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이창복 회고록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사진=연합뉴스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사진=연합뉴스
이창복 회고록
이창복 회고록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내게 자랑스러운 분이었습니다.

“아빠 백원만” 하면 아빠는 절대 백원만 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200원이나 300원을 주셨고, 오백원을 주신 적도 있습니다. 동전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시면 철렁철렁 돈이 부대끼는 소리는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동전만 넉넉한게 아니었습니다. 저랑 씨름도 해 주셨고, 바둑도 두어주시는 마음도 넉넉한 분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종종 나를 따로 불러 물으셨습니다. “아버지 뭐하시니?”라고 물으시면 저는 뒷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못하기도 하고 아빠에게 들은 어려운 말을 조그막에 읖조리기도 했습니다. “사회사업요.” 저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사업’이라는 대답이 시원찮은지 선생님은 제게 다시 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빠에게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었습니다. 아빠는 내게 “공장에서 노동자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를 가르치는 사람, 그러니까 ‘선생님’ 같은 높은 분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아빠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빠가 뭔가 ‘높은’ 지위의 사람이란 걸 확인한 겁니다.

아빠는 ‘높은 분’이라서 택시를 자주 타셨습니다. (어린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시는 아빠가 집에 오실 때는 원주 터미널에서 내리시자마자 공중전화로 집으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택시비를 들고 집 앞에 서 있다가 택시에서 내리는 아빠에게 건넸습니다. 아빠는 왜 택시비가 없을까?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빠는 택시에서 내려 집에 들어오시는 모습이 너무도 당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술을 한잔 하신 날은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셨고, 가끔 어머니와 돈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소리야~ 세상의 돈이 다 내돈인데.”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아빠가 구속되어 1년 넘게 집에 안 들어오셨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날 눈을 떠 보니 아빠가 저쪽 아랫목에 누워계셨습니다. 나는 아빠를 바라보았습니다. 어색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아빠’라고 부르면서 아빠 방향으로 세바퀴를 구르면 아빠품에 안길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안되는 겁니다. 그새 내 몸은 커져서 한바퀴만 굴러도 될 정도가 되어버렸고, 마음도 뭔가 변한 것입니다. 그 어색함은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때부터 아빠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후 10년 동안 절반은 교도소에, 절반은 우리집에서 사셨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 내가 받은 삼백원의 의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삼백원은 아버지의 전재산에 근접하는 액수였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삼백원을 내게 주시고 어머니께 서울로 가는 버스비를 받아가셔야 했다는 사실은 몇 년 전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자서전이 나왔습니다. 어떤 활동을 했느냐는 대강 알고 있었지만, 세세히 알게 되니 새롭습니다. 무엇보다 저 역시 인생의 절반이상을 살아보고 나서 읽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큰 수확은 한 인간으로서 지니고 살아야 했던 정신적 고단함과 무게감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회고록을 쓰면서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해 죄송하고 아내에게는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해 미안하고, 자신과 연루되어 폭압적 고문을 받았던 동지들에게는 쓰리고,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미안한데도’ 그 길에서 내려오지 못한 채 자기의 길을 걸어가야 했던 사람이 짊어졌던 것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이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입니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그냥 오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자기 몫의 짐을 내려놓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피와 땀과 눈물로서 자라난 것입니다. 이것이 안전하게 상처받지 않도록 앞으로 오년간도 내 몫의 짐을 내려놓지 않은 채 깨어있어야겠지요.

글쓴이

더칼럼니스트

이 글은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의 막내아들인 이낙원 작가(인천 나은병원 호흡기내과 과장)가 페이스북에 올린 추천의 글을 본인의 동의를 받고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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