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오너...민주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
[이용우의 경제 더하기] 1997년 대법원 판례임에도 ‘통치권’ 운운 이승만, 왕권 같은 권한 요구하다 탄핵당해 기업 ‘오너’ 개념도 주식회사 본질에 안맞아 ‘오너, 경영권’ 강조하면 기업가정신 제한돼 민주주의 시대 맞는 개념으로 새롭게 채워야
- *경제 더하기는 시장경제 전문가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이용우 전의원이 경제를 더 깊게 파고 들어 생각하기 라는 의미로 제안한 것입니다.
‘통치권’ 이라는 전근대적 개념
12.3 비상계엄으로 초래된 탄핵정국에서 대통령의 ‘통치권’이란 개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통치권은 국가를 운영하고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최상위 권한을 말한다. 이는 법적으로 엄격하게 규율되지 않는 정치적 재량 영역을 포함하며, 특히 헌법적으로 구체적인 규정이 없거나 명확한 법률로 규율되지 않는 국가적 중요 사안에 적용되는 것으로, “국가의 존립과 질서 유지에 필수적인 정치적 결단(통치행위)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새로운 법질서를 형성하므로 사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있었지만, 1997년 전두환, 노태우의 쿠데타에 대해 대법원이 “헌법을 위반한 행위는 대통령이라도 처벌 가능하며, 성공한 쿠데타라도 불법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는 판례를 통해, 통치권이라고 할지라도 사법적 심사가 된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통치권은 절대군주의 초법적 권한이며, 민주주의는 이를 국민의 통제 아래 두고자 했다. 부르주아 혁명은 인간이 자연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전제로, 그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오직 사회적 계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원칙을 확립한 과정이었다. 그 권한을 제약할 수 있는 권력자는 사람들이 선출하는 것이다. 선출된 권력자가 사람들이 위임한 범위를 벗어나 개인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1997년 대법원의 판례는 전근대적인 통치권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는 분기점이란 의의를 지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헌법 제1조를 외쳤던 이유다.

이승만을 탄핵시킨 ‘대통령’ 개념
그러나 여전히 통치권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대한 인식이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을 왕조시대의 왕으로 인식하는 견해와 충돌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President를 대통령 (大統領)으로 쓰고 있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본다.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서 “이름(명칭)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는 것처럼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때 최고지도자의 명칭 초안은 통령(統領)이었다. 이에 대해 이승만이 초대 지도자로 선출된 후, 자신이 맡을 직책에 대통령(大統領)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여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굳어졌다. 이승만은 스스로 조선왕실의 후손이고 자신이 왕과 같은 권위와 지위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완전한 독립’ 목표와 상반되게 국제연맹의 위임통치(Trusteeship) 하에 둘 것을 공식 청원하였고 임시의정원(=의회)이 이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은 “나는 대통령으로서 모든 결정권이 있다”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이로 인해 1925년 임시의정원에서 17명 중 16명의 찬성으로 탄핵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 노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주적 협의”를 중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탄핵하는 민주적 통제를 최초로 보여준 것이다. 이승만의 탄핵 이후, 임시정부는 지도자의 직책 명칭을 주석(主席)으로 변경했다. 주석이라는 명칭은 단체의 대표를 뜻하며, 민주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주권자보다 권한 센 대통령
President의 라틴 어원을 보면 Pre[앞] sit[앉다]는 의미로 동등한 지위를 갖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회의의 주재자라는 의미로, 권위주의적 대통령이라는 이름보다 주석이 그 의미에 걸맞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북한에서 사용되는 것이었고 이승만이 건국후 초대 지도자로서 ‘대통령’이라는 명칭을 요구하자, 제헌헌법에 반영되어 정착되었다. 대통령이란 이름이 사용됨에 따라 민주주의 헌법과 어울리지 않는 왕권적 상징성을 띠게 하여 대통령의 지위를 군주와 유사한 위치로 변화시켰다.
권위주의 정권이 1987년 헌법에 의해 붕괴되고 민주 헌법이 제정되어 제6공화국이 탄생하였지만 대통령의 통치권도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을 확인한 판례는 그로부터 10년 후에 정립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상 민주공화국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이 원칙과 어긋나는 상징적 무게를 지닌다. ‘대’라는 접두사는 왕조시대의 군왕을 연상시키며, 대통령을 국민의 대표라기보다 통치자나 군주의 위치에 놓았던 것이다.
