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산 HBM·반도체장비 對中 수출통제

美 기술 사용한 외국기업에 강제 적용 삼성 HBM 수출 영향 가능성 정부 “이번 美 조치 韓영향 적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 26회 반도체 대전 SEDEX 2024 SK하이닉스 부스에서 HBM 관련 영상이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 26회 반도체 대전 SEDEX 2024 SK하이닉스 부스에서 HBM 관련 영상이 나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중국이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등 다른 나라의 대중국 수출을 통제했다.

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2일(현지시간) 수출통제 대상 품목에 특정 HBM 제품을 추가한다고 관보를 통해 밝혔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든 고성능 메모리로 AI 가속기를 가동하는 데에 필요하다.

자발적 동참한 국가엔 허가 면제

상무부는 이번 수출통제에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Foreign Direct Product Rules)을 적용했다.

이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더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이 사용됐다면 수출통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의미로, 우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제 특허 체제를 자국에 유리하게 만들어온 미국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평가된다.

현재 전 세계 HBM 시장은 한국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미국의 마이크론이 장악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원천 기술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도 이번 수출통제를 적용받게 된다.

상무부는 HBM의 성능 단위인 ‘메모리 대역폭 밀도’(memory bandwidth density)가 평방밀리미터당 초당 2기가바이트(GB)보다 높은 제품을 통제하기로 했다.

상무부는 현재 생산되는 모든 HBM 스택이 이 기준을 초과한다고 밝혔다.

HBM 수출통제는 오는 31일부터 적용된다.

상무부는 HBM을 미국이나 동맹국에 본사를 둔 기업의 중국 자회사에 수출할 경우에는 일부 제품에 대해 수출통제 예외를 신청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했다.

SK는 전량 美 수출해 당장 타격 없을 전망

이날 상무부는 중국이 첨단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 제조 장비(SME) 24종과 소프트웨어 도구 3종에 대한 신규 수출통제도 발표했다.

상무부는 또 해외직접생산품규칙을 특정 반도체 장비와 관련 부품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만드는 일부 반도체 장비와 부품의 중국 수출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상무부는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수출통제 제도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 기업이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때 상무부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주요 반도체 장비 수출국인 일본과 네덜란드를 포함한 총 33개 국가가 해당되는데 한국은 명단에 없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이 수출 허가 면제 국가에 소재한 기업과 중국 시장에서 경쟁할 때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압박에 대중국 수출통제 동참을 검토하면서 수출통제 제도를 정비해왔으며 이에 따라 향후 미국이 제시한 기준을 충족할 경우 수출 허가 면제 국가에 포함될 수도 있다.

일본과 네덜란드는 자국 기업의 반도체 장비 수출 일부를 자체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수출통제 규정을 따르기로 미국 정부와 몇 달 전에 합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상무부는 특히 중국의 군 현대화와 연관된 기업 140개의 명단을 발표하고서 이들 기업에는 첨단반도체와 관련 장비를 수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이들 기업이 군사용 반도체 개발과 생산을 지원해 미국의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중국에 있지만 일부는 일본, 한국, 싱가포르에 있는데 한국에서는 ‘ACM 리서치 코리아’와 ‘엠피리언 코리아’ 2개 기업이 지정됐다.

상무부는 이날 발표한 수출통제의 목적이 중국이 전쟁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첨단 AI를 개발하는 것을 늦추고, 중국이 자체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방해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이번 조치는 우리 국가 안보에 위험이 되는 첨단기술의 생산을 현지화하려는 중국의 능력을 우리 동맹 및 파트너와 협력해 약화하고자 하는 바이든-해리스 행정부의 표적화 접근의 정점”이라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은 우리의 적들이 우리의 기술을 우리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중대한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가 열린 18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컨벤션 센터에 마련된 전시관에서 SK하이닉스가 HBM3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가 열린 18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컨벤션 센터에 마련된 전시관에서 SK하이닉스가 HBM3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 “美 HBM 대중 수출 통제, 한국 영향 적어”

우리 정부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국내 업계에 미칠 영향은 적을 것으로 봤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대부분 HBM을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고, 삼성전자가 일부 사양이 낮은 HBM을 중국에 수출하지만 매출 대비 비중은 작은 것으로 안다”며 “전체적으로 한국 기업에 끼치는 영향이 적은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세계 첨단 HBM 시장을 주도하는 SK하이닉스의 경우 엔비디아 공급 물량을 대만에 수출한다.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업체인 엔비디아의 주문을 받은 TSMC는 대만 내 패키징 공장에서 자사가 앞서 제조한 GPU와 HBM을 함께 패키징해 최종적으로 AI 가속기 제품을 제작, 엔비디아에 납품한다.

산업부는 미국의 이번 HBM 대중 수출 통제가 HBM을 중국에 직접 수출하는 경우에만 해당하고, 로직칩 등과 함께 패키징된 HBM은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향후 미국 규정이 허용하는 수출 방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미국이 이번에 함께 발표한 반도체 장비 추가 수출 통제 역시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추가 수출 통제는 자국의 국가 안보 관점에서 첨단 수준의 장비로 한정되어 있고, 범용 장비가 모두 포함된 것은 아니다”라며 “추가 장비 수출 통제로 영향을 받는 국내 기업이 일부 있지만 개별 회사에 끼치는 영향 역시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이번에 노광, 식각, 증착, 세정 장비 등 관련 장비가 추가로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에 올랐지만, 기존에 미국 정부로부터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 자격을 획득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장은 이번 추가 조치와 관계 없이 미국 정부의 개별 허가 없이 관련 장비를 계속 반입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산업부는 “우리 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견을 수렴했고, 한국과 미국 정부 모두 이번 조치의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양국 기업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협의했다”며 “이번 미국 조치를 면밀히 분석하고 영향을 지속해 점검하면서 기업의 수출 애로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 방안 모색에 노력을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 영향 적다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업계는 이번 미국 조치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업계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향후 전 세계적인 HBM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에 HBM 일부를 수출하는 삼성전자가 이번 통제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삼성의 중국 수출 비중이 그렇게 높지 않고, 전 세계적인 공급망을 갖추고 있어 이번 조치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앞서 외신과 업계 등에서 삼성전자의 HBM 대중국 수출 비중이 30%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제로는 이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출 제한 조치를) 면밀히 검토 중이며 관련 기관과 잘 협의해가겠다”고 밝혔다.

반면 SK하이닉스는 현재 HBM 전량을 미국에 공급하고 있으며 생산량이 미국 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어 당장은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업체별로 상황이 다를 순 있으나 기본적으로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라며 “중국에서 사용하는 물량이 최신 HBM 제품이 아닌 데다가 SK하이닉스의 경우 HBM 고객사들이 미국에 몰려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장기적으로 HBM 시장이 더 커져야 하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로)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내년 물량까지 ‘완판’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수요도 다 못 채울 정도의 수준이어서 중국 수출 규제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삼성은 (중국 수출 제한과 같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HBM3E부터 나아가 HBM4에서 미국 빅테크를 뚫어 공급망을 더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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