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트레챠코프 미술관의 ‘그림 앨범’②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 예술 이야기] 도탄에 빠진 러시아 민중들을 위로한 그림 ‘타라카노바 공주의 죽음’은 귀족정치 비판 전쟁 비판한 그림도...전쟁중인 조국에 경종 러시아 2대화가 레핀, 수리코프 그림도

바실리 베레샤긴(1842~1904), 전쟁 예찬, 1872년, 캔버스에 유채, 127х197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바실리 베레샤긴(1842~1904), 전쟁 예찬, 1872년, 캔버스에 유채, 127х197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①편에 이어서

나의 고향은/ 저 산 넘어 또 저 구름 밖/ 아라사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곳 - 김기림의 <향수> 중에서

우리에게 러시아는 예전에도, 지금도 김기림의 시구처럼 소문으로만 듣는 아라사(俄羅斯· 한자로 음역한 러시아)의 나라다. 동토의 땅 답게 가깝고도 먼 나라로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런 러시아를 짧은 시간에 알고 싶다면 트레차코프 미술관 관람을 권하고 싶다. 시대별로 잘 전시되어 있는 러시아 그림을 둘러보면 1천년 러시아 역사 상황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러시아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곳이 트레차코프 미술관이다. 가치 높은 러시아만의 수작들이 관람 내내 가슴 찌릿한 예술적 감동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모스크바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1856년 개관된 러시아 최초의 미술관으로, 62개의 전시홀에 순수 러시아 명작 18만 점 정도가 소장 전시되어 있다. 사실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1892년에 공식 개관하지만 설립자 파벨 트레차코프가 처음으로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을 구입한 1856년을 공식 개관일로 잡고 있다.

이 미술관은 러시아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의 러시아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어 전세계를 통틀어 자국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관이며, 샤갈, 말레비치 같은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작품에서 현대까지의 그림들은 별도로 트레차코프 미술관 신관(크림스키 발)에 따로 소장 전시되어 있다. 이 트레차코프 미술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함께 러시아 2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18만점이 넘는 그림을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의 가치를 칼럼 한번으로 다 소개할 수 없지만 대표작 몇 점을 들여다면서 맛보기에 만족하기로 하자. 거듭 얘기하지만, 이 글에서 언급하는 트레차코프 미술관의 매력은 ‘빙산의 일각’이다.

<타라카노바 공주의 죽음>

콘스탄틴 플라비츠키(1830~1866), 타라카노바 공주의 죽음, 1864년, 캔버스에 유채, 245 х 187.5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콘스탄틴 플라비츠키(1830~1866), 타라카노바 공주의 죽음, 1864년, 캔버스에 유채, 245 х 187.5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트레차코프 미술관 소장품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꼽히는 그림이다. 우선 그림 속 여인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혹하고 그러면서도 절망으로 절규하듯 흘러내리는 그녀의 비장미에 다시 한번 눈길이 가는 그림이다.

깨진 창문 사이로 물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여인은 곧 물에 잠길 것이다. 그림 속 여인은 누구일까? 예카테리나 2세와의 권력 싸움에서 참패하고 지하 감옥에 갇힌 ‘타라카노바 공주’다. 그녀는 엘리자베타 여제(1709-1762, 표트르 대제의 차녀)가 혼외 정사로 낳은 딸이다. 여제가 죽고 표트르 3세가 등극하지만 독일 출신의 아내 예카테리나 2세에 의해 독살되고 그녀에게 왕권이 넘어간다. 왕권을 찬탈한 예까네리나 2세는 혹시나 있을 권력 투쟁을 막기 위해 실질적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타라카노바를 모스크바의 이바노프 수도원에 유폐시키는데, 공주는 평생을 수도원에 갇혀 살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으로 고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예카테리나 2세 때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많은 민중 봉기가 일어난 시기로, 철저한 귀족 중심 정치의 폐해로 민중들이 고통 속에 신음할 때다.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은 수도원에 갇혀 있던 타라카노바 공주이며 수도원에서 탈출했다고 말한다. 도탄에 빠진 러시아를 구원하겠노라 천명하며 민중 봉기를 일으키고 예카테리나 2세에게 정면 도전하지만 참패한다. 시대가 만들어낸 타라카노바 공주는 그림에서처럼 지하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것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가짜 타라카노바의 난’이다

러시아 풍속화가 플라비츠키는 18세기 인물 타라카노바 공주를 19세기에 다시 소환했다. 100여 년 전 러시아의 참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민중의 염원이 가짜 타라카노바를 만들어 냈듯, 19세기 더욱 참혹해진 현실에서 구원받고 싶어하는 작가의 심정이 타라카노바를 불러낸 것이다.