미국에서 도입된 대통령제는 왕이 없는, 국왕의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 신대륙에서 왕과 유사한 권력을 갖는 대표를 뽑는 제도를 고안한 것으로, 모순된 요구를 절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제한되지 않는 권력을 가질 것을 경계하여, 그 권한을 분산하고 서로 견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때문에 대통령제는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며 점진적으로 완성도를 높여가는 제도다.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불안전한 것에 끊임없이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의 통치권이 주목받는 것은 1987년 이후 지속적으로 내용을 채워가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것이고 우리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지만 그 지위를 왕과 같이 여기는 전근대적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정론정명(政論正名), 대통령이 갖는 함의를 제자리에 돌려야 하는 이유다.
‘오너’, ‘경영권’이라는 전근대적 개념
대통령이란 이름처럼 그 본질적 의미를 혼동시키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주식회사의 “오너(Owner)”란 말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회사는 주식회사이고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오너는 대주주나 회사 창업자의 후손을 일컫는 말이다. 창립 초기 회사는 이른바 오너의 돈을 종자돈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회사의 성장을 위해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거나 자본시장에서 상장을 통해 주인인 주주를 받아들여 성장한 것이다. 동업자의 자금 없이 지금의 모습을 지닐 수 없다. 그러나 오너라는 이름을 쓰게 되면 그런 동업자는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객체가 된다. 주주평등의 원칙, 즉 1주 1표라는 원칙은 사라지고 회사는 대주주 또는 그 일가의 소유라는 인식이 뒤따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법은 주식회사의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제382조 제1항)하며, 대표이사는 이사회에서 선임(상법 제389조 제1항)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자본금 규모가 작아 이사회가 구성되지 않는 경우 또는 회사의 정관에서 특별히 주총에서 대표이사 선임을 규정한 경우에만 주총에서 대표이사를 선임하도록 되어 있다. 상법을 비롯한 어느 법에도 오너란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말은 주식회사 제도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근대 부르주아 혁명에서 왕권신수설을 부정하고 사회계약론으로 대체된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왕권신수설을 따르는 셈이다.
‘경영권’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주주의 것이며 다양한 주주의 이익을 주주총회에서 위임된 이사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경영권은 일부 주주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고 회사 자원을 전유하는 권리도 아니다. 경영을 잘 못하는 경영자는 주주에 의해 언제나 교체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의 주요 투자에 대해 그것이 주주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으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존재다.
워렌 버핏이 “칼 루이스가 100m 올림픽에서 우승하였다고 그 아들을 100m 선수로 뽑아야 하는가?”라는 어록을 남긴 것은, 경영권은 주주가 그 회사 가치를 가장 크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위임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모든 주주의 것을 일부 지배주주가 전유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오너란 말을 쓰면서 특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대에 걸맞는 용어와 내용을 채우자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은 개발연대에 제한된 자원을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하였기 때문에 정경유착이라는 어두운 측면도 있지만 불모지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IMF(국제통화기금)위기의 근본원인으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는 기업가가 사업성을 무시하고 금융기관의 돈을 끌어들여 과잉투자한 데 있다. 재벌구조로 인해 한 회사의 리스크가 대기업집단내 모든 회사에 전이되어 금융기관과 국민경제의 위기를 가져온 것이다. IMF가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 부채비율 및 계열사간 보증의 축소 및 각사의 독립적 경영 등이었다. 이는 회사가 오너의 것이 아니라 주주의 것임과 동시에 국민경제에 영향을 주는 존재라는 것이 부각된 이유다.
그러나 ‘오너’라는 용어가 여전히 보편적으로 사용된다면,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는 주식회사 제도의 본질을 망각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회사는 개인의 것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승계, 특히 그 핏줄이나 가족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넘기는 것에 회사의 자원을 동원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교역질서가 급변하고 AI의 등장으로 기업이 어디로 갈 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 우리 기업에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활로를 여는 기업가정신이다. 어느 한 사람이 그 길을 제시할 수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지혜를 모으는 ‘집단지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근대적 사고에 빠져 승계에만 몰두한다면 우리 기업,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어 익숙해진 용어가 갖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이름, 오너라는 이름이 우리의 사고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이름이 갖는 역사성을 인식하고 시대에 걸맞는 내용을 채워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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