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사랑과 문학 사이 ‘위대한 딜레마’

[홍성광의 독일 작가 사랑 이야기] 세번 약혼·세번 파혼..결혼 딜레마 부친과의 갈등...결혼에 부정적 생각 연인과 나눈 연서들, 위대한 산문으로

어린 시절의 프란츠 카프카.
어린 시절의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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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약혼, 세 번 파혼한 카프카

체코의 실존주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세 번 약혼하고 세 번 파혼한 뒤 독신으로 지냈다. 역사상으로 보기 드문 사례다.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 1887~1960)와 두 번 약혼, 두 번 파혼하고, 율리 보리체크(Julie Wohryzek, 1891~1944)와 한 번 약혼, 한 번 파혼했다. 그 뒤 밀레나 예센스카(Milena Jesenská, 1896~1944)와는 수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으나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했고, 결핵으로 사망하기 전 도라 디아만트(Dora Diamant, 1898~1952)와 함께 생활했지만 정식 결혼은 하지 못했다. 여기서는 카프카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펠리체 바우어와의 사랑과 이별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카프카는 성과 결혼에 대해 불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는 그가 아버지의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지된 것은 욕망된 것이다’는 말도 있듯이 1912년 무렵까지 친구 막스 브로트와 유곽을 드나들기도 했다. 카프카는 이러한 경험을 나중에 좋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쾌락을 부정하면서 점점 금욕적인 규율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여성’ 아말리아

카프카의 작품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대부분 하녀나 창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성은 주체성이 없는 성적인 여성, 즉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여성이 『성(城)』의 아말리아이다. 성의 관리 소르티니가 자신이 묵고 있는 여인숙에 와서 수청을 들라는 편지를 보내자, 아밀리아는 몹시 분노해서 심부름꾼의 얼굴에 편지를 찢어서 던지며 거부의 대답을 보낸다.

그러나 소르티니의 천박한 요구를 거부한 대가로 아말리아와 그녀의 가족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며 구두장이인 그녀의 아버지는 주문이 줄어들어 급기야 가게 문을 닫게 된다. 순결을 중시하고 높은 정신성을 지닌 아말리아는 본능과는 거리가 먼 ‘이성적인 여성’이다. 자신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성이 강한 인물로 묘사됐다. 아말리아는 절망을 이기며 살아날 수 있고, 절망과 더불어 살아갈 수도 있는 여성이다. 카프카가 사귄 여자 중에는 번역가 밀레나 예센스카가 그와 같은 성격을 지녔다.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왼쪽)와 프란츠 카프카.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왼쪽)와 프란츠 카프카.

펠리체 바우어와의 만남

1912년 8월 13일 카프카는 절친 막스 브로트의 집에서 펠리체 바우어를 처음 만나 교제하며 차츰 사랑하게 되었다. 펠리체의 사촌이 막스 브로트의 여동생 소피와 결혼해서 브로트와 펠리체는 친인척 간이었다.

녹음기 회사의 속기사인 펠리체는 명랑하고 현실적인 성격으로 직장에서 성공을 거둔 커리어우먼이었다. 한달 뒤인 9월 20일 카프카는 첫 편지를 쓴 이래로 거의 매일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며 답장을 요구한다.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과 그녀에게 보내는 수많은 편지가 삶(결혼)과 글쓰기의 갈림길에 선 카프카의 창작욕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처음 3개월 동안 무려 1백여 통의 편지를 썼는데, 5년 동안 보낸 편지가 무려 5백 통이 넘었다. 첫 만남 후인 1912년 9월 20일부터 1917년 10월 16일까지 5년간 주고받은 편지와 엽서에서 두 연인은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급속하게 관계가 진전된 첫 교류, 미래를 함께 하기 위한 사랑싸움, 첫 번째 약혼과 두 번째 약혼의 실패, 1917년 말 최종 결별할 때까지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카프카는 첫 편지를 보내고 며칠 뒤인 1912년 9월 22일 밤 10시부터 23일 새벽 6시에 걸쳐 단편소설 『선고』를 완성하고 작품을 펠리체에게 헌정했다. 카프카는 5일 뒤 펠리체의 첫번째 답장을 받았다.

