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회에 ‘한국거래소’ 지배구조 바꾸자

[조선규의 Special Report] 증권사의 거래소에서 국민의 거래소로

지난 6월 18일 코스피가 9000 포인트를 넘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부산 한국거래소 본사에서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6월 18일 코스피가 9000 포인트를 넘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부산 한국거래소 본사에서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선진 거래시장이 되려면 증권사 과점 구조가 낳은 거래량 지상주의와 감시 체계의 결탁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므로 증권사 주주로 이뤄진 거래소에 대해 근본적인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 기득권 저항 극복과 단계적 로드맵 기존 증권사 대주주의 강력한 기득권 반발을 넘어서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 후 국민주를 순차적으로 매각하는 현실적인 단계적 전략이 필요합니다. 국민, 연기금, 기관투자자가 고루 주주로 참여하는 것이다.
  • 특별법적 토대와 과감한 결단 거래소의 ‘국민주 상장’을 실현하려면 현행법상의 소유 제한 등 걸림돌을 제거할 자본시장법 개정, 증권사의 지분을 공개할 특별법 수준의 준비 등 철저한 법적 준비와 정부의 대담한 결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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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증권거래소는 일종의 백화점인데, 상품가치 없는 썩은 상품이 많으면 누가 가겠느냐’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는데,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10년 넘게 미뤄져 온 ‘거래소 지배구조 개편’ 논의에 다시 불을 지핀 신호였습니다.

이에 화답하듯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지난 2월 코스닥시장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고 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코스피지수가 8000을 돌파한 이후 시장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코스닥으로 옮겨가면서, 거래소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지주회사 전환과 코스닥 분리법인화 만으로는 문제의 절반밖에 해결하지 못합니다. 진짜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거래소의 새로운 주인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지주회사로 옷만 갈아입고 여전히 증권사들이 지분을 나눠 갖는다면, 개혁은 껍데기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거래소를 ‘국민주 방식’으로 민간 상장하여 지배구조의 체질 자체를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증권사 과점 구조가 낳은 왜곡된 인센티브

한국거래소는 2015년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되어 형식상 민간기업이 되었지만, 실질 지분을 여전히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나누어 가진 회원제적 폐쇄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래소의 주주가 증권사라는 사실은 정책 설계의 무게중심을 근본적으로 왜곡시킵니다.

먼저, 거래량 지상주의와 투자자 보호의 공백입니다. 증권사의 핵심 수익원 중 하나가 매매 수수료이므로, 거래소는 시장의 질적 안정성보다 단기 매매를 부추기는 제도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 왔습니다.

고빈도 매매나 파생상품 확대에는 적극적이었던 반면, 무차입 공매도 적발 시스템 고도화나 개인 투자자 정보 비대칭 해소에는 상대적으로 더딘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또 감시자와 피감시자의 결탁 우려입니다. 거래소는 시장 감시와 상장 심사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피감시자인 증권사가 동시에 주주인 구조에서는 엄정한 자율 규제가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내는 인센티브의 문제입니다.

최근 논의되는 코스닥 분리법인화 자체도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업계에서는 현재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분리된 본부 체제 아래 운영되고 있어, 법인만 분리한다고 경쟁력이 저절로 강화되지는 않는다는 회의적 시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배구조의 소유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조직도만 바꾸는 개혁은 반쪽짜리에 그칠 위험이 큽니다.

사실 거래소 지주회사화 상장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5년 금융위원회는 거래소 기능을 자회사로 분사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기업공개를 단행하는 방안을 확정했고,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016년 초까지 관련 입법을 마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코스닥 별도법인화를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 속에 공청회장에서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고, 결국 20대 국회로 논의가 넘어가면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사실상 폐기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같은 그림이 다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의 구조적 난이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번에는 대통령의 직접 지시라는 정치적 동력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 실행면에서 과거와 다릅니다.

전 세계 주요 자본시장은 이미 오래전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택했습니다.

