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에너지 정책 방향 – ② 실용

[권효재의 에너지 바로알기] 실용적인 에너지 정책은 정책의 목표, 효과, 비용, 경로 등에서 확인되어야 지금의 논란, 의도적으로 투자와 부담을 외면한 것은 아닐까 반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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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9대 대선은 에너지 이슈가 정책 논쟁의 중심을 차지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가 다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주요 후보들은 모두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줄이거나 장기적으로 탈피하겠다는 공약을 천명했다. 이에 대해 원자력 학계와 업계는 강하게 반발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시작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후 원자력-재생에너지 논쟁은 정치적 진영 논리와 결합되고 갈등은 증폭되었다. 미중 패권 경쟁에다 트럼프 2기의 화석연료 강조 정책까지 등장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포털 기사 댓글 창에는 원자력, 재생에너지를 각각 악마화하는 반응들이 가득하며, 특정 에너지원을 특정 국가와 연계하는 도식도 널리 퍼졌다. 이념화된 에너지 정책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데이터에 근거한 목표와 경로 설정

실용의 의미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가시적으로 성과가 보인다는 데 있다. 즉 재생에너지가 좋다, 원자력이 좋다라는 이념에 기반한 정책에 대비해, 실용적인 에너지 정책은 구체적으로 정책의 목표, 효과, 비용, 경로 등이 숫자로 계산되고 토의되며 확인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파리기후 협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자발적으로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5년마다 목표 달성 여부와 그 다음 5년의 목표와 계획을 제시한다. 이를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라고 하며 우리도 2030년 NDC 목표 설정을 해 두었다. 어떤 에너지 원을 어떻게 구성하여 이 목표를 달성할지를 고민해서 장기 에너지 계획에 반영한다. 올 2월에 확정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등에도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11차 전기본을 샅샅히 살펴봐도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투자가 필요하고, 에너지 비용은 어떻게 변경되는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다.

에너지 정책이 이념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꼭 필요한 계산과 수치는 빠진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 계획임을 감안하면 세부적인 계산이 어렵거나 오류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일정한 범위 혹은 가이드라인 제시는 필요하다.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정격 용량 기준 35GW 규모로 알려져 있는데, 11차 전기본에서는 2038년까지 110GW로 늘리려고 한다. 이 경우 얼마를 투자해야 하고 투자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며, 전기 요금이 어떻게 변동할지, 계산과 숫자들이 없다면 토대가 허약한 계획으로 남아 계속 흔들리게 된다.

지난 4월 28일 이베리아 반도 대정전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력망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면 전력 공급에 차질이 발생해서 큰 낭패를 겪을 수 있다. 해외와의 연계 선로가 없는 상태에서 국내 재생에너지의 지속적인 확대는 전력망 투자와 기존 인프라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요구한다.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기존 시스템과 신규 시스템 모두를 보유하고 가동해야 하는 기간이 발생하므로 전체적인 비용 수준과 부담 규모는 단순히 태양광 발전이 싸지고, 풍력 전기가 풍부해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 재생에너지 당위론을 깔고, 전환 과정에서의 투자와 부담에 대한 계산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SMR(소형 모듈 원전)과 원전 수출에 대한 정책 논의에서도 부실한 숫자와 계산은 자주 보인다. SMR과 해외 원전의 기대 시장 규모가 1000조 원이라는 표현은 윤 정부 때 흔히 거론되었으나, 숫자의 근거를 파고 들어가면 10년도 더 전에 작성된 해외 기관의 간단한 보고서가 확대 재생산된 것에 불과하다. 에너지원별 원가 경쟁이 치열하고 재생에너지의 기술 개발과 원가 하락 속도가 가파른 것을 감안하면, 원전의 시장 규모에 대한 예측은 가장 최신의 데이터에 기반하여 보수적인 추론을 근거로 해야 한다. 또한 2024년 전세계 발전 설비 투자 실적을 살펴보면 원전 분야는 800억 달러였으나, 재생에너지 분야는 7710억 달러로 거의 10배 차이가 났다. 만약 해외 원전이 1000조 원 규모 시장이라면 해외 재생에너지는 1경 원 규모 시장이라는 점을 정책 수립시 감안해야 한다.

2015~2024년 전세계 에너지 투자 실적, 단위: 십억달러. 출처= IEA
2015~2024년 전세계 에너지 투자 실적, 단위: 십억달러. 출처= IEA

해외 사례에 대한 비판적 수용

서로 다른 에너지원 사이의 경쟁과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에너지는 필수재이므로 공공재 성격을 일부 띠고 있고, 정부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최대한 산업계와 학계가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홍보하고 경쟁 에너지원을 공격하면서 정부 지원을 받아내고 유리한 정책을 이끌어 내려는 유인이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자들에게 복잡한 에너지 기술과 정책의 다양한 측면을 차분히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해외 사례를 끌어오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과거 탈원전의 당위성을 위해 독일 사례가 자주 인용되었으며, 중국이 재생에너지 분야 세계 시장을 석권한 것은 최근에 자주 언급되는 해외 사례이다. 해외 사례는 때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일지라도 문제없이 이용되기도 한다. 동일한 미국 사례이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은 재생에너지 옹호를 위해 인용되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은 화석연료 산업 옹호를 위해 활용되는 식이다.

