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의 명단 공개 “반대한다”

[윤형중 정책연구가의 반박] 과거 주요사안마다 당사자와 소통해 세월호 사건후 만든 재난보도준칙 외면 취지가 정의롭다고 정당화되지 않아 ‘민들레’는 공개 철회하고 유족에 사과하길

이태원 참사 애도기간중 설치된 서울시청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한 시민이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애도기간중 설치된 서울시청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한 시민이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4개월 뒤인 2014년 8월 초, 당시 여야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기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광화문 천막에선 당시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단식 투쟁을 하고 있었다. 유가족들의 핵심 요구 사항은 ‘수사권,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조위’였다. 난항을 겪을 줄로 알았던 여야 협상은 예상 외로 신속하게 타결됐다. 세월호 특조위 구성에 있어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양보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에 있어선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양보해 나온 타협안이었다.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이자 비상대책위원장은 타협안이 최선이라며 유가족 분들을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결과는 어땠을까. 유가족들은 그게 왜 최선이냐고 반문했다. 타협안은 유가족들 뿐만이 아니라, 당시 야당 의원총회에서도 부결됐다. 만일 타협안이 최선이었다면 사전에 유가족들과 제대로 소통을 했어야 했다.

또 다른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18일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뤄내고, 공동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처음 이끌어 낸 역사적인 합의문이었으나,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소녀상에 대해...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등의 문구도 담겼다.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자신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이런 합의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성토부터 나왔다.

참사가 아니어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묻는다

<시민언론 민들레>와 <더탐사>가 공동으로 지난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 155명을 공개했다. 민들레는 대형 참사의 경우 정부나 언론이 명단을 공개해왔는데, 이태원 참사의 경우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정부의 책임 회피와 무관하지 않으니 자신들이 명단을 공개해 제대로 추모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취지가 정의롭다고 해서 그에 따른 행동이 모두 정당화되진 않는다. 게다가 이태원 참사는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부상을 당한 사회적 재난이다. 우리는 이런 참사가 아닌 일반적인 사안을 대할 때에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참사 앞에서 그냥 이해관계자도 아닌,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어떠한 뜻도 묻지 않고, 이게 정의롭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그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게 적절할까.

유족의 뜻을 묻지 않은 게 문제라고 하니, 이런 항변들이 뒤따른다. 대개 이런 내용들이다. 1) 이전에도 대형 참사에선 명단을 공개해왔다, 2)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희생자들의 명단을 은폐한 게 진짜 문제다, 3)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진정한 애도가 불가능하다, 4) 명단이 없으니 유가족들이 서로 협력하지 못한다, 5) 사망자 명단은 민감한 개인정보가 아니다, 6) 명단 공개에 있어 유가족들이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등이다.

모두 의미가 있는 의견이나 이번 논쟁에선 모두 논점을 이탈한 주장들이다. 하나씩 다뤄보자.

1)이전에도 대형 참사에선 명단을 공개해왔다?

우선 ‘대형’의 기준을 가르는 것이 쉽지 않다. 몇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해야 대형일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사망자의 명단을 공개한 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십수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화재 사건들에선 명단을 공개한 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의 결정은 누가 했을까. 여러 화재 사건들을 현장에서 취재해 본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누군가가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일관된 결정을 하지는 않았다. 정부가 피해 현황 브리핑을 언론에 실명을 공개하고서 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언론이 취재해 피해자의 실명을 알더라도 이를 보도한 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다. 대형 참사의 경우 명단 공개가 유가족들이 빨리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게 하는 역할도 있었다. 물론 가족의 죽음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하는 게 적절한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무엇보다 그동안 여러 참사 현장에서 명단을 공개하는 이유가 ‘진정한 애도’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나름의 기준이 등장했다. 재난보도준칙이 바로 그것이다. 재난보도준칙 제14조엔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번 명단 공개는 유가족들의 동의도 얻지 않고, 심지어 유가족들에게 묻지도 않았다. 신중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태도인 것이다.

2)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희생자들의 명단을 은폐한 게 진짜 문제다?

정부는 이번 참사 이후 줄곧 책임을 회피하는 언행을 보여왔다. 특히 일방적으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뒤 지금은 슬퍼해야 할 시간이라며 책임을 따지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성급하게 조성한 ‘애도 분위기’는 꽃들로만 장식된 희한한 합동분향소로 정점을 찍는다. 아마도 조문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분향소가 이상하다고 느꼈고, 위패도 영정 사진도 빠졌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리고서 이런 이상한 분향소가 ‘정부의 책임 회피’에서 비롯됐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명단 공개가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행위일까. 그렇지 않다. 정부는 분향소를 만들고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며 이태원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뜻을 묻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민들레> 또한 명단을 공개하는 과정서 유가족들의 뜻을 묻지 않았다. 결국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다고, 자신들도 다른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3)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진정한 애도가 불가능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얼굴과 이름을 안다면 이번 참사에 감정이입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더 애도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원치 않을 수도 있는 일을 하는 게 정당할까. 진정한 애도는 당사자와 유가족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4)명단이 없으니 유가족들이 서로 협력하지 못한다?

유가족들이 협력하는 것과 명단을 대중에 공개하는 것과는 연결고리가 없다. 유가족들이 서로 연락할 방법이 없다면 정부가 나서서 이를 도와야 하고, 언론도 정부를 압박하거나 직접 유가족들을 도울 수 있다. 대중에 공개하지 않고서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명단 공개가 유가족들의 협력을 돕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 것이다.

5)사망자 명단은 민감한 개인정보가 아니다?

명단이 민감한 개인정보가 아니라는 이유는 나이, 성별, 주소 등 다른 정보가 없이 이름만으로 개인이 특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어떤 신상정보보다 이름이 개인을 특정하는 강력한 정보다. 신상 노출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름부터 공개를 원치 않을 것이다.

6)명단 공개에 있어 유가족들이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당연하다. 그런데 누구도 절대적 권한이 없다. 그렇다면 이 사안에 대해 더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한다. 물론 유가족들의 의견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정부가 중요한 잘못을 은폐하고 있고, 만약에 그 사실의 공개를 유가족들이 원치 않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보면 유가족들의 뜻에 반하는 결정을 언론이 내릴 수도 있다. 그런데 민들레의 명단 공개는 그런 사례가 아니다. 애초에 유가족들의 뜻을 묻지조차 않은 것은 여간해서는 정당화하기가 어렵다.

<민들레>는 우선 사과부터 해라

만일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삶을 통해 이태원 참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면 발품을 팔고 마음을 기울여서 유가족분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기사화에 대한 동의를 얻으면 된다. 유가족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채, 희생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행위는 그저 무례하고 무도할 뿐이다. 진정한 애도는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희생자의 입장으로, 또 희생자의 가족과 친구들의 입장으로 최대한 다가갈수록 가능하다. 많은 분들이 추상화된 숫자보다 얼굴과 이름을 아는 게 그런 입장이 되는 방법이라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 전에 희생자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들이 그걸 원하는지부터 알아보는 게 우선이다. 그것이 선의로 지옥을 만들지 않는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민들레>란 매체는 희생자 명단 공개를 철회하고, 유가족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길 바란다.

글쓴이

윤형중 칼럼니스트

윤형중은 정책연구가다. 과거에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며 정책 전문 저널리스트를 꿈꿨다. 대통령 공약의 파기 과정을 분석한 책 <공약파기>를 썼다. 민간 싱크탱크인 LAB2050의 정책팀장을 지냈고, 현재 독립 정책연구자로 주로 경제와 복지 분야를 연계해 정책을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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