그림은 러시아의 현실이 타라카노바처럼 곧 수장될 절체절명의 위기속에 신음하고 있지만 결국은 견뎌낼 것이며 어떤 위기가 닥쳐도 러시아만의 품위를 잃지 않을 것임을 공주의 우아한 기품에 빗대어 보여주려 했다. 사실 그림 속 타라카노바는 죽음을 앞둔 사람 치고는 묘하게 정돈되어 있고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플라비츠키는 그림 속 공주의 품위가 곧 러시아의 미래라 말하려 했던 것이다.

<사냥꾼의 잡담>

바실리 페로프(1833~1882), 사냥꾼의 잡담, 1871년, 캔버스에 유채, 119X183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바실리 페로프(1833~1882), 사냥꾼의 잡담, 1871년, 캔버스에 유채, 119X183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세 사람의 사냥꾼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검은 옷의 남자가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젊었을 때 말야. 집채 만한 곰을 만났는데, 죽을 힘을 다해 방아쇠를 당겼지. 탕!”

자신의 무용담을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는 선배 앞에서 오늘 갓 들어온 갈색 옷의 신참은 담뱃불 당기는 것도 잊은 채 집중해서 듣고 있다. 그 둘의 진지한 대화를 쳐다보며 비스듬히 옆으로 누운 사내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마디 한다. “히히히, 저거 또 오늘 뻥치시네. 살살 좀 해.~”

삶이 힘들지라도 고통 속에 기쁨이, 눈물 속에 웃음이, 아픔 속에 치유가 있는 것이 인생이다. 고단함으로 삶이 점철되더라도 순간순간 스며드는 유머는 인생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비판적 리얼리즘의 최고봉 바실리 페로프는 <이동파>에서 가장 중심에서 활동한 작가이며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가를 그림을 통해 보여준 작가다. 트레차코프는 페로프의 그림을 빼놓지 않고 모두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지개>

이반 아이바조프스키(1817~1900), 무지개, 1873년, 캔버스에 유채, 102x132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이반 아이바조프스키(1817~1900), 무지개, 1873년, 캔버스에 유채, 102x132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폭풍우로 배가 난파를 당했다. 사람들은 조그만 배에 몸을 싣고 구사일생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이들은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살 수 있다. 휘몰아치는 폭우 속에 희미하게 무지개가 떠 있으니 곧 날씨는 잠잠해질 것이고, 무지개 사이로 갈매기가 날고 있으니 육지가 가까이 있음을 예견할 수 있다.

아이바조프스키의 <무지개>는 바로 ‘희망’을 상징한다. 단순히 폭풍우치는 바다의 거대한 위용을 보여주고자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절망과 좌절을 내일의 밑거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폭풍우치는 바다에 빗대어 표현하고, 우리 인생의 동아줄은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임을 폭우 속 무지개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평생동안 6천여 점의 바다를 그린 ‘해양 화가’ 아이바조프스키는 자연 환경의 극적 효과를 통해 철학적 메시지를 보여주는 화가로 유명했다. 그는 지금도 세계 미술 경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러시아 작가로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판매된 작품의 가격은 520만 달러(약 60억 원)에 달했다. 러시아 그림의 세계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가로수 길에서>

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1864~1920), 가로수 길에서, 1886년, 캔버스에 유채, 53 х 68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1864~1920), 가로수 길에서, 1886년, 캔버스에 유채, 53 х 68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다 비슷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다.

그렇다면 그림 속 부부가 만들어내는 쓸쓸한 느낌의 아우라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그림은 1861년 농노 해방 후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도시 빈민층의 헐벗고 힘든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루 종일 보드카에 절어 사는 듯한 젊은 남자는 열심히 일해야 하는 현실을 망각하고 술과 음악에 취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옆에는 시골에서 갓 올라온 듯한 그의 앳된 아내가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일하지 않고 돈도 벌지 못하는 남편 곁에서 근심 어린 얼굴로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곧 눈보라가 휘몰아칠 텐데, 아내의 마음엔 걱정이 폭풍우가 되어 내리친다.

