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이후 주식시장이 가야할 길
[이용우의 경제 더하기]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한 과제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 독립성 “강화” ‘공시 강화’로 주주이익 더욱 보호하고 시행 미룬 ESG공시, 당겨 시행해야 형사처벌 대신 ‘시장의 힘’으로 투명하게
- *경제 더하기는 시장경제 전문가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이용우 전의원이 경제를 더 깊게 파고 들어 생각하기 라는 의미로 제안한 것입니다.
‘이사 충실의무’ 논란의 역사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상법에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이 처음 들어왔다. 당시 IMF 외환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 게 재벌 총수의 독단적 경영이었다. 총수 일가가 자신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사업성 검토도 없이 무리한 투자를 벌였고, 그 결과 기업들이 부실화되었으며, 결국 이 기업에 돈을 댄 금융기관까지 연쇄적으로 부실에 빠졌다. 나라 전체가 위기를 겪은 배경에는 이런 지배주주의 전횡이 있었던 셈이다.
이런 평가를 반영하여 1998년 상법 개정 때 IMF(국제통화기금)의 권고를 반영해 영미식 기업지배구조 장치들이 대거 도입됐다. 사외이사 제도, 주주제안권, 집중투표제, 주식분할, 업무집행책임자 제도 같은 것들이다. ‘이사 충실의무’ 규정도 그중 하나였다. 상법 제382조의 3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명문화되면서, 경영진이 회사를 위한 충성의무를 지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곧 논란이 생겼다. 충실의무의 대상이 ‘회사’만인지, ‘주주’도 포함하는지 애매했던 것이다. 대법원은 2004년 판례와 그에 잇따른 여러 판례에서 “이사는 회사 사무를 처리하는 자이지 주주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사의 충실의무는 오로지 회사에만 지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주주 개개인에 대한 직접적 보호 장치는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LG화학 배터리 사업부 분할 상장,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부 분할과 동시상장 등 사례에서 일반 주주의 권익이 침해됐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사회 결의만으로 이뤄지는 자본거래가 주주가치를 훼손해도 충실의무 조항으로는 제어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커졌다.
상법 개정, 다음은 공시제도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2023년과 2024년을 거치며 상법이 다시 개정됐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아예 ‘주주로까지’ 확대 명문화한 것이다. 이제 이사는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1998년 도입 이후 유명무실했던 조항이 드디어 실질적 내용을 갖추게 된 셈이다. IMF 당시 의도했던 지배주주 견제 취지를 회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바꾼 점도 상징적이다. 어떤 주주의 지지를 받아 선임되었더라도 전체 주주를 대표해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충실의무 위반 여부를 따질 때 이사회의 독립성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경영판단의 원칙과도 연결되며, 이사회가 더 책임 있게 움직이도록 하는 장치가 된 것이다.
법 조문이 생겼다고 저절로 효과가 나는 건 아니다. 충실의무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결국 판례가 쌓여야 한다. 어떤 경우에 이사의 책임을 인정할지, 주주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호할지를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경영자와 주주 모두 예측 가능한 행동 기준을 얻고, 주식회사 제도의 신뢰가 높아진다.
판례가 생기려면 먼저 주주와 이해관계자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게 공시다. 회사가 경영 결정과 재무·비재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만 주주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필요하면 소송까지 갈 수 있다. 공시가 부실하면 피해가 생겨도 뒤늦게 알게 되고, 그때는 이미 되돌리기 어렵다. 반대로 충실한 공시가 있으면 주주들은 즉시 문제를 지적하거나 이사회에 의견을 낼 수 있고, 해결되지 않으면 주총이나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시는 주식회사 제도의 자정능력을 작동시키는 출발점이다.
미국을 보더라도, 이해상충이 의심되는 거래에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면 법원이 무효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테슬라의 ‘머스크 보상안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사회가 머스크와 충분히 독립적이지 않았고 주주에게도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은 보상안을 무효로 했다. 반대로 독립성과 공시가 충실했다면 경영판단의 원칙에 따라 면책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충실의무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공시를 통한 사전적 견제와 사후적 사법심사 구조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공시 원칙이란 “공개된 정보에 대해 이의가 없으면 승인된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회사가 중요한 정보를 공시하면, 주주와 이해관계자는 이를 보고 문제를 제기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의가 없으면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보고, 이의가 있으면 회사는 설명하거나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 이를 반영하여 금융시장에서 공시 위반은 강력히 제재한다.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에 허위공시, 미공시, 누락에 대한 과징금과 형사처벌 규정이 있는 이유다. 5% 룰 같은 지분 공시 위반에 대해 과징금을 대폭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시 없이는 시장 참여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없고, 그만큼 견제할 기회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공시는 “정보를 내놓고 시장의 평가를 받으라”는 명령이다. 경영진은 불편해도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주주와 이해관계자는 이를 검토하고 필요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문제 없는 침묵과 정보 부재로 인한 침묵을 구분할 수 있고, 견제가 제대로 작동한다.
