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민주공화국 첫 원주민이야!

야광봉 들고 핫팩 나눠주는 ‘연대’ 태어날 때 이미 민주공화국 시민 한남동 키세스 시위대, 겨울밤 새며 시민 덕성과 경험으로 尹 좌절시켜 지도자는 이들이 사회 주축되게 해야

한남동 키세스 시위대 실사를 위용한 챗GTP이미지. 사진=블로그학교
한남동 키세스 시위대 실사를 위용한 챗GTP이미지. 사진=블로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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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를 끌고 나온 시위대

2025년 1월 4일 오후 4시. 새해가 시작된 지 불과 나흘 만에 서울 경복궁역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집회」. 필자는 지난해 12월 14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 촉구」 집회 이후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는 집회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이후 8년 만에 참여한 자리다.

8년 만에 집회에 나오니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며 의사봉을 두드릴 때 여의도집회에서는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지 못했었다. 2주 만에 경복궁 앞에서 열리는 집회 메인무대에 와서야 각종 보도를 통해 접했던 야광봉의 찬란함과 밝음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젊은 시민들이 야광봉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젊은 시민들이 야광봉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아주 오랜만에 집회 참석이었던 필자는 미처 집회 준비물을 하나도 챙겨오지 못했다. 방석, 핫팩, 가장 중요한 야광봉까지 일절. 아스팔트 맨바닥에 앉으려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민트색의 예쁜 돗자리를 넓게 펴고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저…선생님!’하고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녀를 쳐다보니 “여기 앉으세요”라며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손으로 쳤다. 그리고 필자의 뒤에 서있던 다른 집회 참가자에게도 같이 앉자고 권했다. 신발 벗지 않고 앉아도 된다면서 자신이 준비해 온 돗자리에 편히 앉으라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 이 여성이 앉아 있는 자리 앞에는 돗자리색과 같은 민트색 캐리어가 있었다. 제법 큰 캐리어였다. 캐리어 손잡이 한쪽에 ‘윤석열 탄핵’이 적힌 귀여운 모양의 야광봉이 매달려 있었다. 집회에 필요한 물품을 그 캐리어에 한가득 싣고 온 것 같았다. 캐리어에서 핫팩을 꺼내 하나씩 포장을 뜯어 흔들고 있었다. 여러 개를 열심히 흔들더니 마침내 온기를 내기 시작한 핫팩 하나씩을 필자와 주변 집회 참가자들 손에 하나씩 쥐어 주었다. 이 여성과 함께 돗자리에 앉아 있는 집회 참가자 모두 본래부터 친분이 있던 사이는 아닌 듯했다.

아마도 이 여성은 먼저와 돗자리를 깔고 앉아, 휴대용 방석을 미처 준비해 오지 못한 집회 참가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을 것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소식으로만 들은 선결제, 푸드트럭, 핫팩 나눔과 같은 ‘훈훈한 집회 분위기’를 마침내 필자도 경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못 궁금했다. 갓 스무 살이나 넘었을까 싶은 젊은 여성이 누군가와 함께 앉기 위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온기를 나누기 위해 저 큰 여행용 가방에 핫팩과 간식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그 힘은 어디서 왔을까?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시위를 하고 있는 민주공화국 원주민들. 사진= 연합뉴스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시위를 하고 있는 민주공화국 원주민들. 사진= 연합뉴스

민주공화국 ‘원주민’과 민주공화국 ‘이주민’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집회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는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도 이 여성의 여행용 캐리어 가방과 돗자리를 보곤 짐작한 바가 있는지 인터뷰를 요청했고, 여성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바로 옆에 앉아 있어 듣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여성은 파주에서 왔다고 했다.

“이 큰 가방은 뭐예요?”

“돗자리랑 집회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나눠드리려고 핫팩이랑, 간식 좀 준비해 왔습니다.”

“그 먼 곳에서 이 무거운 가방 들고 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유가 뭐예요?”

“제가 7년 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집회에 나갔는데. 처음이라 정말 아무것도 준비를 못해서 나갔는데, 주변에서 모르는 분들이 방석이랑, 핫팩, 김밥 같은 간식을 챙겨주셨거든요. 그때 그 기억이 너무 강하게 남아서. 이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준비해 봤습니다.”

이거였다. ‘경험’. 경험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것보다도 힘이 셌다. ‘경험’과 ‘계산 없는 나눔’. 따져보니 이 여성은 ‘민주공화국 원주민’일 가능성이 높다(정확한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기에 가능성을 열어둔다). 8‧15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완전한 민주헌정체제는 1987년 이후에나 가능했기에, 필자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원주민은 1987년 이후 출생한 시민들이라고 여겨왔다. 그 이전에 대한민국에 출생해 본인들도 원치 않았겠지만, 독재체제를 경험한 시민들은 ‘민주공화국 이주민’ 정도 될 것이다. 필자도 이 민주공화국 이주민에 해당한다.

