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축제, 이젠 졸업생들도...‘Again 연고전’

[기고] 9월8~9일 펼쳐진 연고전 참가하며 졸업생도 추억에 추억을 더하는 행사 절망하는 젊은세대에 미안한 마음이지만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도 이해해주길

정기 고연전(짝수 해는 연고전)이 열린 지난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펼쳐진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연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기 고연전(짝수 해는 연고전)이 열린 지난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펼쳐진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연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80년대 삼엄한 시기에도

연고전(고연전)이 열리는 날은 항상 푸르른 가을날이었다.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종합운동장(올핸 고양종합운동장 등)의 스타디움 위에 응원가와 함께 펼쳐지는 가을 하늘은 흥분된 마음을 담은 멋진 수채화의 배경 하늘처럼 나를 들뜨게 만든다.

삼엄하고 암울했던 1980년대, 그래서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것만으로도 낯설고 흥분됐던 그 학창시절의 연고전은 다른 어떤 대학생활 보다도 기대되고 기억에 남았다. 싸이의 흠뻑쑈나 BTS의 화려한 공연도 없는 시기였으니 더욱 그랬다. 그나마 매년 열리는 MBC 대학가요제가 신인가수들의 데뷔 무대였고, 같은 또래의 대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는 마치 나도 가수가 될 수 있을 거 같은 희망을 품게 만들곤 했다.

연고전은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가 매년 5개의 운동경기(축구, 야구, 농구, 럭비, 아이스하키)를 이틀에 걸쳐 치른다. 올해엔 지난 8, 9일 이틀에 걸쳐 열렸다. 일제시대였던 1926년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와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부터 시작된 것으로, 영국의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교의 정기전을 본딴 일본의 경조전(와세다 대학교와 게이오 대학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해방후 그 전통을 살려 1965년부터 현재의 연고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연전’과 ‘연고전’ 명칭으로 양교 출신들은 평생 자신의 모교 이름을 앞으로 하여 부르며 신경전을 벌인다. 연대생들은 “연고전은 있어도, 고연전은 없다!”라고 우기고, 고대생들은 반대로 말하곤 한다.

연고전이야? 고연전이야?

한 해씩 양교가 번갈아 주최하는데, 고려대가 주최하면 ‘연고전’, 연세대가 주최하면 ‘고연전’이라 공식적(?)으로 부른다. 그러나 고려대 출신 배우자와 사는 연세대 출신인 필자는 배우자가 맘에 들 땐 ‘고연전’이라 하고, 아닐 땐 ‘연고전’이라 부르며 행사를 즐긴다.

어찌보면 유치하고, 아이들 장난같지만 연고전은 사소한 신경전을 벌이는 묘미가 있다. 경기 중간 양교 방송반이 제작한 영상물이라도 틀 때는 고려대 방송반은 연세대의 상징인 독수리를 ‘닭’으로 바꿔 놀리고, 연세대 방송반은 고려대의 상징인 호랑이는 ‘고양이’로 비하시키곤 했다.

가끔 선수들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거친 몸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었고, 선수의 자격을 놓고 항의하며 경기 보이콧을 한 적도 있었다. 양교 학생들은 축제로 즐기지만, 사실 학교 측과 각 종목 선수들은 이 행사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제 고려대 출신의 유명한 야구선수인 선동열 전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국가대표 경기보다 ‘고연전’이 더 스트레스를 준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선수들과 학교 관계자는 강한 압박감을 느낀다.

막상 경기가 끝나면, 학생들은 양교 앞에 뒤엉켜서 승리와 패배의 구분없이 같이 동무들처럼 뛰어놀았다. 이번에 진들 어떠하리, 내년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경기인데 라고 속을 달래며.

연세대 재학때 나는 연고전이 끝나면, 몇몇 친구들과 고려대 앞에 많이 갔던 거 같다. 이유는 단 하나, 고대 교우회에서 푸짐하게 학생들에게 술과 음식을 나누어 주기 때문이었다. 역시 선배의 사랑은 사주는 음식과 술로 가늠되는 법, 고려대 선배들의 후배 사랑이 좀 더 후했던 거 같다.

0대 5 전패를 당한 2014년 연고전

나이 50대의 동문이 되어 연고전에 갔던 지난 2014년, 고려대가 다섯 경기를 모두 이겨 5대 0으로 종합 승리를 했던 적이 있다. 연고전 개최 이후로 한번도 없던 일이었다. 이후로 몇 년동안 고대동문들은 이를 자랑삼아 떠벌렸고, 집에 있는 나의 배우자는 틈만 나면 나를 놀리곤 했다.

잔인한(?) 고대 교우회에서는 구내 매점에서 팔던 ‘고대빵’을 ‘오대빵’으로 만들어 연세대 총문회에 한 박스를 보내기도 했다. 2017년 정확히 3년 뒤에는 연세대가 5 대 0으로 승리해 그때의 설움을 ‘오대빵’ 과자로 만들어 그대로 갚아주었다. 양교가 5 대 0으로 주고받던 시기, 한 학교 총장님은 동문회에 사과의 편지를 보냈다는 후일담도 있다.

