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하지 맙시다”...무엇이 잘못됐나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 잘못이듯 임종석의 ‘평화적 두 국가론’도 문제 “통일 포기” 선언할 권리 누구도 없어 분단 고착은 주변국 모두 원하는 ‘악수’ 정권교체로 다시 평화공존 열망 살려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사실상의 신년사를 통해 "남북이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했다. 또 통일의 대상도 아니라고 처음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사진=MBC 뉴스캡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사실상의 신년사를 통해 "남북이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했다. 또 통일의 대상도 아니라고 처음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사진=MBC 뉴스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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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던진 화두

필자는 지난 달 칼럼에서 ‘두 국가 체제론’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통일을 향한 한민족의 노력은 멈출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두 국가론을 두고 한국 사회가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지난 19일 광주에서 나온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이 기폭제였다. 임 전 실장은 “통일, 하지 맙시다”라면서 “남북이 그냥 따로, 함께 살며 서로 존중하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면서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돼 있는 헌법 3조를 두고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임 실장 발언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임 전 실장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출신이고, 반미자주통일을 추구하는 ‘민족해방(NL)’ 계열을 대표하는 유명 인사다. 문재인 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자격으로 남북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런 인물의 입에서 통일 포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통일 열망가들의 좌절감은 이해하지만

물론 발언 배경을 짐작할 수는 있다. 진보 진영에서 통일 담론은 대내외적 상황에 따라 꾸준히 변모했다. 특히 남과 북의 적대적 대치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통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통일 열망가들의 좌절감이 커졌고, 어둠 속에서 대안 담론을 모색하는 불편함과 부담감이 적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서 진보 진영에서는 ‘좋은 이웃’ 논의가 화두로 등장한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 통일 전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통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오히려 정책 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당분간 평화적 공존에 집중하는 것이 좋고, 남과 북이 ‘좋은 이웃’으로 살다보면 통일의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남과 북 모두 독립된 정권이고, 조속한 통일보다는 평화 공존과 평화 교류가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렇지만, 평화를 강조하는 것은 흡수 통일 의사가 없다는 맥락으로 해석됐고, 통일을 포기하자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임 전 실장 발언은 당혹스럽고, 유감스럽기까지 하다. 이 사안의 본질이나, 전략 또는 전술의 유불리, 시기나 정치 상황 등을 따져볼 때 득보다 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통일 포기’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통일 포기는 본질적으로 1945년 분단 결정 수용과 내용적으로 같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는 1910년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강제로 국권을 강탈당했고, 국권 상실의 연장선에서 1945년 미국과 구소련, 두 강대국 절충에 따라 분단됐다. 79년 전의 일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해서 외세 결정으로 나라가 분단됐다는 사실, 그리고 나라를 원래대로 하나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과 국가의 지고지선의 목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옵션이 아니다. 통일, 다시 말해 분단 해소를 위한 노력만이 유일한 옵션일 뿐이다.

분단 장기화로 좌절감을 겪는 통일 열망가들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통일 포기 선언이 용납될 수는 없다. 국가 분단의 부당성이나 참담함, 민족 자존심을 떠올린다면 통일을 포기할 권리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도 통일 포기 선언은 비현실적이다. 평화적 공존을 30년 정도 하다가 보면 오히려 통일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은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하면 ‘그림의 떡’과 다르지 않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 중에 남북 통일을 구태여 원하는 나라는 없다. 80년 가까이 분단된 두 나라 통합은 지정학적 격변을 의미하는 것이고, 어느 나라도 그런 격변이 자국에 유리한지, 불리한지 계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불리를 계산하기 어렵다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남과 북이 통일을 포기한다면 아마도 그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고, 미래에 다시는 통일 이야기를 꺼내지 않도록 대못을 박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정치적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어리석음

전술적 차원에서도 두 국가론은 부작용 또는 역풍을 초래할 것이다. 임 전 실장 발언은 올해초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 구상이 알려진 이후에 나왔다. 한국에서 대북 정책은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사안이고 보수는 진보를 친북좌경 세력이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상황이다. 수식어로 사용된 ‘적대적’과 ‘평화적’ 단어는 서로 다르지만 보수 진영은 김정은 위원장이 제기한 ‘두 국가론’을 동조하고 추종했다면서 정치적 공격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새로운 통일 담론을 주도하려고 화두를 던졌겠지만 실제로는 통일 담론에서 진보 진영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가 될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하다. 최근 남북 관계 악화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이어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북한이 하노이 회담 이후 남쪽 정부에 대한 좌절과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했고,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에 맞서 더욱 강경한 대남 정책을 채택하면서 ‘적대적 두 국가론’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대응 방향은 대북 정책을 수정하고,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그렇게 할 가능성은 제로(0)에 수렴한다. 그러므로 정권 교체만이 대북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정권 교체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어

현재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열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을 만큼 실정을 거듭하면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만큼 정권 교체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는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국론 분열은 물론 진보 진영 내부도 분열시키는 불길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 누구에게 유리한 것인가? 또한 통일 포기론은 헌법 제3조 영토 조항 개정을 필요로 한다. 영토 조항 폐지를 위한 헌법 개정 논의가 벌어진다면 누가 유리할 것인가? 헌법 개정을 둘러싸고 나라를 태워버릴 정도로 뜨거운 국론 분열을 경험할 것이고, 윤석열 정부 실정을 거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통일 포기론을 감당할 수 있는 정치인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흡수 통일을 추구하는 보수 진영에게 통일 포기는 한반도 북부 영토를 김일성 가문에게 통째로 바치는 결과라는 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다. 진보 진영에서도 통일은 제국주의에 의해 망실됐던 국권을 온전하게 회복하고 외세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국토를 완전하게 정상화하는 신성한 임무다. 진보 진영 지도자의 핵심 임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정치인에 대해 진보 진영 국민들이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은 과도한 기대가 될 것이다.

평화 공존하면서 통일 기회 노려야

임 전 실장은 지금이라도 통일 포기론을 철회하고 평화 공존론으로 돌아오는 것이 자신과 진보 진영,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바람직하다. ‘평화 공존’ 강조는 통일 포기 선언이 아니므로 외세가 자의적으로 그어놓은 분단선을 충실히 지키는 노예 근성을 가진 국민이라는 경멸을 받지 않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통일이 어려운 조건에서 평화적 공존을 이뤄내면서 장기적으로 통일 기회를 노리는 것은 오히려 현명한 전략이다. 평화 공존은 북한을 자극할 이유도 없고, 남한의 보수 진영이 공격할 요소도 별로 없다. 시기적으로 윤석열 정부 심판과도 무관하고, 정치적으로도 정체성 논란에 빠질 필요도 없다. ‘통일 포기론’을 가능한 빨리 포기하고 평화 공존에 집중한다면, 새로운 통일 담론 개발이라는 원래 의도를 관철할 기회도 생기고, 진보 진영 지도자 위상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왕선택 서강대 대우교수

왕선택은 YTN 방송기자로 재직하는 동안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정책실무 석사를, 서울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를 취득했다. 통일, 외교, 국제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의 전통 문화, 특히 선비 정신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민족의 독특한 문화와 특성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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