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씨”라고요? 캐논 회장의 기막힌 성씨
[정훈의 ‘일본의 姓氏 이야기’]
- [1분 핵심요약]
- 일본 경제의 거물, 캐논의 미타라이(御手洗) 회장. 그의 성씨를 일본어 규칙대로 읽으면 영락없는 ‘화장실(오테아라이)’입니다. 전직 특파원이었던 필자는 이 독특한 성씨에 얽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일본의 최장수 칼럼 ‘나의 이력서’와 29만 개에 달하는 일본 성씨의 방대한 세계를 소개합니다. 겉보기엔 우스꽝스럽지만, 알고 보면 신성한 곳을 관리하던 가문의 자부심이 담긴 ‘미타라이’ 성씨를 통해 일본 문화의 깊은 속살을 들여다봅니다.
- [The Insight- 행간의 재구성]
- 이름은 ‘역사’다 언어의 변천 과정에서 본래의 고귀한 의미가 일상의 단어로 덮어씌워진 사례를 통해, 이름 뒤에 숨겨진 역사적 맥락(Context)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사합니다.
- ‘나의 이력서’가 가진 기록의 힘 70년간 중단 없이 당대 최고의 인물들을 기록해 온 컬럼의 존재는 일본 사회가 ‘개인의 역사’를 ‘사회의 자산’으로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보여줍니다.
- 일본 ‘후리가나’ 문화의 배려 29만 개가 넘는 성씨가 있는 일본. 명함에 후리가나(읽는 법)를 적는 문화는 ‘상대방이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게 돕는’ 일본 특유의 예절과 세심함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나의 이력서’ 칼럼
일본경제신문(日經· 닛케이)은 일본에서 종합지인 요미우리(讀賣), 아사히(朝日), 마이니치(每日)신문 등과 더불어 손꼽히는 4대 일간지이다. 특히 경제신문으로서는 가히 독보적으로, 세계 제일의 경제지인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WSJ)과 비견되는 퀄리티 페이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닛케이’에는 인기 연재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나의 이력서’라는 컬럼이다. ‘나의 이력서’는 1956년 첫선을 보인 이래, 지난 70년간 중단됨이 없이 일본 識者들이 애독하는 ‘닛케이’의 최장수 컬럼이기도 하다.
‘나의 이력서’는 초창기에는 일본의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30회 분량의 회고록이었는데 차츰 경제인, 정치인 등으로 그 지평이 넓어지더니 지금은 세계 각국의 저명인사들도 등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삼성의 이병철(李秉喆)회장 등이 생전에 초대를 받은바 있다.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
새해 들어서는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 冨士夫· 90) 前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우리나라의 한국경제인연합) 회장의 ‘나의 이력서’가 지난 1월 한달간 연재 되었는데 이 분의 이름이 하도 독특해 일본인의 성씨(姓氏)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한다.
이 미타라이라는 분은 일본 주오(中央)大 법학부 출신으로 캐논의 미국 사장을 거쳐 동경(東京)본사 사장과 회장, 그리고 게이단렌 회장을 역임한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나이가 90인데도 아직 현역인데, 지난 1월말에야 캐논의 사장직을 내려놓고 지금은 회장과 CEO(최고경영책임자)직만을 맡고 있을 정도로 정정하다.
오래전 얘기다. 필자가 한국일보 동경특파원으로 근무중일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신문사의 취재 카메라는 거의 캐논과 니콘 제품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서울 본사에서 카메라를 구입하기 위해 최신 제품의 설명서를 받아 보았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두 회사에 연락을 취했는데 캐논의 사장 이름이 눈에 띄었다. 한자로 ‘御手洗冨士夫(어수세부사부)’라고 되어 있었는데 이름이 이상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화장실씨?
‘御手洗冨士夫’는 앞의 세글자 ‘御手洗’는 성(姓)이고 뒤의 ‘冨士夫’는 이름인 것 같았는데 “御手洗’를 일본어 규칙대로 읽으면 ‘오테아라이’(おてあらい)가 상식이다. ‘오테아라이’라는 말은 일본어로 ‘화장실’을 뜻한다. 테아라이(手洗· 손 씻는 곳)에 ‘오’(御)를 붙이면 공손한 말투가 된다.
일본에서 “화장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 때 “오테아리이와 도코데스카”( おてあらいは どこですか)라고 하면 예의바른 표현이다.그런데 ‘御手洗’가 姓氏일 때는 ‘미테라이’로 읽는다. ‘미테아라이’가 아니다.
나는 특파원으로 파견되기전 게이오대(慶應大) 신문연구소에서 1년여동안 일본 사회를 연구한 적이 있었다.그런데도 ‘御手洗’라는 성씨(姓氏)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일본의 성씨(姓氏)를 연구한 니와 모토지(丹羽基二) 박사에 따르면 지난 1996년 현재 일본에는 성씨(姓氏)가 29만개로, 유럽 전체를 합친 것 보다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은 같은 한자(漢字)라도 읽는 방법이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그렇지만 도대체 성(姓)씨가 ‘화장실’氏라니...아마 이 분, 이름 때문에 어린시절은 물론, 사회인이 되어서도 상당한 곤욕을 치렀을 것 같다.
사실 ‘御手洗’는 화장실과 연관이 있는 성씨(姓氏)다. 御는 ‘오’로 발음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미’로도 발음한다.御가 ‘미’가 될 때는 일본 왕실이나 뼈대 있는 집안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명문가의 자부심도
일본에는 절이나 신사(神社)가 많기로 유명한데 참배할 때는 몸을 정갈하게 해야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절이나 신사(神社)입구에는 입안을 헹구거나 손을 씻는 곳이 있게 마련인데 예전에는 이를 관리하는 사람이 별도로 있었다. 왕실이나 높은 곳에서 관리자를 지정했는데 우리의 능참봉(陵參奉, 임금의 무덤을 지키는 관리)과 같은 개념이다.
사실 일본에서는 성씨(姓氏)가 제도화된 것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였는데 이때 성씨(姓氏)가 없었던 일반 백성들은 성씨(姓氏)를 제멋대로 작명, 성씨(姓氏)가 많아졌다. 또 같은 한자라도 지역에 따라 읽는 법이 달라졌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 뒤늦게 백성들에게 성씨(姓氏)를 갖도록 했는데 우리나라가 일본과 다른 것은 본관(本貫) 중심이라는데 있다.
이 미타라이家는 옛날부터 반열(班列)이 상당히 높았던 성씨(姓氏)였는데 그만큼 희성(稀姓)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수세(手洗)에 ‘お’가 붙으면서 의미하는 바가 화장실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눌 때는 명함을 주고 받는 것이 예의처럼 돼버렸다. 백수 주제에도 명함만은 가지고 다니는데 한자로 쓰여진 명함에는 이름을 읽는 법(후리가나·ふりがな)이 으레 쓰여 있게 마련이다.
‘미타라이’도 후리가나가 없으면 ‘오테아라이’가 되어 ‘화장실’氏가 되는 것이 일본 姓氏의 딱한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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