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얼마나 윤리적이어야 하나

[장우현의 ‘당신을 위한 배우수업’] 배우에게 왜 도덕과 윤리가 필요할까 모스크바 슈킨연극대의 ‘에찌까’ 교육 상대역과 ‘교류’ ‘텔레파시’ 키우는 수업 나아가 관객, 동시대人과도 공감대 가져 “배우는 항상 존엄하게 행동할 의무 있어”

배우 조진웅. 사진= 연합뉴스
배우 조진웅.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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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위한 에찌까

최근 조진웅 배우가 은퇴를 선언했다. 앞서 은퇴까지 가게된 조진웅의 과거 행동을 두고 큰 논쟁이 있었다. 무대 위 혹은 카메라 앞에서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와 일상을 사는 자연인으로서의 한 개인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배우들, 더 나아가 아티스트들을 대중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배우의 자격은 연기력만으로 평가받아야 할까, 아님 무대 위와 일상 속 모든 삶이 평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다행히도 메소드 연기를 창시한 러시아의 K.S. 스타니슬랍스키의 저서 『에찌까』(этика)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에찌까는 러시아 말로 ‘윤리’라는 뜻이다.

모스크바 슈킨연극대의 윤리수업

러시아에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이라는 통합적인 연기교육론에 기반해 설립된 연극학교 중 모스크바에 위치한 슈킨연극대가 있다. 슈킨연극대에서는 매년 지도교수인 마스터가 핵심 교육자 그룹을 구성한 후 학생들을 선발하고, 4년간 교육시켜 예비 배우로 배출한다. 일반적으로 선발된 학생 중 50% 정도가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며, 끝내 졸업하지 못한다. 더 정확히는 퇴학처리 된다. 교육자그룹은 커리큘럼을 진행하는 중 매학기마다 학생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데 점수가 기준 이하이면 퇴학 처분을 내리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평가 기준이 하나 제시된다. 그것은 바로 학생의 ‘에찌까’, 즉 ‘윤리성’이다. 그 학생의 실력이 매우 뛰어나든, 이미 유명한 배우이든, 3대째 이어지는 배우 가문의 촉망 받는 자녀이든, 배우가 되겠다는 열망과 의지가 매우 강하든 상관없이 ‘에찌까’를 체득할 수 없다면 학업의 기회를 박탈당한다. 스타니슬랍스키가 강조한 대로 배우교육에서 ‘에찌까’는 단순한 참고사항이나 개인의 강점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필수요소이다.

학기 말에 배우연기술 발표회가 끝나면 지도교수가 포함된 5~6명의 교육자 집단을 필두로 50명이 넘는 모든 과목의 담당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단편극에서 햄릿을 연기한 특정 학생에 대해 그의 움직임을, 화술과 발성을, 문학성을, 음악성을, 철학성을, 무대 미장센과 무대매너를, 소품 및 의상 그리고 무대장치들을 이해하고 귀하게 다루는 태도를, 수업 준비성을, 규율에 대한 엄격함을, 동료에 대한 배려심과 인내심을, 동료들은 물론 학교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그리고 일상 속 삶의 태도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이렇듯 배우의 교육에는 연기술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들을 상호연결시키고 있으며,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 과정에 적극 참여한다.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예비 배우를 공동 육성한다.

모스크바 슈킨연극대의 연기수업 장면.

앙상블과 텔레파시

슈킨연극대 1학년 1학기 배우연기술의 교육과정에서는 교수가 ‘교류’란 개념을 설명하고 훈련시킨다. 교류란 서로 다른 두 대상이 상대에게 완전히 집중하여, 연결된 상태를 의미한다. 완전히 집중한다는 것은 ‘상대를 보고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학생들은 매번 지도교수에게 항변한다. 지금 연기파트너를 보고 있고 또 대사를 잘 듣고 있는데, 왜 그렇지 않다고 지적하냐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지도교수는 단순히 상대를 보고 듣는 것이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보고 듣는다는 것은 ‘지금 현재’, ‘여기 내 앞’의 대상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반응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보통 학생들은 자신 앞에 있는 연기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해당 대상의 이미지를 상대할 뿐이라는 것이다. 학생은 준비되고 관습화된 가짜 반응들에 스스로조차 속고 있다.

만일 이상적으로 서로가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하여 교류가 형성되면, 독특한 현상을 경험한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의도가 느껴지는 것이다. 이 독특한 현상을 경험하기 위해, 즉 교류를 훈련하기 위해 ‘텔레파시’란 이름의 훈련을 진행한다.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서로의 손을 잡고 한 사람은 앞의 사람이 해줬음 하는 행동을 이미지로 파트너에게 전송한다. 이때 말과 표정을 포함한 어떠한 언어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규칙이다. 텔레파시를 확인한 파트너가 그 행동을 수행하는 순간 훈련은 끝이 난다. 처음에는 손을 맞잡고 나중에는 손을 놓은 채 점차 두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고, 심지어 쳐다보지 않는 식으로 훈련의 단계를 높인다.

결과적으로 텔레파시와 같은 교류를 위한 다양한 훈련들을 거듭하며, 무대 위 배우들은 연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변수들에 ‘말’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함께 대응한다. 마치 하나의 연결된 유기체처럼 느끼는 것이다. 무대 위 배우들이, 그리고 모든 스텝들이, 더 나아가 모든 관객들까지도 교류가 형성되는 순간이 가끔씩 찾아오는데, 이를 ‘앙상블’이라고 부른다.

