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환빠’ 발언, 가치도 없는 유사역사학
제대로 토론되지 못한 ‘환빠 논쟁’ 정치 좌우에서 다 활용한 유사역사학 역사학 분파도 아니고, 논쟁 가치도 없어 대통령실, 명확한 선긋기 ‘그나마 다행’
영국사 전공자의 잘못된 자리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의 정부 부처 업무보고 중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때 박지향 재단이사장과 나눈 대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명예훼손 재판 때도 무죄 선고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내거나 유사역사학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른 식민사학에 대한 우려를 표하거나 해서 유사역사 쪽에 경도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어왔다. 그런 이유로 이번 대화가 더욱 관심을 끌게 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주제라 할 수 있는 <환단고기> 문제를 꺼내들었는데, 박지향 이사장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박지향 이사장은 본래 영국사 전공자로 동북아의 역사를 다루는 동북아역사재단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번 답변을 통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았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인데, 그 동안 유사역사학 쪽의 공격도 심하게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이른바 ‘환빠’라는 용어도 모르고, 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2015년에 동북아역사재단 초청으로 유사역사학 문제에 대해서 강연했던 적도 있다.
정통 역사학자와의 가상의 대화
만일 이 문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역사학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대답했어야 할지 가상의 문답을 통해 알아보자.
이재명: 역사 교육 관련해서 그 무슨 환빠 논쟁이 있죠.
역사가: 논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환빠 즉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 재단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은 있었습니다.
이재명: 단군, <환단고기>... 그런 걸 주장하고 그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 유사역사학 신봉자? 그것도 비하하는 말 아닙니까?
역사가: 환빠라는 말은 인터넷 상에서 나온 것이라 비하하는 말이 맞습니다만 유사역사학은 학문적으로 정립된 용어로 사용하는 겁니다. 유사역사학은 역사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증거를 자의적으로 사용하여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역사가들은 사료 비판을 통해서 사료를 검증하고 그에 따라 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증거가 없는 건 역사가 아니다?
역사가: 증거가 없는 건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 연구는 사료를 중심으로 하게 됩니다.
이재명: 사료가 물리적 증거를 말하는 건지, 역사적 문헌에 있는 거를 증거라고 하는 건지는 논쟁거리죠.
역사가: 그것은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역사학에는 그동안 정립된 이론이 있습니다. 물리적 증거로서의 사료를 검증하는 것을 ‘사료의 외적 비판’이라고 합니다. 사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검증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후대에 위조된 것인지를 판명하고, 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정말 그 사료를 쓴 것인지 판단하는 것입니다. 역사적 문헌에 있는 것을 검증하는 것을 ‘사료의 내적 비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전두환 회고록을 보면서 거기에 쓰여있다고 다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환단고기>는 사료의 외적·내적 비판을 모두 통과하지 못한 위서입니다. 위서라는 것은 가짜 책이라는 뜻이죠.
이재명: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에요?
역사가: 문헌입니다. 물리적 책으로 실존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책이 아니고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쳐 위조된, 현대에 만들어진 책입니다.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은 1960년대에 대전 지방의 소규모 종교집단 기관지였던 <커발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재명: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어떤 입장에서 볼 거냐... 에, 근본적인 입장들이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역사가: 그렇습니다. 유사역사학은 역사를 자국 위주의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한민족이 고대에 세계를 지배했고 각종 문화를 만들어낸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한자도 한민족이 만들었고, 공자도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 등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놓아서 불필요한 국제적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려할만 한 역사 관점인데, 이들의 이런 주장을 이끌어낸 것이 국내의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이었다고 말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유사역사학의 시각은 우리나라가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에 가지고 있던 열등감에 대한 보상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 대국이 되어있는 대한민국에 있을 필요가 없는 주장입니다.

정치권에서 교대로 활용한 유사역사학
그날의 문답에서 이렇게 답변이 나갔다면 작금에 벌어지는 불필요한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환단고기>의 저자라고 주장되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반대편이었던 정파에서 이 점을 짚어 많이 공격했었는데, 이번에는 공수가 교대가 된 셈이다.
