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허성원 신원특허법률 대표변리사
  • 법률
  • 입력 2023.11.30 16:37
  • 수정 2023.12.06 12:51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②가장 큰 길을 내는 자

[허성원의 생각하는 특허철학]
이타적 행동 뒤에 숨은 이기적 전략은?
성(城) 쌓고 특허전쟁 벌이는 애플
길을 내고 기술을 오픈하는 테슬라
세상을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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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에 이어서

영업비밀은 휘발성이 강하다

한편 '오픈 소스'는 한마디로 비밀로 유지된 정보를 널리 공개하는 것이다. 기업의 '비밀 정보'는 설계 도면, 데이터, 작업 매뉴얼, 현장 노하우 등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들 정보는 내가 그것을 비밀로 지키고 있을 때에 한하여 '영업비밀'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만약 그런 기술적 정보를 공개하여 비밀 상태를 해제한다는 것은, 길에서 전단지를 부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밀'이란 워낙 휘발성이 강한 것이라, 일단 공개된 후에는 누구의 것도 아니며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지금 로드스터의 사용자 매뉴얼, 제어 회로도 등은 이미 전 세계에 뿌려져 비밀의 봉인이 해제되었다. 그 정보는 요리 레시피나 배추 농사짓는 법과 같이 당장 그대로 갖다 써서 결과를 볼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쓸모를 가진 것들이라는 점에서, 특허 정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 정보들은 이미 세상에 뿌려졌기에 이제 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든 입수하여 자유로이 이용하면 그 이용자가 그에 한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특허 공개는 농사지을 땅은 빌려주되 농사짓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라 한다면, 이번의 오픈 소스 선언은 어느 땅에서 농사를 짓든 따지지도 않고 누구든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도록 세세히 안내한 매뉴얼을 준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어느 쪽이 더 강도 높은 기술 공개인가를 단정해서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특허 공개가 비교적 추상적인 공개라고 한다면, 오픈 소스화는 훨씬 구체적이며 당장 써먹을 수 있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차이는 있다.

2022년 3월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독일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준공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2022년 3월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독일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준공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그들은 진정 이타적인가

기술 공개는 매우 이타적인 행동이다. 지속가능한 지구의 미래를 위해 전기차를 확산시켜야 하고, 그를 위해 기술을 공개한다는 일론 머스크의 좋은 뜻은 진심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진정한 경쟁자는 소량 생산하는 타사 전기차가 아니라, 매일 온 세계의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가솔린 자동차다."

"나는 다른 제조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 진출할 것을 권한다. 그게 옳은 일이다. 그들이 시장에 참여하고 계속 반복하여 개선하여 더욱 더 좋은 전기차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류의 이동수단에 대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저 이타적이기만 한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기업의 이익 추구는,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우길지 몰라도, 그것 없이는 기업 그 자체도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기업이든 그들의 이타적 행동에는 반드시 이기적인 전략이 그 이면에 숨어있을 것이니, 일부 행위만을 보고 순진하게 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테슬라의 경우에도 그들의 기술 공개 정책이 추구하는 '공익적 순정(純情)'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정책에는 필시 모종의 전략적 목표와 예상 이익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대충 예상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 가속화이다. 테슬라가 설립된 지 20년을 넘겼지만 전기차의 시장점유율은 아직 신차 시장의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들의 기대를 상상해보면 매우 실망스런 수준일 것이다. 거기다 최근 전기차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그 틈을 타 하이브리드 차량이 부활하고 있다. 이 분위기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의 기술 공개는 전기차 산업 전반의 성장을 촉진하는 영양제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낼 것으로 여겨진다. 기존 자동차 회사들은 그 정보들을 통해 작든 크든 문턱을 쉽게 넘거나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산업 표준의 주도권이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더디다 하더라도, 최근 중국의 전기차 생산 및 수출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실 이미 올해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자동차 수출 세계 1위에 올랐다. 그 대부분을 전기차가 차지하고 있으니, 자칫 하다가는 전기차의 산업 표준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테슬라의 마음은 바빠질 것이다. 산업 표준 주도권은 충전 인프라, 법적 규제 대응, 협력 파트너십 등 밸류체인 등 해당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대단한 영향을 미치기에, 그냥 맥없이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셋째는 제품 생태계의 안정이다. 공개된 테슬라의 기술과 설계를 적용한 제품이나 부품이 보편화되면, 세계 전기차 생태계는 테슬라에 더욱 의존하게 되어, 기술 개발, 생산 규모의 확대 등 협력 관계를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테슬라는 자신의 제품에 호환성을 갖춘 부품의 조달이 용이하므로 제품 생산의 융통성과 경제성이 높아지고 아울러 시장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넷째는 기업 이미지의 강화다. 대범한 기술 공개 정책은 테슬라의 크고 높은 비전을 세상에 알려 테슬라가 지구 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긍정적인 기업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정착시키게 된다.

