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했단 사실조차 없었던 일로 하려면

[강정호의 감성 법률] ‘혼인무효’는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 이혼했는데도 무효소송하는 마음 어떨까 당사자로선 이혼보다 과거 정리 쉬울테니 대법원, 인척이었던 이들과의 결혼을 예시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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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업고 튀어’의 임솔처럼

인간만이 후회를 한다. 과거의 일을 되돌아보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는 고난이도의 사고력은 인간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후회는 극복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없애버릴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가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지 못하는 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진짜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인공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이른바 ‘타임 슬립’ 드라마가 인기인 이유다.

드라마에서,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이 과거에 계속 눌러앉는 경우는 없다. 주인공은 언젠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과거로 갔던 주인공의 행동은 반드시 돌아온 현재에 영향을 준다. 과거의 변화가 평행우주로 사라져 버리고 현재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면 굳이 고생해서 과거로 돌아갈 의미가 없다.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다시 돌아올 현재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절실하게 노력한다.

최근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주인공 임솔도 그렇다. 임솔은 류선재의 죽음이 자신과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류선재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두 사람의 만남, 사랑했던 시간들, 그리고 선재의 죽음에 이르는 무려 15년 동안의 서사를 모조리 없애 버린다.

결혼도 지워버릴 수 있을까

두 사람이 만들어갈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서사는 결혼이라 생각한다. 혼인은 두 사람이 완전히 자유로운 의지로 어떠한 강박도 없이 서로의 배우자가 되기로 약속하는 사회적인 행위이면서 민법에 따른 법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혼인 당시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이상 혼인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은 경우, 부부는 협의 또는 재판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 이혼한 부부는 미성년 자녀를 누가 양육할지, 혼인생활 동안 이룩한 재산은 어떻게 나눌지 등 어려운 결정을 내린 뒤, 마침내 혼인관계를 해소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어떤 혼인관계는 이혼이 아니라 혼인무효, 즉 과거로 되돌아가 혼인을 하지 않았던 상태로 만드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결혼도 아예 없었던 일로 할수 있을까

이혼과 혼인무효는 두 사람의 과거 결혼 서사를 다루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이혼은 두 사람의 혼인사실을 인정한다. 혼인 중 출생한 자녀도 인정하고, 혼인 중 있었던 재산관계를 비롯한 모든 과거의 사실을 그대로 전제한다. 과거를 정리하기 위하여 많은 결정이 필요하다는 점이 이혼의 가장 힘든 점이다. 반면 혼인무효는 다르다. 과거로 돌아가 두 사람이 혼인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과거로 간 주인공의 행동이 현재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혼인무효가 인정된 현재에서 두 사람은 과거에 혼인한 적이 없던 사이가 된다. 혼인기간 동안 부부로서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모든 서사는 사라져버린다.

혼인무효소송은 과거로 돌아가 혼인이 있었던 사실 자체를 없애버리는 ‘타임 슬립’ 소송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도 쉽지 않은 타임 슬립을 현실 세계에서 소송으로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다. 민법은 두 사람이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었거나 아예 혼인의 합의가 없었던 경우에 한하여 혼인무효를 인정하는데, ‘혼인의 합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또한 어렵게 혼인무효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범죄행위로 인한 혼인무효가 아니라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혼인기록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아무리 혼인무효가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혼인무효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구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는 재판받을 권리로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혼이라는 혼인관계 청산 방법을 택한 이후에 다시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도 법원이 판단을 해주어야 하는지가 문제되었는데, 대법원은 최근 40년 만에 판례를 변경하여 이혼한 경우에도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였다(대법원 2024. 5. 23. 선고 2020므15896 판결).

이혼보다 깨끗이 지워지는 혼인 무효

이혼은 과거의 결혼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를 정리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이혼과 그에 이어지는 미성년 자녀의 양육, 재산분할 문제 등은 두 사람이 원만히 합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판이나 조정과 같이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혼이 성립되더라도 과거의 결혼 때문에 나중에 예상치 못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혼인무효는 과거의 결혼 이력을 아예 없애버리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더라도 혼인 사실이 없었다는 주장 하나만으로 대응할 수 있어 오히려 당사자 입장에서는 사안이 간단해진다.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이혼한 뒤에도 혼인무효소송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예시로 들고 있다. 예를 들어 인척에는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혈족, 배우자의 혈족의 배우자 등 주로 혼인을 통하여 인연이 된 사돈 측 가족들이 포함되는데, 민법은 인척뿐만 아니라 ‘인척이었던’ 사람과의 결혼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형과 결혼하여 한번 인척관계가 생긴 형수와는 설령 형이 이혼하더라도 절대로 결혼을 할 수 없다. 형수는 인척이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인무효라면 가능하다. 과거로 돌아가 아예 형과 결혼한 적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혼인무효소송은 매우 예외적인 소송이다. 힘든 이혼 과정을 겪은 뒤에 다시 혼인무효를 주장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누구도 감히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실제로 현재를 바꿀 수 있는지는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타임 슬립 버튼을 누르는 그 마음에 응원을 보낸다.

글쓴이

강정호 변호사 회계사

강정호는 변호사 겸 공인회계사로 시너지 법률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MBTI 극 F성향(감정형)을 가지고 있으며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법률 분야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회계 분야에서 경청과 공감을 전문분야로 삼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하였고 대한변호사협회 조세법전문변호사로 등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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