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들의 카르텔을 어떻게 깰것인가②
언론엘리트도 광고주 삼성에 감사문자 상호 이익 꾀하는 강력한 부패사슬 구축 非엘리트 일반인들에겐 공포스러운 일 한국, 엘리트와 비엘리튼 갈등 ‘세계 최고’ 부패 줄이고, 갈등 치유할 대책 세워야
①에 이어 계속
“엘리트들은 평등을 위협하는 존재”
일반인들은 흔히 엘리트들이 가진 경력과 능력에 대해 기대를 걸고, 그들을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엘리트들은 추악함 그 자체인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엘리트들은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갈라치기를 하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손에 쥔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공익보다 앞세우고 있다.
경제엘리트들은 기업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법을 위반하기 일쑤고, 노동자들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의료엘리트들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의사 증원을 막기 위해 파업이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서슴지 않는다. 종교엘리트들은 시설을 사유화하여 자식에게 상속하고 신도들에게 신앙이 아닌 맹종을 강조한다. 법조엘리트들은 권력자의 눈치를 보느라 기소해야 할 범죄를 봐주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난 사람의 죄는 부풀리거나 조작해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론엘리트들은 권력자와 부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비난하고 가짜뉴스를 쏟아낸다.
그래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Kenneth Arrow)는 『교육경제학 저널』 창간호에 실은 글에서 “분명히, 모든 엘리트는 평등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엘리트는 스스로가 가진 힘을 사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더 많은 수입과 더 큰 권력을 추구하기 쉬운데, 이러한 부패가 사회의 효율성을 감소시킨다”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맨더빌과 김지하의 시에 등장하는 엘리트들의 현재 상태를 보면 그 당시와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즉, 현재 한국 엘리트들의 행동이 50년 전의 엘리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300여 년 전 영국 엘리트들과도 차별성이 별로 없다.
초(超)엘리트 네트워크
정말 더 큰 문제는 이런 엘리트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담합을 하는 데 있다. 최근 미국에서 큰 논란을 빚고 있는 엡스타인(Epstein) 사건을 보면 이를 인식할 수 있다. 미국 억만장자인 엡스타인은 지난 2008년 수십 명에 달하는 미성년자 성매매, 성적 학대, 성매매 장소 제공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플로리다주 법원에서 유죄 인정 거래(plea deal)를 통해 가벼운 두 가지 범죄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엄청난 중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이다. 짧은 수감 기간에 호화로운 자신의 저택에서 강제노동(?)하며 보내는 특혜도 누렸다. 공정한 판결이 아니라는 항의가 있었다.
이 사건으로 그와 밀접하게 교류했던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이 알려졌다. 영국의 앤드류 왕자, 빌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현 대통령,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대기업가 레슬리 웩스너, 감독 우디 앨런, 기타 저명한 과학자 등이 그와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 기자의 끈질긴 탐문 조사와 문제 제기로 2018년 재수감된 그는 이듬해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며칠 전(9월 3일)에도 피해 여성들이 직접 나서 관련 파일의 완전한 공개를 요구했지만, 법원은 그의 사망을 핑계 삼아 모든 형사 사건을 기각하고 사건을 종결지으려 한다. 엘리트들의 카르텔이 아니고 무엇인가? 일부에서는 실제로 ‘초엘리트 네트워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사정을 보자. 2017년 세상에 알려진 장충기 전 삼성그룹 사장의 문자 메시지 파동에 관한 탐사 보도를 보면, 그는 전현직 경제 부처 장관들, 여러 명의 국회의원, 검찰총장, 고검장, 부장판사, 청와대 간부, 국정원 간부, 주요 언론사 간부들 등 여러 분야의 엘리트들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과연 공정한 업무처리가 가능했겠는가? 엄청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부패사슬은 주요 언론들에서 별로 보도가 안 됐다. 삼성이 언론사들의 대 광고주이며, 주요 언론사 간부들이 그에게서 향응을 받고 감사 인사를 문자로 보낸 사실도 밝혀졌다. 그는 지난 8월 다른 경제인들과 함께 복권됐다.
