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소리의 위대함
[엄마와 함께 플라뇌르] 살아서 자신의 칭송을 원하는 반면 누구는 잎새 이는 밤에도 부끄러워하는데 마티스처럼 용감했던 이를 인정하는 사회를
- *플라뇌르(flanuer): 불어. 형용사로는 ‘한가롭게 거니는’, 명사로는 ‘산책자’란 뜻입니다. 이 칼럼은 ’엄마의 말‘과 ’엄마의 그림 공부‘를 딸이 정리하는 방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싱거운 소리가 힘이 있어
“마음 놓고 싱거운 소리를 할 사람이 있는 것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엄청 괜찮은 일이야. 인생에서. 싱거운 소리가 힘이 있어.” 엄마의 말이 맞았다. 살수록 알게 되었다. 하등 이득 될 일 없고 외려 손해 보기 십상인 싱거운 말, 그런 말을 주고받는 시간이 생에서 꽤 빛나는 순간이며 사는 일에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시간이 알려주기 전에, 아니 내가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엄마가 엄마의 말로 알려주었다.
우리를 깔깔 웃게 하는 행복하게 하는 말 중 팔, 구 할은 사실상 싱거운 소리다. 교양을 강조한 말은 사람을 지루하게 하고 각각의 성취로만 가득한 대화는 관계의 긴장도만 높이며 내면의 불안을 북돋운다. 싱거운 소리를 주고받는 것은 우리가 지닌 애정표현 중 참으로 가볍고 다정한 방법이다. 나를 웃겨준 사람, 내가 웃긴 그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아끼는 소중한 이가 된다. 싱거운 소리는 힘이 세고 아름다워 나와 주변 이들을 행복하게 한다.
흘려버리기엔 아까워 엄마의 싱거운 말 한두 가지를 우선 적어둔다. 날이 더워지는 계절, 엄마를 통해 긴 이름의 오래전 아이스께끼를 알게 되었다. “을지로6가 계림극장 옆 오스카(혹은 오스땅) 진짜 석빙고 아이스께끼이이이-”, “계림극장이라고 진짜 있었어”하며 그 빙과 장수 아저씨 흉내를 내는 엄마를 보며 많이 웃었다. 그 웃음 사이로 언젠가 실재했을 가난한 외관과 시설이었겠으나 ‘명화의 전당’이었을 계림극장과 가난한 사카린 물을 얼려놓은 것이었겠으나 달콤했을 ‘석빙고’ 아이스께끼, 어려운 삶 속에서도 똘똘했을 어린 여학생이었던 엄마를 그려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또 하나 내게는 보석 같은 싱거웠던 말은 노래다. 엄마의 어릴 적 고무줄놀이 노래. 지난겨울, 나 어릴 적엔 이런 노래도 부르고 놀았다며 불러준 그 노래의 가사는 놀라웠다. 당시에 살아있던 사람을 대놓고 칭송하다니. 그것도 그거지만 그 가사를 여태 다 외우다니, 무려 70여 년 전이다. “우리나라 대한나라 독립을 위하여 여든 평생 한결같이 몸 바쳐오신 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내오리다.”
정식으로 노래를 마친 엄마는 말을 이었다. “사람은 이런 존재다. 둘도 없는 권세 위에 앉아있는 누구는 ‘나 살았을 때 좀 더 나를 훌륭하다고 해라’하며 애들한테 이런 노래를 부르게 하고 누구는 그저 약한 새 한 마리 같은 시를 손에 쥐고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고. 사람 거기서 거기인 것도 맞지만 천지 차이인 것도 맞아.”
오래전부터 글로 정리해두어야지 했다. 치열했던 엄마의 공부와 유쾌하나 유익했던 엄마의 말들. 엄마는 서양미술사를 혼자 공부하시다 주변 분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고 그것은 엄마의 새로운 직업이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생의 후반전을 연 셈이었다. 함께 공부하셨던 분들도 엄마의 공부가 아깝다, 엄마의 말들은 재미있다,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정리해두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으셨고 내 생각도 그랬다.
생각에도 운신의 폭이 있다
엄마는 공부의 가장 좋은 점, 뭐가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뭐가 되면 더 좋겠지만) 그러함에도 계속 무언가를 읽고 쓰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로 ‘생각에 있어 운신의 폭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생각이 깊다, 넓다, 훌륭하다’의 의미가 아니었다. 공부로 훈련을 하면 생각이 운동성, 유연한 역동성을 지닐 수 있다는 의미였다. 벽을 치면 천장이 우는 세상사, 그러니 최대한 해보자는 것이다. 이쪽에서도 생각해보고 저쪽에서도 생각해보고 시공간이 만들어내는 함수 위에서 나의 좌표를 최대한 여기저기 이동시켜보는 것. 그것이 배움의 재미, 특히 역사, 미술사의 재미였다는 것이 엄마의 소감이었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의 제한적인 인생, 그 운신의 폭도 커지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기대와 함께.
예를 들어 마티스의 그림을 한번 보자. 상상해가며 뇌를 흔들어 움직여가며. 1869년에 태어난 작가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이다. 1862년에 고종이 즉위했고 1868년에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있었으니까 참작하여 상상해보면 우리가 실감하는 것보다 꽤 오래전 인물일 것이다. 그렇게 오래전에 태어난 그 아이는 1953년 ‘The snail(달팽이)’라는 기념비적으로 위대하고 단순한 작품을 남긴다. 2023년 지금 어느 도시의 건물, 어디 박물관에서 보아도 좋을 세련되고 힘이 있는 평면 작품이고 유명한 작업이다. 말년의 마티스의 주요 작업인 색종이 콜라주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으로 마티스는 건강상의 이유로 붓 대신 가위를 들었고 1940년대부터 계속해 왔던 방식이다. 기존의 콜라주와는 달라서 종이를 과슈로 평평하게 칠한 다음 그 종이를 오려내어 매우 예민한 선으로 재단된 색의 덩어리 평면들을 과감히 배치하는 형식으로 그 선과 색의 대립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되는 작업이다.
