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추석이나 설 휴가 길게 해요

[김형진의 걸쭉한 뉴질랜드 이야기] 오클랜드 실버데일의 한국 버스기사 뉴질랜드 엄청많은 휴가 일수에 놀라 한국 세계 톱10에 오른 건 성실함 덕분 이젠 추석 ·설 명절휴가 일주일씩 안될까

필자인 김형진 씨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실버데일. 왼쪽 대륙은 호주다. 지도=구글맵
필자인 김형진 씨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실버데일. 왼쪽 대륙은 호주다. 지도=구글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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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뉴질랜드에서는 12월이 되면 본격적인 휴가시즌이 시작됩니다. 남반구에 있는 섬나라이기에 한국하고는 계절이 정반대여서, 12월과 1월이 한여름입니다. 특히 크리스마스부터 1월 초순까지는 마치 우리나라의 7말8초(7월말 8월초)처럼 전 국민의 휴가가 집중되는 시기로, 일반 기업체는 물론 대부분의 관공서까지도 아주 필수적인 파트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휴무 모드로 전환됩니다.

저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의 북쪽 지역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1년에 4주간의 유급 연차휴가 Annual Leave 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는데,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버스 기사들의 휴가를 6개월에 2주씩 임의로 배정해 모든 기사들의 휴가 스케쥴을 휴게실에 있는 게시판에 공지합니다. 물론 회사측과 사전에 협의해서 개인 사정에 맞게끔 그 일정을 조정할 수는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가장 큰 도시 오클랜드의 실버데일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Gulf Harbour 요트선착장을 지나고 있다. 사진=김형진
뉴질랜드의 가장 큰 도시 오클랜드의 실버데일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Gulf Harbour 요트선착장을 지나고 있다. 사진=김형진

회사 동료들 중에 성격은 좋지만 입은 좀 거친 앤디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문장은 ‘What the f*ck’으로 시작해서 ‘bloody sh*t’으로 마무리됩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양념으로 ‘god d*mn’도 추가되지요

어느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마침 앤디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평소보다 훨씬 ‘정성스럽게’ 욕을 하고 있길래 무슨 일인가 물어봤더니, 월요일이라 새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잘 안 하던 면도까지 말끔하게 하고 출근했는데, ‘너 오늘부터 휴가 시작인데 왜 나왔냐’는 소릴 듣고는 깊은 충격과 분노를 못 이겨 여기저기에 연속으로 ‘f*ck’으로 랩을 털고 있던 중이었다고 합니다. 미리 공지되어 있던 본인의 휴가 일정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 이런 비극이 일어나고 만 것이었지요.

그걸 지켜보고 계시던 한 한국인 선배 기사 왈, “난 싸움이 나면 욕은 꼭 한국말로 해. 그래도 다 알아듣더라구. 영어로 욕하면 감정이입이 잘 안되거든.”

학교 운동장 옆 버스정거장에서 승객 기다리는 시내버스. 차문 너머 보이는 오클랜드 실버데일 풍경 사진=김형진
학교 운동장 옆 버스정거장에서 승객 기다리는 시내버스. 차문 너머 보이는 오클랜드 실버데일 풍경 사진=김형진

한국의 욕이 먹히다니!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던 어느 날, 초보 버스 기사였던 저는 나름 조심조심 운전하면서 혼잡한 버스 정거장으로 살살 들어가고 있는데, 다른 회사 버스 한 대가 갑자기 앞으로 끼어들더니 제 버스 앞에 삐딱하게 정차를 하고는 손님을 태우고 있습니다. 이런 Urazillium!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손님들 태우고 출발하려는데 마침 그 버스가 정거장 앞에 있는 신호에 걸려서 정차하고 있네요.

가슴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빡침’이 좀체로 가라앉지 않아 응징을 좀 해줘야겠다 싶어서 제 버스를 그 버스 옆에다 바짝 대고는 앞문을 ‘치익’ 열었습니다. 그 기사도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열고는 저를 쳐다봅니다. 아무리 열받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공공복지 서비스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승객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함부로 험한 언행을 할 수는 없었기에 두 눈으로는 빨간색 레이저 광선을 쏘면서 나지막한 톤으로 부드럽게 “운전 똑바로 해, 이 개ㅅㄲ야!!”라고 감정 흠뻑 실어, 정확한 서울 은평구 표준 발음으로 날려줬습니다.