카프카는 1913년 2월 11일 일기에서 작품 『선고』의 남녀 주인공이 프란츠 카프카, 펠리체 바우어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선고』의 주인공 게오르크 벤데만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와 철자 수가 같다. 또 여자 주인공 프리다 브란덴펠트의 이름에서 프리다 Frieda 역시 펠리체 Felice와 철자 수가 같고 단어 맨 앞에 ‘에프 F’가 나오는 것도 똑같다. 브란덴펠트 Brandenfeld도 바우어 Bauer와 첫 글자가 ‘B’다. ‘들판’이라는 뜻의 ‘펠트 Feld’는 ‘농부’를 뜻하는 ‘바우어’와 의미상으로 관련성이 있다.

약혼과 파혼

두 사람은 그동안 활발하게 편지만 서로 교환했다. 그러다가 1913년 5월 부활절을 맞아 카프카는 펠리체를 만나러 베를린으로 떠난다. 그 후 6월에 카프카는 편지로 펠리체에게 청혼한다. 그해 11월 초 카프카는 펠리체의 친구로 매력적인 그레테 블로흐(Grete Bloch)를 알게 되어 그녀와 편지 왕래를 시작하며 모종의 관계를 맺는다. 그러고는 다음해인 1914년 6월 초, 카프카는 베를린에서 펠리체와 정식으로 약혼했다가 7월 12일에 파혼한다.

이 무렵 카프카는 펠리체 바우어의 아버지에게 보낼 편지의 초안을 일기에 기록해놓았다. 일기에 그는 자신의 본성이 ‘폐쇄적이고 말이 없으며 사교성이 없는 불평객’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직장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듯이 결혼 역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펠리체의 아버지는 편지에서 카프카에게 결혼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요구한다. 카프카는 후일 이때의 심정을 “눈에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매인 기분이었다”라고 술회했다. 결혼은 그에게 딜레마이고, 구원인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벨상 수상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의 지적대로 그에게 사랑은 ‘또다른 소송’으로, 주저와 연기의 과정이며, 정당화를 위한 소송 심리(審理)의 성격을 띠고 있다.

자살을 생각한 카프카

이 즈음 카프카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일기에 그는 “내가 어쩔 수 없이 자살해야 하는 경우,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다. 예컨대 F의 태도가 가장 직접적인 동기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실제 일어날지도 모를 장면을 혼자 상상해 본다”라고 적고 있다.

파혼 한 달 후인 그해 8월 6일의 일기에서 카프카는 이렇게 적었다.

“문학 측면에서 보면 내 운명은 무척 단순하다. 꿈 같은 나의 내면생활을 표현하고 묘사하는 것의 의미는 다른 모든 걸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놓음으로써, 다른 모든 것은 끔찍할 정도로 위축되었고, 더구나 계속 위축된다. 그러나 이제 그런 묘사할 만한 힘이 나에게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어쩌면 그 힘은 이미 영원히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혹시 그 힘이 또다시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 생활 환경은 그다지 유리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흔들리면서,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날아오르지만 단 한 순간도 정상에서 몸을 지탱할 수 없다.”

두 번째 약혼과 파혼

그러다가 1915년 1월에 카프카는 펠리체와 다시 만나게 되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듬해에 들어서는 두 사람은 사이가 다시 가까워져 7월에는 마리엔바트에서 10일간의 휴가를 보내면서 전쟁이 끝난 다음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그런 후 1917년 7월에 두 사람은 두 번째로 약혼한다. 카프카는 이번엔 결혼해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로서 살아갈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는 8월 13일 밤에 각혈을 쏟은 후 폐결핵으로 진단받는다.

카프카의 결핵은 펠리체 바우어와 이별하는 핑계가 되고 급기야는 직장 노동자재해보험공사를 그만두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각혈을 자신의 내면이 분열되었음을 나타내는 징후로 봤다. 그래서 병이 난 것을 계기로 그는 또다시 자신의 정신적 분열과 주저를 정당화했다.

