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언어는 문화와 역사의 거울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 영어에 대하여’를 읽고서 미국 문화 모르고선 영어 어휘 이해 쉽지 않아 “수준 높은 영어 학습서이자, 미국문화 인문 교양서”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의 책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 영어에 대하여'.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의 책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 영어에 대하여'.

[나익주 전남대학교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 이창봉 가톨릭대 영어영문학 교수의 저서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 영어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나의 영어 학습 과정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실제 영어 표현의 비유적인 의미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알기 쉽게 서술한 이러한 유형의 책을 읽었다면, 분명히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 훨씬 더 즐겁고 유익했을 것이다.

맥락을 참조하지 않는 어휘 학습은 불가능하다

영어 낱말과 한국어 낱말을 짝 짓는 방식(예: dog/개, house/집, come/오다, go/가다)을 통한 영어 어휘 학습은 영어로 말하고 쓰고 듣고 읽는 의사소통 능력을 배양하는 데 거의 무용하다. 혹시 사물의 이름을 지칭하는 영어 명사의 의미는 대응하는 한국어 명사를 통해 습득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애초에 동사나 형용사, 전치사의 의미는 제대로 습득할 수 없다.

예컨대 take의 의미를 “취(取)하다”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암기한다고 가정해 보자. He took a cold yesterday(그는 감기에 걸렸다)나 The pretty ribbon took her eye(그 예쁜 리본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It will take 3 days to do the task(그 일을 완수하는 데 3일이 걸릴 거야)와 같은 문장에서 take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나아가 take를 사용해 이러한 문장을 말하고 쓰기도 어려울 것이다. take의 의미는 맥락을 참조해야만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맥락’은 어떤 낱말과 결합하는 주변 낱말의 문자적 의미만을 가리키지 않으며, 오히려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일상생활 방식과 관습, 정치, 역사, 문화를 다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개념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음 문장(p.306)에 대한 이창봉 교수의 설명을 살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The board members took the floor one after another to discuss the future of the company.(이사들은 번갈아 회사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

take의 문자적 의미 “취(取)하다”와 floor의 문자적 의미 “(마루)바닥”을 안다고 해서, 위 문장에서 take the floor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가? 달리 말하면, take의 문자적 의미와 the floor의 문자적 의미를 합한 “바닥(단상)을 차지하다”만으로 위 문장에서 take the floor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의장으로부터 공식적인 발언권을 얻어 단상으로 올라가 발언을 하는 공공기관이나 공적인 조직의 회의 문화를 참조하지 않고서는 위 문장에 사용된 take the floor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p.36).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 영어에 대하여’에서 이창봉 교수는 수많은 관용적 표현의 의미가 본질적으로 은유적 동기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또한 관용어의 은유적 기원을 추적하여 서술함으로써, 관용어의 의미도 어느 정도까지는 분석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cloud nine의 의미적 동기는?..’행복은 위에’ 은유

관용어 의미의 은유적 동기는 cloud nine(아홉 번째 구름)이 왜 “더 없이 행복한 상태”를 뜻하고 my two cents(나의 2센트)가 “제 소견”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먼저 She was on cloud nine(“그녀는 지극히 행복했다”)에 예시된 cloud nine의 경우를 살펴보자. 저자는 이 어구의 의미적 기원에 관한 두 가지 설을 소개한다. 하나는 이 어구가 구체적으로 천국에 다다르기 위해 올라가는 아홉 개의 구름 계단 중 마지막 계단을 지칭한다고 묘사한 단테의 ‘신곡’에서 연유한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cloud nine이 1960년대에 제시한 미국 기상청이 분류한 9가지 유형의 구름 중 9번째 구름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양털 구름을 가리킨다는 설이다.

위의 표현들 이외에도, 영어 사용자들이 구체적인 공간 개념인 ‘위/아래’를 통해 더 추상적인 감정 개념인 ‘행복/슬픔’을 이해한다는 것을 예시하는 표현은 무수히 많이 있다. 이것은 I feel like I am in seventh heaven(천국에 있는 기분이에요), I’m six feet off the ground(붕 떠 있는 기분이에요), I’m feeling up today.(오늘 기분이 들떠 있어요) 등 몇 개의 표현만을 떠올려 보아도 알 수 있다.

