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팬덤들이 ‘탄핵’ 응원봉 치켜든 의미

쿠데타 저지하고 탄핵 관철시킨 이들 K-팝 팬덤문화는 “저항과 연대와 나눔” 10대 때부터 ‘작지만 행복한 승리’ 경험 촛불이 응원봉으로..외양만 바뀐 것 아냐 미래 바꿀 청년세대, 주인공으로 성장中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토요일인 12월 14일, 대한민국 국민은 대대적인 평화시위로 의회를 압박해서 대통령 탄핵을 얻어냈지만, 이것은 길고 긴 탄핵정국을 향한 발자국에 불과하다. 탄핵을 완성하려면 아직 헌법재판소의 인용과정이 필요하고 이후 조기 대선 및 연말 국회일정, 과도내각의 정상화, 이 모두를 윤석열 내란에 대한 광범위한 동조가 의심되는 검찰과 사법부와의 긴장 아래서 이뤄내야 한다.

이 글은 윤석열 내란이 가져온 탄핵정국에 대한 서울대 학생들과 교수들이 모인 시국토론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여의도 광장에서 벌어진 12월 7일의 1차 탄핵투표 시민집회에 참여해서 관찰한, 이번 시민운동의 핵심 에너지로 등장한 ‘청년여성의 운동성’과 그것의 의미에 대해 쓰여진 글이다. 필자가 학회 참석차 외국에 있어야 했기에 대독을 위해 쓰여졌고, 따라서 목소리로 흩어지지 않고 글로 남겨진 발언이다. 그 자체로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여러 정동을 담고 있기에 공유되고 기억될만하다고 생각된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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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에 저항한 세계의 K-팝 팬들

안녕하세요. 언론정보학과 홍석경입니다. 지난주 1차 토론회에서는 청중으로 앉아서 여러 교수님들의 말씀과 장소를 계단까지 가득 메운 학생들의 질의를 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책임이 있는 해외 컨퍼런스 참석 때문에 할 수 없이 의견만을 보내지만, 제 정신과 마음은 지난 주보다 몇배의 분노로 이 자리를 채우고 있을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저는 지난 주 토요일(12월 7일) 여의도 광장에서 본 것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저는 다년간 ‘한류’에 관해 연구해왔고, 최근 5년은 BTS 팬덤연구를 계기로 ‘K-팝 팬덤문화’가 지닌 폭발적인 에너지에 놀라면서 이것의 정치적 가능성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세계의 K-팝 팬들은 권위주의 정부나 정치인들, 인종차별적 지식인들과 미국, 칠레, 홍콩, 중동지역 여기저기에서 소소하게 부딪히고 저항해 왔습니다. 이러한 해외 K-팝 팬들의 활동은 뉴스를 통해 훨씬 가시적으로 되었지만, 우리는 오히려 국내에서 진행되어온 K-팝 팬덤의 정치적 에너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아마도 K-팝 해외시장이 국내시장보다 10배 이상 크기 때문이고, 내실보다 남의 눈에 더 민감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국내에서도 K-팝 팬덤의 운동성은 계속 무언가를 해내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촛불시위가 응원봉 시위로 바뀐 것은 외양만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 젊은 MX세대들이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서 젊은 MX세대들이 응원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공부안하고 딴짓하며 터득한 ‘연대와 나눔’

K-팝 팬덤의 특징은 커뮤니티 내 연대와 나눔입니다. 이 문화는 어느날 태어난 것이 아니라 1992년 서태지의 등장으로 가시화된 소녀팬들, 이어진 90년대 중반의 K-팝 1세대 팬덤 탄생을 시발로 지금까지 ‘공부안하고 딴짓한다’고 부모님의 ‘등짝스매싱’을 당해가며 한국의 10대 소녀들이 만들어낸 문화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K-팝 팬덤문화는 한국에서 태어난 이 운동이 세계화된 것입니다. 이들의 힘은 폭발적인 한 두 차례 집단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0대, 20대를 거치며 반복적으로 강화된 ‘행복한 연대의 경험’에 기초합니다.

K-팝 팬들은 좌석이 확보된 콘서트에 훨씬 일찍, 해외의 경우 며칠 전부터 모여 나눔을 실천합니다. 경쟁과 이기주의가 덕목인 후기자본주의 시기에 자신의 귀한 시간과 돈, 노력을 투여해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같은 팬커뮤니티 안에서 나누면서 즐거워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새 앨범을 힘껏 지원하고 국내챠트든 빌보드든 승리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는 작은 행복으로 점철된 경험입니다.

이 ‘작지만 행복한 승리의 경험’은 매우 큰 힘입니다. 이런 10대와 20대를 거쳐 30대가 된 언니들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같은 상황에서 거대한 애도의 현장조차 질서있게 유지하는 것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방송사 음악방송 직관(직접관람)을 위해 새벽부터 줄 서면서 추위를 이겨내는 기술과 기다림을 즐거운 흥으로 견디는 능력은 이제 30여년 선후배 사이 전승된 능력이 되었습니다.

