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파업을 하면 생기는 일

[김형진의 걸쭉한 뉴질랜드 이야기] 뉴, 외국인 근로자들 이렇게 받아들인다 기존 근로자보다 더 높은 급여...소득 지켜줘 기존 근로자도 소폭 급여 올라가 좋아 한국, 월 100만원에 외국인 도우미 쓴다고? 외국인 인권 무시하던 시대는 지나갔는데...

지난해 5월 당시 뉴질랜드 교통부 장관이 오클랜드 시내버스내에 새롭게 설치될 기사 보호용 칸막이를 점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당시 뉴질랜드 교통부 장관이 오클랜드 시내버스내에 새롭게 설치될 기사 보호용 칸막이를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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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일자리를 구했는데

제가 10여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처음으로 갖게 된 직업은 스시 식당 주방 보조였습니다. 마흔 살이 넘은 데다가 영어도 그리 능숙하지 못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초보 이민자에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에서 대부분의 스시 식당은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었기에, 일단은 말이 통하니까 식당 일은 고사하고 집에서 설거지도 잘 안 하던 제가 주방 일을 해보겠다고 무작정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맨땅에 헤딩하는’ 용기가 참으로 가상합니다.

하지만, 무모함에는 항상 대가가 따르는 법. 첫 번째 직장에서 6주 정도 일하고 나니까 업주가 저의 영주권 지원을 빌미로 뒷돈을 요구하더군요.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고용주의 많은 협조가 필요했기에 당시에는 이를 악용하는 업주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잠깐 고민했었지만, 이걸 받아들이고 나면 나중에 또 다른 어떤 불합리한 요구를 더 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그걸 거절하고 다른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는 또 일을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두 달 만에 쫒겨나고 말았고, 다시 또 찾은 다른 곳에서는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조신하게(?) 2년 정도 일했는데, 영주권을 막 신청할 시점이 되자 갑자기 식당이 망해버리는 바람에 실업자가 되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민 온 지 5년 만에 온 가족이 오매불망하던 영주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식당 업주들에게 받은, 노동법에 어긋나는 불합리한 처우나 인격적인 모독 등은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갖게 된 직업은 지금도 하고 있는 시내버스 운전기사입니다. 영세한, 때로는 악독한 자영업자 밑에서 일하다가 나름대로 체계를 갖춘, 규모가 제법 있는 기업체에서 일하게 되니 참 좋더군요. 동양에서 온 영어가 서툰 초보 버스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장님 이하 모든 직원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근무 조건, 급여, 휴가 등 모든 처우에 이르기까지 현지 뉴질랜드 사람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어두컴컴한 식당 주방에서 하루 종일 칼, 도마랑 씨름하던 거에 비하면, 밝은 하늘 바라보면서 운전하는 일도 그리 힘들지 않았고 휴식 시간과 휴무일도 철저하게 보장되었기에, ‘이렇게 일하고 이렇게 많이 받아 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뉴질랜드에선 파업을 이렇게 해요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저와는 생각이 좀 달랐던 모양입니다. 제가 일한 지 1년이 채 안 되었을 무렵, The First Union과 Tramway Union 등 뉴질랜드 ‘최강성’(?) 노조 두 곳이 주도하여 버스 기사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파업의 방법이 참으로 깜찍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처우개선을 위해 정부와 싸우는 것이니,

시민들에게는 절대로 불편을 끼쳐선 안됩니다.”

이렇게 부르짖는 체 게바라와 비슷하게 생긴 노조위원장의 지침에 따라, 버스 운행은 평소와 똑같이 정상적으로 하되 요금은 받지 않는 방식으로 투쟁했습니다. 뉴질랜드의 시내버스는 각 자치단체와 위탁운영계약을 맺은 버스회사들이 그 자치단체의 교통국으로부터 모든 비용에 대한 예산을 받아 운영되고, 카드는 물론 현금 수금한 요금은 전액 자치단체 교통국으로 귀속됩니다. 회사는 금전적으로는 버스 요금과 전혀 관계 없는 입장이지만, 수금한 요금을 취합해서 시 교통국으로 송금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 이런 투쟁 방식은 시민들의 피해 없이 회사와 시 당국을 압박하는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습니다.

오클랜드에서 노조의 태업으로 승객들이 버스 요금을 내지 않고 타고 있다는 현지 보도.
오클랜드에서 노조의 태업으로 승객들이 버스 요금을 내지 않고 타고 있다는 현지 보도.