독재의 트라우마가 없는 민주공화국 원주민이 경험한 자유로움, 친밀성, 타인에 대한 관대함에서 비롯된 너그러움이 넉넉함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민주주의 성공의 전제가 되는 민주시민이라면 가져야 할 덕목을 기본적으로 탑재한 이들이 이제 우리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1987년 이후 때때로 살짝 뒷걸음을 쳤지만, 그때마다 시민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저항권과 비판적 복종을 적시 적소에 평화롭게 행사하며, ‘분노’와 ‘실망’을 극도로 절제하고 인내하면서, ‘법에 따라’ 부패한 공직자들을 파면시키고 자신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리하지 못한 선출직 공직자를 갈아 치우려 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을 완전한 민주국가로 올려놓은 민주공화국 원주민의 덕성과 경험이 ‘윤석열 친위쿠데타’를 좌절시키는 새로운 역사를 또 만든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우리가 몰랐던 것은 ‘원주민의 시민적 본능’

지난 1월 15일 오전 10시 33분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집행이 완료되면서 ‘12‧3 내란 사태’는 일단 분수령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구국의 결단’인양 위헌‧위법인 비상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의 민주헌정질서를 정면으로 공격한 내란수괴 윤석열과 그 일당의 남은 사법절차는 법에 정해진 수순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또한 마찬가지다. 87년 헌법의 ‘아들’이자 ‘민주주의와 헌법수호 상징’인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존재를 완전하게 부정하지 않는 이상 윤석열 탄핵 소추를 기각할 리 만무하다. 아마도 8년 전 비폭력‧합법적으로 이뤄진 박근혜 탄핵의 역사가 다시한 번 반복될 것이다.

이 글을 쓸 때 구상한 건 윤석열 체포 이후 시민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였지만, 지난 40일을 되돌아볼 때, 필자의 이러한 구상은 오만이었고, 필자가 그럴 자격이나 수준에 있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미 지금까지 보여준 시민들은 누가 선도하지 않아도,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경험상– 요즘 말로 하면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고 있었고, 또 용기 있게 행동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민주헌정을 전복하려 했던 내란 세력과 총성 없는 전쟁의 선봉에 선 민주당과 국회, 또 최상목 권한대행을 비롯해 책임 있는 정부 인사들의 국정운영과 주요 정책집행, 결정은 모두 이 민주공화국 원주민을 최우선 염두하고 이들의 의사를 최대한 따르고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에 대한 감사를 잊지말아야

윤석열과 12‧3 내란 세력의 가장 큰 패착과 그로 인한 몰락은 이러한 민주공화국 시민들을 몰랐고, 알려하지 않았고, 경솔하게 간과했다는 데서 비롯됐다. 앞으로 대한민국 지도자를 꿈꾸는 자들은 이 점 잊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 아울러 정치권에서는 이번 12‧3 계엄사태에서 드러난 민주공화국 시민들의 자질과 본성이 변질되지 않도록, 이대로 잘 발현되어 우리 사회의 주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로와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또 국회는 지난해 연말 운영위원회에서 의결한 ‘12‧3 윤석열 비상계엄을 해제한 대한민국 국민께 드리는 감사문’을 단순히 결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감사의 마음을 제도로 구현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국민 감사이고 12월 3일 밤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국회의 감사문 일부를 인용한다.

“...대한민국 국회는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으로 12.3 윤석열 내란사태의 전모를 밝히고 그 책임자들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임을 국민 앞에 다짐합니다. 비상계엄과 내란사태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과 함께 할 것입니다.

헌정질서가 위태로울 때마다 떨쳐 일어나 국헌을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우리 국민의 위대함과 슬기로움에 대한민국 국회는 깊이 감사하며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표합니다. 대한민국 국민과 이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글쓴이

김현정 법학박사

김현정은 고려대학교 정당법연구센터 전임연구원(법학박사)으로 활동 중이다. 고려대학교에서 ‘정당제도’와 ‘민주주의’, ‘언론법’ 등을 연구해 「정당해산제도의 정당보호기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정당법연구센터에서 전임연구원으로 헌법과 인권법, 정당법, 헌법사, 미디어 관련 법제 등을 연구하고 있고 딴지일보의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 등 여러 매체에서 기자로 재직했다. 노무현재단 ‘민주주의‧리더십 연구회’ 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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