극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물체들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정말 행복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연극이라면 배우는 극장 밖 동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들과의 교류까지 형성하며 동시대성을 강하게 느끼기도 한다. 교류 형성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하기’이며, 이는 조건에 관계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것이 배우훈련이, 그리고 배우로서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국내 한 박람회형 오디션에서 연출가가 오디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연극배우협회
국내 한 박람회형 오디션에서 연출가가 오디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연극배우협회

앙상블을 위한 에찌까

에찌까는 연극, 연기예술, 대중예술이 가지는 핵심인 ‘앙상블’을 만드는 훈련이자 기술이다. 단순하게 강조되는 도덕관념 이상이며, 앙상블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가는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예술가로서 살아가기 힘들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저서 『에찌까』에서 이런 핵심적인 문장을 쓴다. “Любить искусство в себе, а не себя в искусстве(류비찌 이스꾸스뜨바 프 쎄볘, 아 니 쎄뱌 프 이스꾸스뜨베).” 이는 “예술 속의 내가 아니라, 내 안의 예술을 사랑하라”로 번역할 수 있다. 예술을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며, 화려해 보이는 유명인의 삶을 쫓는 것이 아닌 내 안의 가장 본질적이고 순수한 예술을 사랑하라는 의미다. 그 책에서는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 동료, 예술, 관객 혹은 대중에 대한 태도와 이와 관련된 원칙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자신에 대한 에찌까로, 배우는 자신이 공연의 공동 창작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여 높은 수준의 연기술과 자기규율에 대한 작업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

둘째, 동료에 대한 에찌까로, 배우는 진행하는 예술작업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협업하고 존중해야 함을 잊지 않고, 자신의 역할뿐만 아니라 전체 역할과 작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며, 책임져야 한다.

셋째, 예술에 대한 에찌까로, 예술작업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이 아니라, 정성과 사랑을 담아야 하며, 예술을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예술이 가지는 숭고한 목표를 바탕으로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하는 감각을 가져야 한다.

넷째, 관객 혹은 대중들에 대한 에찌까로, 관객들 또한 예술작업의 공동 창작자임을 명심하여, 이들에게 집중하고, 이들이 작업에 집중하고 다가올 수 있도록 서두르지 않고 배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배우 및 예술가의 이름은 개인의 이름이 아닌 작업에 관여한 모든 이들의 공적인 이름이기에,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존엄하게 행동하여 그 이름을 지킬 의무가 있다.

예술과 삶, 그리고 에찌까

스타니슬랍스키가 제시한 배우와 예술가를 위한 에찌가의 내용은 한 개인이 정한 행동강령이 아니다. 오랜 시간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지속된 연극이라는 예술활동을 통해 축척된 지혜이다. 연극이 삶의 축소판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강조되는 에찌까의 내용은 일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지혜도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기서 지나치게 엄격하고 교조적인 인상을 주는, 에찌까를 논했던 슈킨연극대의 평가회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한 학생의 부족한 에찌까는, 예를 들어 학생이 동료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고 하면 그 얘기는 수십명의 교육자와 관계자들에 의해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으로 논의된다. 오해가 없는지, 개선의 가능성이 없는지 등을 몇 시간에 걸쳐 치열하게 끝까지 논의된다.

여기서 평가의 목적, 에찌까의 목적이 처벌이 아니라 ‘돌봄’과 ‘육성’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에찌까는 배우와 예술가가 가장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위한 분위기와 조건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슈킨연극대 재학 시, 학비가 없어 학업을 그만두려고 결정했을 때, 지도교수님이 학교의 모든 구성들에게 부탁해 학비를 마련해주었다. 필자는 지금까지도 그들의 사랑과 돌봄에 감사하며, 예술가이자 학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은혜를 갖기 위해 매일 한걸음씩 발을 내딛고 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조진웅 배우가 연기한 이재한 형사는 “세상에 묻어도 될, 잊어도 될 범죄는 없다”’고 말한다. 이재한 형사를 연기하며, 조진웅 배우가 가졌을 갈등과 혼란을 느낄 수 있다. 그 또한 수많은 작품 속 캐릭터들과 또 일상 속 수많은 나를 경험하고 또 이들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실수와 후회, 그리고 보람과 사랑을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작품과 삶 구분 없이 다양한 ‘나’를 만나고 서로가 갈등하고 용서하고 미워하며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며, 또한 어렵기에 사랑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배우 교육의 목적은 내 안의 잠재된 수많은 나를 만나고 통합되는 자아확장 혹은 개성의 발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배우는 물론 예술가들을 위한 체계적인 에찌까 교육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또 이들의 에찌까 교육은 개인이 아닌 관계자들 더 나아가 대중들이 함께 참여해야할 공공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 알려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찌까는 우리에게 개인의 삶이 다른 모두의 삶과 연결되어있다는 희미한 감각을 상기시키고, 삶을 가장 안전하게 경험하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또 더불어 살 수 있는 경제적인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

글쓴이

장우현 한국외대 특임교수

장우현은 러시아의 모스크바 슈킨연극대를 졸업하고, 귀국 후 상담심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이란 통합적 연기방법론과 상담심리를 융합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마약사범을 위한 중독회복, 예술가의 무대공포증 대처, 교사들을 위한 트라우마 대처, 그리고 일반대중을 위한 안전한 감정만끽 등 다양한 주제의 구조화된 프로그램들을 교육하고 있다. 연기예술이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균형 있게 사용하는 매우 실용적 방법임을 확인하며, 모두를 위한 연기예술 프로그램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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