학교를 졸업한 지 25년이 지나 홈커밍데이(재상봉) 행사를 했던 2013년에도 동기들을 다시 만나 연고전을 찾았었다. 파란색 티셔츠도 맞춰 입고, 학창시절때 느꼈던 기분을 추억하며 잠실종합경기장으로 고고씽 했다. 푸른 하늘은 25년전이나 같았고,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응원가는 나를 25년 전으로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그때와 다른 건, 응원석이 일명 본부석이라는 상석 자리의 좌, 우에 위치했고 동문들에게 나눠주는 모자 등 기념품이 있다는 것이었다.

저 건너편에 있는 학생들 사이에 25년전의 나와 친구들이 있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학생들 앞에 설치된 응원단상에서 화려한 춤사위의 응원단 뒷모습을 음악소리와 함께 멀리 바라봤다. 응원가도 많이 바뀌어서 25년전 노래는 가끔 흘러나올 뿐 낯설었다. 관람석은 더 좋은 위치에 있고, 동문회에서 마련한 정성스런 도시락으로 배도 든든히 채웠지만, 두세 시간 선 채로 신명나게 응원하던 나의 모습은 이젠 저기 있는 후배들의 몫이 되었고, 이게 세월인가 하는 생각에 살짝 착잡해지기도 했다. 참여하는 연고전이 관람하는 연고전이 된 거 같아 어색하고 씁쓸하게 느껴졌다.

연고전이 끝난후 동기들끼리 모여 젊은날의 연고전 추억을 되새겼지만, ‘응답하라 연고전’을 기대했던 우리들은 무언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젊은날에 대한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다.

추억에 남은 ‘Again 연고전!’

0대 5로 대패했던 2014년 연고전이 있었고, 충격을 받은 우리는 패배를 만회할 특별한 응집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한 해 전, 당시 우리 학번의 동기회장을 맡고 있던 필자는 동문들끼리 ‘졸업생 응원단’을 만들어 “내년부터는 관람하는 연고전이 아니라 참여하는 연고전을 해보자”라고 제안을 하고 ‘노욕(?)이 아니냐’는 몇 몇의 의견을 뒤로 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내면서 우리 학번을 중심으로 동문응원단을 만들었었다.

굳은 어깨, 펴지지 않는 허리, 노화된 연골, 떨어진 체력을 극복하느라 응원단 출신도 아닌 20여명의 동문들이 바쁜 시간을 내어 꾸준히 연습했더니, 하나씩 하나씩 동작도 비슷해져갔다. 현역 응원단의 동영상을 보며 따라했고, 새로운 응원가의 악보와 음원을 구해 하나씩 연습했더니 다시 그 옛날의 신입생으로 되돌아간 듯 설렘도 생겼다.

올해 연고전 폐막식후 필자의 졸업생 동문응원단이 동문회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한 모습. 사진=장정열
올해 연고전 폐막식후 필자의 졸업생 동문응원단이 동문회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한 모습. 사진=장정열

그리고 맞이한 2015년, 마침내 연고전이 열렸고, 재학생 응원단에 누가 되지 않도록 25여년 전 우리의 노래·춤사위와 응원복이 아닌 지금의 노래 춤사위에 맞춘 응원복을 입고, 학교에서 설치해준 응원단 스피커와 단상에서 신나게 응원을 펼쳤다. 관람하는 연고전이 아니라 참여하는 연고전을 펼쳐 보인 것이다. 우리가 응원단을 만들어 참여해서 그런지, 그해에는 종합전적 2승1무2패로 그 전해의 0대 5 전패보다 성적이 좋았다.

이른 가을낮의 뙤약볕이었지만, 후배들과 하나되어 세대의 차이도 잊을 정도로 하나됨을 느꼈다. 졸업 25년이 지난 오늘의 모습으로 ‘Again 연고전!’을 했던 것이다.

졸업생도 참여하는 행사로

너무나 빠르게 달려가는 우리 사회는 쌍둥이도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하지만, 세대간의 소통과 공존을 위한 공감은 너무 소중하다. 우리의 소중한 젊은 세대와 고령화 시대의 젊은 장년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체험을 하는 공간으로서의 연고전은 졸업이 있는 학창시절의 연고전이 아니라 평생 참여하는 연고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회와 가정에서 느끼는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 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절망감들은 현재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참여하는 연고전’을 통해 조금이나마 전달되기를 바래본다.

글쓴이

장정열 에프에이솔루션 대표

장정열은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하고 IT업계에 30년간 몸담고 있다. 일본 SBI 홀딩스로부터 투자를 받아 금융권 비대면 시스템 구축, AI & 빅데이터, 의료AI 분야 사업을 하는 ㈜에프에이솔루션/㈜애마슈를 창업,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AI학과의 겸임교수로 있으며, AI시대에 인간과 AI의 공존을 위한 제도와 문화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