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태풍이 지나가고
[제주 시인의 태풍 이야기] 가장 무서웠던 태풍 ‘나리’ 비 많이 와도 홍수 없던 제주 2007년 ‘나리’때 제주 뒤집어져 난개발 제주에 닥친 자연의 경고
이번 태풍에 무사한 제주
새만금 국제 잼버리 대회 파행과 함께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마음이 뒤숭숭했다. 벌써 여러 번 보도만 요란한 태풍이 제주를 지나간 터라 설마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제주도 사람은 비와 바람과 태풍이 일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제주도에서 50년을 살아온 나는 이젠 웬만큼 태풍의 강도를 짐작하는 육감이 생겼다.
태풍이 올 때마다 회자되는 1959년 <사라호>는 한반도 역사상 재산, 인명 피해 측면에서 최악의 태풍이라 한다. 추석 연휴에 불어닥친 재해였고 기와집 초가집 주거에 사회 기반 시설도 허술할 때이니 우리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가 얼마나 황망한 순간을 맞았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러나 <사라호> 태풍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 이야기고 오늘은 내가 겪었던 최악의 태풍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최악의 태풍 ‘나리’
여름이면 두세 번 크고 작은 태풍을 겪어야 하는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형과 화산도라는 지질의 특성상 아무리 큰 비가 와도 홍수 피해가 없고 하천 역시 사시사철 건천이라 큰비가 왔을 때 한라산에 내린 강우량을 바다로 보내주는 수로 구실을 한다. 그리고 한라산이 너무 높아 구름도 봉우리를 쉬이 넘지 못하고 사람도 심리적으로 봉우리를 쉬이 넘지 못한다.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강수량이 다르고 식생이 다르고 방언이 다르다. 작으면서도 넓은 섬인 것이다.
2007년 9월 16일 태풍 <나리>가 왔다. 늘 오는 태풍이고 늘 겪는 비바람이라 전날 밤 문단속만 철저히 했다. 난 제주시 쪽에 있었는데, 농부도 아니고 어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도 3층이니 달리 방비할 일도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밤새 세찬 비가 내렸고 이른 아침 뉴스엔 고지대의 도로가 침수됐다는 방송이 나왔다. 아침 8시가 좀 넘어 전화벨이 울렸다. 가까이 지내는 아파트 이웃 주민이었다. 딸이 토익시험을 보러 갔는데 신분증을 잊고 갔다고 그걸 좀 챙겨다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 30분 걸리는 신제주 토익시험장까지 차를 달리는데 앞이 안 보이게 비가 쏟아졌다. 간신히 시험장에 도착해 차창 유리를 1cm 정도 내리고 신분증을 건넸다.

지나친 5분 뒤에 잠긴 도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과 5분 전 지나쳤던 도로가 침수됐다. 길을 바꿔서 공영터미널 쪽으로 오니 한천이 넘쳐 도로로 물이 쏟아졌다. 간신히 집에 도착하니 지하 주차장 배수펌프 전원이 나갔다고 아파트 주민들이 우왕좌왕했다. 남편이 비상 전원을 가동하고 주민들에게 밖으로 나가지 말라 당부하고 집으로 왔다. 마침 일요일이라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았고 제12회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박태환의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아파트 바로 옆에 화북천이 있어 뒤 베란다로 보니 하천이 넘쳐 주변에 세워둔 차의 지붕까지 물이 차올랐다. 큰 도로 아래 원명사 가는 길엔 소방차가 몰려들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잠가둔 창 유리가 볼록하게 부풀어 오르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앞 베란다로 가니 아파트 마당이 수영장이 됐고 주차한 차량의 지붕까지 물이 차올랐다. 지하에 세워둔 우리 차가 걱정 됐지만 방법이 없었다. 조금 후 “뻥” 소리가 나더니 아파트의 최고층인 7층의 유리가 동시에 모두 터졌다. 속수무책인 채로 시간이 흐르니 바람이 자고 빗발이 가늘어졌다. 오후 3시가 되니 온 세상이 고요해지고 가을 햇살이 노랗게 퍼졌다.

엄청난 피해, 휩쓸린 빌라
아파트 마당으로 나가니 물이 모두 빠져 있는데 침수됐던 차들의 몰골이 처참했다. 주민들이 나와 태풍 뒤 청소를 하는데 천지창조가 이랬을까 하며 씁쓸해했다.
다음날 방송과 전언으로 들려오는 제주시의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집 앞 건천이 불어 차를 버리고 귀가하다 물에 휩쓸려 죽은 20대, 집을 가득 채운 물에 익사한 사람, 산 일부가 뜯겨 나간 사라봉, 한천의 복개로 복개천 교각에 걸린 돌과 나무뿌리들, 바다로 쓸려 들어간 용연 다리 인근의 자동차들, 해안가 인근에 켜켜이 밀려 포개진 자동차들, 침수되어 물건이 둥둥 떠다니던 동문시장….
우리 집 아래쪽으로 큰길 건너 하천을 끼고 돌아나간 소나무 숲에 지은 지 얼마 안 된 4층짜리 빌라 석 동이 있었다. 주변 경관은 참 좋은데 제주도의 자연 여건상 물가나 바닷가는 건축을 안 하는 게 상식이라 누가 건축을 했는지 건축허가가 어찌 나왔는지 궁금한 빌라였다. 그 빌라 역시 불어난 화북천 물에 휩쓸려 얼마 후 건물 전체가 철거되고 보상금을 준 후 그 자리에 저류지를 만들었다.
2007년 9월 태풍 <나리>는 중심기압 960hpa, 중심 부근 최대 풍속 40m/s “강”급의 태풍이었다. 그 정도의 태풍은 제주 도민이 일상으로 겪는 것이다. 그런데 <나리>는 시간당 100㎜의 비가 내려 한라산 윗세오름 563.5㎜, 제주시 420㎜의 강수량이 바다의 밀물과 만나 홍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265.5㎜의 비가 내렸던 한라산 너머 서귀포는 거의 피해가 없었다.
무분별한 난개발, 물 구멍 막아버려
태풍 <나리>의 피해엔 무분별한 난개발과 중산간 곳곳의 풍광 좋은 곳을 차지한 30여 곳의 골프장, 무턱대고 덮어버리는 복개천, 지나치게 잘 닦여진 도로가 숨골을 막아 물이 스며들 곳을 찾지 못한 점이 일조했다는 게 이곳에 정주해 사는 제주 도민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때 태풍 <나리>의 여파로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2007년 9월 20일 제주시는 특별 재난지역이 되어 군·경·민이 동원되어 몇 달 동안 태풍 뒤처리를 해야 했다.
태풍 <나리>가 지나가고 제주도는 여러 노력을 했다. 사고가 컸던 하류 지역의 복개천을 일부 걷어 복원시키고 곳곳에 저류지를 파고 하천 상류에 바위와 나무가 걸리도록 저지 구조물을 만들고…
그러나 그 후 <나리>처럼 이상한 태풍은 없었는데, 지구촌의 이상 기후는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과 과학기술을 언제나 능가한다. 가끔 농담처럼 얘기한다. 빙하기에 공룡과 매머드가 멸종했듯이 인류도 핵 재앙이나 기후 변화로 멸종할 것이라고. 그 후 또 어떤 강한 생명체가 출현하여 지구의 주인이 될 테니 지금의 인류 역시 지구를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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