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보이 쑈리 킴과 KIM...한국인의 상흔들

로버트 H. 모지어와 한국인 소년 KIM. 사진제공= 국가보훈부/연합뉴스
로버트 H. 모지어와 한국인 소년 KIM. 사진제공= 국가보훈부/연합뉴스
  • 문학 속 비극적 자화상 송병수의 소설 《쑈리 킴》은 6·25 직후 생존을 위해 미군 부대 주변을 떠돌던 하우스보이들의 신산한 삶과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증언한다.
  • 현실 속 따뜻한 미담 미 해병 종군기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옛 동반자였던 한국인 소년 ‘KIM’을 찾아 나선 최근의 뉴스는 냉혹한 전쟁 속 피어난 인간적 신뢰와 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 시대를 관통하는 대유적 서사 가상의 비극적 소년 ‘쑈리 킴’과 실제의 소년 ‘KIM’이라는 이름 뒤에는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뎌낸 우리 역사와 상흔이 깊게 서려 있다.

송병수의 단편소설 <쑈리 킴>

송병수(宋炳洙, 1932~2009) 작가의 단편 〈쑈리 킴〉(1957, 《문학예술》)은 한국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설이다. 6·25 직후 미군 부대를 배경으로, 생존을 위해 미군의 심부름을 하는 ‘하우스보이’를 하며 살아가는 어린 고아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이 가감 없이 드러나고 있다.

작가는 미군들이 키가 작은 한국 소년들을 부르던 은어 ‘쇼티(Shorty)’와 가장 흔한 성씨 ‘킴(Kim)’을 결합해, 본래의 이름을 빼앗긴 비극적 기호로서 ‘쑈리 킴’을 만들어냈다.

고아원을 탈출해 기지촌을 서성이다 미군 부대 근동에 표착(漂着)한 쑈리 킴은 달콤한 초콜릿과 C-레이션(전투식량)의 대가로 기신기신 살아간다. 당시 미군 부대 주변의 ‘하우스보이’는 미군의 군화 수선, 청소, 잡일을 맡아 구호물자로 연명하던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미군들에게 ‘따아링 누나’를 공급하는 ‘펨푸(소규모 알선책)’로서의 삶은 일상적인 폭력과 위험에 노출된다. 그는 생존을 위해 영악해져가지만 끝내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쑈리 킴〉은 1950년대 한국과 한국인이 처한 신산한 과정을 핍진성(verisimilitude)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수억 作 ‘구두닦이 소년’ 1953. 유채 116.8×80.3cm
이수억 作 ‘구두닦이 소년’ 1953. 유채 116.8×80.3cm

전쟁의 허무와 실존적 절망 이겨내는 ‘하우스보이’

이범선, 장용학, 손창섭, 서기원, 그리고 송병수... 전쟁이 남긴 잿더미 위에서 펜을 들었던 1950년대 한국의 전후(戰後) 작가들이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은, 가난과 상실, 인간성 파괴라는 우울한 군상을 통해 우리 역사의 가장 깊은 상처를 증언해 준다.

이들의 문학은 전쟁의 허무와 실존적 절망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포착해냄으로써, 한국 현대문학이 비극적 현실을 서사화하고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중요한 분기점을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왕년에 학창 시절에 ‘한국단편문학대계’라는 전집에서 이 분들의 작품을 일습(一襲)했다. 이범선의 〈오발탄〉, 장용학의 〈요한시집〉, 손창섭의 〈잉여인간〉, 서기원의 〈암사지도〉, 그리고 송병수의 〈쑈리 킴〉...

그 시절 이들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지만, 소설의 결말에 당도할 때면 무언가 답답하고 우울했던 기분이 오래도록 엄습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 느낌을 요즘 말로 하면 ‘헬조선...’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한다.

개인적으로 송병수 작가와는 인연이 있다. MBC에 입사했을 때 송 작가는 당시 까마득한 대선배로 보도국 데스크급 기자로 재직하고 있었다. 〈쑈리 킴〉의 인상이 워낙 강렬하여 단편의 압축미를 보여준 오 헨리나, 전쟁의 부조리를 고발한 알베르 카뮈 같은 해외 대문호를 대하는 듯한 외경감을 느끼기도 했다.

원고지 위를 막힘없이 내달리던 선배의 ‘일필휘지(一筆揮之)’는 젊은 시절 필자에게 ‘문장의 대가’란 어떤 모습인지를 강렬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아버지 도와준 소년 KIM을 찾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 줄의 뉴스를 접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6·25 전쟁 당시 미 해병 종군기자로 참전했던 로버트 H. 모지어 씨의 아들이, 아버지를 도와주었던 한국인 소년 ‘KIM’을 수소문해 찾고 있다는 소식이다.

