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의 ‘최후의 심판’과 스크로베니 예배당(1)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파도바의 예배당, 고리대금업자 아들이 지어 벽화는 마리아의 부모에서 예수 생애 그려져 아래엔 7개 덕-악덕 알레고리로 대조해 표현 ‘최후의 만찬’서 덕은 천국, 악덕은 지옥으로 끔찍한 ‘지옥’편...왜 이렇게 무섭게 그렸을까
지옥은 누가 가는 곳일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마태복음 19장이 전하는 예수의 말입니다. 『신곡』 지옥편에서 단테는 갖가지 죄목으로 형벌을 받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지옥 17곡에는 목에 돈주머니를 맨 고리대금업자들이 고통받는 장면을 그리죠. 단테가 피렌체 출신이다 보니 피렌체인을 많이 그렸는데요. 엉뚱하게 피렌체 출신도 아니면서 ‘넌 여기서 뭐하고 있냐’는 핀잔을 듣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파도바 사람, 레지날도 스크로베니입니다. 고리대금업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죠.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12세기, 13세기 유럽에는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이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상인계급, 특히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모은 사람에 대해서는 죄악시했어요. 고리대금업이 매춘과 함께 가장 저주받는 직업이었다고 하니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겁니다. 죽고 나서는 당연히 지옥에 간다고 여겨졌고요. 그래서 레지날도의 아들인 엔리코는 아버지의 죄를 사하고 집안의 평판을 좋게 할 요량으로 고대로마 시대 때 원형 경기장(아레나)이 있던 땅을 사들여 예배당을 짓습니다. 이곳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조토 디 본도네(1267-1337)에게 그림을 그려줄 것을 주문하죠. 이렇게 해서 중세의 걸작이자 르네상스를 여는 기념비적인 프레스코화(소석회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회화)가 탄생되었습니다. 그림이 있는 파도바로 함께 날아갈까요?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파도바는 1222년에 설립된 파도바 대학으로 유명하죠.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명문대학으로 특히 의과대학은 창립 이래로 지금까지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592년에서 1610년까지 수학교수로 재직한 곳이고요. 인구 20여만 명의 작은 도시에 대학생과 교수진이 6만 5천여 명에 이른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죠?

오랜 시간을 품은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도시 어디서나 파도바 대학 표지판을 볼 수 있어요. 시내 한가운데서 1493년에 지어진 고풍창연한 대학 건물을 보고 좀 더 길을 가면 아치로 이루어진 낡은 담벼락이 보입니다.
여기가 바로 파도바 아레나가 있던 곳입니다. 지금 남아있는 흔적으로는 검투사들의 싸움이 벌어졌던 거대한 규모의 경기장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중세 때 다른 건물을 짓기 위한 재료로 돌이 뜯겨나가면서 아레나는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남아있는 타원형의 경기장 자리에서 지금은 연극 공연이나 영화 상영, 다양한 마켓 행사들이 개최된다고 하니 시민들을 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명맥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겠죠. 아레나의 낡은 외벽을 따라가다 보면 <스크로베니 예배당>이 나옵니다. 사투를 벌이는 검투사에 열광했던 고대 로마와 천국에의 염원을 담은 중세의 예배당이 2천 년의 시간을 품고 방문객을 맞이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약한 시간에 입장하면 우선 15분 정도 예배당에 관한 영상을 봅니다. 곧 방문할 공간에 관해 예습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입구에 설명된 바로는 바깥의 기온과 습기를 실내와 맞추기 위한 시간이라는군요. 영상은 가쁜 숨을 가라앉히고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해줍니다. 일정한 수의 방문객들이 함께 들어갔어요. 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직접 본다고 생각하니 예배당 입구를 넘어서기도 전부터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해야 했습니다.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의 절반 규모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과 비교할 수 있을 텐데요. 등장하는 인물수나 예배당의 규모에서 스크로베니 예배당이 시스티나 예배당의 절반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이 베토벤의 <합창>이 울려퍼질 것 같은 분위기라면,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그레고리안 성가가 은은히 들려오는 느낌입니다. 들어가면서 바라보게 되는 방향을 따라가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는 창문이 있는 동남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남쪽 맨 위칸의 6개는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의 생애, 북쪽 맨 위칸의 6개와 동쪽 제단에 있는 4개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나타냅니다. 제단에 그려진 <수태고지>는 예수가 태어나는 것을 알리는 장면인데요. 이후 총 23개의 그림에서 예수의 생애가 펼쳐집니다. 아기 예수가 마구간에서 태어나 이집트로 피신한 이야기로부터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부활한 후 승천하고 성령으로 임하는 것까지 모두가 그려졌어요.

맨 아래쪽에는 덕과 악덕을 나타내는 알레고리가 7개씩 그리자유(Grisalle · 회색톤으로 마치 조각처럼 그려진 그림)로 그려져 있는데요. 대조되는 것끼리 마주보고 있습니다. 차례대로 보면 신중함-광기, 힘-변덕, 절제-분노, 정의-부정, 신앙-이교 신앙, 자비-탐욕, 희망-절망입니다. 이 일곱 가지 덕과 악덕은 서쪽 벽면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과 연결되는데요. 덕은 <최후의 심판>에서 천국으로 연결되고 악덕은 지옥으로 이어집니다.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최후의 심판>
사실 예배당에 들어서면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이 <최후의 심판>인데요. 높이 10m, 폭 8m 40cm의 거대한 그림이 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가운데 위에는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 아래에 천사들이 십자가를 들고 있는데요. 십자가 오른쪽(관람자가 볼 때는 왼쪽)에는 천국에 간 사람들이, 왼쪽에는 지옥에 빠진 사람들이 보입니다. 끔찍하고 너무나 사실적입니다.
지옥에 빠진 사람들은 불의 강에 휩쓸려 가거나 루시퍼에게 잡아먹히는 중이에요. 불의 강은 구약의 다니엘서 7장 10절의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를 그대로 그린 것인데요. 비잔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네 줄기의 강이 지옥에 빠진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장면을 무시무시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옷을 다 벗은 차림으로 주교모를 쓴 채 수도승으로부터 돈주머니를 건네받거나(매관매직), 루시퍼에게 잡아먹히는 교황, 돈을 주며 매춘하려는 남자, 내장은 다 밖으로 쏟아져 흘러내리고 목이 매달려있는 유다와 고리대금업자들, 돈주머니를 매단 채 추락하는 영혼들도 보입니다. 한 마디로 지옥에는 북쪽 벽 아래칸에 그려진 온갖 악덕을 행한 결과로 벌받는 사람들이 득실거립니다. 지상에서 흔히 이루어지던 일들이 그대로 지옥에서 묘사된 거지요.
중세 연구가들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 도상이 서구 미술사에 처음 나타난 것은 4세기에서 6세기경입니다. 11세기 중반부터는 복음서의 삽화로 자주 등장하다가 12세기부터는 교회의 서쪽 출입구 안쪽 벽면 전체에 크게 그려집니다. 이후 바깥쪽 출입문 위 조각으로 등장하게 되고요. 조토와 미켈란젤로는 서쪽 출입구 안쪽에 프레스코로 그렸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당에 들어온 사람들은 미사에 참석한 다음 나갈 때 모두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며 나가는 겁니다.
신의 은총을 빌며 감사하러 들어온 신도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수도 있는 이런 그림을 왜 그리게 된 걸까요? 이 작품만 자세히 보아도 아주 흥미로운데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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