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풍속화, 민중 속으로...민중의 아픔 속으로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 예술 이야기] 19세기 러 지식인들, 조국과 민중 구원 자각 민중의 편에서 언어를 대변...’풍속화’ 탄생 불합리 부조리한 러 귀족사회 신랄히 고발 러 ‘이동파’의 바탕...’러시아 예술혁명’ 예고

바실리 페로프(1833-1882),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행(1885년), 캔버스에 유채, 45.3 x 57㎝,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바실리 페로프(1833-1882),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행(1885년), 캔버스에 유채, 45.3 x 57㎝,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고통받는 민중 편이 된 러시아 화가들

그림이 시대의 목소리가 되고 사람과 삶을 이야기 한다. 19세기의 러시아 화가들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그림은 가치없다’고 단언하고, 민중의 눈과 귀가 되어 참혹한 시대상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았다.

러시아는 세계 최초로 민중혁명이 성공한 나라다. 조용히 숨죽여 있다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힘을 가진 민족이다. 수많은 원동력이 러시아를 혁명으로 이끌었겠지만 19세기 러시아 풍속화는 민중의 언어로서 문학과 함께 ‘시대정신’이 됐다. 특히 19세기에 폭발적으로 발달한 리얼리즘 풍속화는 세계 어느 미술사에도 찾아볼 수 없는 러시아만의 독특한 ‘예술 혁명’으로 자리잡았다.

일리야 레핀(1844-1930),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년, 캔버스에 유채, 160.5 × 167.5㎝ ,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혁명가 가족의 삶을 그린 러시아 대표 풍속화다.
일리야 레핀(1844-1930),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년, 캔버스에 유채, 160.5 × 167.5㎝ ,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혁명가 가족의 삶을 그린 러시아 대표 풍속화다.

러시아 회화의 역사는 서유럽에 비해 짧다. 175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러시아 예술 아카데미가 설립되고부터 본격적으로 화가 양성 작업이 이뤄진다. 그 이전 러시아 그림은 종교화인 ‘이콘화’가 전부였고 18세기에도 귀족들을 위한 초상화나 아카데믹한 역사화가 대부분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자 그 러시아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을 겪으며 러시아인들은 가슴 깊이 조국애를 싹 틔우고 민족 대단결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 염원은 변화하는 유럽을 목격하고 돌아온 전쟁 영웅들의 근대화 열망과 맞물려 1825년 러시아 최초의 근대 혁명인 ‘데카브리스 반란’으로 표출됐다. 거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러시아 지식인들은 사회적 소명을 고민하고 시대를 비판하는 ‘인텔리겐챠’로서 조국 러시아와 민중을 구원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제2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9세기 러시아 문화혁명도 바로 이 시대 러시아 인텔리겐챠가 이룩해낸 역사적 산물이었다.

러시아 풍속화의 시작, 베네치아노프

그런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러시아 미술계 또한 아카데믹한 화풍에서 탈피하고 ‘리얼리즘 풍속화’라는 독특한 회화 언어를 탄생시켰다. 그 시작을 ‘러시아 풍속화의 아버지’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1780~1847)가 열었다. 귀족 출신이면서도 러시아 최초로 농촌 세계를 형상화한 작가로, 당시 천대 받는 농민의 삶에도 인간 존엄의 가치가 있음을 화폭을 통해 보여준다. 귀족에게로만 향하던 예술가의 시선을 민중에게 향하도록 만든 최초의 풍속화가였다.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1780-1847), 봄 들판(1820년대), 캔버스에 유채, 51.2 х 65.5㎝,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알렉세이 베네치아노프(1780-1847), 봄 들판(1820년대), 캔버스에 유채, 51.2 х 65.5㎝,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대표작 <봄 들판>을 보면 농민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을 바로 읽을 수 있다. 러시아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 입은 여인이 소풍이라도 가듯 사뿐히 밭을 갈러 간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아이는 잔디밭에 앉아 즐겁게 놀고 있고 삶을 축복이라도 하듯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 따스한 햇살이 세상을 수놓고 있다. 다소 억지같은 설정이지만 농민 노동의 성스러움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당시 핍박 받는 러시아 민중들의 고단한 삶이 어떻게 축복받아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듯한 그림이다.