남편의 대책 없는 낙관과 아내의 현실 비관이 더해져 발 밑에 구르는 가을 낙엽만큼이나 메마르고 우울한 느낌의 <가로수 길에서>다. 19세기 말엽 러시아의 어두운 모습을 화폭에 그대로 담고 있는 이 그림은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으로 새 틀을 다지기 전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꼬집은 장르화다.

<전쟁예찬>

“나는 화가로서 전력을 다하여 전쟁을 비난한다. 나의 비난이 효과적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림을 통해 직접적으로 주저없이 전쟁의 모순을 고발하겠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궁핍과 죽음을 가져다주는 침략 전쟁에 대해 화가 베레샤긴은 이렇게 얘기했다. 풀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들판에 높이 쌓아 올려진 두개골 탑은 침략자들의 승리를 상징한다. 하지만 육신을 잃어버리고 승리의 전유물로 전락한 해골만이 일상의 햇빛 잔치를 즐길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그림에서 해골 더미 위에 찬란히 뿌려지는 햇살은 밝고 환하다 못해 시리도록 푸르러 서글프다.

실제 이 그림을 보면 액자 틀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정복자에게’라는 헌사가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지 1백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러시아는 형제의 나라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다.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전쟁 놀이를 즐기는 수많은 지도자에게 베레샤긴의 <전쟁 예찬>이 ‘촌철살인’의 충고가 될 수는 없을까?

전쟁은 위대한 서사시나 영웅, 절대적 승리를 낳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한숨, 고통 그리고 또 다른 살인을 만들어 낸다. 이런 전쟁이 계속된다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고 자만이며 어리석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평화적으로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스트렐치 처형의 아침>

바실리 수리코프(1848~1916), 스트렐치 처형의 아침, 1881년, 캔버스에 유채, 223x383.5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바실리 수리코프(1848~1916), 스트렐치 처형의 아침, 1881년, 캔버스에 유채, 223x383.5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최고 역사 화가이며 일리야 레핀과 함께 러시아 2대 작가로 칭송 받는 바리실리 수리코프의 작품이다. 가장 러시아다운 그림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에는 ‘역사의 힘’을 상징하는 무리의 러시아 민중이 항상 등장한다.

위 그림의 배경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심장 ‘붉은 광장’이다. 표트르 대제가 강력한 개혁 정책을 펼치던 당시, 구조조정 당한 황제의 총병(스트렐치, 이반 뇌제 시절 창설된 사격부대)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반란은 순식간에 제압되고 2000명도 넘는 총병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그림은 바로 그 처형 장면이다.

러시아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 전반에 흐르는 서구주의와 슬라브주의의 대립을 이해해야 한다. 이 내용은 다시 한번 칼럼에서 상세히 짚어 보려 한다. <스트렐치 처형의 아침> 19세기 러시아 전반에 흐르던 이 대립 개념을 빗대어 그려진 그림이기도 하다. 러시아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슬라브주의 즉 보수주의를 대변하고, 오른편에 자리잡은 무리는 서구주의를 뜻한다. 둘은 복장에서부터 확연한 차이가 난다.

군복이 벗겨진 블라우스 차림의 남자를 시작으로 모두 단칼에 베어질 것이다. 말을 타고 오른편에 등장한 표트르 대제의 서슬 퍼런 표정을 보면 한 치의 재고도 없어 보인다. 대제의 시선은 빨간 두건을 쓰고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남자와 대각선으로 마주하며 견제한다. 하지만 스트렐치를 대표하는 이 남자의 손에 들린 촛불이 꺾인 것을 보니 대제의 한판승이 예측된다. 표트르 대제는 개혁의 고삐를 절대 늦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화가 수리코프는 여기서 정확히 짚어낸다. 세상이 급류에 휘말려 허우적대더라도 역사를 이끌어 갈 힘은 지금 쓰러져 통곡하는 저 수많은 민중들에게 있음을, 그들의 삶이 모여 러시아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려 했다. 대제를 비롯한 소수의 개혁자들이 시대를 이끌어 앞서가더라도 역사는 발을 내딛는 민중에게 달려있다. 그래야 역사가 시작된다.

단순히 위정자의 명령과 의도만으로는 역사를 만들 수 없다. 또한 지도자는 민중을 선택할 권리도 없다. 선택권은 오로지 민중만이 쥐고 있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은 힘껏 백성을 살피고 그들과 소통해야 함을 수리코프는 말하고 싶어했다.