이것은 정파적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유사역사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침투한다. 그 숙주가 민족주의이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주입되는 교육을 받아왔다. 이런 영향이 널리 퍼져 있고, 이 토양 위에서 유사역사학이 자라났다.
과거 동북아역사재단이 만들던 동북아역사지도를 유사역사 측이 맹렬히 공격하여 좌초시킬 때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이 합심하여 유사역사가의 편을 들었다. 최근 <전라도 천년사>나 <김해시사> 같은 경우도 유사역사가들이 역사학자들을 공격하는 빌미로 삼았고, 그 때문에 발간이 되지 않고 있거나 고대사 편을 없애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사역사학의 탄생과 환단고기의 역할
유사역사학의 시초에 <환단고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사역사학이 영향력을 띠기 시작했을 때 <환단고기>가 세상에 등장했고 그로부터 유사역사학을 대표하는 책으로 위세를 떨치게 되었다.
유사역사학은 우리나라에만 특수한 현상이 아니고 한때 어려웠던 나라들이 다 가지고 있는 일종의 거짓된 신화이다. 민족주의의 발흥에 따라 열등감을 품은 나라마다 찬란하고 위대한 역사를 날조해서 떠들기 시작했고, 이 영향 아래 우리나라에도 발생한 것이다. 즉 이 현상은 극히 현대에 나타난 병증이라 할 수 있다.
<환단고기>는 그 출발부터가 잘못된 책인데, 이 책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환국’이라는 문제 때문에 그러하다. ‘환국’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의 한자를 잘못 읽어서 발생했다. 조선 전기만 해도 다들 제대로 읽었던 한자를 중종(中宗) 때 발간하면서 오자를 만들었고 이 책이 확산되면서 ‘환국’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엉터리로 만들어진 존재지만 그 단어가 가지는 힘은 모든 것을 파괴할 만큼 거대했다. 환국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환국의 역사에 기초하여 그 위에 새로운 역사가 건설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환단고기>이다.
유사역사학이 맹위를 떨치는 이유
다른 나라에도 <환단고기> 같은 엉터리 역사책이 있고, 그걸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긴 해도 그 나라의 역사학자들이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엉터리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유사역사가들이 자신들의 세 확산을 위한 또 다른 프레임을 세운 것이 있다. 역사학계를 매국노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역사학계는 식민사학자에게 역사를 배웠고 따라서 이들이 하는 연구는 다 식민사학이라고 매도해왔고, 이런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역사학자의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유사역사가도 역사를 학문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어버렸다. 그런 것이 아니다. 유사역사가는 근본적으로 역사를 자기 마음에 내키는대로 본다. 객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해석에 맞지 않는 증거는 버리고, 자신들의 해석에 부합하면 아무 증거나 가져다 쓴다. 눈앞에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들이밀어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고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자신들의 증거라고 시대도 맞지 않는 것들을 나열한다.
유사역사가들의 발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적 감정에 불을 붙이기 때문에 냉정하고 차갑게 보이는 역사학자들의 말보다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유사역사를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면서 시간이 지나가다보면 어디선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고 만다.
유사역사학과 선을 그은 대통령실
다행히 대통령실에서는 14일에 곧바로 “동북아역사재단 업무 보고 과정에서 있었던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은 이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예전 발언에는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것이 아닌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김현구 교수를 모욕한 일에 대한 명예훼손 재판 때 이덕일 편을 드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실의 공식적인 발언을 통해 유사역사학과 확실히 선을 그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야당의 공격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주당과 유사역사학이 관련 없음을 보여주면 된다는 점을 명심하면 좋겠다.
역사학과 유사역사학은 대립하는 것도 아니고 논쟁하는 것도 아니다. 유사역사학은 역사학의 한 분파가 아니고 그냥 겉모습만 비슷해 보이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유사역사학이 무엇인지, 또 어떤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와 같이 시중에 이미 많이 나온 책을 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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