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모두 ‘어린왕자’가 되기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는 세상 어린왕자와 여우, ‘우리’가 되는 과정 묘사 “모두 사랑, 염려, 응원, 돌봄으로 연결된 우리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새 길을 걸어가야”

아래는 아르헨티나의 작은 섬. 우편항공기를 조종하던 생텍쥐페리는 이 섬 상공을 날았다고 한다. 위는 『어린 왕자』에 실린 삽화로 생택쥐페리가 그렸다. 삽화 위에는 “이것은 모자가 아니다.”(프랑스어)라고 적혀 있다.
아래는 아르헨티나의 작은 섬. 우편항공기를 조종하던 생텍쥐페리는 이 섬 상공을 날았다고 한다. 위는 『어린 왕자』에 실린 삽화로 생택쥐페리가 그렸다. 삽화 위에는 “이것은 모자가 아니다.”(프랑스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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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새해 아침이 밝았네요. 어젯밤 꿈은 잘 꾸셨나요? 어제까지의 세상은 언제나 뒤숭숭합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음해하고 혐오하고 고립시키고, 그리하여 끝내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내모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며칠 전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어요. 두 장의 이미지가 아래위로 붙어 있습니다. 높지 않은 산이 평평하게 펼쳐진 작은 섬 사진이 아래에 있는데요. 평원 아래에는 바다를 따라 야트막한 땅이 넓게 펼쳐져 있어 마치 모자처럼 보입니다.

프랑스 작가이자 비행기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가 아르헨티나에서 우편기 조종을 할 때 이 섬 상공을 날아다녔다 합니다. 섬 사진 위에는 생텍쥐페리가 그린 그림이 있는데요. 속이 훤히 보이는 보아뱀 뱃속에 코끼리가 그려진 바로 그 그림입니다. 그림과 사진의 싱크로율이 얼마나 높은지 보자마자 무릎을 쳤습니다. 생텍쥐페리가 이때부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떠올렸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미있는 건 생텍쥐페리의 그림 위에 프랑스어로 “이것은 모자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어린 왕자』는 어린 시절의 조종사가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보고 어른들이 모두 모자라고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죠. ‘겉으로 보이는 것밖에 볼 줄 모르는’ 어른들의 한계를 꼬집는 대목입니다.

이 이미지에 쓰인 “이것은 모자가 아니다”라는 말은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를 떠올리게 합니다. 마그리트는 1929년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그림을 그립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았어요. 이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은 질문을 합니다. “파이프가 아니면 뭐란 말이야?”

마그리트는 “그림의 제목은 해설이 아니며 그림은 그 제목의 설명이 아니다”라고 했죠.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가 서로 누가 그림을 더 잘 그리는지 경연을 한 이래로, 서구의 화가들은 회화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눈속임( trompe l’oeil)’이자 ‘자연의 모방’, ‘현실의 재현’이라는 신화를 구축했는데, <이미지의 배반>은 이 신화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보이는 사물은 언제나 보이는 다른 사물을 가리고 있다. 그러나 보이는 이미지는 아무것도 가리고 있지 않다”고 말을 하죠.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9년, 60.33x81.12cm, 캔버스에 유채, LACMA, LA.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9년, 60.33x81.12cm, 캔버스에 유채, LACMA, LA.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다르게 볼 줄 알아야 하고 그 너머를 봐야 한다는 점에서 마그리트와 생텍쥐페리는 통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사랑과 책임의 아름다움을 들려준 『어린 왕자』를 다시 펼쳐봅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어린왕자’

어린 왕자는 우리 주변에 늘 함께 해 온 기분이 듭니다. 누구나 이를 알고 있고 읽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막상 『어린 왕자』를 언제 처음 읽었는지, 혹은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물어보면 다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많은 경우 되묻습니다. 『어린 왕자』는 도대체 왜 그렇게 유명한 거예요? 도대체 뭘 말하는 작품인가요?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봅니다. 왜 『어린 왕자』는 이토록 많이 읽히는 걸까요?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고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왕자』는 전세계에서 1억 4천 5백만 부가 팔렸고 400 여개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성경(700 여개 언어로 번역) 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책입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그림 작가인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삽화를 새로 그린 『어린 왕자』. 1943년 탄생한 『어린 왕자』의 출간 80주년을 기념하여 2023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사진제공=시공주니어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그림 작가인 베아트리체 알레마냐가 삽화를 새로 그린 『어린 왕자』. 1943년 탄생한 『어린 왕자』의 출간 80주년을 기념하여 2023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사진제공=시공주니어

생텍쥐페리의 삽화로 된 판본을 비롯, 새로운 삽화가 실린 책도 꾸준히 나올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시리즈, 영화, 연극, 뮤지컬도 상연되죠. 우리나라 조각가 이영섭은 땅에 그림을 그리고, 여러 재료를 섞어 땅에서 조각을 파내는 방식으로 독특한 질감의 어린 왕자를 꾸준히 작업하고 있고요. 『어린 왕자』는 무궁무진한 영감을 주는 세계 최고의 문화 콘텐츠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왜 이렇게 인기가 있을까요?

한 마디로 어린 왕자의 여정과 깨달음이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왕자』에서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라면 ‘불시착’, ‘질문’, ‘외로움’, ‘길들이다’, ‘책임’을 들 수 있는데요. 살아가는 내내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고뇌와 고통, 공포, 방황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겪는 크고 작은 갈등 이외에도, 전세계에는 기아와 전쟁, 혐오로 고통받는 사람들, 몰이해와 오해 속에 고립되는 사람들이 많죠. 예기치 않게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리면(불시착)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되고(외로움), 이러다 나만 도태되거나 죽을 수 있다는 절망에 빠질 수 있어요.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질문).

장미와 갈등이 생긴 어린 왕자는 친구를 찾아 별을 떠난다. 사진제공=시공주니어
장미와 갈등이 생긴 어린 왕자는 친구를 찾아 별을 떠난다. 사진제공=시공주니어

‘나’는 혼자가 아니고 ‘너’와 연결된 ‘우리’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난 것도 자신의 별에서 느낀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질문을 하고 의문을 품지 않으면 아무것도 구할 수 없죠.

우리의 삶은 질문과 의문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어린 왕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어린 왕자의 질문은 어린아이의 순진한 질문같지만,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던지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질문에 답하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지 스스로 깨닫게 되죠.

어린 왕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우와의 만남입니다.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관계맺기’(길들이다)의 중요성을 깨닫죠. ‘길들임’을 통해 서로를 보살피고 아끼는 거죠. 이 과정은 ‘나’의 외로움을 극복하면서 ‘나’는 혼자가 아니라 ‘너’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책임).

어린 왕자는 여우와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둘은 서로의 눈을 보며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 서로의 말에 귀기울이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중요성이 그림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사진제공=시공주니어
어린 왕자는 여우와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둘은 서로의 눈을 보며 상대방의 말을 경청한다. 서로의 말에 귀기울이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중요성이 그림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사진제공=시공주니어

인간은 모두가 혼자입니다. 그러나 혼자인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사랑’과 ‘염려’와 ‘응원’과 ‘돌봄’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는 모두의 염려와 배려 속에 이렇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겁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변의 모든 생명과 환경을 염려하고 돌보며 새출발을 다짐해보는 아침입니다!

글쓴이

정연복 미술평론가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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