카프카는 여동생이 있는 취라우에서 요양한 결과 병세가 회복되었지만, 그해 성탄절 무렵 다시 파혼했다. 자신의 병을 파혼 이유로 삼은 그와는 달리, 펠리체와의 결혼을 잘 선택한 것으로 생각했던 아버지는 이 파혼에 반대했다. 카프카는 자신의 유일한 욕구이자 천직인 문학이 결혼과는 모순됐고, 문학이 아닌 것이 모두 지루하게 여겼다. 이 무렵부터 카프카는 잠언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있으나 길은 없다. 우리가 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망설임이기 때문이다”라는 잠언도 적었다.

밀레나 예센스카와의 만남

카프카는 1918년 11월 4개월의 병가를 얻어 프라하의 북쪽 엘베 강가 쉘레젠에 체재했다. 그곳에서 체코 소녀 율리 보리체크를 알게 되어, 1919년 6월 약혼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카프카의 아버지는 그녀의 아버지가 유대교 예배당 관리인이라서 신분이 낮은 데다 그녀가 방종하다는 이유로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다. 그 바람에 가을에 두 사람은 결국 파혼하고 만다. 이런 이유로 카프카는 9월에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써서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독립적인 입장을 주장하려고 했다. 이듬해 카프카는 ‘살아있는 불꽃 같은’ 여자 밀레나 예센스카와 친하게 되면서 보리체크와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정리했다.

카프카의 세번째 약혼녀 율리 보리체크.
카프카의 세번째 약혼녀 율리 보리체크.

다시 몸이 나빠진 카프카는 직장에서 휴가를 얻어 4월 티롤 지방의 메란(Meran)이라는 곳으로 요양을 간 후 그곳에서 밀레나 예센스카를 알게 됐다. 그 후 둘은 편지를 통한 열정적인 교제를 시작했다. 원래 둘의 편지 왕래가 시작된 것은 그녀가 카프카 초기 단편 『화부』 등을 체코어로 번역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밀레나에게 보내는 카프카의 편지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소설다운 소설’이 됐다. 삶이 문학과 일치를 보일 뿐 아니라, 사랑이 싹트고 환희가 생기며 질투가 끼어들다가 점차 사랑이 식었다. 한 편의 소설처럼.

카프카의 연인이었던 밀레나 예센스카.
카프카의 연인이었던 밀레나 예센스카.

20세기의 위대한 서간문

카프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매우 개인적인 편지를 썼다. 이 편지들은 그의 뛰어난 감수성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또 내면의 위협적인 측면과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다. 심지어 일부 작가는 카프카의 편지를 그의 문학 작품에 대한 보충 자료로 간주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일부로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펠리체와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는 ‘20세기의 위대한 서간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20년 멜레나와 활발한 편지 교환이 있은 다음 점차 뜸해지다가 죽음을 8개월 앞둔 1923년 10월에 마지막 편지를 썼다. 카프카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이 식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 즈음 젊은 유대 여성 도라 디아만트와 베를린에서 동거하고 있던 카프카는 그녀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결혼 생활 비슷한 행복을 맛보며 처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결정의 지연과 유보

편지에서 카프카는 펠리체의 편지와 사랑을 갈구하는 동시에,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카프카의 내면에는 펠리체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결혼이 창작을 방해한다’는 인식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억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는 그의 노력은 좌절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카프카는 그녀와의 교제를 통해 안락한 시민적인 삶에 정착하는 문제를 고민하지만, 그런 삶이 자신의 본래적 관심인 문학을 위협할 것으로 여겨 망설였다. 카프카에게 결혼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대변하는 반면, 문학은 일상 세계와 유리된 고독한 상태에서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결국 결혼을 포기하고 문학을 택하지만, 또한 문학만으로는 삶이 가능하지 않다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글쓴이

더칼럼니스트

홍성광은 서울대 독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독문학박사로, 독일 문학 및 철학 관련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독일 명작 기행』, 『글 읽기와 길 잃기』, 역서로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 니체의 『비극의 탄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정치 에세이 『예술과 정치』, 『마의 산』(상·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상·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젊은 베르터의 고뇌』, 실러의 『도적들』,『간계와 사랑·빌헬름 텔』,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 『싯다르타』, 카프카의 『성』,『소송』,『변신 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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