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더하기 2는 4다” 교사가 다시 거리로 나서는 이유

[교육플러스 취재노트]

지난 15일 국회 본관 앞에서 아동학대법 개정을 촉구하는 교원 3단체 교사들. 사진=전교조
지난 15일 국회 본관 앞에서 아동학대법 개정을 촉구하는 교원 3단체 교사들. 사진=전교조
  • 서이초 교사 사건 3주기 서이초 사건이후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와 그로 인한 교사의 위축은 교육 현장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 주저하는 교사, 훼손되는 교육의 본질 정당한 훈육마저 정서적 학대로 치부되는 현실 속에서 교사는 교육적 개입을 주저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을 돕는 교육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 근본적인 해결을 다시 촉구하며 교사들은 단순한 면책이 아닌, 정당한 생활지도를 보호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기준과 절차 마련을 강력히 요구하며 다시 거리에서 ‘가르칠 권리’를 외치고 있다.

교사의 지도를 폭력으로 해석하는 현실

2017년 공개된 미국 단편영화 ‘대안 수학’(Alternative Math)에서 한 초등학교 교사는 ‘2+2=4’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곤경에 빠진다. 시험지에 ‘2+2=22’라고 쓴 학생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부모는 ‘22도 답이 될 수 있다’며 교사를 아이의 창의성과 정서를 억압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결국 교사는 학생에게 정답을 강요해 정서적 상처를 줬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미국 정치권의 ‘대안적 사실’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교실 속으로 환원해 풍자한 영화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마냥 ‘풍자’로만 웃고 넘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영화는 오늘날 교실의 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로 부각된다. 학생이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느끼는 당혹감과 불편함까지 교사가 가한 정서적 폭력으로 해석한다면, 교육은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배움에는 필연적으로 부끄럽고 불편한 순간이 따른다. 자신이 몰랐음을 인정하고, 잘못된 생각을 수정하며, 때로는 수치와 좌절을 견뎌야 한다. 교사는 그 과정에서 학생을 모욕해서는 안 되지만, 학생의 오류를 바로잡고 행동의 한계를 알려줄 책임도 있다. 학생의 모든 부정적 감정을 ‘학대’로 간주한다면 교사는 가르칠 수도, 훈육할 수도 없다.

서이초 교사3주기, 바뀌지 않은 학교

서이초 교사 순직 3주기를 앞둔 15일, 교원 3단체가 함께 국회 앞에 섰다. 서로 성격이 다른 이들 단체가 한목소리를 낸 이유는 분명하다. 법의 문구는 바뀌었지만 교실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9월부터 2026년 2월까지 교원을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 신고는 1870건이었다. 이 가운데 72%인 1352건에 대해 교육청이 정당한 교육활동이라는 의견을 냈다.

종결된 사건의 90.4%는 무혐의 또는 불기소로 끝났다. 물론 무혐의나 불기소를 곧바로 악의적인 허위 신고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혐의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교사가 조사와 수사, 교육활동 배제 과정에서 겪는 시간과 고통은 되돌릴 수 없다.

‘침묵과 방관이 교육자의 길인가’ 자괴감

그래서 교사들은 생활지도를 망설인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고, 갈등을 중재하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을 지도하는 평범한 행위마저 신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먼저 계산한다. 침묵과 방관이 교사 개인에게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는 역설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교실에 남은 학생들이 치른다.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학대 행위에 대한 면책특권이 아니다. 실제 학대는 엄정하게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만 학생이 불쾌감을 느꼈다는 사실만으로 교육행위를 정서적 학대라고 판단하지 않도록 기준을 분명히 하고, 정당한 생활지도와 악의적인 행위를 초기 단계에서 가려낼 절차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교육활동 보호를 한 법 정비와 국가지원을

이를 위해서는 흔히 ‘아동학대법’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 교원지위법을 함께 손질해야 한다. 정서학대의 구성요건을 구체화하고 정당한 교육활동의 보호 원칙을 상위 법률에 명시하는 한편, 교육감 의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무혐의 사건의 장기 수사와 기록 문제를 개선하고, 정당한 직무 수행 중 발생한 소송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 있게 지원할 필요도 있다.

오는 17일 서이초 사건 이후 ‘점’들인 교사들이 다시 거리에서 “가르칠 권리”를 외친다.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거리로 나온 심정은 분노보다 허탈함에 가까울지 모른다. 수많은 추모와 약속, 법 개정에도 교사가 학생에게 “그것은 틀렸다”고 말하기 전에 신고 가능성부터 떠올려야 하는 교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사의 권위가 무조건 옳다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나 교사의 모든 개입을 잠재적 학대로 의심하는 교실도 교육적이지 않다. 학생이 상처받지 않게 하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다. 자신의 오류와 마주하는 불편함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 그것이 교사가 학생의 마음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이고 교육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교사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 이유에 이제는 법과 제도가 답해야 한다.

*이 글은 오수연·이진호·손영일, ’학생에 대한 교사의 정서적 개입을 위한 변론‘(교육비평 제60호, 2026)을 참조했습니다.

이 글은 교육언론 <교육플러스>의 기자칼럼인 ‘취재노트’를 공동 출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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