어쨌든 돈 받지 않고 공짜로 태워줘서 그런지 평소엔 인사는커녕 본 척도 안 하던 승객들까지도 요금 대신 사탕과 쵸콜렛 등을 주면서 우리의 태업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등 든든한 후방 지원에 힘입어 계속된 투쟁을 이어가는데, 회사 측에서는 이게 마땅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계속 요금을 받지 않을 거면 사업장을 폐쇄하고 노조원들에 대해 급여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최후 통첩을 날립니다. 이쯤 되면 노조에서 더 강력한 투쟁 방법을 모색할 법도 한데, 게바라 선생이 고개를 떨구면서

“이제 크리스마스도 얼마 안 남았으니 일단 여기서 파업을 중단하겠습니다.

우리 노조 임원들이 정부 및 회사 측과 협의를 이어가겠으니 믿고 맡겨주시고,

일단 여러분들은 일터로 복귀해 정상적으로 일하고 급여도 받아서

따뜻한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라며 꼬리를 내리네요. 어처구니가 사라집니다. 이 양반이 식당 일을 안 해봐서 그런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버스 회사에서 보낸 '사업장 폐쇄' 경고 서신.
버스 회사에서 보낸 ‘사업장 폐쇄’ 경고 서신.

뉴질랜드가 외국 인력을 받아들이는 방법

이 파업 이후 노조와 정부와 회사의 노력으로 버스 기사들의 처우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나이 들어 본인의 원래 직업에서 은퇴하고 난 후 버스 핸들을 잡은 고령자들(뉴질랜드 버스 기사들의 평균연령이 55세이니 저는 아직 평균을 깎아 먹고 있습니다.)이 과반수인 버스 기사들의 고용구조 상 고질적인 인력 수급의 불안정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이후 고령자들이 대거 퇴직한 후, 버스 기사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는 바람에 몇몇 도시에서는 정상적인 버스 운행이 어려워지자, 최근 정부에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필리핀과 인도 그리고 사모아, 피지 등 남태평양의 여러 섬나라에서 버스나 대형 차량 운전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 워크비자’(Special Work Visa)를 부여해 인력이 부족한 버스 운행 현장에 투입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 역시 기존의 버스 기사들과 동일한 근무 조건에 동일한 급여를 받으면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뉴질랜드에서는 고질적인 노동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부족 직업군에 해당하는 직무능력을 가진 외국인들에게 엄격한 심사를 거쳐 워크비자(Work Visa)를 부여합니다. 그 심사 항목 중 하나인 소득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이 사람들의 급여가 원래 기존 기사들보다 높게 책정되었습니다. 이 덕에 저희들의 급여도 형평을 맞추는 차원에서 덩달아 소폭 상승되었습니다. 아주 고마운 분들이라 간혹 기사 휴게실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제가 커피 타서 마시라고 줍니다.^^

독일 광부로 간 한국인, 차별받지 않았다는데

얼마 전에 한국 뉴스를 보니, 필리핀 등에서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도입하겠다는 정책이 여러 가지로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난관에 봉착했다고 하더군요. 그 정책이 한국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과 출산율을 제고하기 위해 많은 고심 끝에 쥐어 짜낸 고육책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그 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한국내 제일 큰 도시의 행정 책임자께서 외국인 도우미들의 인건비를 월 100만원 이하로 책정해야만 그 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셨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돈 벌기 위해 가족과 헤어져 남의 나라에 와서 궂은 일 하게 될 그 외국인 도우미들은 과연 그 돈을 받아서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하며, 또 그들의 인권은 어떻게 되는 건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또, 그렇게 낮은 가격이 시장에 형성된다면 현재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분들의 처우는 또 어떻게 될지 생각은 안 해보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십년 전 식민 지배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하시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저 멀리 지구 반대쪽으로 가셨던 광부와 간호사 선배님들은 정말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들게 고생하셨지만, 그나마 그분들은 독일 정부의 엄정하고 공정한 보살핌 덕분에 현지 사람들과 동일한 처우를 받으면서 지내셨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특히 가진 것 없고 가진 힘 없는 사람들의 소중한 권리를 약탈해 가면서 사회적인 발전이든 경제적인 풍요를 얻어내고자 하는 행위는 이미 지나간 시대에 충분히 봐왔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나라 사람이건 남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건 할 것 없이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정책적인 배려가 조금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글쓴이

김형진 뉴질랜드 칼럼니스트

글을 쓰는 김형진 님은 이렇게 본인을 소개합니다. "뉴질랜드에서 버스 운전 하고 있는 꼰대심 투철한 대한의 '아재'입니다. 제가 이 곳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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