특히 베네치아노프는 러시아 대표 회화학교인 예술 아카데미가 농민 출신 학생들을 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쫓아낸 것에 반발해 자신의 영지인 트베리에 러시아 민중을 위한 미술학교를 최초로 설립했다. 훗날 이 학교 출신 화가들은 ‘베네치아노프 화파’를 형성하며 러시아 풍속화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그렇게 베네치아노프에 의해 발아된 러시아 리얼리즘 풍속화는 러시아 회화의 유머와 해학 코드인 ‘풍자적 풍속화’를 거쳐 ‘비판적 리얼리즘 풍속화’라는 열매를 잉태해 내고, 풍속화 전반에 흐르던 리얼리즘의 미학은 20세기 소비에트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의 밑거름으로 연결된다.

러시아 회화의 유머 코드 ‘풍자적 풍속화’

러시아 풍자적 풍속화는 러시아의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독특한 유머 코드로 꼭집어 보여준다. 파벨 페도토프와 바실리 푸키레프가 대표적인 작가다. 가볍게 들여다보다 문득 느껴지는 부조리에 가슴 묵직한 쓴웃음으로 답하게 되는 그림이 바로 풍자적 풍속화다.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불평등한 결혼식(1862년), 캔버스에 유채, 173 х 136.5㎝,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불평등한 결혼식(1862년), 캔버스에 유채, 173 х 136.5㎝,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푸키레프의 <불평등한 결혼식>은 인륜지대사인 결혼조차도 돈에 의해 사고 파는 19세기의 말도 안되는 현실을 풍자한 그림이다. 할아버지와 손녀 쯤이면 어울릴 것 같은 두 사람이 결혼식의 주인공이다. 한떨기 꽃 같은 어린 소녀는 소작세를 갚지 못해 팔려온 듯하고 밤새 울었는지 퉁퉁 부은 붉은 눈이 현실의 아픔을 그대로 묘사한다. 이 둘의 결혼을 허겁지겁 서두르는 사제와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묵인하고 불합리를 재력으로 포장하는 러시아 귀족들의 심술궂은 민낯이 그림 전체에 그대로 배어 있다. 특히 신랑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늙은 하객 4인방의 심술 맞은 표정이 이 그림에서 압권이다. 늘그막에 횡재한 듯한 친구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이다. 그들의 뒤틀린 시선이 그림 전체를 건조하게 만들고 얼굴에 진 주름만큼이나 겹겹이 한숨짓게 만드는 작품이다.

파벨 페도토프(1815-1852), 신출내기 사교계 남자(1846년), 캔버스에 유채, 48.5x42.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파벨 페도토프(1815-1852), 신출내기 사교계 남자(1846년), 캔버스에 유채, 48.5x42.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당시 러시아의 부패가 어디 결혼뿐이었을까?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방탕함과 게으름은 시대를 좀 먹는 심각한 사회악이었다. 돈이 없는 귀족은 사교계에 진출해 부자 여인을 꼬셔 한밑천 잡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였다. 그림속 남자도 집세조차 못 내면서 흥청거리고만 사는지 하숙집 주인은 값나가는 물건을 압수하려 한다. 머리에 종이 파마를 하고 곧 있을 파티 준비에 분주한 남자는 ‘조금만 기다려 주면 한번에 다 갚아 버릴텐데’하며 입을 삐죽이 내민 채 귀족 징표인 훈장을 가리키며 허세를 부리고 있다. 현실을 망각하고 유희에만 찌들어 사는 러시아 귀족들의 허영을 날카롭게 보여준 작품이다.

‘비판적 리얼리즘’ 풍속화의 등장...바실리 페로프

이렇게 유머와 풍자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도 잠시, 19세기 중엽 러시아는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농노제의 폐해와 황실 귀족의 타락으로 나라 전체가 신음하는 현실 속에, 민중의 눈과 귀가 되어 시대를 대변하고자 한 러시아 리얼리즘 화가들은 더 이상 움츠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강력한 회화 언어로 세상의 불합리를 고발하고 부조리를 파헤치려 노력한다. 비판적 리얼리즘 풍속화는 이런 시대 상황에서 등장하게 된다. 그 선두에 바실리 페로프가 있다.

바실리 페로프(1833-1882), 마을의 부활절 행진(1861년), 캔버스에 유채, 71.5 x 89㎝,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바실리 페로프(1833-1882), 마을의 부활절 행진(1861년), 캔버스에 유채, 71.5 x 89㎝,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비판적 리얼리즘 풍경화의 최고봉 바실리 페로프는 등장부터가 심상치 않은 작가다. 러시아 예술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던 페로프는 현실을 돌보고 민중을 구원해야 할 그리스정교 사제들이 술에 취해 나뒹굴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마을의 부활절 행진>으로 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으며 외국 유학의 특전까지 얻어냈다. 하지만 성직자들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다. 후일 이 작품은 기득권을 비판한 최초의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러시아 비판적 리얼리즘 풍속화의 효시가 된다.

