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젊은이들은 ‘피의 보복 전쟁’ 원치 않는다
[이근윤의 사우디, 중동 이야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對 PLO 한반도의 독립운동가 對 친일파 피의 보복, 갈등과 대립 끝낼 수 없을까 중동의 젊은층은 평화와 공존 원해
중동의 아픈 손가락, 팔레스타인
얼마 전, 사우디 외교의 광폭 행보를 전하며 수니-시아, 이슬람-유대교 간의 수천 년 해묵은 갈등을 해소하여 일거에 중동의 평화를 가져오려는 사우디의 행보를 감탄한 바 있다. 실제로 사우디의 노림수가 모두 먹혀 들어 간다면, 세기의 성과 정도가 아니라 ‘밀레니엄급 성과’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평화로 가는 길이 쉽다고 했던가? 결국 모두가 쉬쉬하며 찜찜해 하던 그곳에서 사단이 나고 말았다.
팔레스타인은 중동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아픈 손가락과 같은 곳이다. 사우디도 이스라엘과의 수교 협상에 있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받아 들여, 소위 두 국가 해법을 받아들일 것을 조건으로 걸었을 정도로, 중동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 문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왜 이렇게 아픈 손가락일 수밖에 없는지 간략한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을 꼽으라면, 1948년 5월 14일의 이스라엘 건국을 빼놓을 수 없다. 기원후(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된 후 유대인들은 2000년 가까이 자신들만의 근거지가 없이 기독교와 이슬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떠돌며 온갖 차별과 핍박을 받았다. 급기야 독일 히틀러의 삐뚤어진 증오로 인해 집단 대학살까지 당해야 했다.

역사의 피해자가 가해자로
그러던 유대인들에게는 이 날이 잃어버린 거룩한 약속의 땅을 회복한 감격의 날이었겠지만, 2000년 동안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해 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이날은 대재앙의 날이며, 이후로 숱한 폭력과 차별, 핍박에 시달리기 시작한 원통한 날이다. 2000년간 차별과 핍박의 피해자로 살아왔던 유대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하는 곳에서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차별하고 핍박하는 가해자가 되고만 것이다.
애초에 이곳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1차 대전중, 먼저 아랍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며 자신들의 편에 설 것을 종용했지만,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금융을 쥐고 있던 유대인들의 지원도 필요로 했다. 그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도 독립을 약속했고, 그들의 힘을 활용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은 결국 팔레스타인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이스라엘의 건국을 지지하게 된다. 건국 선언 즉시 이집트를 중심으로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1차 중동전쟁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코딱지만한 신생국가가 수십 배나 인구가 많은 주변국 연합국에 상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실전경험과 미국이 지원한 막강한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과 전투 경험이 전무한 아랍 연합군의 싸움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결국 4차에 걸친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은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고립되었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도 영토의 일부분을 빼앗기게 된다.
주변국의 힘을 빌어 이스라엘을 내쫓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팔레스타인의 희망은 점차 사라져 갔고, 그들은 결국 두 방향으로 갈라지게 된다. 무장 투쟁을 주장했던 하마스와 협상을 통한 평화를 추구했던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그것이다.
저항의 강경파와 타협파들
이 지점에서 한국인 만이 공감할 수 있는 묘한 동질감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서 느낀다. 일본의 국권 침탈에 맞서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과 일본에 협력을 해서라도 희생을 줄이고자 했던 친일파들의 오랜 갈등과 반목을 우리는 너무나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마스를 독립운동가에, PLO를 친일파에 대입한다면 모두가 불만스러워 하겠지만, 최소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그들의 존재가 한국인이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사이에서 느끼는 복잡하고 풀기어려운 애증의 대상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사우디 등 산유국들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아왔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PLO냐? 테러단체에 가까운 비인도적인 무력 행동으로 긴장감을 조성하여, 이스라엘의 ‘피의 보복’을 정당화시킨 하마스냐?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선택지 앞에서 혼란을 느껴왔다.
솔직히 팔레스타인 주변의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오랜 반목에 상당히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집트, 요르단은 벌써 오래전에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근래 미국의 중매로 UAE, 바레인은 마지못한 듯이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었으며, 사우디도 그 뒤를 따라가려던 차였다.
매정하게 말하자면, 이들 나라들은 팔레스타인만 못 본 척해 준다면, 이스라엘과 잘 지내고 싶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은 아픈 손가락이지만, 그냥 덮고 넘어가고 싶은 찜찜한 문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쉬쉬했던 팔레스타인 문제가 이들 사우디와 아랍 국가들의 발목을 제대로 잡고 만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소수라도 원통한 자의 신원을 무시한 결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제대로 보게 된 것 같다. 만약 중동 국가들이 진정한 평화를 염원한다면, 가장 약자라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부터 일단 해결하고 나서 다른 협상을 했어야 마땅했다.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 생각은 다르다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주변의 아랍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다. 각양 각색의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의미있게 느낀 것은 ‘세대간의 온도차’였다.
주변 아랍인들 중 나이든 어른들은 매우 강경한 어조로 지금까지의 이스라엘의 만행을 규탄했다.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하마스의 이번 도발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들을 비난하려면 그보다 몇 배나 심한 강도로 행해졌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층으로 가면 갈수록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못지 않게 하마스에 대한 비토 정서도 강하다. 무슬림 형제단에서 시작된 하마스, 헤즈볼라, 알카에다 등의 무장 테러 조직은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라, 이슬람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이라는 생각이 뚜렷하다. 그들이 팔레스타인을 대표하지 않고, 진정한 무슬림도 아니라는 게 젊은이들 사이에 상당하다.
지금 당장은 도저히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고, 끝없이 미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이 지옥같은 현실에서, 그래도 약간의 희망을 느끼는 것은 중동의 젊은 세대들이 ‘왜 우리가 굳이 이렇게 긴장과 갈등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공존할 수는 없는지?’를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힌 기성세대들은 해묵은 오랜 갈등을 해결할 실력도 자격도 없을지 모른다. 과거의 은원에서 한발 비켜 서 있는 신세대들이 더 이상 폭력의 악순환을 거부하고, 평화와 화해의 길을 선택할 때만 희망이 보일 것이다.
사실 이런 ‘희망 고문’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자에 맞선 민주화 항쟁을 직접 겪으며 온갖 은원을 갖고 있는 구세대들이 남북 갈등, 지역 갈등, 한일 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결국은 과거에 매여있지 않은 새 세대들이 구(舊)세대가 설정해 놓은 갈등의 기본값 대신, 화해와 협력, 공존의 기본값을 받아들여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나갈 때만이 희망의 미래를 열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용서와 화해의 길은 멀기만 한가
수년 전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하면서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그 당시 수많은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시위에 가담했다가 연행됐다. 필자와 함께 일하던 팔레스타인 직원의 동생도 이 때 연행되어 1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했는데, 동생이 석방되던 날에 맞춰 최신 핸드폰을 선물로 사서 휴가를 가던 그 직원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오랜 수레바퀴가 부디 새로운 세대에 의해서 멈추기를 소망한다. 피의 응징을 부르짖는 구 세대가 자신들의 피맺힌 과거가 아닌, 새 세대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서라도 보복을 멈추고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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