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는 어떻게 탄생했는가①

3백년전 ‘사적이윤 추구’의 공식 인정 능력주의와 결합, 엘리트의 이윤추구化 엘리트, 경제·문화·사회·상징자본 ‘독점’ 한국, 교육체계가 ‘금수저’ 엘리트 재생산

김건희 특검 사건에서 뇌물을 건넨 피의자인 한학자 통일교 총재의 변호인단을 참여하려던 오광수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 김오수 전검찰총장, 강찬수 전 수원지검장.
김건희 특검 사건에서 뇌물을 건넨 피의자인 한학자 통일교 총재의 변호인단을 참여하려던 오광수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 김오수 전검찰총장, 강찬수 전 수원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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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악덕이 사회의 이익이 되는 구조

1705년, 런던의 의사이자 칼럼니스트인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은 <투덜대는 벌집: 혹은 정직해진 악당들>이라는 시를 발표됐다. 5년 후 『꿀벌의 우화 혹은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이라는 그의 책에 실린 이 시는 곧 유럽의 지식인 사회를 강타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개인의 악덕이 사회의 이익이 된다’는, 당시로선 도대체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었다. 이 시에서 맨더빌이 지목한 엘리트와 그들의 악덕은 다음과 같다.

① 변호사들 : 싸움을 붙이고 편을 갈라가며 수수료를 챙기고, 도둑이 상점의 출입구를 살피듯이 법률의 허점을 샅샅이 뒤진다.

② 의사들 : 의술의 도리는 미뤄둔 채, 환자의 건강보다 자신의 명예와 부를 소중히 여긴다.

③ 성직자들 : 나태와 관능과 탐욕과 오만을 감춘 채 풍요와 건강을 누리고 있지만, 대부분 무식하다.

④ 군인들 : 남들이 전선에서 적과 싸울 때 후방에서 편히 지내며 뇌물을 챙긴다.

⑤ 신하들 : 정직함을 자랑하지만, 언제나 속임수를 쓰며 월급은 적은데도 호화롭게 산다.

⑥ 법관들 : 겉으로 공정한 척하지만, 부자와 권력자를 지키기 위해 가난뱅이들만 처벌한다.

명예혁명 이후 영국 신흥 엘리트들의 부패행위를 고스란히 적시한 것이다. 맨더빌은 이들이 길거리의 사기꾼, 노름꾼, 뚜쟁이, 점쟁이, 소매치기, 위조범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이들의 행위가 자기애(self love)에 기반한 행위들로서, 이런 행위들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이를 다시 소비함으로써 거대한 일자리가 생겨나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악당들의 부정부패가 영국을 경제적·군사적으로 강대국의 지위에 올려놓았으며, 사회가 발전하려면 이러한 비도덕적 행위는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능력 있는 정치인이 ‘교묘한 조정’(dexterous management)을 하여 이를 사회적 이익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개인의 악덕은 사회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악덕을 옹호한 듯 보이는 이 책으로 그는 종교계와 기득권세력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사회를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고발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책이 불태워졌다. 그러나 맨더빌은 ‘사기’와 ‘사치’와 ‘오만’ 등 부도덕한 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의 인간 사회이며, 이를 사회의 이익이 되도록 잘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현실을 외면하고, 당위성만 주장해서는 학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적 이윤 추구의 정당성

이후 몽테스키외, 제임스 스튜어트, 애덤 스미스 등이 그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영리한 애덤 스미스는 ‘교묘한 조정’ 대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비난을 피해 갔다. 이러한 사상이 확산하면서 드디어 사적 이윤의 추구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로써 다른 열정들(passions)이 악덕으로 비난받을 동안, 이윤추구라는 열정은 남을 해치지 않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행동으로 인정됐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을 뒷받침하는 사상이 됐다.