화가는 나아가 표트르 대제의 급진적 개혁 앞에 힘들어 하는 백성의 모습이 황실의 ‘불통’ 정치로 신음하는 19세기 민중의 모습과 같음을 그림을 통해 보여 주려했다. 수리코프는 그렇게 독선적인 위정자를 조용히 꾸짖는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이 그림이 <이동파> 전시에 출품된 날,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나로드스키 혁명파(인민의 의지파)가 던진 폭탄에 암살된다(1881년 3월 1일).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을 법한 이 그림 또한 트레차코프는 주저없이 컬렉션하여 자신의 미술관에 전시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일리야 레핀(1844~1930),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년, 캔버스에 유채, 160.5 х 167.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일리야 레핀(1844~1930),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1884년, 캔버스에 유채, 160.5 х 167.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천만 가지 표정 예술의 마법사’ 일리야 레핀의 대표작이다. 레핀은 세계적인 화가다. 그림 속 모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압권이며, 그림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화사한 빛 표현은 세계 미술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천재적 표현이라고 평가 받는다.

가족을 남겨둔 채 시대의 구원을 위해 집을 떠났던 혁명가가, 그렇게 세상을 달리 했을 거라 생각했던 가장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런 등장에 가족들의 반응은 참 다양하다. 뒷모습 뿐이지만 아들의 등장에 엄마는 엉거주춤 일어나 환희한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온몸이 반가움에 들떠 보인다. 또 남편의 예기치 않은 귀환에 피아노를 치던 손을 멈추고 놀란 기색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은 무척이나 메말라 있다. 인지상정의 인간사다. 또, 목을 죽 빼고 아빠를 쳐다보는 아들은 그에 대한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는지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지만 오빠 옆에 앉아 있는 여자 아이는 기억 속에 아빠의 존재는 없는 듯 낯선 남자의 등장에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다.

여기서 핵심은 주인공인 혁명가의 표정이다. 여러분은 한번에 혁명가의 표정을 읽어 낼 수 있으신가? 설렘, 반가움, 낯설음, 긴장감, 미안함 등 수만가지 복잡한 심경의 그일 것이다.

화가 레핀은 우선 주인공 뒤로 창문을 내어 빛을 등지게 만들었다. 사진의 역광 효과처럼 그늘진 그의 얼굴에서 우리는 혁명가의 표정을 쉽게 읽어낼 수 없다. 혁명가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복잡한 심경을 어떻게 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차분히 그의 심정을 가늠해 보라 말한다. 바로 레핀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또 밝고 화사하게 그림 전체를 감싸고 있는 빛! 레핀의 여러 가지 예술적 표현 중 이 선명하고 온화한 빛의 표현은 단연 최고로 꼽힌다. 화사한 햇빛과 그 빛으로 인해 생기는 진초록색 그림자, 그리고 빛과 함께 움직이는 공기의 느낌은 인상주의적 빛 표현을 뛰어넘는 레핀만의 천재적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짧게 트레차코프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을 살펴보았다. 파벨 트레차코프가 자신의 미술관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가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올렸다고 한다. 독자들도 잘 알겠지만 황제는 고개를 숙이는 일이 없다. 이 일화는 러시아에서 아주 유명한 얘기로, 예술이 러시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예다.

러시아는 지금 전범국으로 전락한 상태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니 상황이 좋아지면 꼭 러시아 박물관을 여행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P.S. 트레챠코프 미술관은 모스크바의 심장 크레믈린 궁 맞은편에 위치한 라부쉬킨이라는 러시아 화가 이름을 딴 모스크바 도심 길 안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시원한 모스크바 강 바람이 관람객을 맞아 주고, 겨울이면 어둑한 길을 밝혀 주는 가로등 불빛이 길 전체를 감싸는 그런 낭만적인 곳입니다. 라부쉬킨 거리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2층 규모의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The State Tretyakov Gallery)’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갈색 케이크에 하얀 크림을 발라 놓은 동화 속 건물 같은 미술관입니다. 마당 한복판에는 트레챠코프 동상이 위풍당당하게 서서 관람객을 맞아줍니다. (구글에 주소를 쳐보세요.^^ Lavrushinskiy ln 10, Moscow Russia)

글쓴이

김희은 갤러리 까르찌나 관장

김희은은 20년 가까이 아트 딜러,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그림 전문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중이다. 일반인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전하는 도슨트 활동도 열심이다. 러시아 트레챠코프 국립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 전문 도슨트다. 저서로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 채널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하며, 러시아 예술의 한국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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