우리보다 앞서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실행해본 유럽 국가들의 사례나 수출 제조업과 에너지 정책의 시너지를 낸 중국의 사례 등은 분명히 참고할 만한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은 결국 개별 국가와 경제권의 역사적 발전 경로, 부존 자원 특성, 주력 산업의 경쟁력, 인구 밀도와 국토 면적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전세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나 전기화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노르웨이지만, 노르웨이의 친재생에너지 정책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판단하고 그 사례를 가져오는 것은 우리와는 맞지 않다. 왜냐하면 노르웨이는 막대한 수력 자원으로 인해 100년전부터 수력 전기에 기반하여 산업 정책을 펼치고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 대비 인구수를 기준한 단순 인구 밀도가 518명/㎢로 세계 17위이지만, 도시국가나 소국, 산지를 제외한 가용 토지 기준으로 재평가하면 대만과 함께 세계 1위 수준이다. 즉 땅은 좁고 인구는 많은 상태에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해외에서 막대한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산업 구조와 에너지 인프라를 65년전부터 구축한 역사적 맥락을 감안해야 한다.

국내 재생에너지 원가가 국제 평균 대비 비싼 것은 이러한 지리적, 역사적 제약 조건에 상당부분 기인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해외 사례와 수치를 그대로 가져오면 논쟁만 야기하게 된다. 아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에너지 믹스는 국가별로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해외 사례를 인용할 때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유효한 정보인지를 비판적으로 확인하고 활용해야 한다.

2020년 주요국 1차 에너지원 구성, 단위: %. 출처= OurWorldinData.org
2020년 주요국 1차 에너지원 구성, 단위: %. 출처= OurWorldinData.org

부담과 혜택의 비교

지하철에서 대학생들도 스마트폰으로 주식앱과 코인 거래소 그래프를 들여다보는 세상이다. 돈을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는지 다들 관심이 많고 예민하다. 그런데, 정작 에너지 정책 논의에서 돈 이야기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마을 태양광 사업을 하면 연 1000만원 정도 마을 공동체가 벌 수 있으니 전국의 모든 마을들이 해야 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이 주장에서 등장하는 숫자들이나 논거 그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태양광 발전의 높은 효율이나 뛰어난 경제성으로 인해 투자비를 제외하고도 그 정도 수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발전 인증서(REC)에 대해 추가 가중치 0.2가 부과되고 1.75%의 저리 융자 지원 등을 통해 수익성이 발생한 것이므로 냉정하게 따지면 보조금에 상당부분 기인한 것이다.

제도를 잘 활용하여 돈을 버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러한 제도를 대규모로 확장할 경우의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은 중장기 에너지 정책 수립 과정에서 반드시 따져야 한다. 세금에 기반한 보조금으로 수익성이 나는 사업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고, 규모를 전국 단위로 확장시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식량도 해외 수입에 78%가량을 의지한다.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외 교역을 통해 에너지와 식량 수입 대금을 벌어들여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있으며, 에너지 정책도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일시적으로 비용을 상승시키고 세금 투입을 늘리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수출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킨다는 확신이 필요한 이유다.

예를 들어 향후 수백 조 원을 투자해서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고 이 과정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평가할 때는 우리가 연간 200조 원 이상의 화석연료를 매년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당장은 비싸고 불편하고 기존 인프라에 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약점이 있더라도 결국 연료 수입 비용 문제를 해결해주고, 발전 원가를 고정시킬 수 있는 큰 장점도 함께 봐야 한다. 국내 원전 신규 건설에 대한 논의에서도 최소 60년, 길게는 100년을 사용할 인프라이며, 당장은 국내 건설, 중공업 기업들에게 일감이 발생하여 좋지만 오랜 기간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유지보수해야 하는 부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부담과 혜택을 최대한 드러내고 숨은 비용과 효과까지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탄소비용을 명시화하고 국가간 탄소비용 차이를 감안하여 공정무역을 실행하겠다는 움직임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석탄과 천연가스 에너지가 싸고 편리할지 몰라도 10년 후에는 탄소 비용으로 인해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설비까지 굳이 폐쇄하는 것이 부담된다고 하더라도, 신규 설비를 건설할 경우 3~5년 후의 수요를 넘어 10년, 더 나아가 30년 후의 큰 그림을 가지고 부담과 혜택을 생각해 봐야 한다.

결론: 시민 개개인의 부담과 혜택 논의해야

안보, 경제, 환경의 에너지 트릴레마를 한 가지 에너지원이 해결할 수 없다. 상황과 여건, 역사적 발전 경로와 주어진 제약 조건에서 에너지원의 믹스를 통해 적절하게 풀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원별 비중이나 지원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결국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과 평가, 돈 계산을 통해 논의를 해야 근거와 실체가 명확한 에너지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될 것이다.

각자가 부담하는 가정과 사무실, 공장의 에너지 비용이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통해 얼마나 줄어드는지, 단기적으로 늘어나더라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재원으로 순환되는 보조금인 것인지 등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내용이라도 투명하게 토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실용적인 에너지 정책은 당위론이 아닌 시민 개개인의 부담과 혜택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하고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글쓴이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지식그룹 대표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위한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직장인.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의 연구를 시민들에게 정리해 제시하고, 가짜뉴스를 가리는 일이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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