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대 창조론 재판, 그리고 법관의 용기
[이지훈의 통섭의 황혼] 미국 ‘창조론 논란’ 둘러싼 3대 재판 보수파 존스 판사, 용기있는 판결 끌어내 한국도 반지성-기독교-법조인 연결고리 법관은 어떤 판결로 한국을 이끌 것인가

이마에’ 검은 십자가’ 美 국무장관
미국 국무장관 마크 루비오가 최근 이마에 검은 십자가를 그리고 폭스 뉴스에 출연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는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을 위해, 참회의 뜻으로 이마에 재를 바르는 의식이라고 한다. 현 미국 장관 중 몸에 그린 기독교적 상징으로 인해 이목을 집중시킨 또 다른 인물로는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가 있다. 신의 뜻을 의미하는 Deus Vult라는 중세 십자군 시절의 문구를 팔에 새긴 헤그세스는 기독교 극단주의자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해당 문신이 원인이 되어 헤그세스는 2021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당시 경비에서 배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기와 2기 모두 기독교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대권을 거머쥐었다. 출구조사 결과 2016년 대선에서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81%가 트럼프를 지지했으며, 2024년 대선에서는 개신교와 그 외 기독교에서 약 63% 의 지지율을, 가톨릭에서 58%의 지지율을 획득했다. 요직들에도 기독교, 특히 가톨릭 신자들이 다수 진출한 상황으로, 앞서 언급한 루비오 장관은 물론, J.D.밴스 부통령도 가톨릭 신자이며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또한 가톨릭 신자다. 이에 더해 연방대법관 9인 중 과반 이상 또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
반과학과 기독교의 연결고리 ‘창조론’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미 복음주의 기독교와 가톨릭이 결집하는 가운데, 한 가지 더 나타나는 경향성은 ‘반과학’이다. 트럼프는 기후변화에 적대적 또는 회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케네디 주니어도 최근 백신지지 선언을 하였으나 과거 백신 반대론자 행적을 이미 많은 미국인들이 인지하고 있다.
더불어 트럼프는 최근 과학 분야 예산에 강력한 삭감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미 과학자 사회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트럼프 지지층과 행정부의 기독교적 성향이 곧 반과학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은, 현대의 상식과 신앙의 조화를 아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모욕이자 섣부른 추측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반과학’, ‘정부’라는 3가지 키워드가 트럼프를 중심으로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 역사에 이 세 단어가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연결되어 여러 차례 큰 폭풍을 불러온 적이 있다. 그 중심은 ‘창조론’이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지지하는 창조론, 즉 지구는 6,000년 전에 전지전능한 유일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으며 현대 과학을 부정하는 세계관은 오랫동안 미국의 교육에서 진화론을 배제하고자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과학자, 교사, 학부모, 판사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엮여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했던 3건의 재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국 창조론 관련한 3대 판결
《스콥스 재판》은 1925년 미국 테네시주에서 열린 재판으로, 공식적으로 테네시 주 대(對) 스콥스(State of Tennessee v. John Thomas Scopes) 재판이라고 불린다. 이 재판은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에 대한 도전이었다. 1925년, 테네시주는 버틀러법(Butler Act)을 제정하여 공립학교에서 창조론만 가르칠 것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이를 헌법 위반이라 주장하며, 일부러 이 법에 위배되는 사건을 만들기로 계획했다. 이를 위해 지역 교사인 존 T. 스콥스가 고등학교에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가르쳤다며 자기 자신을 고소함으로써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스콥스는 유죄 판결을 받고 1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테네시주 대법원은 1927년 이 사건을 절차적 이유로 기각했지만, 버틀러법 자체는 폐지되지 않았다. 이후 1967년이 되어서야 테네시주는 버틀러법을 공식적으로 폐지했는데, 이 배경에는 1957년의 “스푸트니크 쇼크”로 인해 과학 교육을 향상시키겠다는 미국의 위기감이 있었다.
다음은 1987년의 에드워드 대(對) 아귈라드 재판(Edwards v. Aguillard)이다. 1981년, 루이지애나주에서 창조론 균형법(Creationism Act)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칠 경우, 반드시 창조론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규정했다.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창조론을 과학 수업의 일부로 포함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루이지애나주의 공립학교 생물학 교사였던 아귈라드는 이 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당시 루이지애나 주지사 에드워드가 주정부를 대표하여 소송을 방어했다.