2차원의 화폭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고 민중에게 힘이 되고자 한 바실리 페로프의 작품을 하나씩 들여다 보면, ‘그래, 이러니 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겠구나’를 조용히 되뇌이게 하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그림들이다.

바실리 페로프(1833~1882), 모스크바 근교 므티시에서 차 마시는 수도사(1862년), 캔버스에 유채, 43.5 x 47.3㎝,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바실리 페로프(1833~1882), 모스크바 근교 므티시에서 차 마시는 수도사(1862년), 캔버스에 유채, 43.5 x 47.3㎝,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기름기 철철 흐르는 썩은 권력과 오늘 하루의 끼니를 위한 구걸만이 해결책인 농민들. 사제 옆에 헌금보따리가 삐죽이 열려있고 한 잔을 걸친 듯한 사제는 애써 진실을 외면하며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그의 냄새나는 부조리를 알면서도 현재의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해 머리 굽혀야 하는 메마른 농민이 너무도 가엽게 그려져 있다.

바실리 페로프(1833~1882), 트로이카(1866년), 캔버스에 유채, 123.5 x 167.5㎝,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바실리 페로프(1833~1882), 트로이카(1866년), 캔버스에 유채, 123.5 x 167.5㎝,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던 1800년대 러시아다. 러시아는 1861년 농노 해방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농노들에게 신분만 해방하고 그들이 먹고 살 땅을 나눠 주지 않은 허울 뿐인 해방이었다. 스스로 삶을 영위해 나가지 못한 농노들은 어린아이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내보내 하루 끼니라도 해결해야 했다.

말이 끌어야 할 수레를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들이 끌고 있다. 아직도 이른 새벽 같아 보이며 물통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면 날씨 또한 참으로 혹독하다. 아이들이 이런 노동 끝에 빵 한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핏기 없는 얼굴에 피곤에 찌든 아이들, 삶에 지쳐 보이는 아이들에게 이미 세상은 고통 그 자체다.

사람이 태어나 하는 마지막 여행은 무엇일까? 관에 실려 자신이 묻힐 묘지로 가는 여정이 아닐까? 그림 속에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초라한 나무관의 주인공은 바로 이집 가장인 거 같다. 관을 감싸고 있는 딸아이의 얼굴은 울다 지쳐 멍해 보이고 아빠의 외투를 걸친 듯한 소년도 이미 병색이 완연하다. 고개 숙여 말을 몰고 있는 엄마의 어깨는 절망으로 꺼져버릴 듯 축 처져 있고 깡마른 말의 갈비뼈는 이들의 궁핍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혹독한 겨울 날씨만큼이나 고통스러워 보이는 러시아 민중들의 삶 그대로다.

바실리 페로프(1833-1882), 익사한 여인(1867년), 캔버스에 유채, 68 х 106㎝,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바실리 페로프(1833-1882), 익사한 여인(1867년), 캔버스에 유채, 68 х 106㎝,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또 누군가가 죽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지 않는 것을 보니 자주 있는 일인가 보다. 시체를 건져 놓고 노인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담배를 피워 무는 것 같다. “어휴, 이놈의 세상, 또 죽었구나.” 피폐한 삶을 이기지 못한 농민들에게 죽음만이 선택이었던 19세기 중반 러시아다.

러시아 풍속화가들에게 2차원의 화폭은 세상의 진실을 담는 그릇이었다. 그들의 붓끝에서 배어나는 색채는 삶과 사람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민족을 초월한 예술은 없다’라는 러시아 대문호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의 말처럼, 러시아 풍속화가들은 민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 시대를 대변했다. 그 진솔한 목소리는 1870년대 등장할 러시아 이동파로 스며들어 러시아 미술혁명의 에너지가 되고 러시아 모더니즘 회화의 뿌리가 된다.

글쓴이

김희은 갤러리 까르찌나 관장

김희은은 20년 가까이 아트 딜러,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그림 전문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중이다. 일반인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전하는 도슨트 활동도 열심이다. 러시아 트레챠코프 국립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 전문 도슨트다. 저서로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 채널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하며, 러시아 예술의 한국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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