일본의 사례는 통찰력을 준다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는 길도 결국 공시에서 출발한다. 일본은 2023년 도쿄증권거래소를 통해 상장사들에 가중평균자본비용(WACC: Weighted Average Cost of Capital)와 투자수익률(ROIC: Retuen on Invested Capitral)를 기준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도록 요구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Price Book-value Ratio)이 1배 미만인 기업은 반드시 개선 계획을 내도록 했다.
어떤 회사가 100억 원의 투자계획을 가지고 자본조달을 차입 50억 원, 주식발행 50억 원으로 하는 경우를 예로 WACC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자. 시장금리가 3%라면 타인자본조달 비용은 당연히 3%가 된다. 그런데 시장 투자자가 이 회사가 발행한 주식에 투자한다면 안전한 채권투자 3%보다 높은 수익을 원할 것이다. 재무이론에서 정밀한 계산방식이 있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채권조달금리의 2배를 자기자본비용으로 볼 수 있고(워렌 버핏이 계산기 등을 사용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자본비용을 계산하는 방식), 따라서 주식, 즉 자기자본비용은 6%가 된다. 이 예에서 이 회사의 WACC는 4.5%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프로젝트 투자의 비용인 것이다.
만일 프로젝트의 예상수익률이 4.5% 이하, 예를 들어 4%라면 수익률이 4%인 투자에 4.5%의 자본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손해보는 투자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하면 돈은 버나?”라는 질문과 동일한 것이다. 개략적으로 PBR이 1이라는 것은 수익과 비용이 같은 것을 의미하므로 비용을 초과하는 프로젝트에 자본을 사용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주주에게 돌려주라는 것이 된다. 그 결과 일본 기업들은 투자자 설명회에서 WACC와 ROIC를 공개하고, 자본비용을 상회하는 수익을 내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이 저성과 사업부를 지적하고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압력이 커졌고,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같은 조치들이 실제로 나왔다. 공시가 시장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일본은 우리처럼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문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판례를 통해 회사의 이익을 넓게 해석해, 종업원과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법리를 인정해왔다. 그래서 주주 충실의무 조항이 없어도 기업들이 회사 가치 제고를 우선 목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례로 볼 때 이사충실의무가 주주자본주의를 공고히 하여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무시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도 회사의 이익 개념을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

뒤로 물린 ESG공시제도도 원래대로 당겨야
ESG 공시 제도도 같은 맥락이다. G(거버넌스)는 주주와 이사회, 경영진 관계를 다루고, S(사회)는 노사관계, 원하청, 소비자와 지역사회 등 대외적 관계까지 포함한다. E(환경)는 기후변화와 지구환경 전반이다. 이렇게 보면 G < S < E 구조다. ESG를 외치면서 정작 거버넌스, 사회, 환경 관련 정보를 공시하지 않으면 ‘ESG 워싱’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는 원래 2025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를 시작으로 ESG 공시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2030년엔 코스피 전체 상장사에 적용하려 했다. 그런데 기업 부담을 이유로 최소 1년 이상 미루면서 시행 시점이 2026년 이후로 넘어갔다. 기업들이 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공시를 늦추면 ESG 경영은 구호에만 그치고 만다. ESG 공시는 투자자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다. 도입을 늦추면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과 자본시장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과 제도와 법원의 힘으로 ‘투명성’ 키워야
상법 개정으로 법적 틀이 새로 갖춰졌다. 이제 중요한 건 판례를 쌓고, 공시를 충실히 하고, 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형사처벌 중심의 통제는 시장의 자율 기능을 위축시킨다. 배임죄로 형사 책임을 묻는 구조만으론 주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래서 배임을 민사로 다루고, 증거 확보를 위한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디스커버리가 있으면 주주가 재판 과정에서 기업 내부 자료를 강제로 확보할 수 있다. 검찰 수사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견제가 가능해진다.
시장이 문제를 발견하고 주주들이 이의를 제기하며, 분쟁은 법원이 판례로 정리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형사처벌에만 기대지 않고도 기업 거버넌스가 바로 선다.
충실의무가 주주까지 확장된 지금은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진화하는 시점이다. 앞으로 25년은 판례 축적, 공시 문화 정착, ESG 공시 도입이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투명성이야말로 자본시장의 신뢰를 살리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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