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헌법에서 얻는 제청권 충돌의 해법
- 역대 헌법과 이승만-김병로 논쟁의 시사점 초대 헌법 및 유신·5공 헌법 등 역대 헌법의 변화 과정을 볼 때, 헌법에 명시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배제하거나 제청 없이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는 독자적 헌법 권한이다.
- 사전 동의 절차와 국회 동의권 침해 이승만 정권 때와 달리 현행 헌법은 국회의 ‘사전 동의’를 필수 절차로 두고 있으므로, 국회 검증 단계 이전에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하며 절차를 막는 것은 국회의 동의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 헌법적 충돌의 해법 사법부의 독자적 제청권을 존중하여 해당 후보를 국회 동의 절차에 먼저 회부하는 것만이 역대 헌법의 변천사에 비추어 본 합헌적이고 정당한 충돌 해결 방식이다.
어떤 가족의 음식 주문 방법
어떤 부부는 자녀들과 식당에 갈 때마다 장남이 고른 메뉴에 대해 엄마가 맛있을지 의견을 얘기하면 최종적으로 그 메뉴를 주문할지는 아빠가 정한다. 가령 장남이 된장찌게를 고르고 아빠도 괜찮다고 생각되면 엄마에게 의견을 묻고 엄마가 그거 맛있겠다 하면 다시 아빠가 주문할지를 최종 결정하는 식이다.
이와 같이 장남, 엄마, 아빠가 모두 좋아하는 메뉴인 경우에만 이를 주문해 먹을 수 있으므로 3인 중 어느 1인이라도 반대하면 음식을 시킬 수 없다. 장남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제안하거나, 아빠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제안되었을 때만 주문하겠다고 고집하다가는 그 가족이 장시간 굶는 일이 발생하고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다른 가족 구성원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래서 장남과 아빠는 가족들이 굶지 않게 사전에 의견 조율을 시도하거나 사전 조율이 없더라도 장남이 고른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빠가 무조건 주문하기를 거부하기도 어렵게 된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위의 음식주문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법관 임명을, 장남의 메뉴선택은 대법원장의 제청권, 엄마의 의견제시는 국회의 동의권, 아빠의 주문결정은 임명권, 다른 가족 구성원은 국민에 빗댄 것이다.
위의 음식주문 사례에서 3인의 만장일치일 경우에만 음식주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3인의 권한은 대등하다. 그러면 대법관 임명절차에서 3부 수장의 각 권한, 특히 그중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 임명권의 관계는 어떠한가. 먼저 가장 기본인 현행헌법 규정을 보자.
대법관 임명에 있어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의 관계
헌법 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한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자 제청 없이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거나 또는 대법원장이 제청하지 않은 다른 후보자를 대통령이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을까.
역대 헌법은 대법원의 구성절차에 있어 대법원장의 임명에 법관추천회의의 제청 규정을 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고, 대법관(혹은 대법원판사)의 임명에 대법원장의 제청 규정을 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만약 현행 헌법처럼 대법관의 임명에 대법원장의 제청 규정을 둔 경우에 대법원장의 제청 없이 또는 제청하지 않은 다른 후보자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고 본다면, 이는 그러한 제청 규정이 없는 헌법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 문언상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퇴임 당시 논란이 되었던 2대 대법원장의 임명절차를 보자. 당시 헌법은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다만 1949년 제정된 법원조직법 37조에 ‘대법원장의 보직은 법관회의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이를 행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에 대해 정부측(이승만 대통령)은 법관회의의 제청을 법률로 정한 것은 헌법상의 대통령의 임명권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위헌이라 주장하고, 김 대법원장은 헌법은 대법원장 임명에 관한 원칙 규정이고, 임명자격이나 절차는 법률로 정하는 것이므로 위 규정은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 위헌 시비가 있었으나 국회에서 최종 의결되었다. 이 대통령은 법관회의가 추천한 후보를 거부하고 특정 후보를 대법원장으로 추천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이처럼 제청권 규정이 헌법이 아니라 법률에 있고, 게다가 위헌 논란이 있었음에도 이재명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한 것에 비추어 볼 때 현행 헌법처럼 헌법에 제청권이 규정된 것이라면 대통령은 제청 없이 또는 제청하지 않은 후보를 임명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번에 논란이 된 이재명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도 같은 맥락에서 행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규정을 두고 헌법 94조 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규정과 제청과 임명의 문언, 구조가 같다는 이유로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국무총리의 제청권과 권한의 성격이 같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행정부의 2인자로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보좌기관인 국무총리의 제청권과 3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수장의 사법부 구성에 관한 제청권을 같은 차원의 권한으로 보는 것은 우리 헌법의 권력분립의 취지에 전혀 맞지 않다.
