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 인수戰, 한국 극장산업이 불안에 떠는 이유
넷플릭스가 WB인수에 성공할 경우 국내 극장가, 관람객 격감中 또 충격 심각한 콘텐츠 공백과 수익 기회 박탈 중간급 영화 제작 줄어 다양성 떨어져 파라마운트가 인수해야 재기 모색 가능
세계 영화산업의 거물 워너브라더스(이하 WB)를 둘러싼 넷플릭스와 파라마운트의 인수전에 막이 올랐다. 넷플릭스는 최근 워너브러더스의 스튜디오·HBO 맥스 스트리밍 사업을 케이블 네트워크 부문에서 분리한 후 720억달러(약 105조 8,400억 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회사 인수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경쟁자인 파라마운트는 이보다 더 높은 780억 달러(한화 114조 6,700억 원), 부채 승계를 포함하면 1,080억 달러라는 금액을 제시하며 적대적 인수를 제안한 것이다.
이 인수 경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할리우드 내부의 헤게모니 싸움으로만 보는 건 근시안적이다. 결과에 따라 전 세계 영화 산업의 지형이 크게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풍전등화’ 위기에 놓인 한국 극장 산업의 미래에 직결되는 큰 변수임에 틀림없다.

플랫폼 패권 vs 전통 질서: 두 개의 미래
넷플릭스는 WB를 인수하여 글로벌 구독자 3억 7천만 명 규모의 ‘초대형 콘텐츠 제국’을 완성하려 한다. 여기에다 DC 유니버스, 해리포터, 왕좌의 게임, HBO에 이르는 핵심 저작소유권(IP)를 수직 통합하여 스트리밍 시장 점유율을 50%에 육박하게 만들 전략이다. 이는 콘텐츠 ‘제작-배급-소비’를 아우르는 완전한 통제 시스템의 구축을 의미한다.
반면, 파라마운트는 WB 전체를 흡수하여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빅테크 독점에 대응할 수 있는 ‘전통 스튜디오의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하려 한다. 파라마운트가 제시한 금액이 넷플릭스 인수가보다 더 높다는 점은 그들의 절박한 생존 의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인수전은 ‘빅테크 시대의 가속화’냐, ‘전통 생태계의 연장이냐’라는 극명한 두 가지 미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로에 서 있다.
한국 극장산업이 맞닥뜨릴 위기
한국 극장산업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약 2억 2,600만 명 대비 연간 관람객이 40% 이상 감소하며 최근 몇 년째 1억 2천만 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추정컨대 올해는 겨우 1억 명 선을 간신히 지키는 수준에서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회복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넷플릭스가 승자가 될 경우, 다음과 같은 구조적 충격이 가해질 가능성이 높다
1. 대형 개봉작 공급의 ‘핵심 이탈’
한국 박스오피스는 할리우드 텐트폴 영화(영화 스튜디오를 먹여살리는 대작영화) 몇 편에 연간 매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구조다. WB가 매년 공급하던 DC 유니버스,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 등 가장 확실한 고정 공급선이 넷플릭스 플랫폼 중심으로 전환되면, 한국 극장 산업은 심각한 ‘콘텐츠 공백’에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상영작 부족으로 신음하고 있는 극장가의 활력을 더욱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2. 극장 윈도우의 ‘절멸’ 가속
넷플릭스는 자사 콘텐츠의 극장 개봉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극장 개봉과 스트리밍을 동시에, 또는 시차를 둔다 해도 대부분 2~3주 이내에 스트리밍으로 전환한다. WB의 전통적인 ‘최소 45일 창구 전략(45-day Theatrical Window Strategy; 영화를 개봉일로부터 최소 45일동안은 오직 극장에서만 상영하도록 한 WB의 전략)’이 플랫폼 논리로 바뀌는 순간, 한국 극장 상영 기간은 급격히 줄어들고 안정적인 수익 확보 기회가 박탈될 것이다. 극장산업의 회복 가능성은 그만큼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3. 상영작의 다양성 훼손 가능성
시리즈 물에 치중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영화 제작에서도 편향성을 보인다. 초대형 블록버스터나 저예산 지역 특화 콘텐츠로 양극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3천만~8천만 달러 규모의 ‘중간급 드라마/장르 영화’는 제작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넷플릭스의 WB 인수 성공은 이런 경향성을 강화하며 극장 상영작의 다양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한국 극장 산업을 더 좁고 더 취약한 시장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파라마운트 인수 성공시 ‘숨 쉴 틈’
반대로 파라마운트가 인수에 성공할 경우, 한국 극장 산업은 일정한 완충지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라마운트와 WB 모두 ‘극장 수익’을 ‘스트리밍 수익’보다 우선 순위에 놓는 전통적인 가치를 여전히 고수하는 스튜디오다. 이들의 결합은 극장 개봉 → 스트리밍 → TV → 라이브러리 판매로 이어지는 전통적 윈도우 구조의 IP 장기 가치 유지 방식을 지켜낼 전망이다.
이 구조는 한국 극장에 세 가지 긍정적 영향을 준다.
첫째, WB의 주요 IP가 계속해서 대형 극장 개봉을 전제로 제작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중간급·중예산 장르 영화도 일정 수준 유지될 여지가 있다.
셋째, 스트리밍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는 다원적 콘텐츠 유통 구조가 유지되면서 시장 균형이 이뤄진다.

국내 극장 산업의 위기, 어떻게 될까?
한국 극장가는 국내외 상영작 공급 부족, 티켓 가격 상승, 콘텐츠 양극화, 관객의 OTT 소비 전환이라는 다층적 위기에 놓여 있다. WB 인수전은 이러한 국내 극장 산업의 미래 방향을 결정할 운명적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이긴다면 한국 극장은 콘텐츠 부족, 시장 축소, 양극화라는 구조적 위기와 더욱 정면으로 부딪히며 재기 모색이 험난해질 것이다. 반면, 파라마운트가 이긴다면 최소한의 균형과 공급 안정성이 유지되는 전통적 할리우드 생태계의 완충지대 덕에 재기를 모색할 수 있을 전망이다.
운명의 저울은 지금 워너브라더스라는 한 점 위에 아슬하게 놓여 있다. 이 싸움의 결말은 머지않아 우리 스크린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한국 극장 산업은 절박한 시선으로 이 결말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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