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밉도록 차분한 교육계에 대한 우려
[김하늘 학생의 영전에 부쳐] 익명의 교육계 종사자의 반성문 서이초 교사 자살사건과 비교하면 학교 정규과정중 교사에게 피살됐는데 우리 교육계 왜 이렇게 차분하기만 할까
- 이 글은 현직 교육계 행정당국자의 반성문입니다. 기고자가 익명을 원해 신상을 정확히 확인하고 글을 게재합니다.
서이초 교사사건과 비교하면
지난 2023년 7월 18일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괴로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교사가 자신이 근무하던 서이초등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2025년 2월 11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 1학년 김하늘 학생이 다니던 학교에서 교과과정 시간 중 같은 학교 교사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두 사건을 비교하면 목숨을 잃은 한쪽은 교사이고 또 한쪽은 학생이다. 교사는 자신의 선택이었고 학생은 살해되었다. 장소는 모두 몸담은 학교이고, 서이초의 경우 시간은 중요 요소가 아니지만 학생은 정규 교과과정 시간이었다. 이것이 사건의 ‘본질’이고 나머지는 수식이거나 군더더기다.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자면 서이초 교사의 경우 당국의 수사 결과, 자살에 이를 정도(?)의 구체적 사안을 발견하지 못했다. 살해 교사의 경우 이전 병 휴직 사유인 우울증을 논하지만, 우울증이 공격 성향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고, 일각에서는 ‘늘봄’의 관리 체계를 논하지만 역시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최근 해당 교사의 도를 넘는 공격적 행동에 대한 동료 교사들의 증언이 이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훨씬 유용한 정보다.
등교 모습 그대로 돌려보내야 하는 학교의 의무
학교의 사명은 학생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고 그 사명 수행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사의 몫인데, 전제조건이 있다. 아침에 등교한 그 모습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안전한 공간! 그런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교사에 의해 학생이 살해되었다. 더구나 학교 동료와 관리자는 물론 감독관청도 일정 수준 이런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더 심각한 사정은 교육부를 비롯해 교육자치를 수행하는 교육청 같은 교육행정기관은 물론 일선 학교의 관리자, 교사까지 업계 종사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런 위험의 존재와 이런 위험을 사전 방지 또는 제거하기에 충분한 제도적·법적 장치는 물론 분위기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랫동안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약속 대련 같은 이런 일의 전개 과정상 마지막 순서는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이다. 그런데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기존 법적, 제도적 장치마저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배경을 직시하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추모 현수막’ 교사들이 왜 반대했을까?
서이초 사건 당시 전국 17개 교육청은 물론 많은 곳에 분향소가 마련되었고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국화를 바치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언론에 비쳤다. 수많은 교사를 필두로 학생, 학부모들도 명복을 빌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을 개탄하고 재발 방지의 결의와 염원을 담은 쪽지를 써 붙였고, 답지하는 조화는 모두 전시할 공간이 없어 고관대작댁 경조사 때처럼 리본만 잘라 내걸었다.
이번에는? 김하늘 학생의 시신이 안치된 장소를 제외하고 분향소는커녕 현수막 하나 걸렸다는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다. 서이초 교사를 위한 분향소는 어떤 과정을 거쳐 왜 만들었으며 김하늘 학생을 위한 분향소는 어떤 과정을 거쳐 왜 만들지 않았을까? 아니 고려나 해 봤을까?
어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낭패감에 잠깐 정신이 혼미했다. “교문에 추모 현수막을 걸자고 했더니 교사들이 벌떼처럼 일어났습니다. 그럼, 졸업식에서 묵념이라도 하자고 했더니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김하늘 학생이 다니던 학교에서 교과과정 시간 중 같은 학교 교사에게 살해된 일은, 서이초 자살 교사 사건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의미를 품고 있다. 학생이 가치가 아닌 수단으로 전락한, 오래된 폐해가 겹겹이 쌓인 대한민국 교육계 현실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 집약판이다.

교육계,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해야
어떤 잘못을 저지른 신하가 대문이나 궁문 아래에 짚으로 만든 깔개에 무릎 꿇고 앉아, 왕이나 상관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을 석고대죄(席藁待罪)라 한다. 세월호를 끝으로 세상을 등졌던 250명의 학생이 다녔던 단원고의 당시 교감 선생님은 ‘화장해 사고 해역에 뿌려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것으로 책임을 졌다.
마하트마 간디는 ‘우리가 모두 성자일 필요가 없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 제도 역시 (그 업계의) 사람이 운용하는 것일진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교사를 위해 그 법석을 떨었던 대한민국 교육계-행정당국과 교사 집단-가 김하늘 학생 사건에 보여준 얄미울 정도의 차분함 뒤에 숨긴 그 동료애와 이기심이 자칫 그 제도를 또 미라로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이 사건을 대하는 시민의 우려와 교육계 종사자의 자괴감을 감추기 어렵다. 교육계에서 처절한 자기반성이 없이 남이 던져준 해법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피어 보지도 못하고 벼락같은 칼날에 져버린 가련한 꽃송이, 김하늘 학생의 명복을 빌며 무릎 꿇고 피눈물을 흘리며 머리 조아려 용서를 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교육 당국과 교사를 포함한 교육계 종사자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당신의 아들, 딸, 손자녀를 저런 학교에 보낼 수 있습니까?” 아니라면, “그동안 그대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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