‘美종군기자 아들 ”6·25서 아버지 도와준 소년 ‘KIM’ 찾습니다”’(연합뉴스 2026.8.6.)... 낡은 흑백사진 속 소년의 모습과 ‘KIM’이라는 성씨를 보는 순간, 소설 〈쑈리 킴〉의 잔상과 M본부에서 6·25 특집을 제작할 때 보았던 1950년대 한국의 빛바랜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기사에 따르면 ‘KIM’은 당시 창도리(옛 강원도 김화군 창도면, 현재는 북한) 인근 피난민 캠프에서 만난 소년이라고 한다. KIM은 ‘부대 보조원’ 신분으로 전선에서 종군기자의 사진 촬영을 도운 것으로 보인다.

모지어 기자의 기억에 따르면 ‘KIM’은 홍천 출신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부친은 당시 이미 사망했으며 폭격으로 집을 홍천에서 인근 지역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모지어 기자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함께 ‘KIM’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모친과 조부, 누이를 만났다고 한다. 정황상 1951년 성탄절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후 모지어 기자는 1952년 7월경 사단 철수로 KIM과 이별했다. 당시 김화군 창도리 일대는 ‘철의 삼각지대’ 인근의 최전선이었는데, 구글링을 열심히 해보니 전사(戰史) 기록상 당시 창도리에서 서부전선으로 이동 철수한 부대는 미 해병 제1사단으로 추정된다.

모지어 기자가 미 해병대 소속 종군기자였음을 감안하면, 그는 미 해병 제1사단 공보실 소속으로 현장을 누비다 의명(依命) 중부전선에서 서부전선으로 부대가 재배치되면서 소년 KIM과 아쉬운 이별을 했을 것이다.

카메라 가방 메고 종군기자 도운 KIM

모지어 기자는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과 글을 1953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미국과 한국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치열한 저널리즘 정신과 휴머니즘의 소산으로 보인다.

짐작하건대 전란의 참화 속에서 만난 종군 기자 모지어와 하우스보이 KIM 사이에는 신분적 한계를 넘어 각별한 인간적 신뢰와 연대가 있었을 것이다. 모지어 기자에게 KIM은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들고 현장을 누비던 ‘동반자’이자 메신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랬을 것으로 믿고 싶다.

이처럼 소설 속 ‘쑈리 킴’과 기사 속 소년 ‘KIM’은 사연이 많이 다르다. 소설 속의 쑈리 킴이 고아원을 도망쳐 기지촌을 서성이다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생존형 악동’이자 비극의 상징이라면, 사진 속 ‘KIM’은 기독교 집안의 소년으로 미국인 종군기자를 도우며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초대받기도 했던 따뜻한 인정가화(人情佳話)의 주인공이다.

격동의 한국사를 거쳐온 상징적 인물

‘군대는 줄’이라더니 하우스보이에도 그레이드가 있었던 것 같다. 공통점이라곤 그저 ‘KIM’이라는 흔한 성씨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가 유독 착잡한 울림을 남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KIM’이라는 이름 뒤에, 195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와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수많은 한국인들의 아픈 초상이 짙게 서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성씨인 김(KIM)... 결국 한국인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셈이니 우연하게도 그의 존재는 격동의 한국사에서 하나의 ‘대유적 서사’를 획득하게 되었다. ‘송병수의 쑈리 킴’과 ‘모지어의 KIM’ 사이에는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한국인의 상흔이 서려 있다.

국가보훈부의 '킴(KIM)을 찾습니다' 캠페인의 주인공 로버트 P. 모지어 씨. 사진= 연합뉴스
국가보훈부의 ‘킴(KIM)을 찾습니다’ 캠페인의 주인공 로버트 P. 모지어 씨. 사진= 연합뉴스

한 장의 흑백사진과 ‘KIM’이라는 이름. 그것은 상투적인 미담이나 사람 찾기 기사를 넘어, 우리가 통과해온 시대의 단면이다. 당사자는 돌아가시고 그 아들이 생전 부친이 그리워했던 한국 소년 KIM을 꼭 찾겠다고 우정 한국에 왔다는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사진 속 소년이 살아있다면 이미 아흔을 바라보는 노년이 되었을 터다. 아들 모지어 씨가 부친의 유지(遺志)를 안고 한국의 문을 두드리는 까닭도, 그 시절 두 사람이 나눈 진정한 ‘우정’ 때문이라고 믿는다. 부디 그가 살아있어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온 기억의 손길과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글쓴이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은 MBC에서 <인간시대>,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한국 PD연합회장을 역임했다. 학창 시절에 <한국문학>지 '대학생 현상문예'를 수상했고 개인문집을 펴내기도 했다.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 이후 문체부의 국제문화교류 전담기관인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 원장으로 재직했다. 저서로 <기록의 힘 증언의 힘>, <우리들의 현대침묵사>,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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