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이라는 한국 언론, 명백한 ‘오심’이다
[양평의 시사와 역사] ‘경찰에 수사권’은 세계 보편적 추세일 뿐 ‘완전 박탈’ 용어도 실제와 안맞아 보수언론, 검찰 편들며 본질 호도 ‘참담’
드디어 ‘검수완박’ 싸움이 끝나간다. 정권교체를 며칠 앞둔 싸움이어서 어느 왕조의 마지막 공성전을 연상케 했던 파동이 마무리돼 간다. 하지만 그 싸움이 남긴 상처까지 마무리 되려면 또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의 정치에서나 다툼은 있기 마련이나 그 나라의 체질에 따라 그 싸움의 양상과 그 후의 회복과정은 다를 수 있다. 이번 싸움에서 가장 필자의 눈에 띈 것은 한국 언론의 상식을 외면한 편파보도다. 이번 싸움의 주제로 등장한 ‘검수완박’이라는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검수완박’ 용어부터 잘못됐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는 뜻의 ‘검수완박(檢搜完剝)’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이라니, 새삼 이를 두고 찬반논쟁을 벌이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박탈(剝奪)’은 ‘남의 재물이나 권리, 자격 따위를 빼앗음’을 뜻하지 않는가? 따라서 ‘검수완박’이라는 용어는 원래 검찰의 당연한 권리인 수사권을 완전히 빼앗아버린다는 말이 되고 만다. 그것을 경찰에게 주게 되니, 당연히 검찰이 담당해야할 수사권을 빼앗아 경찰이라는 엉뚱한 부서에 준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역할 분담은 국가마다 다른 여러가지 방식이 있다. 대체적인 추세는 경찰이 수사를 담당하고 검찰은 기소를 담당하면서 예외적으로 수사를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검찰개혁법은 결코 검찰 수사권을 ‘박탈’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오히려 ‘주인’을 찾아준 것에 가깝다.
그뿐 아니라 검찰의 수사권을 전부 경찰에 넘긴 것도 아니니 ‘완전’ 박탈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언론의 보도를 보면 마치 쿠데타라도 난 것같다. 군부가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의 모든 권한을 빼앗았다는 식이다. 그런 마당에 논쟁은 쿠데타가 좋냐 나쁘냐 하는 수준의 말다툼이 되고만다. 앞으로 그 법이 시행되더라도 ‘검수완박’이라는 언론의 꼬리표는 그 법의 시행을 계속 뒤뚱거리게 할 것이다.
제3부를 지칭하는 사법과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은 독립기관이지만 그 뿌리는 서로 연결된 면이 있다. 군사독재 시절의 참담하기 짝이 없는 형사재판들은 서글프기 짝이 없는 언론의 외면이나 심지어는 찬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군사독재가 사라진 이제 그런 일은 과거사가 돼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조국 사태’ 당시 검찰이 망원경과 현미경 및 잠망경과 내시경까지 동원해서 조국의 주변을 탈탈 털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조국’이라는 제목으로 보수 신문들을 뒤덮다시피 한 수만 건의 기사로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조국 가족의 잘못이 있지만 검찰의 그런 과잉반응은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마치 어느 해안가에서 소형의 무장 간첩선이 발견됐다고 전략폭격기 부대와 함대들이 동원되는 모양새였다.
새 정부 각료후보들의 경우에서 보듯 조국의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고위층 가족들의 부정입학이나 부정취업 전반을 그런 식으로 수사하려면 한국 검찰의 전력을 쏟아 부어도 모자랄 판이다. 모든 형사사건을 모두 그런 기준으로 조사하려면 검찰 인력을 군대식으로 ‘군단’이나 ‘사단’식으로 재편해야 할 판이다.
국민들에게 억지 각인시키는 한국언론
이번의 경우는 특히 ‘완전박탈’이라는 틀린 용어가 매스컴을 도배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의 보수 언론들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자주 그런 내용의 보도를 했었다. 그러다 양대 정당이 그 문제로 대립하자 ‘박탈’이라는 용어로 보수정당을 편들었다. 그 박탈에다 ‘완전’이라는 액센트까지 첨가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제안한 수사 기소 분리 법안이 여러 가지로 수정을 겪어 왔으나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경찰에 이전하는 버전은 나온 적이 없다.
