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바에서 만난 조토-스크로베니 예배당(2)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당시 혁신적인 조토의 화법 느낄 수 있어 등장인물 머리스타일, 수염, 옷, 표정 다르게 실제 공간 배경으로 인물 배치...이전과 구분 금빛과 함께 파란색을 숭고함 표현위해 사용 스크로베니 예배당, 부자들의 구원 방법 비꼬아

조토 디 본도네(1267-1337)의 애도.
조토 디 본도네(1267-1337)의 애도.

▶ 유튜브로 칼럼 듣기

<최후의 심판>을 열심히 그린 이유

앞선 (1)편의 글에서 중세도시 파도바로 날아갔는데요.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전체 구성과 <최후의 심판>을 다 같이 보았습니다. 12세기부터 교회에는 왜 그렇게 많은 <최후의 심판>이 그려졌을까요? 이 무렵 교회에는 최후의 심판 말고도 예수의 탄생, 예수의 수난, 성모의 죽음, 여러 성인들의 생애 등 많은 이야기들이 회화와 조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우선 글을 읽지 못하는 중세기 대부분의 신도들을 위해서였습니다. 라틴어 성경이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은 16세기에나 가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그때까지 성경은 성직자들과 엘리트 교육을 받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읽을 수 있었어요. 문맹의 신도들에게 이미지는 아주 효과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십자군 전쟁과 기근, 흑사병 등으로 불안정한 현세를 견디며 사는 중세인들에게 삶은 너무나 불확실한 것이었죠. 언제 어디서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으니까요. 교회는 ‘최후의 심판’ 이미지를 통해 불안한 현세의 삶보다 죽음 이후의 천국에서의 보상을 강조함으로써 악덕이 아니라 덕을, 불신앙이 아니라 신앙의 삶을 살도록 신도들을 견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눈을 돌려 예배당을 다시 한번 둘러봅니다. 이곳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서양미술사에서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리스도에 관한 스무 번째 이야기인 <애도>를 보면서 조토 디 본도네(1267-1337)의 선구적인 면을 이해해봅니다.

‘예수의 생애’ 중 스무 번째 이야기 ‘애도’.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이다. 사진=정연복
‘예수의 생애’ 중 스무 번째 이야기 ‘애도’.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장면이다. 사진=정연복

조토의 선구자적 그림화법

그림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 매장하기 전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등이 둘러싸고 슬퍼하는 장면입니다. 조토는 인물들을 제각각 개성적으로 그립니다. 조토 이전의 화가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게 그리던 것과 달리 <애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머리스타일이나 수염, 옷, 얼굴 표정이 다 다릅니다. 연극적으로 보이는 자세, 슬퍼하는 표정을 통해 그들 각각의 감정이 관람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입체감과 볼륨감을 나타내려 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입체감을 위해 조토는 음영을 썼습니다. 밝은 부분은 불룩해보이고 어두운 부분은 그늘지게 해서 웅크린 여인들이 제법 넓은 어깨와 덩치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또한 뒷모습으로 그림으로써 허벅지 부분은 짧게 그렸는데요. 이렇게 원래 길이보다 짧게 그리는 것을 ‘단축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540년경 처음으로 선보인 기법인데요. 조토가 단축법을 쓰면서 뒷모습을 보여준 것은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인물들을 가상 공간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 배치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어요. 조토 이전의 화가들은 성경의 일화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굳이 실제의 공간에 인물들을 배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성모자만 크게 그리고 다른 인물들은 위치와 상관없이 똑같은 크기로 작게 그리는 경우가 많았죠.

왼쪽 그림은 치마부에의 ‘마에스타’(1270). 오른쪽 그림은 조토의 ‘애도’(1306). 나란히 놓고 보면 조토가 얼마나 공간의 깊이를 드러내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왼쪽 그림은 치마부에의 ‘마에스타’(1270). 오른쪽 그림은 조토의 ‘애도’(1306). 나란히 놓고 보면 조토가 얼마나 공간의 깊이를 드러내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오른쪽 그림, 조토의 <애도>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앞의 인물들과 천사들이 있는 공간을 나누는 흙벽인데요. 위쪽은 밝고 아래쪽은 어둡게 되어있어서 제법 두툼한 두께가 느껴집니다. 평면적인 비잔틴 양식의 영향 속에 12세기에 발전하기 시작한 이탈리아 회화는 1300년대 초, 조토에 이르러 입체적인 공간을 탁월하게 만듭니다. 흙벽은 앞쪽의 성인들과 천사들의 공간을 나누고 애도하는 사람들이 상상의 공간이 아니라 바로 이곳, 어쩌면 관람자와 함께 있다는 착각도 불러일으키게 만들죠.