오, 그런데 이게 먹힙디다. 이 자식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아무말도 못하고 산소 부족한 어항 속 금붕어 마냥 주둥이만 뻐끔거리고 있습니다. 역시 선배님의 말씀을 따랐더니 자다가도 떡이 생깁니다. 앵콜로 한 소절 더 해주려다가 신호등 색깔이 녹색으로 바뀌는 바람에 얼른 차문을 닫고 갈 길 가는데, 승객 중에 한국어에 능통한 분이 계셨는지 뒤쪽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네요.

실버데일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운행시간이 끝난 뒤 Hibiscus Coast Bus Station에 정차해 있다.
실버데일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운행시간이 끝난 뒤 Hibiscus Coast Bus Station에 정차해 있다.

4주간 연차휴가+10일간 유급병가+법정공휴일 12일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는데, 다시 휴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뉴질랜드의 근로자들은 앞서 말씀드린 4주간의 유급 연차휴가 외에 1년에 10일 간의 유급 병가(Sick Leave)를 부여받습니다. 물론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아주 안 좋아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 회사에 병가를 요청하고 쉬는 휴가 제도인데, 이를 악용해서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프다고 병가를 내고는 골프를 치러 가는 선배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연차 휴가의 경우에는 안 쓰고 모아놨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쓰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그 휴가에 상응하는 돈을 받고 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가는 사용하지 않은 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에 저처럼 웬만해서는 아픈 일이 거의 없고, 그렇다고 안 아픈데 아프다고 거짓말하기는 싫은 사람의 경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되었든 법적으로 저에게 부여된 쉴 권리인데 안 쓰고 없어져 버리니까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머리를 조금 썼습니다. 일 하기 무척 싫었던 날, 하루 일과를 끝내고 퇴근하는 길에 회사의 담당 직원에게 가서 이렇게 병가 요청을 합니다.

“지지리도 말 안 들어먹는 아들래미 땜에 속상해서 홧병이 도졌어. 내일 일 못하니까 병가 처리 해줘.”
“홧병이 뭔데?”
“한국 사람들한테만 있는 풍토병 같은 거야. 인터넷 찾아봐. 안녕.”

이렇게 기업체에서 근로자들에게 부여하는 휴가 이외에 뉴질랜드에는 매년 12개의 법정 공휴일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크리스마스처럼 아예 날짜가 못박혀 있는 휴일도 있지만, 노동절(Labour Day)처럼 ‘10월의 네 번째 월요일’로 지정되어 매년 황금 주말 연휴를 맞게 되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휴가와 휴일들이 있어서 가끔은 이 사람들이 일 하다가 쉬는 건지, 아니면 쉬다가 지치면 가끔씩 나와서 일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 제가 사회초년병이던 1990년대 중후반엔 월차 휴가나 병가는 상상이나 전설속의 단어일 뿐, 윗사람들 눈치 보여서 절대 쓸 수가 없었지요. 1년에 1주일 부여된 하계 휴가도 상사들의 강압적인 권유에 의해 주말 포함 5일정도 쉬고, 나머지는 회사에 자진 반납하는 분위기였던 것을 떠올리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입니다. 물론,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은 지금은 모두 없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뉴질랜드에서 시내버스 기사 일을 하고 있는 김형진 씨.
뉴질랜드에서 시내버스 기사 일을 하고 있는 김형진 씨.

한국도 추석·설 휴가는 좀 늘려요

남의 나라에 와서 다른 여러 나라의 민족들과 섞여 살면서 한국 사람들의 근면 성실함은 전세계 ‘TOP 클라스’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에 이은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후손들을 위해 헌신하신 선배님들 덕분에 우리도 어느덧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으니 이제부터라도 우리 후배들은 좀 여유를 갖고 휴가와 휴일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의 전통 명절인 추석과 설에는 앞뒤로 3일씩 붙여서 한 1주일씩 쉬게 해준다면, 상습적인 귀성 교통 체증도 어느 정도 분산되고, 전 부치고 나물 무치느라 지친 분들에게도 충분한 휴식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글쓴이

김형진 뉴질랜드 칼럼니스트

글을 쓰는 김형진 님은 이렇게 본인을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서 버스 운전 하고 있는 꼰대심 투철한 대한의 '아재'입니다. 제가 이 곳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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