그러나 보수지들은 조국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합성해내듯이 ‘검수완박’이라는 용어를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것은 민주당 172석 대 국민의힘 110석이라는 의회의 지형과는 딴판인 한국 언론지형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도, 군사독재 시대도 지나갔으나 그런 시대에 뿌리를 내렸던 보수언론들은 아직 언론계를 주도하고 있다.
조국 사태에서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박근혜를 독신으로서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처럼 떠받들어 청와대에 골인시킨 기억은 아직도 국민들사이에 생생하다. 물론 이명박을 희대의 ‘경제 대통령’으로 둔갑시킨 위력도 떠오른다. 이명박의 4대강 사업에 문제를 제기한 환경 전문가들을 융단폭격 했던 그림과 함께.
그 한 구석에 ‘진보지’라는 언론도 존재하기는 하나 일천한 연륜에다 보수적 광고주에 붙들린 듯해서 허약한 인상은 지울 수 없다. 그 ‘진보지’들은 이번 사태에서 ‘검찰 수사 기소 분리법안’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보수지들의 당당한 행보에 압도된 듯 ‘검수완박’이라는 표현을 써왔다.보수지들과 다른 점을 굳이 찾자면 보수지들은 그냥 검수완박이라고 하는 것과 달리 ‘검수완박’이라고 인용부호를 첨가하는 정도다. 하지만 그런 부호의 의미를 아는 독자들은 얼마나 될까?
따라서 그 법안은 ‘검수완박’ 법안이 돼버렸고 민주당은 그 법의 성공여부와 무관하게 패배한 면이 있다. 당장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쿠데타 정권처럼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 것으로 낙인이 찍힌 민주당이 입을 손해는 가늠키도 어렵다. 다만 참조할만한 단서는 있다.
최근 들어 그 법안의 여론조사에서 설문제목을 ‘수사 기소 분리법안’이라고 정확히 쓰면 찬성이 우세했던 것이 ‘검수완박법안’이라는 제목을 달면 반대가 우세했던 사실이다.
그런 제목의 싸움을 보노라면 우스꽝스런 가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코로나 19문제가 세계를 뒤흔들기 시작했던 2~3년 전에 유엔에서 그에 대한 인류의 대책을 마련하는 모임을 갖는다고 치자. 그 회의주제를 ‘코로나 19대책 논의’가 아니라 ‘우한폐렴 대책 논의’라는 명칭을 내걸면 어찌 될까. 물론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엔의 공식명칭에서는 ‘코로나 19’라고 해도 세계의 유력지들이 ‘우한폐렴’이라고 보도한다면 어찌 될까? 그 모임은 인류를 위해 건설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싸움판을 만드는 도화선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얼핏 우스운 가정 같지만 막상 ‘검수완박’이라는 타이틀은 ‘우한 폐렴’보다도 더 부당한 제목이다. 코로나 19가 우한에서 발생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걸 확실히 부인할 수 있는 증거도 없는데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정황은 많다. 하지만 ‘검수완박’은 상식을 가진 보통사람의 눈에도 부당할 수 밖에 없다.
다만 보수언론들이 핑계를 댈 구석은 있다. ‘검수완박’이 민주당 쪽에서 나왔다는 근거에서다. 검찰의 행태에 분개한 과격분자들이 구호삼아서 검수완박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당한 용어로써 자칭 정론지들이 내세울 근거는 못된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한국의 보수지들은 그처럼 돌발적으로 생겨난 틀린 말도 자기네 이익에 따라 시치미 뚝 따고 사용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1979년 12월26일 박정희가 피살되자 그 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전두환은 그것을 ‘시해(弑害)’라고 발표했다. ‘시해’란 신하가 왕을 죽이는 것을 뜻하니 그런 보도가 부당하다는 건은 간단히 국어사전만 들춰봐도 알만한 일이다. 하지만 10·26 사태로 계엄 상태에서 언론이 검열을 받는 상황에서 신문들이 ‘시해’라고 보도하는 것은 궁여지책으로 이해해 줄 수는 있다.
문제는 21세기가 돼도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 모았다는 ‘유력지’들이 자해하듯 그런 ‘무지한’ 용어를 써대는 것이야말로 한국 언론이 ‘시해’를 당하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시해’는 한국의 국민수준을 우습게 만드는 오류 정도지만 ‘검수완박’이라는 언론의 오심은 한국의 법치를 비틀거리게 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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