영어 표현에 대한 한국어 대응 표현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 은유 ‘행복은 위’는 한국어의 수많은 표현 속에 드러나 있다.

이러한 은유적 이해 방식은 영어와 한국어에만 적용되지 않고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에 비슷한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바로 은유가 인간의 개념 체계의 중요한 부분이고 인간의 사고방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영어 표현과 대응하는 한국어 표현의 비교 분석을 통해서 저자는 바로 이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영어와 한국어에서 이 개념적 은유 ‘행복은 위’가 구체적인 언어 표현으로 발현되는 범위와 양상은 다르지만 말이다.

my two cents의 의미적 동기는?...’아이디어는 상품’ 은유

전체 표현의 의미적 동기가 은유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또 다른 흥미로운 표현은 two cents이다. two cents의 축자적인 의미 즉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당연히 2센트이다. 하지만 “two cents를 직역해서 “저의 2센트는……”이라고 하면 매우 어색해진다(p.60)는 주장처럼, 그렇게 해석하면 아래와 같은 표현을 이해할 수 없다.

My two cents is that we have to be more aggressive in this deal. (제 소견은 이 계약에서 우리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I would like to throw in my two cents into this matter.(이 문제에 관해 제 소견을 밝히고 싶어요.)

저자는 two cents가 비유적 의미 “소견(opinion)”으로 사용되는 동기가 우리가 의견을 돈의 관점에서 은유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즉 개념적 은유 ‘의견은 돈(OPINION IS MONEY)’―에 근거한다고 본다. 저자는 이러한 이해 방식이 근본적으로 미국인들의 사고 기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관, 즉 물질주의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단언한다.

사실 은유적으로 돈으로 간주되는 것은 ‘의견’만이 아니다. ‘제안’ ‘설명’ ‘조언’ ‘논평’ ‘변명’ 등 우리 마음속의 모든 생각은 다 ‘가치 있는 물건’, 특히 ‘돈’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two cents는 홀로 유리되어 있지 않으며, 더 상위의 은유 ‘생각은 가치 있는 물건(상품, 자원, 돈)’ 은유를 통해 아래의 다양한 표현과 의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two cents의 비유적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의견은 돈’ 은유는 바로 이 ‘아이디어는 가치 있는 물건’ 은유의 하위 은유에 해당한다. 그리고 two cents는 물론 위의 모든 표현도 다 ‘아이디어는 가치 있는 물건’ 은유의 언어적 발현이다.

저자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영어의 수많은 관용적 표현이 우리 머릿속의 개념적 은유에 의미적 동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은유는 우리의 수많은 신체적 경험으로부터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적 경험은 자신이 성장하고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어떤 언어에서든 개념적 은유가 발현되는 양상은 언어 사용자의 사회적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언어든지 제대로 학습하려면,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회의 정치, 경제, 역사, 종교 등을 잘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그 사회의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미국 문화의 뿌리와 정체성(1부)과 일상문화(2부), 미국 사회의 특성(3부)을 보여주는 수많은 영어 표현의 비유적 의미를 설명한 3부 10장으로 구성된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는 수준 높은 영어 학습서이자, 이러한 설명을 통해 미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인문 교양서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 의미적 기원을 찾기 어려운 영어 관용어들에 의미적 동기를 부여하는 개념적 은유들의 실체를 확인하는 재미에 빠져들면서 미국 사회를 좀 더 친근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와 절, 문장의 구성 방식인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어떤 문장의 정확한 구조(와 의미)는 그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낱말들의 의미를 모르고서는 파악할 수 없다. 어휘 의미의 파악과 문법 구조의 분석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서로 유리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휘 지식의 축적 없이는 어떤 표현의 구조도 의미도 파악할 수 없다. 둘 사이의 우선순위를 굳이 정하라고 한다면, 어휘력 신장이 외국어 학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고 싶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