1심 및 2심에서는 루이지애나 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자, 주정부는 이에 불복하여 미국 연방 대법원에 상고, 최종 판단을 요청했다. 그 결과 대법원에서는 7 대 2로 루이지애나 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승리에 힘을 보태기 위해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가 과학자들의 의견을 모아 법정 조언자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이 의견서에는 무려 72명의 노벨상 수상자, 17개 주 과학 협회 등이 함께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수파’ 존스 판사의 용기있는 판결
다음으로 2005년의 키츠밀러 대(對) 도버(Kitzmiller v. Dover Area School District) 재판은 미국 공교육에서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 ID)를 가르치는 것이 헌법적으로 허용되는지를 다룬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국 연방 법원은 지적 설계론, 즉 ID가 과학이 아니라 창조론의 변형이며, 공립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다고 판결했다.
2004년, 펜실베이니아주 도버 교육위원회는 생물학 수업에서 진화론을 가르칠 때, 지적 설계도 함께 소개해야 한다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했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에게 진화론의 한계를 지적하는 안내문을 읽도록 요구했고, ID를 진화론의 대안으로 소개하는 책, 『Of Pandas and People』 을 참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반발하여 11명의 학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원고 중 한 명이었던 키츠밀러의 이름을 따서 키츠밀러 대 도버 사건이라 불리게 되었다.
피고 측은 ID는 종교가 아니라 과학적인 이론이며, 진화론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대안적 가설’로 학생들이 다양한 이론을 접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 변호인들은 『Of Pandas and People』의 초판본을 조사했는데, 이 책의 초판에는 창조론(Creationism)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으나, 이후 판에서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로 바뀌었음이 밝혀졌다. 즉, ID는 단순히 창조론을 위헌 판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꾼 용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외에 지적설계론을 지지한 생화학자의 궤변에 맞서 다양한 진화론 측의 근거들 또한 제시되었다.

이 사건을 맡은 판사 존 E. 존스 3세는 보수 성향과 더불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명해 원고 측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많은 우려를 샀는데, 결과적으로 존스 판사는 ID가 과학이 아니며, 창조론의 변형된 형태로서 종교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공립학교에서 ID를 가르치는 것은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선언했다. 이 키츠밀러 대 도버 재판은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다’라는 법적 선례를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판결 이후 미국 공교육에서 ID를 포함하려는 시도는 위헌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반지성적 행태에 맞선 미국의 과학과 지성은 이처럼 1세기에 가까운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과 학부모들, 과학자들과 교사들의 노력이 필수적이었지만, 존스 판사처럼 자신의 신념과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인 선택을 내려 존경받을 만한 행보를 보인 법조인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반지성-기독교-법조인
최근의 대한민국은 법조인들이 내린 일련의 결정으로 인해 문자 그대로 혼돈을 겪고 있다. 법조인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은 헌정질서 붕괴와 내란의 리더가 되었으며,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모두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전광훈 목사 등이 대표하는 극단주의적 성향의 기독교 집회와 연결점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7일 내란 수괴 혐의로 기소된 윤 대통령에 대해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재판부에서 봤듯, 윤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제 법조인들의 손에 올려놓아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기독교’, ‘반과학’, ‘정부’라는 3가지 키워드의 연결망이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는 법조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키츠밀러 대 도버 재판에서 판결을 내린 존스 판사의 사례처럼 그러한 키워드들의 모임이 항상 혼돈과 비이성으로 치닫는 것은 아닐 듯하다.
이 사회의 상식을 유지하기 위해 학부모, 교사, 과학자 등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법조인들의 이성적인 판단 또한 필수불가결하며 그것이 약 80년 동안 3차례 진행된 미국 진화론 vs 창조론 법정 공방의 결과가 말해주는 바가 아닐까.
전근대적 사고관과 극단주의가 먹구름처럼 드리운 국가는 퇴행적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우려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지성의 조건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지성이란 많은 공부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닌, 그를 바탕으로 한 이성적인 행동이 존재해야 비로소 완결 및 증명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 우리의 눈앞에서 무너져가는 사회의 상식을 지지하기 위해 20년 전 존스 판사가 그랬던 것처럼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론도 이성적인 행동과 결정을 통해 무엇이 지성인지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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