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발라드의 시작, 왜 유재하인가
[송기훈의 세상 이야기] 80년대초까진 영미 POP과 포크송 정도 혜성같이 나타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클래식처럼 부드럽고 감미로운 K-POP발라드 더 활동했다면 K-POP 전성시대 일찍 왔을 것
K-POP 이전의 한국 대중가요
대한민국의 대중가요를 뜻하는 K-POP이 전세계의 음악시장을 흔들고 있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세븐틴, 뉴진스등. 너무나 익숙한 K-POP 그룹들의 공연을 보기위해 천리길도 마다 않고 달려와 공연을 즐기고 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고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각국의 팬들 모습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다.
백범 김구가 꿈꾸었던 문화 강국의 꿈을 우리 후손들의 손으로 이루어 냈다는 자부심에 오늘도 방탄소년단 뉴스와 블랙핑크의 앨범 신기록 판매 뉴스를 보면 뿌듯해진다.
흥이 많은 우리민족이 그 흥으로 세계를 압도하고 있는 현실이 아직은 꿈만 같기도 하다. 필자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만해도 우리나라 대중가요 보다는 팝송을 주로 듣고 그 가사를 노트에 적어 따라 부르며 자라왔는데 이제는 그 팝의 본고장 청소년들이 K-POP을 듣고 따라 부르며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1987년 김현식 1집 음반에 등장한 ‘유재하’
이렇게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K-POP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80년 중반까지는 우리나라 대중가요가 팝 음악(Pop Music)영향력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미 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패티김, 현미, 신중현, 조용필 등이 한국 대중 가요의 주류였었고 소공동에 위치한 쎄시봉(C’est si bon)을 무대로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이장희등 이른바 통키타 가수들의 포크송이 주류였다. 이렇게 1970~80년대 중반까지는 이들의 영향 아래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자라왔으며 그 중심에는 여전히 영미 팝이 존재하였다.
이 시기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미국의 포크 내지는 트로트, 록풍이 대부분이었고 현재까지 우리나라 가요의 주류로 자리잡은 POP발라드 형식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이런 주류를 이루던 대중 가요에 한 획을 그은 곡들이 등장하는데 우리에게는 지금도 너무나 익숙하고 ‘명반’으로 알려진 김현식의 3집도 이즈음 발표되었다. 이 3집에 타이틀 곡은 <비처럼 음악처럼>이었고 이 3집은 굉장한 인기를 끌며 30만장이 넘게 팔리면서 골든디스크 본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 김현식의 3집에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란 곡이 실려 있었다.
이 <가리워진 길>은 유재하 1집보다 김현식의 목소리로 먼저 발표하였는데 유재하가 사귀던 연인과 헤어진 뒤 만든 곡으로, 한국의 대중 가요를 팝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고 POP발라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유재하의 1집에 수록된 곡이기도 하다.
한양대 작곡과 재학시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키보드 연주자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 유재하는 재학중 대중음악 분야 활동을 허가하지 않는 학칙으로 인해 2개월여의 짧은 활동을 마치고 이후 졸업 후에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서 객원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 유재하는 자신의 1집에 수록하게 될 곡 전부를 김현식에게 주었으나 김현식은 <가리워진 길> 한 곡 만을 택했고, 이것을 자신의 음악을 좋지 않게 본 것으로 오해한 유재하는 ‘봄여름가을겨울’을 탈퇴하고 본인의 음반을 준비하게 된다.
대중가요의 촌스러움, 한방에 날린 ‘명반의 탄생’
1987년 8월 유재하는 자신의 데뷔 앨범이자 유작이 된 <사랑하기 때문에>를 서울 음반을 통해 발표한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전부를 유재하는 직접 작사와 작곡, 편곡까지 하였으며 음반에 실린 곡들의 모든 악기들을 연주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던 변조에 의한 곡 전개를 시도하였고 단조만을 주로 쓰던 대중가요에 유재하는 장조에서 단조로, 단조에서 장조로 파격전인 변화를 시도하는 곡들을 발표했다.