‘신의 빛’ 파란색의 등장

조토 프레스코화에 주목해야 하는 네 번째 이유는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금방 이해하게 되는데요. 바로 천장 가득 채우고 있는 파란색입니다.

조토는 그 당시 바탕색으로 잘 쓰지 않던 파란색을 배경색으로 사용했다. 사진=정연복
조토는 그 당시 바탕색으로 잘 쓰지 않던 파란색을 배경색으로 사용했다. 사진=정연복

천장뿐 아니라 모든 그림에는 어김없이 파란 하늘이 그려져 있는데요. 금색이 칠해졌던 이전의 추상적인 공간과 달리 실제의 풍경인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 이전의 비잔틴 이콘화에서는 배경에 금색을 쓰고, 파란색은 의상에 주로 사용했는데요. 배경을 파란색으로 칠한 것은 조토의 혁신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조토는 금보다 비싸다고 하는 라피스 라줄리(청금석: 아프가니스탄에서 채굴하는 것으로 청금석으로 만드는 파란색은 바다 건너왔다고 해서 ‘울트라마린’이라 불린다)를 일부 사용하고 그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아주라이트 파랑으로 채색했습니다.

『파랑의 역사』를 쓴 미셸 파스투로에 따르면 파란색은 중세 초기부터 12세기 전반까지는 귀족들에게나 기독교적인 상징에서도 전혀 중요하지 않은 색이었어요. 그러다 12세기 전반에 스테인드글라스에 청색 바탕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신은 빛이자 정신이므로 파란색이 금색과 더불어 신성한 빛, 천상의 빛, 모든 창조물을 비춰 주는 빛으로 간주된 겁니다. 조토는 많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파란색이라는 색깔을 통해서 예배당 전체를 신의 빛으로 충만하게 한 겁니다. 제가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 그레고리안 성가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 이유는 아마도 이 신비로운 파란색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온통 파란색이 채색된 천장에는 성모자와 예수, 여덟 명의 선지자가 그려져 있다. 사진=정연복
온통 파란색이 채색된 천장에는 성모자와 예수, 여덟 명의 선지자가 그려져 있다. 사진=정연복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은 ‘헌납’?

다섯 번째 이유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이 중세 교회가 지옥의 공포를 얼마나 영리하게 이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이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통해 엔리코 스크로베니와 조토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요하킴과 성모 마리아, 예수의 생애를 본받아 악덕을 물리치고 덕을 행함으로써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구원의 삶을 얻길 희구하는 거죠. 말하자면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선친의 죄를 씻고 천국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최후의 심판> 십자가 오른쪽에 무릎을 꿇은 채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성 카타리나에게 예배당을 바치는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모습으로 잘 나타납니다.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예배당을 지어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고 있다. 사진=정연복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예배당을 지어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고 있다. 사진=정연복

중세 교회는 끊임없이 ‘죄’와 ‘죄에 대한 두려움’, ‘구원’을 강조했어요.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폭식, 음욕, 이렇게 일곱 가지 죄를 규정하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설파했죠. 특히 고리대금업자들을 비난하였고요. 탐욕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돈을 끌어모은다는 거죠. 돈을 번 사람들은 죽어서 당연히 지옥에 간다고 말하면서요. 오죽하면 예수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을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속죄하고 구원받아야겠지요? 그래서 부를 축적한 부자들은 교회에 헌납하여 작은 예배당이라도 갖기를 바란 겁니다.

엔리코 스크로베니는 교회 안에 작은 가족 예배당을 갖는 대신 아예 독립적인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예배당 전체에 악에서 선을 향해 나아가는 프레스코화를 그려서 아버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까지 씻고 구원받겠다는 거죠. 교회의 가르침을 이렇게 친절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예배당을 지어주니 교회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고요. 교회와 부자는 서로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고 할 수 있어요.

한쪽에는 목에 돈주머니를 걸고 지옥에서 벌받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교회를 헌납하며 속죄하는 고리대금업자가 있는 겁니다. 나쁜 짓 했다고 비난한 다음 교회 지어 헌납하면 잘했다고 구원해주는 교회라니! 스크로베니 예배당을 지은 후 엔리코가 여전히 아버지의 사업을 잘 해나간 걸 보면 예배당 헌납이 마음 편하게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보증수표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한 뒤 엔리코 역시 예배당의 동쪽 제단 아래 무덤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고요. 예술과 삶, 종교의 관계가 참 아이러니하죠! (끝)

글쓴이

정연복 미술평론가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