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에너지 정책 - ③ 개혁

[권효재의 에너지 바로알기] 세 가지 핵심 개혁과제 제시 ① 정책의 원칙과 방향, 국민과 소통 ② 데이터로 입증되는 정책 마련을 ③ 경쟁 유도하는 시장 구조로의 전환 국가 에너지위원회·에너지 데이터센터도

대한민국 에너지대전 행사 전경.
대한민국 에너지대전 행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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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는 국가 경제의 혈액이자 국민 생활의 근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장기적 비전보다 정권별 이념적 접근에 좌우되어 왔다. 앞으로 출범할 새 정부를 앞둔 시점에서도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통한 재생에너지 확대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원전 6기 추가 건설과 원전 발전량 60%라는 원전 중심 체제에,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시장 경쟁 촉진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공약 논쟁은 우리 에너지 정책이 직면한 근본적 문제들을 가리고 있다.

에너지 정책의 과도한 이념화를 넘어 탈정치화가 필요하며,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개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 가지 핵심 개혁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의 원칙과 방향성에 대해 국민들과 지속적으로 토의하고 소통하는 노력의 중요성, 둘째,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공개하여 수치로 입증되는 정책을 마련하는 체계, 셋째,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는 시장 구조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개혁은 특정 에너지원의 확대나 축소 논쟁을 넘어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지금 필요한 정책이다.

장기적 에너지 정책의 ‘소통’과 ‘국민적 동의’ 확보

우리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속성과 일관성의 결여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180도 방향이 전환되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오가는 사이 감사와 수사, 지원과 단절에서 여론은 분열되고 산업계는 고통받고 인재는 떠나갔다. 에너지 정책이 정치적 이념에 좌우되는 이유는 이 분야에 대한 견고한 이해가 시민사회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원자력 학계에서 지적하듯, “에너지 안보는 연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본질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은 연속성보다 단절이 더 자주 확인된다. 에너지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실행이 불가능한데, 원전은 특히 그렇다. 원전 확대는 착공 시기보다 국민 동의를 바탕으로 한 신규 부지 확보가 관건임이 지난 40년의 원전 건설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에너지 정책의 장기적 원칙과 방향성을 설정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지속적인 소통 체계가 필요하다. 현재의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은 폐쇄적이며, 시민 참여가 제한적이다.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들이 배제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수립할 때 국민 대토론회, 시민 위원회 등 다양한 참여 기제를 활용한다. 독일의 경우,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추진하면서 ‘석탄위원회’를 구성하여 산업계, 환경단체, 노동조합, 지역사회 대표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협의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2038년까지의 단계적 석탄 퇴출 로드맵에 대한 폭넓은 합의를 이끌어냈다.

우리도 에너지 정책의 장기적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국가 에너지 위원회’와 같은 상설기구를 설립하고, 여기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 위원회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되며,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 정책의 주요 결정사항에 대해 국민 여론을 정기적으로 수렴하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는 체계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국민적 동의를 이루려면 결국 시민 개개인의 부담과 혜택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하고 마무리되어야 한다. 중요한 에너지 정책일수록 광범위한 동의와 지지 없이는 실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데이터 기반의 투명한 정책 수립과 연구 투자

이념으로 점철된 에너지 정책 논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데이터의 부재 또는 불투명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11차 전기본을 샅샅히 살펴봐도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투자가 필요하고, 에너지 비용은 어떻게 변경되는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할 말이 많다. 데이터가 불충분하니 논란이 될 만한 돈 이야기는 제대로 분석하여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의 실행 과정에서 막대한 정부 재원이 투자된다. 대형원전 2기의 사업비만 해도 합계 12조 원에 육박한다. 이런 큰 돈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서 경제적 타당성과 환경적 영향에 대한 종합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비용에 대해 상반된 주장이 난무하지만, 발전소 건설 비용부터 운영, 폐기, 환경 비용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비교 데이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에너지 정책 논쟁을 감정적이고 이념적인 차원으로 끌고 가는 주된 원인이 된다.

데이터 기반 정책을 위해서는 먼저 에너지 정책 관련 데이터의 투명한 수집과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독립적인 ‘에너지 데이터 센터’를 설립하여 발전원별 비용 구조, 환경 영향, 계통 안정성, 사회적 수용성 등에 관한 포괄적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센터는 정부 기관이나 특정 이익집단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분석 방법론과 데이터 출처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한, 에너지 정책 연구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 연구는 주로 공기업이나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의존하고 있어, 다양한 시각과 방법론이 적용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대학과 민간 연구기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국제 협력 연구를 활성화하여 보다 객관적이고 다각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기요금 체계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원가 구조가 불투명하고,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에너지 소비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재원 마련을 어렵게 한다. 전기요금의 원가 요소를 명확히 분석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형진 서울대 교수가 강조했듯이 “비용 논쟁은 결국 데이터의 문제이고 객관적 수치를 바탕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데이터와 수치가 없으니 비생산적인 논쟁이 끊이질 않는 상황이다. 선거때마다 과열되는 논쟁과 과도한 정치화를 극복하려면 냉정한 자세로 연구를 더 많이 해야 한다.

