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일까, 정신질환일까...가장 좋은 치료법은
[김동은의 오만가지 사람마음] 귀신은 자신 스스로 만든 ‘인생의 동반자’ ‘왜 만들었을까’ 찾는 사랑의 치료법이 효과적
누구나 느꼈던 귀신이라는 존재감
어릴 때 가장 무서웠던 존재는 귀신이었다. 할머니 집은 서울에 있었어도 화장실에 전기가 없었다. 나는 화장실에 갈 때면 신문지를 두툼하게 안고 재래식 화장실에 엉거주춤 쪼그려 앉아서 계속 신문지를 불로 태워 화장실 구멍으로 던졌다. 발 아래에서 타는 신문지는 얼마간 화장실을 비추어 주었다. 화장실이 아닌 똥간에는 온갖 귀신이 몰려있을 것만 같았다. 기억하는 모든 귀신이 생각이 났다. 지방으로 이사 가서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날 때 또 귀신이 생각났다. 좁디좁은 골목길에 수은등이 비치고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을 땐 귀신이 꼭 내 뒷덜미를 잡을 것만 같았다. 빨리 달리면서 안무섭다고 외쳤지만 이미 몸과 마음은 얼어붙었다.
귀신과 정신질환, 공통적인 게 있다
하필 당시 다녔던 교회에서는 설교시간에 귀신 이야기를 많이 했더랬다. 사람들 사이엔 귀신들린 이야기며 귀신을 쫓아내는 이야기가 항상 있었다. 그래서 이 교회 다니는 아이들은 약간의 공포심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신적 문제가 많은 사람이 교회에 쉽게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처음 상담 심리치료를 가르칠 때, 귀신이라고 의심될 만한 내담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생 가운데도 있었고 연구소에도 가끔 귀신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초기에 귀신이라 해야 할지 정신질환이라 해야 할지 고민할 때, 친구인 모 교수는 “귀신이 지혜가 있지 잔챙이에게 무엇 때문에 들어가느냐”면서 귀신의 존재를 일축했던 기억이 난다. 귀신이 없지는 않겠지만 너무 쉽게 정신질환을 귀신으로 몰아가는 일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고 지적해 주었다.
귀신에게는 ‘무시하기’ 처방이 먹힌다
이후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다. 먼저는 ‘무시하기’다. 이상한 소리를 내고 이상한 행동을 하며 광기를 부리면 한쪽에 놔두고 밥을 먹고 놀면서 그 사람에게 반응을 하지 않는 방법이다. 집단치료 워크샵 중에 한 제자가 발작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 가보니 그녀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 제자를 한쪽 구석에다 옮겨다 눕히고 눈길을 돌린 채 다른 제자들과 나는 밥도 먹고 놀기도 하였다. 어떤 나이든 제자 분은 기도라든지 뭔가 해야 하지 않느냐며 재촉했지만 난 그냥 놔두라고 했다.
잠시 후 깨어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고통스런 이야기를 듣고 보고 하다가 자기 속에서 무언가 올라와서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향하자 이상한 소리가 꾸역꾸역 올라왔다고 했다. 난 그럴 수도 있다고 안심시켰다.
학생들에게 귀신인지 아닌지 구분하려면 영어나 프랑스어로 물어 보라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귀신이 한국어만 구사한다면 너무 빈약하지 않느냐?’라고 말하면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게 만들었다. 내 경험상 귀신 들린 사람이 있더라도 한 쪽에 눕혀 놓고 무시한 채 밥 먹고 놀다보면 깨어나더라고 말해줬다. 귀신들린 사람들은 귀신으로 응대하면 더 귀신처럼 행동하는 특징이 있다고도 했다. 귀신을 잘 쫓는 사람과 사랑이 많은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힘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고민해 보라는 조언도 했다. 요즘은 귀신들린 사람은 보기도 힘들고 도시화로 인해 귀신이 농촌이나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로 피한 것 같다고 말하면 제자들이 다같이 웃는다.
귀신은 외로운 자신이 만든 ‘동반자’일지도
한번은 자신에게 귀신이 잘 오는 것 같다는 내담자에게 날을 정해서 귀신을 만나보자고 했다. 그를 눕혀놓고 말을 걸었다. 그는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넌 누구니?”
“난 죽은 이 아이의 언니다”
“왜 들어왔느냐?”
“이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외로워서 내가 돌본다”
“내가 도와줄게. 언니는 나를 믿어라”
“믿어도 되겠냐?”
대충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이 여성분은 삶의 이력이 험난했다. 몇 번의 결혼과 실패 그리고 우울 등 단정한 외모와 달리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람이다.
귀신이란 삶이 외롭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동반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정신과적으로 ‘다중인격’이라고 진단내릴 수도 있지만. 진단보다 치료를 위해서는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귀신이라고 믿으면 귀신이라 생각하고 상대해주어야 하고 정신적 문제라고 생각하면 환자를 치료하면 된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힘을 키우자
중요한 것은 공통적으로 마음의 문제가 심화되어 다중성이 나오게 된다는 점이다. 이를 귀신이다, 정신질환이다 라고 명명하는 것은 복잡한 작업이지만 이 사람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우선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필자는 축사(귀신 쫓는 종교의식)나 진단보다는 ‘사랑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귀신이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 다중 인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을 그대로 이해하고 함께 해주는 것은 사랑이 최고다.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귀신도 들어가고 다중 인격을 만들어서 스스로 위로했던 것이니까 말이다.
어렸을 때는 오멘이나 엑소시스트, 캐리와 같은 공포영화가 무섭지 않았던가. 성인이 되고 인생을 어느 정도 살다보니 사람이 귀신보다 더 무서울 때가 있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는가. 우리는 귀신보다 가난이나 폭력, 그리고 트라우마가 더 무섭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된다. 사람이 더불어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좋은 공동체와 가족을 만들지 못하면, 귀신은 외부에서 오기도 하지만 마음속에서 만들기도 한다. 편안한 하루하루, 편안한 주변 사람들의 관계가 귀신이 들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환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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