다섯째는 전기차 자체가 테슬라의 진정한 핵심역량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테슬라와 관계 기업들의 행보를 볼 때, 테슬라가 추구하는 그들의 진정한 핵심역량은 전기차 그 자체보다는 전 세계 차량들의 자율 운전 환경 구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미래에 다가올 자율운전 시장의 주도권을 노리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전기차는 그저 그들의 자율운전을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 요소에 불과하다.

끝으로 평화주의의 실현이다. 테슬라는 특허를 공개한 이후 특허 취득 건수가 대폭 줄었다. 싸울 일이 없으면 전쟁무기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으니,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한 조직과 비용을 감축하는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허 분쟁이 다른 기업들에 비해 매우 적게 발생하고 있다. 무장해제를 선언한 평화주의자를 상대로 싸우자고 덤벼드는 기업도 절로 줄어드는 셈이다.

우주선 팔콘 헤비에 로드스터를 탑재했다며 그래픽 합성사진을 만든 스페이스X와 테슬라.
우주선 팔콘 헤비에 로드스터를 탑재했다며 그래픽 합성사진을 만든 스페이스X와 테슬라.

성을 쌓을 것인가, 길을 낼 것인가

기술 공개 정책이 테슬라 만의 유일한 것은 아니다. 드물긴 하지만 공익적인 관점에서 그런 정책을 시행하는 기업들이 가끔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다이킨은 자신들의 독점 제품에 대해 2011년도부터 단계적으로 특허를 공개하여 왔다. 다이킨의 에어컨용 냉매인 R-33은 다른 냉매에 비해 지구의 오존층을 훨씬 적게 파괴하고 에너지 효율도 높기 때문에, 지구온난화 억제의 관점에서 그 냉매가 널리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특허 공개 정책을 취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거의 모두 폐쇄적이다. 가능한 한 강력한 금성철벽(金城鐵壁)의 성을 쌓아 자신들의 기술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기업의 일반적이고도 당연한 속성이다. 그런 폐쇄적인 기업의 대표적인 예가 애플이다. 애플은 삼성전자와 수년간의 수십 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걸고 특허전쟁을 벌였지만, 그외에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의 IT 공룡뿐만 아니라 온갖 크고 작은 기업들과 수많은 분쟁을 치렀고 지금도 많은 분쟁을 수행하고 있다. '사나운 강아지 콧잔등 성할 날 없는' 법이다. 폐쇄 정책은 부득이 많은 분쟁을 감수하여야 한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한다." 돌궐의 장수 톤유쿠크가 한 말이다. 애플과 같은 폐쇄적인 정책은 '성을 쌓는 것'이고, 테슬라와 같은 개방 정책은 '길을 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기술의 성을 쌓아 자신의 기술을 강하게 보호하는 폐쇄형 기업들은 망하고, 특허와 기술을 마구 개방하는 개방형 기업은 흥하게 될까? 폐쇄 정책은 비난받고 개방 정책은 칭송받아야 할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각 기업들이 처한 산업 환경, 시장 특성 혹은 장기적인 비전 등에 따라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전략을 선택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애플의 경우 그 제품의 사이클이 짧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자칫 잠깐만 방심하면 시장 주도권을 놓치고 순식간에 되돌릴 수 없는 마이너리티로 추락할 수 있다. 노키아, 블랙베리 등을 업계에서 쫓아낸 주범이 바로 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선두 주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뒤따르는 패스트 팔로워의 추격을 어떻게 해서든 늦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초반부터 강력하고도 민감한 기술 보호 정책으로 추격자를 압박하는 것이다.

테슬라의 입장은 그와 많이 다르다. 전기차의 산업 환경이나 시장 반응의 변화는 비교적 더디고 둔감하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동조자들을 확보하여야만 좀더 빠르고도 폭넓은 시장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래서 많은 동조자들 유인하기 위해 자신의 핵심 역량인 특허와 정보를 내놓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기업이 있다. 성을 쌓는 기업과 길을 내는 기업이다. 성을 쌓는 기업은 흔히 존재하지만, 길을 내는 기업은 매우 귀하다.

길을 내는 기업은 '퍼스트 무버'로서 업계를 리드하고, 웬만한 도전에도 강건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강자이다. 그들은 파격적인 결정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산업 환경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고귀한 비전을 내세워 세상을 좀 더 전향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테슬라가 바로 그런 기업이다. 그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는, 그의 인간적인 면에서의 여러 논란이나 호불호를 떠나, 적어도 그의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큰 길을 내고 있다. <끝>

※ 허성원 변리사는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의 대표로서 부산대학교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한 엔지니어이다. 동서양 고전을 깊이 읽고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특허전략, 리더십, 트렌드 등에 관한 다양한 칼럼을 즐겨 쓰고 있다.