국가·거래소 상장 방식과 효과

국가 거래소 상장 방식 효과 및 특징 미국 NYSE·나스닥 주식회사 전환 후 공모 상장 주주 다변화, 글로벌 경쟁력 확보 영국 LSE 회원제 탈피 후 상장 특정 금융기관 이익 대변 차단 홍콩 HKEX 정부 지분 보유 + 공모 상장 공공성과 효율성의 조화 일본 JPX 지주회사 체제 상장 현물·파생 통합 운영, 시장 신뢰 확보 한국 KRX 증권사 중심 폐쇄 지분 구조 주주(증권사) 이익 편향, 코리아 디스카운트

대만과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 시장이 이미 소유 구조 개편을 마쳤다는 사실은, 지금의 KRX 체제가 자본시장 초기 단계의 유산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계 시가총액 순위 8위권까지 성장한 거래소가 여전히 과거의 폐쇄적 소유 구조를 고수하는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받아 마땅합니다.

국민주 상장이 가져올 변화와 세 가지 실현 대안

거래소를 국민 전체의 자산으로 돌려준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소유 다변화를 통한 증권사 편향성 타파: 국민, 연기금, 국내외 기관투자자가 주주로 참여하면, 단기 거래량 확대가 아닌 장기적 시장 신뢰 구축이 최우선 목표로 바뀝니다.

공시 감사 의무를 통한 투명성 제고: 상장 법인이 된 거래소는 스스로 엄격한 공시와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며, 이는 시장 감시 기능의 독립성을 강제합니다.

개인 투자자 목소리의 직접 반영: 쪼개기 상장 제한, 지배주주 횡령·배임에 대한 엄격한 퇴출 기준, 정보 비대칭 해소 등 개인 투자자 친화적 제도가 신속히 도입될 수 있습니다.

다만 방법론에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현실적으로 검토 가능한 세 가지 경로를 병렬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안 1. 완전 국민주 방식 (원샷 IPO)

거래소 지분 전체를 즉시 공모 상장하는 방식입니다. 개혁 효과가 가장 빠르고 확실하지만, 기존 증권사 대주주들의 강한 반발과 법 개정 지연 가능성이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2016년의 실패가 재현될 위험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대안 2. 단계적 지주회사 전환 후 국민주 매각 (2단계 방식)

현재 김태년 의원안처럼 우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코스닥을 별도 법인화한 뒤, 일정 유예기간을 두고 지주회사 지분 중 증권사 보유분을 순차적으로 국민주 공모 방식으로 매각하는 방식입니다.

정치적 저항을 분산시키면서도 최종적으로는 소유 구조 개편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어, 현재 국회 논의 흐름과 가장 정합성이 높은 현실적 대안입니다.

대안 3. 정부 지분 참여형 혼합 모델 (홍콩식)

정부·연기금이 일정 지분을 확보해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나머지를 국민주로 공모하는 방식입니다. 시장 감시라는 공적 기능과 상업적 효율성을 동시에 지키고자 하는 절충안이지만, 관치금융 논란이 재점화될 소지가 있어 지분율 설계에 신중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세 가지 경로 모두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어느 방식을 택하든 핵심 원칙은 하나로 수렴되어야 합니다. 증권사가 거래소의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한 채로는 어떤 조직 개편도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시장 선진화의 마지막 퍼즐은

한국 자본시장은 양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두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증권사의 이익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진 거래소의 왜곡된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2026년 지금, 대통령의 개혁 지시와 여당의 입법 발의가 맞물리며 10년 만에 다시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지주회사 전환이나 코스닥 분리법인화는 소유 구조 개편이라는 본질을 건드리지 않으면 절반의 개혁에 그칠 것입니다.

거래소의 국민주 상장은 단순히 한 기업을 증시에 올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룰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기구를 공정하고 객관적인 궤도 위에 올려놓는 구조적 개혁입니다.

거래소가 특정 이익 집단의 품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의 신뢰를 받는 공공의 플랫폼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개인 투자자가 안심하고 장기 투자할 수 있는 진정한 선진 시장이 열릴 것입니다.

이제는 정부와 금융 당국이 기득권의 반대를 넘어, 국민주 상장이라는 대담한 결단을 내릴 때입니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52 한국거래소의 주인은 왜 증권사일까? 자본시장 선진화의 마지막 퍼즐은?
글쓴이

조선규 칼럼니스트

조선규는 35여 년간 교육과 기업 경영, 그리고 지역 사회 발전의 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성장해왔다. “삶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기업을 통해 길을 열었으며, 현재는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며 더 따뜻하고 공정한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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