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없는 ‘대법관 재제청 요구’ 안된다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헌법상 제청권을 사실상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 관행과 절차상 논란을 이유로 헌법이 정한 권한의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 헌법상 제청권 침해 우려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구와 후보군 개입은 대법원장의 고유한 헌법상 제청권을 무력화하고 권력분립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
- 관행을 넘어선 헌법 규정의 우선성 사전 협의 관행이 헌법이 규정한 권한의 경계를 변경할 수 없으며, 법률이 정한 추천 절차와도 충돌할 소지가 크다.
- 사법부 독립을 위한 재고 촉구 대통령의 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이유로 사법부 구성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되며, 헌법적 안전장치인 사법부 독립을 위해 이번 요구는 재고되어야 한다.
(이 글은 정지웅 변호사가 맡고 있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회 위원장의 입장이 아닌 개인적 논평임을 분명히 합니다.)
대법관후보에 대한 청와대의 재재청 요청
청와대는 어제(28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대법원장에게 다른 후보자를 재제청할 것을 공식 요청했다. 반면 함께 제청된 김성수 후보자에 대해서는 임명동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손 후보자의 제청 과정에서 실질적 사전 협의가 결여되어 절차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고,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완결적 권한이 아니라 대통령의 실질적 임명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행 헌법 체제에서 유사한 전례가 없는 상황임에도 법률 검토를 거쳐 재제청을 요청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실련이 아닌’ 정지웅 변호사는 이러한 청와대의 헌법 해석과 재제청 요구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재고를 촉구한다.
청와대는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 지켜야
대한민국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법원장은 제청하고, 국회는 동의하며, 대통령은 임명한다.
헌법이 최고법원의 구성 절차를 세 헌법기관에 분산한 것은 권력분립의 원리에 따라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대통령의 임명권이 존중되어야 하듯 대법원장의 제청권 역시 헌법상 독립된 권한으로 온전히 존중받아야 한다.
대통령에게 실질적인 ‘임명 심사 재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제청 반려 및 재제청 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헌법 제104조 제2항 어디에도 대통령에게 대법원장의 제청을 반려하고 다른 후보자의 재제청을 요구할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있지 않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이유로 재제청 요구권까지 인정한다면,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제청권은 대통령의 의사에 실질적으로 기속되어 형해화될 우려가 크다.
사전협의 관행이 헌법에 없는 요건되어선 안돼
청와대가 역대 인사 과정에서의 ‘사전 협의 관행’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재제청 요구의 근거로 제시한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 불필요한 충돌을 줄이기 위한 소통과 협의는 존중될 수 있으나 관행은 헌법 규정을 대체할 수 없다. 관행은 권한 행사를 원활하게 하는 보완적 수단일 뿐이며, 헌법이 분할한 권한의 경계를 변경하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재제청 요구권을 행사한다면 결과적으로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대통령과의 사전 합의’라는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요건을 부가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 재제청을 요구하면서 그 절차와 방식까지 사실상 제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를 낳는다.
현행 법원조직법 제41조의2는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으며, 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미 종료된 추천 절차의 기존 후보군을 전제로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현행 법률이 예정한 추천 절차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
더 본질적으로 대통령이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후보군과 재제청의 방식까지 사실상 제시한다면, 이는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제청권의 구체적인 행사 과정에 대통령이 관여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제청의 대상과 절차까지 대통령의 의사에 따르도록 한다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독립된 헌법상 권한으로서의 실질을 잃게 된다.
헌법기관의 권한, 민주적 정당성 크기로 서열화되지 않아
청와대가 직접선거에 따른 ‘국민주권’과 민주적 정당성을 재제청 요구의 논거로 제시한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어 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헌법기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헌법기관 간의 권한은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에 따라 서열화되지 않는다. 사법부 독립은 정치적 다수의 의사나 행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재판의 독립과 사법부 구성을 지켜내기 위한 핵심적인 헌법적 장치다.
특히 현행 헌법 체제에서 유사한 전례가 없었던 이번 재제청 요구가 남길 선례는 매우 우려스럽다.
대통령이 한 후보자에 대해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다면 향후 두 번째, 세 번째 제청에 대해서도 같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재제청을 거듭 요구할 수 있다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형식만 남고 대통령의 의사가 대법관 인선에 사실상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권력분립은 기관의 권한 상호 존중을 전제해야
권력분립은 상호 간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각 헌법기관이 자신의 권한 범위를 절제하고 상대 기관의 헌법상 권한을 존중할 때 비로소 유지된다. 한 번 형성된 잘못된 헌법적 선례는 다음 정부에서도 언제든 반복될 수 있음을 무겁게 직시해야 한다.
청와대는 이번 재제청 요구를 재고하고 헌법이 정한 대법관 임명 절차와 대법원장의 헌법상 제청권을 존중해야 한다. 특히 재제청의 후보군과 절차까지 사실상 특정함으로써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대법원 역시 대법관 제청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에 충실히 응답해야 할 것이다.
사법부 독립은 특정 대법원장이나 특정 후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권이 아니다.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헌법적 안전장치다. 어느 정부에서도 그 원칙만큼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 글은 정지웅 변호사의 페이스북 논평을 필자의 허락하에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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