시대를 대변한다. ‘삶에 대한 진실’을 표현하려 러시아 화가들은 시대의 목소리에 색채를 입혔고, 그들의 진솔한 언어는 강한 울림이 되어 모두를 그림 앞에서 고개 끄덕이게 만들었다.
러시아 미술, 귀족에게서 민중으로
19세기 이동파를 중심으로 이뤄진 러시아 리얼리즘 회화는 귀족에게만 국한되어 있던 예술 향유 대상을 민중에까지 확대했다. 그림은 목소리가 되고 서사가 되어 시대를 보여준다. ‘그림이 삶이고 삶이 그림인 시대’ 19세기에 꽃피운 러시아 풍속화는 세계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술 혁명’이라 말할 수 있다.(※ 이동파는 1864년 이반 크람스코이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19세기 러시아 미술을 대표하는 화파다. 러시아 현실을 고발하는 사실주의적 화풍을 기치로 내걸고 1871년부터 러시아 전역을 다니며 순회 전시회를 펼친다. 예술의 현실 참여를 중요시했고 1923년에 해체된다.-필자 주)

‘현실’ 너머 ‘상상’으로...러시아 추상화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초 활동한 러시아 상징주의와 예술세계파 화가들은 예술이 예술을 위해 나아가야 할 순수 언어를 창조해내며 러시아 미술이 현실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그림이 단순히 시대상을 담는 이야기꾼으로서가 아니라 진정 지향해야 할 미적 기준을 정확히 제시하며 회화의 순수성을 극대화시켰다. 그들의 다양한 창작 활동은 무대 미술에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되고 러시아 공연 예술이 지금의 수준을 가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세기 불꽃 튀는 러시아 회화의 큰 울림은 20세기 들어 ‘러시아 아방가르드’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가 생겨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재현에 몰입하던 미술 언어는 지금까지의 모든 표현을 검은 사각형안에 가둬버리며 추상 세계로 거듭난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현대 미니멀리즘의 토대가 되고, 칸딘스키는 색채 추상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으며, 샤갈은 상상의 재현을 화폭에 이끌어 내며 20세기 현대 미술의 새로운 역사가 됐다

이런 일련의 러시아 회화 역사가 현대 모더니즘 미술의 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치 않다. 러시아 미술은 세계미술사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러시아 혁명 후 소비에트 시대라는 긴 터널을 지나면서 러시아 미술은 세계 미술의 흐름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예술성이 폄하되고 순수성이 의심 당했던 소련 미술이 있었다. 당성, 계급성, 인민성을 찬양해야 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은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절대 열면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로 인식되었던 것 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그 상자의 단단한 빗장을 조금씩 열어 보려 한다. 서방이 말하는 러시아가 아니라, 러시아 스스로가 말하는 러시아 미술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예술의 힘을 <더 칼럼니스트>를 통해 들려드리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소설 <백치>에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라고 말한다. 그 아름다움은 가슴을 열고 깊이 응시할 때 우리에게 기꺼이 다가와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거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러시아 미술을 응시하면, 최고의 아름다움이 선이 되어 여러분 마음을 두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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