팝송에 익숙했던 필자에게 대중가요는 촌스럽다는 편견을 깨버린 유재하의 곡들은 낮은 목소리로 마치 옆에 있는 연인에게 고백하듯 하는 창법과 기교라고는 하나 없는 듯한 그의 노래는 오히려 편안한 휴식과 감정이입을 극대화시켰고 파격적인 엇박자와 변조는 오히려 클래식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도 하였다.
유재하가 1집을 발매할 당시 대부분의 가요가 드럼, 기타, 건반, 베이스 정도의 편곡이 다였던 시기인데 유재하는 편곡에서 바이올린, 첼로 등의 현악기와 클라리넷, 플롯, 오보에 등의 관악기까지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 편곡을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해낸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같은 한국POP발라드의 진화
유재하 1집의 곡들은 유재하가 사랑했던 여인과의 사랑과 이별을 순차적으로 담고 있는데, <그대 내 품에>가 사랑을 노래한다면 <가리워진 길>, <지난 날>은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노래했고, <사랑하기 때문에>는 재회를 통해 더 큰 사랑으로 채워 나가는 과정을 노래했다. 유재하는 음악뿐 아니라 노랫말에서도 그의 감성과 천재성을 유감없이 담아내고 있다.
이 유재하의 1집은 우리나라 음악을 POP발라드라는 장르로 이끈 명반으로 그동안 무늬만 발라드였던 대중 가요를 팝에 뒤지지 않는 수준까지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중가요에 클래식을 접목하고 변조를 자유자재로 이용하여 지금의 발라드와 같은 현대적 감각을 입힌 최초의 뮤지션이 바로 유재하인 것이다.
1집 앨범인<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할 당시 음악 관계자들에게는 혹평을 받았지만, 그의 사후에 한국 POP발라드의 진화는 결국 이 앨범에서 시작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양하고 어려운 화성을 대중 음악에 최초로 소화해낸 작품이라는 찬사도 받고 있다.
1집 앨범이 유작 앨범이 되었지만 유재하가 한국 대중가요에 남긴 발자취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단조와 장조를 넘나들며 클래식과 가요를 접목하여 POP발라드의 첫 문을 연 유재하가 있었기에 오늘날 K-POP이 태동했다고 볼 수 있다.
유재하 1집 이후 한국 대중 가요에서 POP발라드가 전성기를 시작했으며 이문세, 변진섭, 이승철, 이승환, 신승훈 등의 기라성 같은 발라더들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그전까지는 골든디스크를 받은 앨범이라고 해봐야 고작 수십만장이 전부였던 가요 시장에 이른바 수백만 장이 팔리는 밀리언셀러 앨범이 등장했는데 이 수치는 해외 유명 팝송 스타들의 판매량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치였다. 이렇게 넓어진 대중 가요 시장을 바탕으로 자본이 축적되는 등 한국 가요의 경쟁력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결국 유재하의 1집 <사랑하기 때문에>가 POP발라드의 문을 열었기에 오늘날 K-POP의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래식과 가요를 접목해 모차르트 음악을 베낀 것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파격적인 선율로 대중 음악사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단 한 장의 앨범만으로 2018년 대한민국 100대 명반 1위를 차지하였다.
오래 활동했다면 K-POP은 더 일찍 전성기를
한국의 대중가요는 유재하 이전과 유재하 이후로 나뉘어 질 정도로 그의 음악은 시대를 뛰어넘었다. 만일 유재하가 몇 번의 앨범을 더 발표했다면 K-POP의 시대는 조금 더 빨리 왔을 것이다. 유재하는 음주한 친구가 몰던 차에 탔다가 교통사고로 만 25세 나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재하의 음악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그의 음악이 얼마나 멋진지를 아직 모른다면 그의 1집 전곡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 듣거나 아니면 그동안 스치듯 들었다면 늦은 밤 가만히 들어보자. 처음에는 힘없고 약간은 어눌한 음색이 엇박과 장조와 만나 세련되지 않은 듯 거북한 느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그의 음악을 알고 싶다면 최소 열 번 정도는 그의 앨범을 반복해서 들을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러면 그의 음악이 왜 사람을 흔드는지, 음유 시인이란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감성이 귀한 이 시대에 왜 필요한 음악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메마르고 지친 감정에 휴식이 필요하다면 유재하의 음악을 틀어 놓고 눈을 감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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