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셀라님은 행복하셨나요?”
- ※ 수필가 강귀분(1937년생)은 농촌진흥청에서 근무하고 미국 뉴욕에서 거주하다 귀국한 뒤, 74세의 나이인 2010년 월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늦깎이 작가입니다.
- 늦은 나이에 등단하여 열정적으로 글을 써온 강귀분 작가는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리더스에세이 이사, 미래수필문학회 이사를 지냈습니다. 저서로는 첫 수필집 《매듭을 풀다》(2020년 출간)가 이씁니다.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의 경험과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를 진솔하고 깊이 있는 문장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받습니다.
머릿숱은 반 인물이라 했는데
파마를 하러 집 근처 작은 상가의 소박해 보이는 미용실에 갔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미용사 혼자 있었다. 젊어서는 먼 곳이라도 단골 미용실을 다녔지만 이제는 집 가까운 곳이 편했다.
동네에서 9년 차 미용실을 하고 있다기에 믿음이 갔다. 수수하고 정감 있어 보이는 미용사는 능숙하게 머리를 다듬고 빠르게 롤을 말았다. 두 시간 넘게 걸리던 파마가 한 시간 만에 끝나고 요금도 착했다. 가깝고 편리해서 기분이 좋았다.
머리를 감았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동글동글 말린 컬 사이로 생머리 칼들이 빳빳하게 서 있었다. 누런 묵은 잔디 사이로 밀고 올라오는 새싹 같은 생머리카락들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날카롭게 서 있었다. 평생 이런 이상한 파마는 처음이었다.
또 감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미용실을 다시 갔다. 미용사는 백발이어서 쉽게 풀려서 생긴 일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가장 가느다란 롤로 뽀글이 파마를 다시 하고는 노인들 머리를 전문으로 하는 미용실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다시 오지 말라는 투였다. 미용실마다 숱도 많고 염색을 하지 않아 머리가 건강하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된 파마가 백발 탓이고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투다. 두 달을 견디고 다른 미용실을 갔다. 머리를 다듬는 미용사에게 원인을 물었다.
미용사는 어색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 동네 같은 업종끼리 말하기 곤란하다는 눈치였다. 다 지난 일, 편하게 말하라고 했다. 머릿속을 많이 쳐냈다고 했다. 잘린 머리카락이 뾰족하게 서 있어 머리 라인이 달라졌다고.
이럴 수가. 젊어서는 숱이 너무 많아 두 명의 미용사가 롤을 말았다. 이제는 숱도 줄어 정수리가 훤한데 그마저 몰래 쳐내는 수모를 당했다. 머릿숱은 반 인물이라 하지 않던가. 속절없이 빠지는 머리카락은 어쩔 수 없지만, 손님의 머리를 몰래 쳐내고 사과를 하여도 모자랄 터인데 고객 탓을 하다니.
나는 분을 삭이느라 머리카락은 자라면 되고 미용실은 다시 안 가면 되는 일이라 스스로 눙치고 항의도 못 했다.
“보호자 없으세요”라니?
펄펄 끓던 내 혈기도, 까칠한 성깔도 잘려 나간 백발처럼 산산조각 나 어디로 갔을까? 내가 젊은이였어도 함부로 그랬을까?
십여 년 전 남편이 중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아이들 대신 내가 함께 병원을 다녔다. 컴퓨터를 응시하던 의사가 남편에게 “보호자는 없습니까?” 하였다. 함께 있는 내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내가 보호자인데요.” 했더니 “아니, 자녀분은 없습니까?” 하였다.
말귀도 못 알아듣고 아무런 결정권도 없을 듯한 노인에게 시시콜콜 설명하는 일이 귀찮다는 투였다. 나는 사람 축에도 못 끼나?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택시를 타지 않는다. 내가 타려는 버스가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있을 때 뛰어가지만, 내 코앞에서 문이 덜컥 닫힌다. 굼뜨고 넘어지기 쉬운 노인을 안 태우려고 매정하게 떠나는 기사. 같은 요금을 내는데도 한두 번이 아니다.
“너는 천만 년 늙지도 말고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는 애먼 버스 꽁무니에 눈을 흘기며 중얼거렸다. 이제는 일상으로 당하는 일이어서 속으로 새기지만 씁쓸하고 서글프다.
젊은이들은 노인을 보면 ‘저렇게 늙어서 무슨 재미로 살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젊을 때는 그랬으니까. 어디서나 노인은 뒷전, 잉여 인간 취급이다.
수천 년 전 쓰인 (BC 1440년경) 성경 레위기 19장 32절에도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공경은 못 해도 함께 살아야 하는 구성원으로 차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땀과 눈물 잊지말아야
노인은 젊은 날을 경험했지만 젊은이들은 노년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힘든 세월을 사느라 진액이 빠져 빈껍질만 남은 노인들의 깊은 속내와 고통스러운 현실을 어찌 알까?
불과 50~60년 전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때 오직 극심한 가난을 면하고 처자식 굶기지 않을 일념으로 40도가 넘는 열사의 땅 사우디아라비아 모래바람 속에서 밤낮을 안 가리고 땀을 흘리던 중동 근로자 아버지들이 있었다.
이국땅, 1km 넘는 지하 갱도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에 떨며 석탄을 캐던 파독 광부들도 있었고, 이국의 병원 시체 안치실에서 무서움에 떨며 시체를 닦던 만여 명의 젊은 간호사들.
10여 년간 청춘과 사랑과 영혼까지 바친 그들이 받았던 목숨값,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오일달러와 유로를 고국으로 송금했던 그 돈이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는 디딤돌이 되었음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K-팝이 세계 문화지형을 바꿔놓고 반도체가 세계 산업의 명줄을 쥐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극심한 가난과 질곡의 어두운 터널을 치열하게 살아낸 선배들, 우리 조부모들의 핏속에 숨어있던 우수한 DNA 덕임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지금의 80~90세 노인들이 그들이고 우리의 뿌리다. 나라 예산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노인들이 다 사라지고 30~40세 젊은이만 남은 세상이 온다면? 그건 재이다. 모두 30~40년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력과 반짝이는 예지력이 젊은이의 전유물이라면 노인에게는 신중한 참을성과 경륜이 있다. 사람만이 가진 감성은 다 밀려나고 무엇이나 인터넷을 뒤지고 AI에게 의존하는 디지털 만능의 삭막한 시대, 조금 느리더라도 사람만이 가진 ‘솔로몬의 지혜’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나는 한국인 기대 수명을 넘겨 살고 있다. 세계 최고의 의술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120세를 가볍게 넘어설 것 같고 노인 인구는 줄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가끔 천국에 대한 호기심, 설렘, 기대를 가져보지만, 백 년도 안 살았는데 무료한 일상이 때때로 지루하다. 태초의 우주 환경은 하나님의 창조의 모습 그대로 청결함을 지니고 있어 노화의 속도가 달랐겠지만, 창세기에 기록된 최장수 969년을 사신 무드셀라님.
“모든 인류가 소원하는 역대급 장수를 누리신 님은 행복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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