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할까?

[최경원의 이웃 일본 바로보기] ‘좋았던 시절’은 양국 우호적 시절 아냐 일제 피해자들의 고통에 침묵하던 시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어떤 이익을 얻을까

박진 외무장관과 일본의 히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왼쪽). 사진=연합뉴스
박진 외무장관과 일본의 히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왼쪽). 사진=연합뉴스

‘좋았던 시절’이 덕담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대통령 후보로서의 공약과 정권인수위원회를 거쳐 표명된 외교정책 분야의 과제가 정책화 되면서 대일외교의 지향점도 조금씩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7월에 부임한 윤덕민 주일대사는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혜를 모으면 한일관계는 다시 좋았던 시절로 회복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월 방일한 정책협의단을 맞은 아베 전 수상도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한일간에 역사문제로 인한 마찰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할 때 그가 생각하는 ‘좋았던 시절’은 과연 언제인가 의문이 들었다. 하여튼 한일 양측 모두 한일관계를 ‘좋았던 시절’로 되돌리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덕담쯤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 ‘좋았던 시절’에 과거를 부정당하며 아픔을 안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피해자는 잊혀진 존재들이었다. 늦게나마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한일관계의 ‘좋았던 시절’은 지나가고 말았다.

되돌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강제 징용 판결이 가져 올 파장을 우려하여 사법에 관여했다. 재임기간 내내 해당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사법 농단도 마다하지 않은 이유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한국 사회의 변화속에서도 한일관계의 ‘좋았던 시절’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로 정권 교체 후 사법부에 대한 정부의 관여가 사라지자 재판이 진행되었고 해당 일본 기업에 대해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자 일본 아베 정부는 한국에 대한 반도체 관련 소재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여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조치를 단행했다.

이런 조치로 일본이 생각하는 ‘좋았던 시절’로 한일관계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복조치를 단행하면서까지 아베 정부가 지키려고 했던 한일관계를 문재인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 최악이라 불리는 현재의 한일관계이다.

일본의 압박에 갇힌 윤정부 외교

윤석열 정부는 취임 전부터 한일관계를 ‘좋았던 시절’로 되돌리기 위한 방향 전환을 예고했다. 취임 후에는 피해자들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민관협의회를 구성하고 일본의 협력을 구하는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7월말에는 외교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현금화 결정을 보류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그런데 취임 전부터 너무 기대감을 높여 놓았기 때문일까.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해법 제시가 어느새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 되어 버렸다. 국내의 피해자들을 설득하면서 일본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 압박속에 갇혀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에 대해 취하는 외교적 제스쳐가 “지나치게 일본의 입장에 서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지난 6월 박진 외교부 장관은 미국을 방문하여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을 “조기에 정상화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일 GSOMIA는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파기를 통보했던 협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안보 협력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고려해 최종적으로 파기하지는 않고 언제든지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선에서 일보 후퇴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가 이전으로 되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문재인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항 조치였다. 그런데 박진 장관은 수출 규제 강화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한일 GSOMIA의 정상화를 언급했다. 그것도 일본이 아닌 미국 국무장관 앞에서 말이다. 이러한 선제적인 입장 표명으로 일본의 협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달 7월에 일본을 방문한 박진 장관은 문제해결의 어려움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박 장관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과 회담하고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가 이뤄지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강제징용 해법 모색을 위해 발족시킨 민관협의회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언급하면서 한국의 노력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발언들을 평가한 일본 정부는 기시다 수상을 예방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당일 아침 일본 NHK 뉴스에서조차 수상과의 면담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음을 보도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의 노력이 일본 정부를 만족시킬 만한 것인지 면밀히 체크받고 나서야 기시다 수상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공은 한국에 있다며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일본 앞에서 한국의 저자세는 더욱 눈에 띄고 말았다.

우려스러운 윤정부의 일본 인식

불편한 것이 한가지 더 있다. 보도에 따르면 8월 15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일본 지도부가 매년 8·15마다 야스쿠니 신사에 어떤 식으로든 예를 표하는 게 멈출 수 없는 관습이 됐다”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정부 각료들의 참배는 일본 사회내에서도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을 잊고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비판받아 왔다. 이러한 비판 때문에 보수 우파인 고 아베 수상조차도 매년 참배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의 관습이니까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가 된 윤석열 정부에서는 일본의 역사의식에 대한 경계와 비판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인가. 일본 사회의 관습으로 포용할 것이 아니라 일본과 동아시아의 장래를 우려하면서 비판하고 경계해야 마땅했다.

일본에 대한 포용은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을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규정하고 “양국 정부와 국민이 서로 존중하면서 경제, 안보, 사회, 문화에 걸친 폭넓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한일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한일관계의 포괄적 미래상을 제시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1998년)을 계승하여 한일관계를 빠르게 회복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필자는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 등장한 용어들을 들으면서 2010년대 초반 한일 정부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이루어진 ‘한일 신시대를 위한 제언’(한일 신시대 공동연구프로젝트)을 떠올렸다. 양국 학자들의 2년간의 연구를 토대로 발표된 제언은 ‘공생을 위한 복합네트워크’의 구축을 키워드로 한일관계, 국제정치, 국제경제의 3개 영역에서 각각 7개의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전통적인 의미의 국익경쟁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미래 구상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안고 있는 공통과제에 주목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그리고 글로벌한 영역에서 함께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의 노력들을 토대로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지향할 외교정책의 커다란 틀 속에서 한일관계를 재설정하려 고민하고 있다면 환영할 만한 일일 것이다.

간과해선 안되는 전제와 공동인식들

하지만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 있다. ‘한일 신시대를 위한 제언’은 ‘일본이 무력을 바탕으로 한국인들의 반대를 억누르고 한국병합을 단행했다’는 역사에 대한 공통인식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계승하겠다고 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오부치 수상이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오부치 수상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한 것에 입각해 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1990년대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국제협력을 중시하면서 역사문제에 대해서 전향적인 자세로 임한 결과였다. 그런데, 2010년 이후에 나타난 일본의 보수화 경향속에서,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일본의 관습이라는 인식을 가진 한국 대통령실의 인식속에서 과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일은 2015년 위안부 합의의 실패를 경험했다. 박근혜 정부가 미국의 압력과 일본의 요구 사이에서 정치적 결단을 내렸으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일어난 외교 참사였다. 한일관계를 좋았던 시절로 되돌리기 위해 서두르는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원하는 양보안을 찾느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면 위안부 합의 실패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한일관계를 단순히 ‘좋았던 시절’로 되돌리기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시점에서 단순히 그 시절로 회귀해서 우리가 얻는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변화된 한일관계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새로운 관계 설정을 시도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속에서 일본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갖는 의미와 방향성을 국민들에게도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외교 참사를 피할 수 있다.

글쓴이

최경원 일본 도코하대학 교수

최경원 일본 도코하대학 부교수는 동국대에서 북한학을 전공하고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한미일 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시아 사회의 공통과제를 주제로 한일 학생간의 ‘협동학습’을 기획하고 운영하는데 관심이 많다. 저서로 <냉전기 한일안전보장 관계의 형성>, <글로벌 인재로의 퍼스트 스텝-해외 학생과 PBL/TBL로 함께 배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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