국무총리의 각부 장관 제청권에 대통령은 기속되지 않으며, 제청 없이 각부 장관을 임명하더라도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헌법학계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만약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을 국무총리의 행정 각료 제청권과 같은 차원의 권한으로 본다면 이 대통령의 재제청 요청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 대통령은 제청된 후보가 아닌 사람을 대법관으로 임명해도 무방하므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를 재제청해달라고 요청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민주당의 모 의원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는 절차에 협조하기 위한 절차적 보조권한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헌법학계의 다수의 견해인데 제청권이 임명권 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한가”라고 질의하였다. 만약 위 의원의 발언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국무총리의 제청권과 같은 차원의 권한으로 본 것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 대통령의 대법관후보 재제청 요구의 성격
조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절차에 회부하지 않고 다른 후보를 다시 제청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는 일응 제청된 후보에 대해 임명 거부의 입장을 밝힌 것이니 임명거부권 행사로 볼 수 있다.
역대 헌법 중 3공(共) 헌법은, 대법원장은 법관추천회의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국회에 동의를 요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임명하여야 한다’, 대법원판사는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의 동의를 얻어 제청하면 대통령은 이를 ‘임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앞선 제청, 동의 등의 절차가 갖추어진 경우 대통령에게 임명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그후 4공(유신) 헌법에서는 다시 ‘임명한다’는 문언으로 변경된 이후 5공 헌법, 현행헌법에 ‘임명한다’는 문언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와 같은 임명에 관한 문언 변경 과정을 보면 일정한 절차를 거친 후보에 대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 것은 대통령에게 임명권과 임명거부권을 모두 부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의 재제청 요청은 임명거부권 행사인가. 그렇다고 본다면 적법한 권한의 행사이고, 그렇지 않다면 위법의 소지가 있다. 이 문제는 현행 헌법규정과 앞서 본 초대 대법원장 퇴임 당시 후임 대법원장 임명과정과 당시 헌법 규정에서 해석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먼저, 다시 현행헌법 규정으로 돌아와보자. 헌법 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한다. 대법원장, 국회, 대통령의 각 권한이 작동하는 순서는 대법원장이 후보를 제청한 후 대통령이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에 회부하여 국회가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임명동의안에 대해 의결절차를 거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그동안 대법관으로서의 자격에 흠이 있는 인물을 제청하여 인사청문회 등 국회동의 절차에서 더 큰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대법원과 대통령실 사이에 대법관 후보에 관해 사전 협의를 하여 제청할 후보를 정한 관행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헌법, 법률 어디에도 규정은 없다.
따라서 위 사전 협의 관행이란 대법원이 대통령실의 제청절차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협조를 해왔던 것일 뿐 대통령이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할 ‘법적’ 권한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사전 협의의 관행을 관습헌법으로 볼 경우에는 대통령에게 재제청을 요구할 ‘(헌)법적’ 권한이 있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관습헌법은 헌법적 관행만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관행에 대한 헌법적 확신이 있어야 하는 점만 지적해 두고 더 논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다면 대법원장이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이 대통령은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에 회부하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이다.
국회의 동의절차의 기능- 제청권과 임명권 충돌의 장기화 방지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비로소 대통령이 임명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고,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대통령이 임명할래야 할 수도 없으니 당연히 재제청 절차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다만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경우에는 대법원에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에 대해 다시 국회가 인사청문회 등 엄격한 절차를 거친 끝에 동의안이 통과되었다면, 아무리 대통령의 임명권에 임명거부권이 있다고 보더라도 임명을 거부하고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 등의 문제로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대통령의 임명거부에 따른 후보 재제청 요청이 이론상, 그리고 법적으로도 허용되는 것은 이와 같이 국회 동의 후의 단계이다).
그러고 보면, 국회의 동의절차는 그 동의를 얻었을 경우에는 대통령이 임명거부(재제청 요구)를 사실상, 정치적으로도 감행하기 힘들다는 점, 동의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대법원장이 재제청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 점에서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하더라도 그 충돌이 장기간 지속되지 않게 하는 일종의 자동조절기능을 하는 셈이다.
재제청과 국회의 동의권 침해 여부
초대 대법원장 퇴임 당시 후임 대법원장 인선이 문제되었을 때로 다시 돌아가본다. 당시 헌법은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법원조직법에 법관회의의 제청권을 규정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 이전에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한 후 국회가 사후 추인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대법원장측(법관회의)이 제청한 후보에 대해 재제청(임명거부권)을 요청하더라도 국회의 권한을 침범할 소지가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대법관 임명에 있어 국회의 ‘사전’ 동의 절차를 대통령의 임명절차 이전에 배치한 현행 헌법하에서 국회 동의절차 이전에 이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한 것은 임명거부권의 행사로 볼 수는 없다. 즉 종전의 관행이었던 사전 협의를 요청하는 차원이라 할 터인데 대법원장이 더 이상의 사전 협의를 명확히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동의절차 회부로 나아가지 않으면 국회의 동의권 침해 소지가 크다고 본다.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청 공문에 제청된 후보에 대한 거부사유, 재제청의 근거
가 기재되지 않아서 재제청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는데, 후보에 대한 거부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는 것은 인사청문회 등 국회동의 절차에 가서야 검증할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것(뒷조사의 사전 공개)이 되어 부적절하다고 볼 때, 재제청을 거부한 실질적 이유는 후자, 재제청은 국회의 동의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그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었지 않을까.
위 글은 법률구조공단 기관의 의견이 아니라 필자 개인의 의견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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