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벌었어도 ‘미국발’ 태풍 끝나지 않았다

新한미 관계의 ‘뉴노멀 시대’ 오고있어 한국, 안보 의존에서 오는 취약성 한계 ‘미국제일주의’ 진짜 폭풍 대비해야한다 미, 핵농축재처리 후속조치 이행안해

지난달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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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된 준비, 그뒤 엄중한 현실

한국 정부는 초대형 태풍에 대비하듯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했다. 외교장관이 한일 정상회담을 건너뛰고 미국으로 날아가고,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외교 현장에 투입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38년 전 부동산개발업자 시절에 쓴 ‘거래의 기술’을 읽고, 그의 협상술을 연구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한일’ 정상회담을 열었다. 밤새 외교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렸던 국민은 아침이 오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우리 대표단도 정상회담의 “선방”을 자축하는 분위기다. 필자도 한국 대표단의 철저한 회담과 “선물” 준비, 그리고 대통령의 대화 순발력과 “칭찬의 기술”을 높이 평가하며, 정상회담이 기대 이상으로 잘 끝났다는 평가에 동의한다.

화려한 외교의 시간이 끝나면, 이재명 정부는 다시 엄중하고 뾰족한 해답도 없는 한국 안팎의 엄중한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강훈식 비서실장이 “큰 산을 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남았다”, “미국과 협상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고 계속 협상하는 것이 ‘뉴노멀‘”이라고 이번 정상회담을 평가한 것도 이런 현실 인식을 반영한다. 따라서 필자는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재평가하고, 이재명 정부가 주창하는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구현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외교에서 국내 정치와 국민 합의의 중요성을 재인식했다. 과거 한국은 항상 미국의 경제적·안보적 도움을 받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 최선의 한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고의 외교 목표였다. 그런데 오늘날 강대국 정치와 각자도생의 시대에 한국 외교는 최선의 한미 관계를 유지하는 것 못지않게 한국 자신의 안보적·경제적 국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만의 부강을 최고 목표로 하고, 한미 공동의 안보적·경제적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동맹국에 대해 미국을 이용하고 “등쳐먹는(rip-off)” 나라로 인식하고, 가칭 “국가경제안보기금”을 만들 목적으로 주요 동맹국으로부터 각각 수천억 달러의 자금을 억지로 수금하고 있다. 군사안보 측면에서도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안보와 한미동맹 강화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대만사태에는 주한미군의 동원과 한국군의 투입을 요구하며 한국을 지역분쟁에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렇게 한미 간 일부 경제적·안보적 이익이 갈등하므로 한국은 안보·경제적 국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 심각한 협상이 필요하다. 이때 한미 관계가 일시적으로 긴장하고 서로 얼굴을 붉힐 일도 있다. 이런 “국익 외교”를 제대로 하려면, 국내에서 이에 대한 국민합의와 초당적 협력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오늘 국내 정치현실에서 이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귀국 후 첫 국무회의에서 외교와 국익을 위한 “한 목소리”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한 것도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한 것으로 해석된다.

‘진짜’ 미국발 폭풍 대비, ‘다변화’는 필수

한국 대표단이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크게 걱정한 것이 소위 “젤렌스키 현상”이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공개 회담 중 상대에게 “무례하다”며 윽박지르고, 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5월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과 공개 회담 중에도 유사한 불상사가 발생했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특검 수사를 거론하며 종교 탄압을 제기하거나, 주한미군 감축을 위협하며 경제 양보를 강압하거나,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을 윽박지르며 몰아세울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대표단은 방미를 준비하면서 한미동맹 강화, 안보공약 재확인, 교역 확대 등 적극적인 외교 목표보다는 수세적으로 “모욕 안 당하기”, “경제 및 안보 독박 안 쓰기” 등 최악의 상황 방지에 집중했을 것이다.

다행히 한국 정부의 푸짐하고 잘 포장된 경제 선물,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칭찬의 기술” 덕분에 이런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부정선거, 종교 탄압, 친중 성향 등 오해를 불식했을 뿐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을 재차 축하하고 전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 신조와 동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볼 때, 한국은 미국발 진짜 폭풍에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준비는 국익과 외교에 대한 국민 합의와 초당적 협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음, 한국이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구현하려면, 대외적으로 외교안보 및 경제통상의 ‘다변화’를 재촉해야 한다. 한국은 트럼프의 일방적인 25% 관세율 부과를 15%로 낮추는 대가로 LNG 1,000억달러 구매, 투자·금융 패키지 3,500억달러 제공, 별도로 기업의 1,5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이렇게 미국에 거금 투자를 약속한 국가들은 모두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았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하더라도 이들이 순응할 이유가 없다. 사실 외교 다변화, 안보 다변화, 수출시장 다변화, 수출상품 다변화는 우리 정부와 기업의 오랜 과제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국의 외교적·경제적 자율성을 보호하기 위한 각별한 각오와 행동에 나서야 한다.

한미 원자력협정 후속조치 이행 요구해야

마지막으로, 한미 간 조선 협력에 이어 상호 윈-윈의 전략적 협력과제로 원자력을 제기한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원자력의 세계 리더십 회복”을 주창하며 원자력에 대한 “4개 행정명령”을 발표하여 원자력에 대한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 행정명령에서 선진 SMR의 조기 배치, 2030년까지 원전 10기 착공, 2050년까지 원전 용량의 4배 확대, 원자력 인허가 촉진, 원전 수출 촉진, 농축 대폭 증대,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등 의욕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미국의 역량만으로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한국을 주된 협력 상대국으로 지목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의 원자력산업 부흥과 원전 건설을 지원하는 대신 자신의 에너지안보에 필수적인 농축재처리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확보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반대했는데, 2015년에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서는 고위급 협의와 서면합의를 통한 저농축의 길을 열어놓았다.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고온 건식 기술)의 연구개발도 제한적이지만 허용했다. 이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필요한 후속조치를 불이행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의 저농축 추진과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를 봉쇄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의 원전 부흥을 지원하는 대신 농축재처리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는다면 양국이 윈-원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창출하게 된다.

글쓴이

전봉근 국립외교원 겸임교수 한국핵정책학회장

전봉근 교수는 2005년부터 2023년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안보통일연구부장, 비확산핵안보센터장, 외교전략센터 책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연구 분야는 북핵문제, 한국외교, 군축비확산 등이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국제안보비서관, KEDO 뉴욕본부 전문위원, 통일부 장관정책보좌관, 외교부·통일부·국방부·국가안보실의 정책자문위원과 자체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국제정치의 비극』, 『북핵 위기 30년』, 『비핵화의 정치』,『신 국제질서와 한국 외교전략』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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