자, 여기까지는 기존의 사실들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사고의 역동성을 키워보자. 마티스는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에 대해 ‘세잔은 우리 모두의 스승’이라 했다. 세잔이 누구인가. 피카소와 마티스 양대 거장이 대표하는 현대회화 두 개의 커다란 물줄기, 입체파와 야수파의 시원이라 평가받는 작가다. 입체파와 야수파, 기본적인 형태와 색으로 나뉘는 그 물줄기의 시작이었다.

다시 마티스의 작업으로 돌아가 본다. 노년의 마티스는 모두의 스승이자 자신의 작업에 큰 화두를 던진 세잔느에게 회화에 대한 최종의 답을 한 것이 아닐까. 마티스의 과슈를 칠한 색종이를 가위로 자른 콜라주 작업, 그 작품들은 거대한 색의 기본적인 형태가 되어 예민한 선으로 만난다. 형태와 색, 입체파와 야수파의 대표적인 특징이 마티스만의 회화적 방식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치 세잔느가 자신의 작업을 통해 형태와 색, 현대회화의 두 물줄기를 하나로 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마티스의 ‘The snail(달팽이)’라는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마티스 본인이 ‘데꾸빠주’라고 명명한 방식) 이는 본인 작업의 시작이었던 세잔느로 돌아가는 길, 그 방식으로 찾아낸 회화적 대답이려니 짐짓 짐작해보며 나름 나만의 공부하는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고종 즉위 7년 후, 메이지유신 시작 1년 뒤에 태어난 사람, 마티스가 찾아낸 현대회화의 답을 고요히 바라보다 2023년 내 생각의 가닥을 펼쳐 보이는 과정, 그것이 공부의 기쁨이자 의미라 믿는다. 그것은 언뜻 누구누구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 사조의 명칭보다는 훨씬 사소하고 싱거운 생각이라 할 수 있으나 우리의 내면을 유연하게, 사고를 역동적으로 만들고 이렇게 생각의 나래가 펼치는 이러한 순간, 공부가 즐겁다, 인간으로 태어나 행복하다 그리 믿게 된다고, 그래서 우리는 뭐가 되든 안 되든 계속 가늘고 길게라도 공부하는 것이라는 엄마의 말을 조용히 적어두는 것이다.
신뢰가 쌓이는 사회를 위하여
이십 세기의 선두에 서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현대회화를 남기긴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옛날 사람인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 그의 탁월하게 아름답게 빛나는 작업을 보며 또 하나 생각을 한다. 진정한 의미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 스승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티스의 직접적인 스승은 ‘레콜 데 보자르(L‘Ecole des Beaux-Arts)’의 ‘구스타브 모로 (Gustave Moreau. 1826~1898)’였다. 모로는 신화나 성서의 내용을 소재로 삼아 환상적인 화풍에 상징적 의미를 가득 담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작품으로 초현실주의 및 상징주의의 선두가 되었고 제자들에게 자유로운 교육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모로는 마티스의 작업을 보며 마티스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회화를 단순화시켜나갈 것이라는 예견하였고 동시에 선생인 자신의 말은 잊고 마티스 스스로 더 중요하다 여기는 가치들을 좇아 나가라 조언했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레콜 데 보자르’는 권위 있는 보수적인 학교였고 마티스는 고전주의 작가들의 작품으로 교육받았다.

모로의 제자였던 마티스가 세잔이 던져준 형태와 색 두 가지 화두 중 하나, 색을 붙잡고 일생을 색채의 향연이었던 자유로운 작업 끝에 화업과 생을 마무리할 무렵엔 세잔에게, 회화의 세계에 답이라도 하듯 형태와 색이 예리하게 만나는 콜라주 작업을 해내고야 만 것이다.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스승과 유사해지는 것, 흠모했던 작가나 작품과 가까운 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 예술가가 진정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사랑했고 공부했던 것, 그 힘으로 인해 전혀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다. 위험하더라도 그 길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가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에 나중에 특별한 혜택을 받을 자격을 부여받아야 한다. 오늘날 모로보다는 마티스를 더 많은 이들이 알고 사랑하지 않는가. 모로가 덜 하고 마티스가 더 낫다 이야기가 아니다. 각각 고유의 가치에도 더 용감했을 자들을 인정하는 사회의 가치를 소환해보자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무릅쓴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위해 더 나은 자리가 예비 되는 사회, 나를 칭송하라 노래를 부르게 한 권력자가 아닌 위대한 시 한 편을 쥐고 우리를 대신해 존재의 부끄러움을 슬퍼했던 시인을 높이 두는 세상, 그러한 선순환이 원활히 잘 되는 사회가 사회적 신뢰 또한 훨씬 더 높으리라 확신한다. 예술로 대표되는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 작은 이들의 소소하며 싱거운 말들과 웃음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자존감을 튼튼히 하고 ‘사람으로 태어나길 잘 했다’라는 드문 시간을 연출하여 인류애를 증진하는데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이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위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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