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써서라도 ‘재밌는 사람’ 옆에 있어라

[김동은의 오만가지 사람마음] 재미없는 사람은 병을 키운다

[김동은 심리상담사] 필자는 세상을 재미있는 사람과 재미없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한때는 진보냐 보수로 구분한 적이 있었다. 또는 종교로 사람을 구분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각은 시간이 지나면 바뀌어갔다. 정치, 사상 혹은 종교, 사고의 분류가 무의미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상, 어떤 종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유연하고 재미있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괴물과 싸운다고 괴물되면 안돼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를 이야기 하자면 젊은 시절 시민단체에서 일할 때였다. 대학가에서 대학생 분신 사건으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올 때였다. 청년 한명이 내 책상을 치며 “왜 우리는 거리로 나가지 않느냐”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모습을 보며 필자도 사회문제에 대해 분노하고 광기를 보였던 과거가 떠올랐다. ‘나도 저런 모습이었겠구나’, ‘저런 악마와 같은 모습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문제나 독재와 싸울 때 잘못하면 그 모습을 닮을 수 있다. 그래서 니체는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방의 감정과 표현하는 방식을 무시하기 쉽다. ‘내가 올바른데 그까짓 거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해버린다.

가정문제를 겪는 가족들을 볼 때도 그와 같은 경우를 보게 된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오랫동안 갈등하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그 아버지의 모습을 답습하는 경우 말이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대 저런 사람이 안 될 거야’라고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아버지는 노쇠해져서 병들어 있지만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괴물이 되어 가족을 괴롭히게 되었다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악과 싸우든, 독재와 싸우든, 사회문제를 가지고 싸우든, 아버지와 싸우든, 자신의 마음을 항상 돌아보지 않으면 ‘내 안의 악마’는 자라게 마련이다.

프로골프의 세계는 엄청난 경쟁 세계다. 승부의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경쟁을 즐기고 있는 박인비(왼쪽)와 유소연이 파안대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프로골프의 세계는 엄청난 경쟁 세계다. 승부의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경쟁을 즐기고 있는 박인비(왼쪽)와 유소연이 파안대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요즘 젊은이들은 살면서 그 지점을 스스로 배우는 듯하다. 어른이 보기에는 철없고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은 스스로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며 산다. 노력해도 돌파할 구멍이 보이지 않고 내일마저 암담해 현재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떨 때는 부럽기도 한다.

종교계도 마찬가지다. 어느 종교인이 교회를 자주 빠지는 학생에게 “너 그러다가 천국을 어떻게 갈래?”라고 하니까 학생이 “거기는 커트라인이 몇 인데요?”라고 하더란다. 자조적으로 말하긴 하지만 그 학생의 말은 엄숙하고 지루한 천국의 개념을 자기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질문을 한 것인데 웃음을 머금게 하는 현상이다. 이런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면 종교계도 파리를 날릴 수 밖에 없다.

정치인 노회찬이 그리운 이유

잘 보면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진보 정치인들중엔 말과 논리가 뛰어날지 모르지만 마음의 문제를 잔뜩 안고 있는 얼굴로 앉아 있는 이들이 많다. 논쟁이 시작되면 악다구니를 쓰는 진보정치인의 모습을 보고서 그 모습이 싫어서 보수를 찍는다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보수라는 사람도 철면피 같은 얼굴로 엄숙하게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다. 토론을 하기보다 그냥 틀어 논 라디오 같은 말만 줄곧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테엽을 감아 논 로봇처럼 말하고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예전 ‘노회찬’ 같은 정치인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그의 말에는 위트가 흐르고 얼굴엔 끼가 넘친다. 일반 대중이 그를 좋아한 이유로 ‘재미가 있어서’를 꼽는다. 그의 말을 지금도 떠올려 보면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게 아니라 만명에게 평등하다’(캬^^, 라임보소), ‘50년 동안 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꺼매집니다.’(ㅋㅋ 완전 코메디), 너를 거부한 사람을 섭섭하게 생각마라, 너는 그들에게 한번이라도 희망이 된 적 있느냐’(야, 성직자까지...)

자신이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탓하지 마시라. 재미없으면 재미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게 능력이고, 재미있는 말에 장단 맞추는 게 유연성이다. 재미있는 사회와 공동체를 만드는 게 지혜고, 재미있는 하루를 보내는 게 치료다. 오래된 장단은 지루하다. 마찬가지로 오래된 정치가의 습관은 ‘패악’이다. 병이란 오래된 상태를 말한다. 오래된 우울, 오래된 분노, 오래된 충동 모두 다 오랜 시간 동안 환기가 되지 않아서다.

오늘날 아이들을 치료하는데 ‘놀이치료’가 정착되어 있다. 이제는 성인 놀이치료가 등장하고 확산되는 추세이다. 놀지 못한 사람은 병이 된다는 이론에 기반한 치료방법이다. 치료도 놀이를 통해 하는데 삶이 재미없으면 병이 되는 게 당연하다. 놀지 못하다가 병이 걸리면 심리치료실에서 배우는 게 다름 아닌 놀이다.

오래전 자폐증 아동가족 수련회에 봉사한 적이 있다. 자폐증 아동은 주변의 변화에 아무 반응이 없다. 고개도 돌리지 않는다. 어떤 말을 해도 반응이 없는 아이를 위해 엄마는 상담소를 전전할 뿐이다. 그런데 수련회 기간에 엄마들이 풀잎으로 된 치마를 입고 홀라 춤을 추고 등장하자 아이들의 움직이지 않던 고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맨날 보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새롭고 신기한 엄마의 모습에 아이가 동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생각을 환기시켜라

재미란 그냥 놀고 마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지루함을 탈피하고 나의 사고와 행동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연극에서 ‘낯설게 하기’란 사물이나 관념을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기법이다. 마찬가지로 일상을, 생각을, 정치를, 사회를 새롭게 보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런 삶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게 되고, 주변을 병들게 한다.

과거를 고통스럽게 여기며 푸념만 하는 사람에게 필자는 말한다. 주변에 재미있는 사람을 찾아라. 돈을 들여서라도 함께 있어라. 그리고 더 재미있는 사람을 찾아라. 과거가 너를 지배하지 못하게.

글쓴이

김동은 심리상담사

필자인 김동은 심리상담사는 젊을 때는 시민단체와 연애 기획사에서 일했다. 이후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10년간 대학에서 심리치료를 가르쳤다. 지금은 심리치료를 하며 치유적 공동체, 빅패밀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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