이윤추구를 공고히 하는 엘리트

맨더빌의 시가 발표되고 320년이 흘렀다. 도덕과 명예를 중요시하던 봉건제 질서가 붕괴하고, 상업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한 지도 그 정도 됐다. 처음 상업과 상인 활동이 중심이 되어 성립한 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를 거쳐 금융자본주의로 전환됐다. 제조업과 금융업 등에서 대자본이 등장했고, 이에 대응하는 노동운동도 대규모화됐다. 인간의 권리와 자유가 크게 신장됐으며, 영양상태의 개선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수명 역시 크게 늘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가 전 지구적으로 등장했으며, 대학과 기업의 성장을 따라 학문과 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빈부 격차, 권력의 집중, 정경유착, 환경 오염, 자원 고갈, 경제위기의 주기적 발생 등 자본주의의 모순이 함께 등장했다. 이를 해소하고자 여러 가지 방안들이 모색됐지만, 이러한 경향을 저지하거나 바꾸지 못했다. 권력을 쥔 엘리트들이 이러한 문제들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트는 어떻게 사회를 장악하고 있나

엘리트는 사회 각 분야에서 권력을 가진 소수의 지배자이다. 정치계, 경제계, 법조계, 교육계, 문화예술계, 의료계, 언론계, 종교계, 스포츠계 등 사회 모든 곳에 엘리트가 서식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엘리트의 활동 영역을 4개로 설명한 바 있다. 돈과 재산 또는 기업 등을 ‘경제자본’, 교육과 학력 및 교양 등을 ‘문화자본’, 인맥과 네트워크 등을 ‘사회자본’, 명예와 권위 등을 ‘상징자본’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 자본들을 독점하고 재생산하는 집단을 ‘엘리트’라고 불렀다.

한국의 교육체계는 이 모든 자본의 재생산과정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엘리트들은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여 자녀를 영재로 만들고, 최고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출세에 힘이 되는 학맥을 쌓도록 하고, 졸업 후 돈과 권력이 있는 직업을 선택하게 하고 있다. 그러니까 교육이 4대자본의 재생산을 통합하고 있고, 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는 엘리트 대열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한국 사회 내 권력이 분산되지 않게 막고 있는 체제가 바로 교육이라는 의미도 된다. 한국에서 교육은 계층이동을 위한 사다리가 아니라, 중저소득층의 계층 상승을 막는 절벽인 것이다. 물론 전체 교육과정은 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부와 권력의 대물림으로 나타난다. 판검사·변호사가 되려고 해도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고, 의사가 되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고소득 전문직과 권력 직종 등에서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금수저 사회인 것이고, ‘개천 용 신화’의 시대는 먼 옛날의 얘기로 남았다.

자본주의가 발전과 더불어 맨더빌과 애덤 스미스의 사상은 더욱 힘을 얻었다. 부와 권력을 가진 것은 더 이상 비난의 대상이 아니게 됐으며, 오히려 그들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존경을 받게 됐다. 심지어 이들의 도덕적 일탈은 일반인들의 비행에 비해 훨씬 너그럽게 인정받기까지 한다.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가 결합한 결과이다.

예일대 법학대학원 대니얼 마코비츠 교수는 “능력주의는 기량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며, 한정된 최상위 근로자에게 직업과 소득을 집중시킨다”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출세한 사람을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여 각종 선거에서 자기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지 않고 엘리트를 선택한다. 일반인들은 엘리트들이 세상을 보다 평등하고 평화롭게 만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엘리트 대부분은 아예 세상에 대한 비전조차 갖고 있지 않다. 김지하의 위대한 풍자시 <오적>(1970)에 등장하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들의 행태가 이를 잘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로 인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로부터 50년이 넘게 흐른 현재 엘리트들의 부정과 부패가 그때보다 대폭 감소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②편에 계속

글쓴이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

박정원은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과 상지대 부총장을 지냈고,현재 상지대 명예교수로 있다. '고등교육개혁'과 '행복한 삶의 조건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행복경제학>, <대학무상교육의 구상>, <한국 사학의 빛과 그림자 - 상지대민주화의 여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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