지난 토요일(12월 7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공간을 점유하면서 지치지 않고 즐기며 시위를 지속하는 청년들의 힘은 이렇게 형성되고 이제야 전국민의 관심을 끌게 된 것입니다.

청년여성과 중년 남성들의 ‘떼창’

일주일이 지난 이제 이곳저곳에서 데이터가 이 현실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12월7일) 여의도에는 20-35세 여성과 45-59세 남성이 가장 많이 참여했습니다. 현장에서 이 중년 남성들은 오색빛깔 응원봉을 들고 당찬 목소리와 연설로 광장을 화려하게 장악한 이 20-30대 여성들의 에너지를 직관하고 놀랐습니다. 그동안 이들의 힘을 이해하지 못하고 ‘야단만 쳤다고 반성한다’는 고백과,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부모님들의 어떤 희생의 대가인지 이제야 알게 됐다’, ‘앞으로는 우리가 잘 할게요’라는 메시지가 SNS에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운동가만을 고집하면 젊은이들의 흥이 깨질까봐 K-팝 시위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학습하는 중년들과 K-팝만 틀지말고 운동가도 섞어서 틀어달라는 청년들의 요구가 섞이는 현장,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상>과 G-드래건의 <삐딱하게>, 최근의 <위플래쉬>와 <아파트>가 <광야에서>와 <임을 위한 행진곡>, <아모르 파티>가 섞이는 현장을 봤습니다. 아닌 밤중 홍두깨로 시민사회를 공격한 무도한 대통령의 비현실적인 계엄 쿠데타가, 그 힘들다는 세대 통합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시위장소가 광화문에서 여의도로 바뀐 것 또한 큰 차이를 보입니다. 거대한 촛불이 하나의 바다가 되어 파도타기 같은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여의도에서,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길들과 공원, 중앙로 곳곳엔 작은 중심들이 생겨나 끝없는 연설과 흥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 광장의 곳곳에서 <윤석열 탄핵>을 리드하는 압도적인 청년여성의 목소리들을 기억합니다.

청년남성들 또한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들을 모이게 할 깃발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청년남성들은 일상에서 아날로그로 모여서 광장을 장악해본 기억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노동조합과 정당의 깃발은 높이 휘날리고 있지만 여기에 대한 소속감을 가질 경험이 아직 없거나 이반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시위 등의 성공여부는 이 청년들이 얼마나 동참할 것인가, 어떤 깃발 아래 모일 것인지가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프랑스는 행진하고, 우린 장악한다

저는 한국 아닌 또다른 시위의 나라 프랑스에서 오래 교수직을 했습니다. 대중문화가 전공인 사람으로서 거리와 군중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관찰합니다. 프랑스의 시위는 거리를 행진하고, 우리는 광장을 장악합니다. 프랑스 시위에는 외부에서 진입한 또는 시위를 빙자하거나 노린 폭력유발자가 발생하기에 주변 소상공인이 셔터를 내리지만, 우리는 광장 주변 소상공인들에게 선결제된 음료와 간식을 주문해서 이들의 손해를 시민이 보상하고 참가하지 못한 사람이 시위참가자와 연대합니다. 그리고 시위의 쓰레기까지 치우고 해산합니다. 무엇보다 인터내셔널가(歌) 외에는 부를 노래가 마땅치 않은 프랑스의 시위에 비해, 한국의 시위는 수많은 노래로 연대하며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흥으로 버티고 저항하는 일은 오래된 한국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오랜기간 물리적 위협아래 버티고 저항하며 민주화를 성취해온 우리만의 힘입니다. 한국의 이러한 성공 스토리,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대중문화물이 세계인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이 ‘한류 현상’입니다. 이 모든 극복의 스토리가 한국을 특별하게 만들었고, 지금 그 새 챕터가 쓰이고 있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한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지난 역사가 완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과거는 어떻게 현재를 구할 수 있을까요? 어찌보면 2016년보다 지금의 과제가 더욱 엄중하고 큰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계엄이라는 무력시위 내란을 민주절차로 해결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과제, 전세계가 지켜보고있습니다. 이 움직임에서 미래를 바꿔 쓸 청년세대가 주인공으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인일 세상에서는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함께 든 세대는 자리가 없고, 1년이면 다 잊고 다시 찍어줄 거라는 시대착오적인 국힘의원의 자리는 없습니다. 105인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기억하는 청년세대를 위해 박수를 보냅니다. 내일 여의도에 제가 없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 원통합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홍석경 교수가 지난 12월12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2차 시국토론회에서 대독한 발표문입니다.)

글쓴이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

홍석경은 1963년생으로 서울대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사회대 신문학과를 거쳐 프랑스에서 언론정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방송위원회 선임연구원 기간을 거쳐 프랑스 보르도대학에서 12년동안 교수를 한 후 2013년부터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신문학과 석사시절부터 대중문화를 연구했고 당시 민중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노래운동에 관심을 지니게 되면서 대중문화의 사회문화정치적 역할에 대해 연구해왔다. 이러한 관심의 학술적인 연장선상에서 <세계화와 디지털 문화시대의 한류>(2013)를 집필했고, 특히 <BTS 길위에서>는 거대한 팬덤의 사회문화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방대한 현장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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