‘경쟁과 혁신’ 유도하는 시장 구조로의 전환

우리나라 에너지 시장은 여전히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라는 거대 독점 공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에는 기여했으나, 기술 혁신과 소비자 선택권 측면에서는 한계를 보여왔다. 특히 에너지 공급망의 기술이 대거 바뀌고, 기후위기로 경제성만 따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경직된 독점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문제다.

공기업은 필연적으로 정부와 관료에 의해 통제되므로 기술에 유연하고 소비자에게 민감하며 혁신을 추구하는 경향이 떨어진다. 이준석 후보가 주장한 “전력 산업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OECD 국가 중 전력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 포함 3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 에너지 시장의 후진성을 보여준다.

물론 영국이나 텍사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무분별한 시장 경쟁 도입은 요금 폭등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규제와 안전장치를 갖춘 경쟁 체제는 가격 효율성과 기술 혁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가까운 이웃 일본은 우리처럼 에너지 섬나라이지만, 에너지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면서도 공공성을 유지하는 균형 잡힌 모델을 발전시켜 왔다.

일본의 전력시장 개방과 경쟁체제 도입, 출처= 동경전력
일본의 전력시장 개방과 경쟁체제 도입, 출처= 동경전력

우리나라의 에너지 시장 개혁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발전과 판매 부문의 실질적인 경쟁 도입이다. 현재 한전 자회사로 형식적으로만 분리된 발전 회사들 간의 실질적인 경쟁을 촉진하고, 소매 전력 판매 시장까지 경쟁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독립적인 에너지 규제기관의 설립이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하고 있는 에너지 정책과 규제 기능을 분리하여,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규제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셋째,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의 촉진이다. 지역 단위의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연계하고, 프로슈머(prosumer)의 역할을 확대하여 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가 제안한 지역 간 전기요금 차등제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생산지와 소비지의 요금을 다르게 하고, 재생에너지 생산여건이 좋은 지역에 더 낮은 전기요금을 적용하는 방안은 시장 기능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데이터 기반의 분석과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장보기부터 아파트까지 거래되는 세상에서 유독 에너지만큼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제한되어 있고 국제적인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는 에너지 분야의 혁신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한국 에너지공과대학교 전경
한국 에너지공과대학교 전경

결론: 통합적 접근 통한 에너지 정책의 ‘혁신’

에너지 정책의 개혁은 특정 에너지원의 확대나 축소를 넘어, 정책 결정 과정과 시장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 국민적 소통과 합의, 데이터 기반의 정책 수립,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는 시장 구조로의 전환이라는 세 가지 개혁 과제는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통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안보, 경제, 환경의 ‘에너지 트릴레마’를 한 가지 에너지원이 해결할 수 없다. 상황과 여건, 역사적 발전 경로와 주어진 제약 조건에서 에너지원의 믹스를 통해 적절하게 풀어가야 한다. 이러한 균형 잡힌 접근을 위해서는 이념적 대립을 넘어 실용적인 관점에서 에너지 정책을 재구성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제한된 국토 면적, 높은 인구 밀도, 선진국과 비교해 넓은 제조업 비중을 고려할 때, 에너지 정책은 이러한 국가적 특수성을 반영해야 한다. 단순히 해외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거나, 특정 에너지원의 우월성만을 주장하는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대신, 우리의 상황에 맞는 에너지 믹스를 찾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을 국민적 합의 하에 수립해야 한다.

요컨대, 지금 필요한 에너지 정책 개혁은 특정 에너지원의 선택이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의 민주화, 데이터의 투명한 공개와 활용,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시장 구조의 도입이다. 이러한 개혁은 단기적으로는 비용과 갈등을 수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앞으로 출범할 새 정부는 에너지 정책의 혁신을 위해 과감한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산업계, 학계, 시민사회, 그리고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이다. 에너지 정책의 성공적인 개혁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한 필수 조건이며, 미래 세대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다.

글쓴이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지식그룹 대표

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위한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연구원.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의 연구를 시민들에게 정리해 제시하고, 가짜뉴스를 가리는 일이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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