이러한 예들로부터 알 수 있듯이, 현재 각 분야의 엘리트들은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갖가지 방식으로 협조하면서, 반대되는 세력에는 공동으로 대응하는 강력한 부패의 사슬을 구축하고 있다. 이것이 비엘리트(non-elite) 일반인들에게는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다. 명백하게 불법행위를 한 정치인을 기소하지 않거나 석방하는 검찰과 법관, 권력자 일가의 이익을 위해 불법행위를 하는 관료, 돈이 되는 일이라면 로비를 통해서라도 성취하는 기업인, 돈만 많이 주면 극악무도한 사람도 변호하고 칭송하는 변호사, 신도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데 열중하는 종교인, 엘리트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지 않거나 줄이는 언론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주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의료인, 권력자에게 아부하기 위해 소신을 쉽게 바꾸는 교수와 지식인. 이들이 만든 강고한 부패의 사슬이 공익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오만한’ 진보진영 엘리트들
엘리트는 흔히 보수적이고 보수진영에 많다고 생각하지만, 진보진영도 엘리트가 압도적 다수를 이룬다. 특히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정책의 기조가 계속 유지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방대학을 살리는 일과 지방소멸을 막는 대책도 모두 중앙의 엘리트들이 기획하고 실행한다. 소위 「5.31 교육개혁」 이후 30년 동안 지방대 육성정책은 항상 ‘지역산업과의 연계, 지역혁신’를 목표로 해왔다. 그러나 이에 성공한 모델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발표하는 정책에서 언제나 핵심 목표가 됐다. 최근에는 ‘대학 졸업 후 대학 소재지에 상주’시키는 목적이 추가됐지만, 뛰어난 인적자본을 보유한 인재가 지방에 거주하길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이 모든 것이 보수와 진보 교육계 엘리트들의 작품이다. 이들은 청년층과 학생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청년들의 삶의 기준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런데도 오만한 자세로 지방대 육성정책과 지방균형발전 정책을 제시하고 있고, 비판은 애써 외면한다. 진보정권에서 임명한 장차관 등 주요 국정 담당자 중에 크고 작은 부패사슬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들은 “털어서 먼저 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항변하지만, 그건 엘리트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다. 비엘리트는 아예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고 하는 말이다.
이런 점에선 미국이 한 수 위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소위 유명 사립이나 주립대학들보다 소수민족과 사회적 약자들이 주로 다니는 작고 어려운 대학을 우선 지원했다. 이 대학들이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큰 재정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대학의 교육력이 위축될 경우, 사회적 약자들이 받을 불이익을 염려하고 계층 간 교육격차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 실행계획과 운영도 중앙의 엘리트가 아니라, 지방대 출신들이 주로 담당하도록 했다. 자세가 다르지 않은가?
한국의 엘리트그룹은 대부분 학맥을 통해 형성되고 재생산된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시도 과정도 보면, 고교와 대학의 학맥을 따라 범죄자 그룹이 형성됐고 이들이 중심이 되어 모의와 실행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최고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특정 대학의 모 학부는 ‘내란과’라는 수치스러운 별명도 얻었다. 가장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여 세인들의 존경을 받던 자들이 한꺼번에 범죄자들로 몰락한 것이다.
불법 부당한 계엄령을 수호(?)하기 위해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들 다수가 의장의 본회의 소집에 응하지 않았고, 국무총리와 일부 행정관료들은 국회 결의를 지연시키거나 무시했으며, 고위 장성과 장교들 일부는 국방의 업무를 내팽개쳤고, 어떤 법관은 비상식적 계산을 통해 내란수괴를 풀어주었으며, 검찰총장은 이를 즉각 받아들여 석방에 동조했다. 소수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체의 안위와 구성원들의 행복을 짓밟은 사건이다. 대통령 부인의 매관매직 행위도 계속 적발되고 있다. 이들이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들의 카르텔이 아니고 과연 무엇인가?
1759년, 애덤 스미스는 이런 자들에게 딱 들어맞는 글을 썼다.
“많은 나라에서 최고 권력자가 되려는 자들은 법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들은 일단 목표를 이루기만 하면 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수단을 썼는지에 대해 책임 추궁당할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종종 속임수와 거짓말, 즉 음모와 결탁의 저급하고 흔한 수법뿐만 아니라, 때로는 끔찍한 범죄들, 살인과 암살, 반역과 내란까지도 저지른다. 자신을 막거나 경쟁하는 자들을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하고, 결국 얻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걸맞은 수치스러운 처벌뿐이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제1편 제3장)

탐욕의 대잔치가 벌이는 갈등의 도가니
엘리트가 벌이는 탐욕의 대잔치가 한국 사회를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2021년 6월, 프랑스의 세계적 조사기관인 입소스(Ipsos)가 세계 2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사회 여러 측면의 갈등 현황을 조사했는데, 한국은 대부분 항목에서 갈등이 가장 크거나 최상위권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시 엘리트와 보통의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보는 응답이 78%에 달해, 칠레와 러시아 다음인 3위를 차지했다. 대졸자와 미졸업자 사이의 갈등은 70%가 있다고 답해 전체 1위였는데, 의대 신입생 절반을 추첨으로 뽑는 네덜란드가 25%로 가장 낮았다.
한국은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 갈등의 존재는 91%로 칠레와 공동 1위였다. 사회계급이 달라 생기는 갈등의 존재 여부는 87%가 인정하여 칠레(88%)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노인과 청년들 사이의 갈등에 대해서는 80%가 인정하여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이 항목 최저 국가는 스웨덴으로서 29%에 불과했다.
이러한 엘리트들의 부패를 근절하고 갈등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엘리트들의 범죄행위가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철저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해야 할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말이 적중하여, 범죄에 연루된 엘리트들이 치욕을 맛봐야 후세에 교훈이 될 것이다. 학벌 철폐가 이루어져야 하며, 직종 간 임금 격차를 대폭 축소할 방안이 필요하다.
엘리트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대학교육을 무상화(등록금+생활비)하여 문호를 넓히고, 망국적 대학서열체제가 해체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여, 과도한 욕망의 추구가 인생을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엘리트가 물욕이나 지배욕을 추구하지 않고, 도덕과 명예를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대한민국이 행복한 국가의 대열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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